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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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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주소(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4.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러니 子曰
자로子路ㆍ曾晳ㆍ冉有ㆍ公西華가 모시고 앉았더니, 께서 말씀하셨다.
以吾一日長乎爾라하야 毋吾以也하라
“내가 너희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다고 하여 나 때문에 말하기를 어려워하지 말라.
[注]孔曰 晳 曾參父 名點이라
공왈孔曰 : 증삼曾參의 아버지이니, 이름은 이다.
孔曰 言我問女하노니 女無以我長故難對하라
공왈孔曰 : ‘내가 너희에게 묻겠으니, 너희는 내가 어른이란 이유로 대답하기를 어려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居則曰 不吾知也라하나니
〈너희들이〉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들 하였으니,
[注]孔曰 女常居 云人不知也
공왈孔曰 : 너희들이 평소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였다는 말이다.
如或知爾 則何以哉
만약 어떤 사람이 너희를 알아준다면 〈너희는〉 정치政治를 어떻게 하겠느냐?”
[注]孔曰 如有用女者 則何以爲治
공왈孔曰 : 만약 너희를 등용登用하는 자가 있다면 정치政治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이다.
子路率爾而對曰
자로子路가 〈세 사람에 앞서〉 성큼 대답하였다.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하야 加之以師旅하고 因之以饑饉이면 由也爲之 比及三年하야 可使有勇이요 且知方也케하리이다
천승千乘의 나라가 큰 나라 사이에 끼어 핍박을 〈받을 뿐만이 아니라 밖으로는 외국外國군대軍隊침공侵攻을 받고, 〈안으로는〉 기근饑饉이 뒤따랐다면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에게 용기勇氣를 가지게 하고, 또 의방義方(道理)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
夫子哂之하시다
부자夫子께서 웃으셨다.
[注]率爾 先三人對
솔이率爾는 세 사람에 앞서 대답한 것이다.
包曰 攝 迫也 迫於大國之間이라
포왈包曰 : 이니, 큰 나라 사이에 끼어 핍박逼迫을 받음이다.
義方이라
의방義方(遵守할 도리道理)이다.
馬曰 哂
마왈馬曰 : 은 웃음이다.
께서 말씀하셨다.〉 “야!
爾何如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對曰
염구冉求가〉 대답하였다.
方六七十이어나 如五六十
“〈국토國土가〉 사방 6, 7십 리나, 혹은 5, 6십 리인 〈나라를〉
[注]求性謙退하야 言欲得方六七十이어나 如五六十里小國治之而已
염구冉求는 성품이 겸손[謙退]하므로 사방 6, 7십 리나 혹은 5, 6십 리인 작은 나라를 얻어서 다스리고자 할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求也爲之 比及三年하야 可使足民이요 如其禮樂 以俟君子호리이다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풍족豐足하게 할 수 있을 뿐이고, 예악禮樂에 이르러서는 군자君子를 기다리겠습니다.”
[注]孔曰 求自云 能足民而已 謂衣食足也
공왈孔曰 : 염구冉求가 스스로 “백성을 풍족하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의식衣食이 풍족한 것을 이른다.
若禮樂之化라면 當以待君子 謙也
ㆍ樂의 교화敎化라면 군자君子를 기다리겠다고 한 것은 겸사謙辭이다.
께서 말씀하셨다.〉 “아!
爾何如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對曰
이〉 대답하였다.
非曰能之 願學焉하노이다
“〈제가〉 그 일을 능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하노이다
종묘宗廟의 일이나 혹은 회동會同현단복玄端服을 입고 장보관章甫冠을 쓰고서 소상小相이 되기를 원합니다.”
[注]鄭曰 我非自言能이라 願學爲之
정왈鄭曰 : 내가 스스로 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배우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宗廟之事 謂祭祀也
종묘宗廟의 일은 제사祭祀를 이른다.
諸侯時見曰會 衆頫曰同이라
제후諸侯시현時見하는 것을 ‘’라 하고, 중부衆頫(조)하는 것을 ‘’이라 한다.
玄端也
현단복玄端服이다.
衣玄端하고 冠章甫 諸侯日視朝之服이라
현단복玄端服을 입고 장보관章甫冠을 쓰는 것은 제후諸侯가 날마다 시조視朝할 때의 복장服裝이다.
小相 謂相君之禮
소상小相은 임금의 행례行禮보좌輔佐하는 사람을 이른다.
께서 말씀하셨다.〉 “아!
爾何如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鼓瑟希러니 鏗爾舍瑟而作하야 對曰
이〉 거문고를 띄엄띄엄 타더니, 댕그랑 소리를 내며 거문고를 내려놓고서 일어나 대답하였다.
