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者, 長沮桀溺, 隱者也.
‘長沮曰 夫執輿者為誰’者, 執輿, 謂執轡在車也.
‘子路曰 為孔丘’者, 子路以其師名聞於天下, 故擧師之姓名以答長沮也.
‘曰 是魯孔丘與’者, 長沮舊聞夫子之名, 見子路之答, 又恐非是, 故復問之曰 “是魯國之孔丘與.”
‘曰 是知津矣’者, 長沮言 “旣是魯孔丘, 是人數周流天下, 自知津處.”
‘問於桀溺’者, 長沮不告津處, 故子路復問桀溺.
‘曰 是魯孔丘之徒與’者, 桀溺舊聞魯孔丘之門徒有仲由, 有恐非是, 故復問之曰 “
.”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者, 此譏孔子周流天下也.
當今天下治亂同, 皆是無道也, 空舍此適彼, 誰以易之為有道者也.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者, 士有辟人‧辟世之法, 謂孔子從辟人之法, 長沮‧桀溺自謂從辟世之法.
且等其隱辟, 從辟人之法, 則有周流之勞, 從辟世之法, 則有安逸之樂, 意令孔子如己也.
‘夫子憮然’者, 憮, 失意貌, 謂不達己意而便非己也.
‘曰 鳥獸不可與同群’者, 孔子言其不可隱居避世之意也.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者, 與, 謂相親與. 我非天下人之徒衆相親與而更誰親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者, 言凡天下有道者, 我皆不與易也, 為其己大而人小故也.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공자孔子께서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심으로 〈인해〉 은자隱者들의 비난을 받으신 일을 기록한 것이다.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은 은자隱者이다.
사耜(보습)는 밭을 가는 기구인데, 두 사람이 각각 보습을 가지고 서로 도와 밭을 가는 것을 우耦라 한다.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이 두 보습을 나란히 붙여 밭을 간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길을 가실 때에 그 옆을 지나시다가 자로子路를 시켜 가서 나루를 묻게 하신 것이다.
[長沮曰 夫執輿者為誰] 집여執輿는 고삐를 잡고 수레에 있는 것을 이른다.
이때 자로子路가 수레를 몰았으나, 이미 가서 나루를 묻게 하였으므로 공자孔子께서 대신 고삐를 잡고 계셨다.
그러므로 장저長沮가 보고서 자로子路에게 “저 고삐를 잡고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子路曰 為孔丘] 자로子路는 자기 스승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승의 성명姓名을 들어 장저長沮에게 대답한 것이다.
[曰 是魯孔丘與] 장저長沮는 이전에 부자夫子의 명성名聲을 들었고, 자로子路가 대답하는 말을 들었으나, 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다시 자로子路에게 “이가 바로 노魯나라의 공구孔丘이냐?”고 물은 것이다.
여與는 의심되어 확정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조사助詞이다.
[曰 是也] 자로子路가 “이분이 바로 노魯나라의 공구孔丘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曰 是知津矣] 장저長沮가 “이미 이가 노魯나라의 공구孔丘라면 이 사람은 자주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니, 스스로 나루터를 알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問於桀溺] 장저長沮가 나루터를 일러주지 않기 때문에 자로子路가 다시 걸닉桀溺에게 물은 것이다.
[桀溺曰 子為誰] 자로子路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曰 為仲由] 자로子路가 자기의 성명姓名을 칭해 대답한 것이다.
[曰 是魯孔丘之徒與] 걸닉桀溺이 이전에 노魯나라 공구孔丘의 문도門徒 중에 중유仲由라는 자가 있다는 것을 들었으나,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다시 “바로 노魯나라 공구孔丘의 문도門徒이냐?”고 물은 것이다.
자로子路는 자기가 바로 노魯나라 공구孔丘의 문도門徒라고 말한 것이다.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이것은 천하天下를 두루 돌아다니는 공자孔子를 비난한 것이다.
“공자孔子는 무엇 때문에 물이 두루 흐르듯이 두루 돌아다님을 일삼는가?
오늘날 천하天下가 〈가는 곳마다〉 치란治亂이 같아서 모두 무도無道한데, 공연히 이곳을 버리고 저곳으로 가니, 누가 〈도道로〉써 〈세상을〉 바꾸어 도道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사士는 사람을 피하고 세상을 피하는 법이 있는데, 공자孔子를 일러 사람을 피하는 법을 따른다고 하고, 장저長沮와 걸닉桀溺 자신들은 세상을 피하는 법을 따른다고 한 것이다.
이미 천하天下가 모두 어지러워 변역시킬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현자賢者들은 모두 은거隱居해 세상을 피함이 합당하다.
그리고 또 〈두루 돌아다니는 것을〉 은거隱居해 세상을 피하는 것과 비교[等]하여, 사람을 피하는 법을 따르면 두루 돌아다니는 노고勞苦가 있고, 세상을 피하는 법을 따르면 안일安逸한 즐거움이 있다고 한 것은 그 의도가 공자孔子로 하여금 자기들과 같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耰而不輟] 우耰는 씨앗을 덮음이고, 철輟은 멈춤이다.
씨앗 덮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나루를 일러주지 않은 것이다.
[子路行以告] 자로子路가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의 말을 부자夫子께 고告한 것이다.
[夫子憮然] 무憮는 실의失意한 모양이니, 나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 나를 비난한 것을 이른다.
[曰 鳥獸不可與同群] 공자孔子께서 당신은 은거隱居해 세상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산림山林에 많은 조수鳥獸와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다.
만약 산림山林에 은거隱居한다면 이것이 바로 〈조수鳥獸와〉 함께 무리 지어 삶이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여與는 서로 친여親與(친하게 교유交遊)함을 이르니, 내가 천하天下 사람들의 무리와 서로 친하게 교유하지 않고 다시 누구와 친하게 교유하겠는가?
나는 본래 이 천하 사람들과 함께 무리 지어 살아야 하니, 어찌 사람을 버리고 조수鳥獸와 어울려 살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천하天下에 도道가 있다 해도 나는 모두 〈나의 도道를 저들의 도道와〉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니, 이는 나의 도道가 크고 저들의 도道가 작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