異乎三子者之撰호이다
“저는 세 사람의 재구才具와 다릅니다.”
[注]孔曰 思所以對 故音希
공왈孔曰 : 대답할 말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비파 소리가 띄엄띄엄 난 것이다.
孔曰 置瑟起對
공왈孔曰 : 비파를 내려놓고서 일어나 대답한 것이다.
具也 爲政之具
이니, 정치政治를 하는 재구才具(才能)이다.
鏗者 投瑟之聲이라
은 비파를 내려놓는 소리이다.
子曰 何傷乎리오
께서 말씀하셨다.〉 “해로울 게 뭐 있느냐?
亦各言其志也니라
또한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注]孔曰 各言己志하니 於義無傷이라
공왈孔曰 : 각자 자기들의 뜻을 말한 것이니, 의리에 해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 대답하였다.
莫春者 春服旣成이어든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으로 浴乎沂하고 風乎舞雩하야 詠而歸호리이다
“늦은 봄에 봄옷을 입을 때가 되면 관자冠者 5, 6동자童子 6, 7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고 싶습니다.”
[注]包曰 莫春者 季春三月也
포왈包曰 : (暮)春은 계춘季春 3월이다.
春服旣成 衣單袷之時
춘복기성春服旣成은 홑옷이나 겹옷을 입을 때이다.
我欲得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하야 浴乎沂水之上하고 風涼於舞雩之下하야 歌詠先王之道하며 而歸夫子之門이라
나는 관자冠者 5, 6인과 동자童子 6, 7인을 얻어 기수沂水 가에서 목욕하고 무우단舞雩壇 아래에서 서늘한 바람 쐬고서 선왕先王를 노래하며 부자夫子문하門下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이다.
夫子喟然歎曰
부자夫子가 탄식하시며 말씀하셨다.
吾與點也하노라
“나는 의 뜻을 허여許與한다.”
[注]周曰 善點獨知時니라
주왈周曰 : 이 홀로 때를 안 것을 훌륭하게 여기신 것이다.
三子者出하고 曾晳後러니
세 사람은 나가고 증석曾晳은 뒤에 남아있었다.
曾晳曰
증석曾晳이 말하였다.
夫三子者之言何如하니잇고
“저 세 사람의 말이 어떻습니까?”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니라
께서 말씀하셨다.〉 “역시 각각 자기들의 뜻을 말한 것일 뿐이다.”
曰 夫子何哂由也시니잇고
증석曾晳이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는 어찌하여 를 비웃으셨습니까?”
曰 爲國以禮어늘 其言不讓이라
께서 말씀하셨다.〉 “나라를 다스림은 로써 하는 것인데, 그는 말을 하면서 겸양謙讓하지 않았다.
是故哂之호라
그러므로 웃은 것이다.”
[注]包曰 爲國以禮 禮貴讓이어늘
포왈包曰 : 나라를 다스림은 로써 하고, 겸양謙讓을 중요하게 여긴다.
子路言不讓이라
그런데 자로子路는 말을 하면서 겸양하지 않았다.
故笑之시니라
그러므로 웃으신 것이다.
唯求則非邦也與잇가
증석曾晳이 말하였다.〉 “가 말한 것은 나라의 일이 아니었습니까?”
安見方六七十如五六十而非邦也者
께서 말씀하셨다.〉 “사방 6, 7십 리나, 혹은 5, 6십 리의 땅이 나라가 아닌 것을 어디에서 보았느냐?”
唯赤則非邦也與잇가
증석曾晳이 말하였다.〉 “이 말한 것은 나라의 일이 아니었습니까?”
宗廟會同 非諸侯而何
께서 말씀하셨다.〉 “종묘宗廟회동會同제후諸侯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注]孔曰 明皆諸侯之事 與子路同이나 徒笑子路不讓이라
공왈孔曰 : 〈두 사람이 말한 것도〉 모두 제후諸侯의 일인 것은 자로子路와 같으나, 다만 자로子路는 겸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웃으셨음을 밝힌 것이다.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리오
소상小相이 된다면 누가 대상大相이 될 수 있겠는가?”
[注]孔曰 赤謙言小相耳라하니 誰能爲大相이리오
공왈孔曰 : 소상小相이 되고자 할 뿐이라고 겸양하였으니, 〈그가 소상小相이 된다면〉 누가 대상大相이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疏]‘子路’至篇末
의 [子路]에서 편말篇末까지
○正義曰 : 此章孔子乘間四弟子侍坐, 因使各言其志, 以觀其器能也.
정의왈正義曰 : 이 장은 공자孔子께서 네 제자가 곁에서 모시고 앉아 있는 기회를 이용해 각각 그들의 뜻을 말하게 하여 그들의 기량器量재능才能을 보려 하신 것이다.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者, 時孔子坐, 四子侍側, 亦皆坐也.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 이때 공자孔子께서 앉아 계시니, 곁에서 모시는 네 제자도 모두 앉은 것이다.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者, 孔子將發問, 先以此言誘掖之也.
[子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공자孔子께서 그들의 뜻을 물으시려고 먼저 이렇게 말씀하시어 그들의 대답을 유도誘導하신 것이다.
言女等侍吾, 以吾年長於女, 謙而少言,
“너희들이 나를 모시고 있을 때에 내 나이가 너희들보다 어른이라 하여 〈너희들은〉 겸양하여 말을 적게 한다.
故云一日.
그러므로 ‘일일一日’이라고 한 것이다.
今我問女, 女等毋以吾長而憚難其對也.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묻겠으니, 너희들은 내가 어른이라 하여 대답하기를 어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居則曰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者, 此問辭也.
[居則曰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이것은 물으신 말씀이다.
言女常居則云己有才能, 人不我知. 設如有人知女, 將欲用之, 則女將何以爲治.
“너희들이 평소에 ‘나에게 재능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들 하였으니, 만약 어떤 사람이 너희들을 알아보고서 등용하려 한다면 너희들은 장차 어떻게 정치를 하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子路率爾而對’者, 子路性剛, 故率爾先三人而對也.
[子路率爾而對] 자로子路는 성품이 하기 때문에 세 사람에 앞서 성큼 대답한 것이다.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者. 此子路所志也.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 이것은 자로子路가 뜻한 바이다.
千乘之國, 公侯之大國也.
천승千乘의 나라는 대국大國이다.
攝, 迫也.
(핍박)이다.
穀不熟爲飢, 蔬不熟爲饉.
곡식이 성숙成熟하지 않는 것을 ‘’라 하고, 채소가 성숙하지 않는 것을 ‘’이라 한다.
方, 義方也.
로운 방도方道이다.
言若有公侯之國, 迫於大國之間, 又加之以師旅侵伐, 復因之以飢饉民困, 而由也治之, 比至三年以來, 可使其民有勇敢且知義方也.
만약 ㆍ侯의 나라가 큰 나라 사이에 끼어 핍박을 받고, 게다가 또 외국外國 군대의 침공侵攻이 있고, 다시 이어 기근飢饉이 들어 백성들이 곤란을 겪는다면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3년에 이른 뒤에는 그 백성들로 하여금 용감勇敢한 〈기개氣槪를〉 가지게 하고, 또 의로운 방도를 알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夫子哂之’者, 哂, 笑也. 夫子笑之也.
[夫子哂之] 은 웃음이니, 부자夫子께서 웃으신 것이다.
‘求 爾何如’者, 子路旣對, 三子無言, 故孔子復歷問之. 冉求, 爾志何如.
[求 爾何如] 자로子路는 이미 대답하였으나, 세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다시 차례로 묻기를 “염구冉求야 너의 뜻은 어떠하냐?”라고 한 것이다.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者, 此冉求之志也.
[對曰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이것은 염구冉求의 뜻이다.
俟, 待也.
는 기다림이다.
求性謙退, 言欲得方六七十如五十里小國治之而已.
염구冉求는 성품이 겸손하기 때문에 사방 6, 7십 리나 혹은 5, 6십 리가 되는 작은 나라를 얻어서 다스리고자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求也治此小國, 比及三年以來, 使足民衣食, 若禮樂之化, 當以待君子. 此謙辭也.
‘제가 이런 작은 나라를 다스린다면 3년에 이른 뒤에 백성들의 의식衣食을 풍족하게 할 수 있을 뿐이고, 예악禮樂교화敎化라면 군자를 기다리겠다.’고 말한 것이니, 이것은 겸사謙辭이다.
‘赤 爾何如’者, 又問公西華也.
[赤 爾何如] 또 공서화公西華에게 물으신 것이다.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者, 此赤之志也.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이것은 의 뜻이다.
曰, 言也.
(말함)이다.
我非自言能之, 願學爲焉. 宗廟祭祀之事, 如有諸侯會同, 及諸侯衣玄端, 冠章甫, 日視朝之時, 己願爲其小相君之禮焉.
자신이 스스로 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배우기를 원하는 것이니, 종묘宗廟제사祭祀하는 일이 있거나 혹은 제후諸侯회동會同하는 일이 있거나 제후諸侯현단복玄端服을 입고 장보관章甫冠을 쓰고서 날마다 시조視朝할 때에 자기가 소상小相이 되어 임금의 를 돕기를 원한다고 한 것이다.
‘點 爾何如’者, 又問曾晳也.
[點 爾何如] 또 증석曾晳에게 물으신 것이다.
‘鼓瑟希’者, 時曾晳方鼓瑟, 承師之問, 思所以對,
[鼓瑟希] 이때 증석曾晳은 비파를 퉁기고 있었는데, 스승의 물음을 받고서 대답할 말을 생각하였다.
故音希也.
그러므로 비파소리가 띄엄띄엄 난 것이다.
‘鏗爾舍瑟而作’者, 作, 起也.
[鏗爾舍瑟而作] 은 일어남이다.
舍, 置也.
는 내려놓음이다.
鏗, 投瑟聲也.
은 비파를 내려놓는 소리이다.
思得其對, 故置瑟起對, 投置其瑟而聲鏗然也.
대답할 말을 생각해냈기 때문에 비파를 내려놓고서 일어나 대답했는데, 비파를 내려놓을 때에 댕그랑 소리가 난 것이다.
‘對曰 異乎三子者之撰’者, 撰, 具也.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才具)이다.
未敢言其志, 先對此辭, 言己之所志, 異乎三子者所陳爲政之具也.
감히 자기의 뜻을 말할 수 없어 먼저 이 말로 대답한 것이니, 자기가 뜻하는 바는 세 사람이 진술陳述정치政治재구才具와 다르다는 말이다.
‘子曰 何傷乎亦各言其志也’者, 孔子見曾暫持謙, 難其對, 故以此言誘之曰 “於義何傷乎,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공자孔子께서는 증석曾晳이 겸손을 지켜 대답하기 어려워함을 보셨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그를 유도誘導하기 위해 “의리에 있어 무엇이 해롭겠는가?
亦各言其志也.” 欲令任其所志而言也.
또한 각각 자기들의 뜻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시어, 그로 하여금 생각한 대로 뜻하는 바를 말하도록 하신 것이다.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者, 此曾點所志也.
[曰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이것은 증점曾點이 뜻한 바이다.
莫春, 季春也.
모춘莫春계춘季春이다.
春服旣成, 衣單袷之時也.
춘복기성春服旣成은 홑옷이나 겹옷을 입을 때이다.
我欲得與二十以上冠者五六人, 十九以下童子六七人, 浴乎沂水之上, 風涼於舞雩之下, 歌詠先王之道, 而歸夫子之門也.
‘나는 20세 이상의 관자冠者 5, 6인과 19세 이하의 동자童子 6, 7을 얻어 함께 기수沂水 가에서 목욕하고 무우단舞雩壇 아래서 바람 쐬고서 선왕先王를 노래하며 부자夫子문하門下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이다.
‘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者, 喟然, 歎之貌.
[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 위연喟然은 탄식하는 모양이다.
夫子聞其樂道, 故喟然而歎曰 “吾與點之志.” 善其獨知時, 而不求爲政也.
부자夫子께서는 증석曾晳를 즐기는 뜻을 들으셨기 때문에 위연喟然히 탄식하시면서 “나는 의 뜻을 허여許與한다.”고 하셨으니, 그만이 홀로 때를 알아 정치政治하기를 구하지 않은 것을 훌륭하게 여기신 것이다.
‘三子者出 曾晳後’者, 子路‧冉有‧公西華三子先出, 曾晳後, 猶侍坐於夫子也.
[三子者出 曾晳後] 자로子路ㆍ冉有ㆍ公西華 세 사람은 먼저 나가고, 증석曾晳은 뒤에 남아 여전히 부자夫子를 모시고 앉은 것이다.
‘曾晳曰 夫三子者之言何如’者, 曾晳在後, 問於夫子曰 “夫三子者適各言其志, 其言是非何如也.”
[曾晳曰 夫三子者之言何如] 증석曾晳이 뒤에 남아서 부자夫子께 “저 세 사람이 마침 각각 자기들의 뜻을 말하였는데, 그 말의 시비是非가 어떻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者, 言三子亦各言其所志而已, 無他別是非也.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 세 사람 역시 각각 자기들의 뜻을 말하였을 뿐이니, 특별히 다른 시비是非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曰夫子何哂由也’者, 曾晳又問夫子曰 “旣三子各言其志, 何獨笑仲由也.”
[曰 夫子何哂由也] 증석曾晳이 또 부자夫子께 “이미 세 사람이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하였는데, 어째서 유독 중유仲由의 말에 대해서만 웃으셨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曰 爲國以禮 其言不讓 是故哂之’者, 此夫子爲說哂之意.
[曰 爲國以禮 其言不讓 是故哂之] 이것은 부자夫子께서 웃으신 뜻을 설명하신 것이다.
言爲國以禮, 禮貴謙讓, 子路言不讓,
‘나라를 다스림은 로써 하고, 겸양謙讓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자로子路는 말을 하면서 겸양하지 않았다.
故笑之也.
그러므로 웃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唯求也則非邦也與 安見方六七十 如五六十而非邦也者 唯赤則非邦也與 宗廟會同 非諸侯而何’者, 此夫子又言不哂其子路欲爲諸侯之事,
[唯求也則非邦也與 安見方六七十 如五六十而非邦也者 唯赤則非邦也與 宗廟會同 非諸侯而何] 이것은 부자夫子께서 또 자로子路제후諸侯의 일을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웃은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故擧二子所言, 明皆諸侯之事, 與子路同, 其言讓, 故不笑之, 徒笑其子路不讓耳.
그러므로 두 사람이 말한 것을 들어 모두 제후諸侯의 일인 것은 자로子路와 같으나, 그 말이 겸손하였기 때문에 웃지 않았고, 단지 자로子路의 겸손하지 않은 것만을 웃었을 뿐임을 밝히신 것이다.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者, 此夫子又言, 公西華之才堪爲大相. 今赤謙言小相耳. 若赤也爲之小相, 更誰能爲大相.
[赤也爲之小 孰能爲之大] 이것은 부자夫子께서 또 “공서화公西華재능才能대상大相을 감당할 만한데, 지금 소상小相이 되고자 할 뿐이라고 겸양하였으니, 만약 소상小相이 된다면 다시 누가 대상大相이 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疏]○注 ‘孔曰 晳 曾參父 名點’
의 [孔曰 晳 曾參父 名點]
○正義曰 : 史記弟子傳曰 “”是也.
정의왈正義曰 :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증점曾蒧(音은 )은 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증석曾晳이다.
[疏]○注 ‘方 義方’
의 [方 義方]
○正義曰 : 義, 宜也. 方, 道也. 言能敎之使知合宜之道也.
정의왈正義曰 : 이고 이니, 교화敎化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합의合宜도리道理를 알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左傳曰 “愛子, 敎之以義方.”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공隱公 3년에 “자식을 사랑하되 의방義方으로 가르친다.”라고 하였다.
[疏]○注 ‘鄭曰’至‘之禮’
의 [鄭曰]에서 [之禮]까지
○正義曰 : 云‘宗廟之事 謂祭祀也’者, 謂禴‧祀‧烝‧嘗, 及追享‧朝享‧禘祫之類皆是也.
정의왈正義曰 : [宗廟之事 謂祭祀也] ㆍ祀ㆍ烝ㆍ嘗과 추향追享ㆍ朝享ㆍ禘祫의 가 모두 이것(宗廟의 일)이다.
云‘諸侯時見曰會 殷頫曰同’者, 周禮春官大宗伯職文,
[諸侯時見曰會 殷頫曰同] 《주례周禮》 〈춘관春官 대종백직大宗伯職〉의 글이다.
但彼作殷見, 此作殷頫,
단지 《주례周禮》에는 ‘은견殷見’으로 되어있는데, 이곳에는 ‘은부殷頫’로 되어있을 뿐이다.
頫則見也.
’는 곧 ‘’이다.
鄭玄注云 “此禮以諸侯見王爲文.
정현鄭玄에 “이 제후諸侯에게 조현朝見하는 내용의 글이다.
時見者, 言無常期.
시견時見은 정해진 시기時期가 없음을 말한다.
諸侯有不順服者, 王將有征討之事,
제후諸侯 중에 순종順從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정토征討하기 위해 〈제후諸侯들을 소집召集한다.
則旣朝覲, 王爲壇於國外, 合諸侯而命事焉.
제후諸侯들의〉 조근朝覲(諸侯가 천자天子에게 조현朝見하는 것)이 끝나면 국문國門 밖에 을 설치하여 제후諸侯들을 모아놓고서 각자에게 맡을 일을 명[命事]한다.
春秋傳曰 ‘有事而會, 不協而盟’ 是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3년에 ‘일이 있으면 회합會合하고 화합和合하지 못하면 결맹結盟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殷, 猶衆也.
과 같다.
十二歲王不巡守, 則六服盡朝.
12년 동안 이 만약 순수巡守하지 않으면 육복六服의 제후가 모두 조근朝覲한다.
朝禮旣畢, 王亦爲壇, 合諸侯以命政焉. 所命之政, 王巡守.
조례朝禮가 끝나면 은 또 을 설치하여 제후諸侯들을 모아놓고서 정사政事를 명하는데, 하는 정사는 순수巡守에 관한 일 등이다.
殷見, 四方四時分來, 終歲則徧” 是也.
은견殷見은 사방의 제후가 네 철로 나누어 와서 조현朝見함이니, 한 해가 끝나면 사방의 제후가 모두 와서 조현朝見하는 를 마치게 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端 玄端也 衣玄端 冠章甫 諸侯日視朝之服’者, 其衣正幅染之玄色, 故曰玄端.
[端 玄端也 衣玄端 冠章甫 諸侯日視朝之服] 그 옷은 정폭正幅을 사용해 짓고, 검은 물을 들였기 때문에 ‘현단玄端’이라 한 것이다.
案王制云 “周人玄衣而養老” 注云 “玄衣, 素裳.”
고찰하건대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주인周人현의玄衣를 입고서 양로례養老禮를 거행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 “현의玄衣소상素裳이다.”라고 하였다.
天子之燕服, 爲諸侯朝服.
천자天子연복燕服제후諸侯조복朝服이 된다.
彼云玄衣, 則此玄端也.
저 〈왕제王制〉에 말한 ‘현의玄衣’가 바로 이곳에 말한 현단玄端이다.
若以素爲裳, 卽是朝服. 此朝服素裳皆得謂之玄端,
흰 천으로 하상下裳을 만들었으면 바로 조복朝服인데, 이 조복朝服소상素裳을 모두 현단玄端이라 할 수 있다.
故此注云 “端, 玄端”, 諸侯朝服.
그러므로 이곳 에 “현단玄端이다.”라고 한 것이니, 제후諸侯조복朝服이다.
若上士以玄爲裳, 中士以黃爲裳, 下士以雜色爲裳, 天子‧諸侯以朱爲裳, 則皆謂之玄端, 不得名爲朝服也.
상사上士의 경우는 현색玄色으로 하상下裳을 만들고, 중사中士의 경우는 황색黃色으로 하상下裳을 만들고, 하사下士의 경우는 잡색雜色으로 하상下裳을 만들고, 천자天子제후諸侯의 경우는 주색朱色으로 하상下裳을 만드니, 이를 모두 현단玄端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조복朝服이라고 명칭名稱할 수는 없다.
云‘小相 謂相君之禮’者,
[小相 謂相君之禮]
案周禮秋官司儀職云 “掌九儀之賓客擯相之禮, 以詔儀容‧辭令‧揖讓之節.”
고찰하건대, 《주례周禮》 〈추관秋官 사의직司儀職〉에 “사의司儀는 아홉 등급(公ㆍ侯ㆍ伯ㆍ子ㆍ男과 ㆍ卿ㆍ大夫ㆍ士)의 빈객賓客을 영접하는 빈상擯相를 맡아 〈임금이 지켜야 할〉 의용儀容ㆍ辭令과 읍양揖讓절도節度에게 한다.”라고 하였는데,
注云 “出接賓曰擯, 入贊禮曰相.”
에 “나아가서 을 영접하는 것을 이라 하고, 들어와서 를 돕는 것을 이라 한다.”라고 하였고,
또 “무릇 제공諸公이 서로 이 되었을 경우, 〈둘째 날 주군主君에게〉 (圭璋)를 바치는 를 거행할 때에 미쳐서는 〈태조묘太祖廟의 대문 앞에서〉 를 벌여 세워놓고서 〈내방來訪제후諸侯가 내방한 이유를 자기의 상개上介에게 전하면 상개는 차개次介에게, 차개는 말개末介에게 전한다. 말개는 다시 이 명을 주국主國말빈末擯에게 전하고, 말빈은 차빈次擯에게, 차빈은 상빈上擯에게, 상빈은 이 명을 주군主君에게 전한다.
三辭, 車逆, 拜辱. 賓車進答拜,
주군主君은〉 세 차례 사양한 뒤에 수레를 타고 대문을 나가 수레에서 내려 을 맞이하여 왕림枉臨해준 것에 대해 배사拜謝하면 은 수레를 타고 앞으로 나와 수레에서 내려 답배答拜한다.
三揖三讓,
〈그런 뒤에 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데, 제후諸侯에는 고문庫門ㆍ雉門ㆍ路門 등 세 이 있다. 한 을 들어갈 때마다 주군主君에게 먼저 드시라고〉 세 차례 읍하고 빈은 세 차례 사양한다.
每門止一相” 注曰 “相, 爲主君擯者及賓之介也.
한 문을 들어갈 때마다 한 사람씩을 뒤에 떨어뜨려 놓는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 “주군主君이다.
謂之相者, 於外傳辭耳, 入門當以禮詔侑也.
이들을 이라고 한 것은 문 밖에서는 응대應對하는 말만을 전할 뿐이지만 문 안으로 들어와서는 로써 하고 〈음식을〉 권하기[詔侑] 때문이다.
介紹而傳命者, 君子於其所尊, 不敢質, 敬之至也.
를 벌여 세워놓고서 차례로 이어 을 전하게 하는 것은 군자君子존경尊敬하는 상대에게 감히 간소簡素[質]하게 대우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함이니, 상대를 지극히 공경하는 것이다.
每門止一相, 彌相親也.” 是相謂相君之禮也.
문을 들어갈 때마다 한 사람씩을 뒤에 떨어뜨려 놓는 것은 빈ㆍ주가 더욱 서로 친밀해지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주군主君를 돕는 자를 이른다.
聘禮云 “卿爲上擯, 大夫爲承擯, 士爲紹擯”
예기禮記》 〈빙례聘禮〉에 “상빈上擯, 대부大夫승빈承擯, 소빈紹擯이 된다.”라고 하였고,
玉藻曰 “君入門, 介拂闑, 大夫中棖與闑之間, 上介拂棖.” 則卿爲上介, 大夫爲次介, 士爲末介也.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내방來訪한〉 임금이 〈얼서闑西를 경유해〉 으로 들어가면 상개上介는 임금의 뒤를 따라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문의 중앙에 세운 단목短木)을 스치며 들어가고, 대부大夫상개上介의 뒤를 따라 (문설주)과 의 중간으로 들어가고, 상개上介는 대부의 뒤를 따라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을 스치며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니, 상개上介, 대부大夫차개次介, 말개末介이다.
此云願爲小相者, 謙不敢爲上擯‧上介之卿, 願爲承擯‧紹擯‧次介‧末介之大夫士耳.
이곳에서 소상小相이 되기를 원한다고 한 것은 겸양하여 감히 상빈上擯이나 상개上介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승빈承擯ㆍ紹擯ㆍ次介ㆍ末介의 대부大夫가 되기를 원한다고만 말한 것이다.
[疏]○注 ‘包曰’至‘之門’
의 [包曰]에서 [之門]까지
○正義曰 : 云‘我欲得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者, 意在取其朋友十餘人耳.
정의왈正義曰 : [我欲得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뜻이 벗 10여 인을 취하는 데 있을 뿐이다.
云‘浴于沂水之上 風涼於舞雩之下’者, 杜預云 “魯城南自有沂水” 此是也.
[浴于沂水之上 風涼於舞雩之下] 두예杜預는 “노성魯城 남쪽에 본래부터 기수沂水가 있었다.”라고 하였으니, 두예杜預가 말한 기수沂水가 바로 증점曾點이 말한 기수沂水이다.
夫沂水出蓋縣, 南至下邳入泗.
기수沂水개현蓋縣에서 발원發源하여 남쪽으로 흘러 하비下邳에 이르러 사수泗水로 들어간다.
雩者, 祈雨之祭名. 左傳曰 “”1) 是也.
기우제祈雨祭의 명칭이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창룡蒼龍이 나타나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鄭玄曰 “雩者, 吁也. 吁嗟而請雨也.” 杜預曰 “雩之言遠也, 遠爲百穀祈膏雨也. 使童男女舞之.”
정현鄭玄은 “(탄식)이니, 탄식하며 비를 청함이다.”라고 하였고, 두예杜預는 “의 뜻은 멂이니, 멀리 백곡百穀을 위해 비를 비는 것인데, 동남童男ㆍ童女를 시켜 춤을 추게 한다.”라고 하였다.
春官女巫職曰 “旱暵則舞雩” 因謂其處爲舞雩.
주례周禮》 〈춘관春官 여무직女巫職〉에 “가뭄이 들면 춤을 추며 우제雩祭를 지낸다.”라고 하였으므로 그곳을 일러 무우舞雩라 한 것이다.
舞雩之處, 有樹木, 可以休息,
무우舞雩하는 곳에는 단선壇墠수목樹木이 있어 휴식休息할 수 있다.
故云風涼於舞雩之下也.
그러므로 무우단舞雩壇 아래에서 바람을 쐰다고 한 것이다.
[疏]○注 ‘周曰 善點獨知時’
의 [周曰 善點獨知時]
○正義曰 : 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生値亂時而君不用.
정의왈正義曰 : 중니仲尼는 멀리 임금과 임금의 일을 계승하시고,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받으셨으나, 어지러운 시대를 만나 당시의 군주君主들이 등용하지 못하였다.
三子不能相時, 志在爲政, 唯曾晳獨能知時, 志在, 詠懷樂道,
세 사람은 때를 살피지 못하여 뜻이 정치에 있었으나, 오직 증석曾晳만이 홀로 때를 알아 뜻이 몸을 깨끗이 지니고 덕성德性수양修養하며 회포懷抱를 노래하고 를 즐기는 데 뜻이 있었다.
故夫子與之也.
그러므로 부자夫子께서 허여許與하신 것이다.
역주
역주1 [六]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五 아래에 六자가 빠졌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 (也) : 저본의 이 글자에 대해 阮刻本에서 浦鏜의 말을 인용하여 衍字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3 (子) : 저본의 이 글자에 대해 阮刻本에서 衍字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4 曾蒧音點 字晳 : 《史記》 〈仲尼弟子列傳〉에는 “曾蒧 字晳”이라고만 되어있으니, “音點”은 邢昺이 인용하면서 달아놓은 音注이다.
역주5 (始)[如] : 저본에는 ‘始’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始는 如의 오자이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如’로 바로잡았다.
역주6 (也)[如] : 저본에는 ‘也’로 되어있으나, 《周禮》 〈春官 大宗伯〉의 鄭玄 注에 근거하여 ‘如’로 바로잡았다.
역주7 凡諸公相爲賓 及將幣 : ‘凡諸公相爲賓’에서 ‘及將幣’ 사이에 여러 節次가 있는데, 鄭注에는 이를 省略하였다. 讀者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략된 부분을 소개한다. “〈來訪한 임금이 와서 갈 때까지〉 主國은 飮食 등 필요한 물건을 모두 다섯 차례 제공[五積]하고, 세 차례 慰問하는 禮(賓이 境內에 이르렀을 때 使者를 보내어 一次 慰勞하고, 遠郊(國都에서 100리의 거리)에 이르렀을 때 再次 위로하고, 近郊(國都에서 50리의 거리)에 이르렀을 때 三次 위로함)를 행한다. 賓은 主國이 慰問하는 禮를 베풀어준 것에 대해 매번 세 차례 사양한 뒤에 절하고서 그 禮를 받는데, 매번 擯을 벌여 세워놓고서 〈예를 행하기 위해 온 主國의 使者를 맞이한다.〉 主國이 賓에게 앞서 두 차례의 慰問하는 禮를 거행할 때에, 賓은 매번 〈使者에게 먼저 오르라고〉 세 번 사양하고 세 번 揖한 뒤에 〈使者와 함께 館舍의〉 堂으로 올라가서 賓은 절하고서 위문하는 예를 받고, 使者는 절하고서 위문하는 禮를 보낸다. 主君이 직접 郊外까지 나아가 賓을 慰勞하는 경우에는 賓‧主가 서로 擯과 介를 벌여 세워놓고서 차례로 명을 전하게 한다. 賓은 主君이 친히 郊外까지 나와 위로해준 데 대해 감사하는 뜻을 세 차례 표한 뒤에 수레를 타고 館舍의 대문을 나가 主君을 맞이하여 친히 枉臨해준 것에 대해 拜謝(절을 하여 감사의 뜻을 표함)한다. 그런 뒤에 賓이 主君을 인도하여 館舍로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途中에 賓ㆍ主가 서로 세 차례 揖한다. 〈섬돌 앞에 이르러 賓이 主君에게 먼저 오르라고〉 세 차례 사양하면 主君도 세 차례 사양한 뒤에 〈빈과 함께 堂으로 올라가서〉 賓은 절하고서 위문하는 예를 받는다. 賓이 수레를 타고서 主君을 전송하면 主君은 세 차례 몸을 돌려 사양한다. 빈은 이에 두 번 절하고서 전송하는 뜻을 표시한다.[主國五積 三問 皆三辭拜受 皆旅擯 再勞 三辭 三揖 登 拜受 拜送 主君郊勞 交擯 三辭 車逆 拜辱 三揖 三辭 拜受 車送 三還 再拜]
역주8 龍見而雩 : 《春秋左氏傳》 桓公 5년 傳에 보이는데, 그 注에 “龍星이 나타나는 때는 建巳月(陰曆 4월)이다. 蒼龍은 東方七宿의 總體(全體)인데, 初昏에 東方에 나타난다. 이때에는 만물이 무성해지기 시작하지만 비가 내려야 성장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멀리 百穀을 위하여 비를 빈다.[龍見 建巳之月 蒼龍 宿之體 昏見東方 萬物始盛 待雨而大 故祭天 遠爲百穀祈膏雨]”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龍星은 東方七宿 중의 房宿와 心宿를 이른다.
역주9 壇墠 : 壇은 흙을 쌓아 만든 祭壇이고, 墠은 땅을 평평하게 고른 祭場이다.
역주10 澡身浴德 : 《禮記》 〈儒行〉의 글이다. 그 疏에 “澡身은 몸을 깨끗이 하여 混濁에 물들지 않음을 이르고, 浴德은 德에 沐浴(흠뻑 젖음)하여 德으로써 자신을 淸潔히 함을 이른다.[澡身 謂能澡潔其身 不染濁也 浴德 謂沐浴於德 以德自淸也]”라고 하였으니, 곧 몸을 깨끗이 지니고 德性을 修養함을 이른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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