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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3)

논어주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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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長沮桀溺耦而耕이어늘
장저長沮걸닉桀溺이 함께 밭을 갈고 있었다.
孔子過之하실새 使子路問津焉하신대
공자孔子께서 그곳을 지나실 적에 자로子路를 시켜 그들에게 나루를 묻게 하셨다.
[注]鄭曰 長沮桀溺 隱者也
정왈鄭曰 : 장저長沮걸닉桀溺은자隱者이다.
耜廣五寸이니 二耜為耦
(보습)는 너비가 다섯 치이니, 두 사람이 각기 보습을 가지고 서로 도와 밭을 가는 것이 이다.
濟渡處
(나루)은 물을 건너는 곳이다.
長沮曰
장저長沮가 말하였다.
夫執輿者為誰
“저 고삐를 잡고 있는 이는 누구요?”
子路曰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為孔丘시니라
공구孔丘시오.”
장저長沮가 말하였다.
是魯孔丘與
“바로 나라의 공구孔丘인가요?”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是也
“그렇소.”
장저長沮가 말하였다.
是知津矣리라
“그라면 나루를 알 것이오.”
[注]馬曰 言數周流하니 自知津處
마왈馬曰 : 자주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니, 스스로 나루터를 알 것이라는 말이다.
問於桀溺한대 桀溺曰
걸닉桀溺에게 묻자, 걸닉桀溺이 말하였다.
子為誰
“그대는 누구요?”
자로子路가 대답했다.
為仲由로라
중유仲由라 하오.”
걸닉桀溺이 물었다.
是魯孔丘之徒與
“바로 나라 공구孔丘문도門徒인가요?”
對曰
자로子路가 대답하였다.
하다
“그렇소,”
걸닉桀溺이 말했다.
도도滔滔한 것이 천하天下가 모두 그러하니, 누가 이것(道)으로써 저것(혼란한 세상)을 바꾸겠소.
[注]孔曰 滔滔 周流之貌
공왈孔曰 : 도도滔滔는 물이 두루 흐르는 모양이다.
言當今天下治亂同이어늘 空舍此適彼
“오늘날 천하天下는 〈가는 곳마다〉 치란治亂이 같은데, 공연히 이곳을 버리고 저곳으로 간다.
故曰誰以易之
그러므로 ‘누가 이것(道)으로써 저것(혼란한 세상)을 바꾸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또 그대가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찌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만 하겠소.”
[注]士有辟人之法하고 有辟世之法이라 長沮桀溺謂孔子為士 從辟人之法이요 己之為士 則從辟世之法이라
는 사람을 피하는 법이 있고 세상을 피하는 법이 있는데, 장저長沮걸닉桀溺이, 공자孔子라는 는 사람을 피하는 법을 따르고, 자기들 같은 는 세상을 피하는 법을 따른다고 한 것이다.
耰而不輟하더라
씨앗 덮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注]鄭曰 耰 覆種也
정왈鄭曰 : 는 씨앗을 덮음이다.
止也
은 멈춤이다.
覆種不止하고 不以津告하니라
씨앗 덮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나루를 일러주지 않은 것이다.
子路行以告한대 夫子憮然이라가
자로子路가 돌아와 〈부자夫子께〉 하니, 부자夫子께서 넋이 나간 듯이 멍하니 계시다가
[注]為其不達己意하고 而便非己也
저들이 공자孔子의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공자를 비난하였기 때문이다.
말씀하셨다.
鳥獸不可與同群이니
조수鳥獸와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으니,
[注]孔曰 隱於山林 是同群이라
공왈孔曰 : 산림山林은거隱居하는 것이 바로 〈조수鳥獸와 함께〉 무리 지어 삶이다.
吾非斯人之徒而誰與리오
내가 이 사람들의 무리와 친하게 지내지 않고 누구와 친하게 지내겠는가?
[注]孔曰 吾自當與此天下人同群이니 安能去人從鳥獸居乎
공왈孔曰 : 나는 본래 이 천하 사람들과 함께 무리 지어 살아야 하니, 어찌 사람들을 버리고 조수鳥獸와 어울려[從] 살 수 있겠는가?
天下有道라도 丘不與易也리라
천하天下가 있다 하여도 나는 〈나의 를 저들의 와〉 바꾸지 않을 것이다.”
[注]言 己大而人小故也
천하天下가 있더라도 나는 모두 〈나의 를 저들의 와〉 바꾸지 않을 것이니, 〈이는〉 나의 는 크고 저들의 는 작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疏]‘長沮’至‘易也’
의 [長沮]에서 [易也]까지
○正義曰 : 此章記孔子周流, 為隱者所譏也.
정의왈正義曰 : 이 공자孔子께서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심으로 〈인해〉 은자隱者들의 비난을 받으신 일을 기록한 것이다.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者, 長沮桀溺, 隱者也.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장저長沮걸닉桀溺은자隱者이다.
耜, 耕器也. 二耜為耦.
(보습)는 밭을 가는 기구인데, 두 사람이 각각 보습을 가지고 서로 도와 밭을 가는 것을 라 한다.
津, 濟渡之處也.
은 물을 건너는 곳이다.
長沮‧桀溺竝二耜而耕,
장저長沮걸닉桀溺이 두 보습을 나란히 붙여 밭을 간 것이다.
孔子道行, 於旁過之, 使子路往問濟渡之處也.
공자孔子께서 길을 가실 때에 그 옆을 지나시다가 자로子路를 시켜 가서 나루를 묻게 하신 것이다.
‘長沮曰 夫執輿者為誰’者, 執輿, 謂執轡在車也.
[長沮曰 夫執輿者為誰] 집여執輿는 고삐를 잡고 수레에 있는 것을 이른다.
時子路為御, 旣使問津, 孔子代之而執轡,
이때 자로子路가 수레를 몰았으나, 이미 가서 나루를 묻게 하였으므로 공자孔子께서 대신 고삐를 잡고 계셨다.
故長沮見而問子路曰 “夫執轡者為誰人.”
그러므로 장저長沮가 보고서 자로子路에게 “저 고삐를 잡고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子路曰 為孔丘’者, 子路以其師名聞於天下, 故擧師之姓名以答長沮也.
[子路曰 為孔丘] 자로子路는 자기 스승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승의 성명姓名을 들어 장저長沮에게 대답한 것이다.
‘曰 是魯孔丘與’者, 長沮舊聞夫子之名, 見子路之答, 又恐非是, 故復問之曰 “是魯國之孔丘與.”
[曰 是魯孔丘與] 장저長沮는 이전에 부자夫子명성名聲을 들었고, 자로子路가 대답하는 말을 들었으나, 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다시 자로子路에게 “이가 바로 나라의 공구孔丘이냐?”고 물은 것이다.
與, 是疑而未定之辭.
는 의심되어 확정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조사助詞이다.
‘曰 是也’者, 子路言 “是魯孔丘也.”
[曰 是也] 자로子路가 “이분이 바로 나라의 공구孔丘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曰 是知津矣’者, 長沮言 “旣是魯孔丘, 是人數周流天下, 自知津處.”
[曰 是知津矣] 장저長沮가 “이미 이가 나라의 공구孔丘라면 이 사람은 자주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니, 스스로 나루터를 알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故乃不告.
그러므로 〈나루터를〉 일러주지 않았다.
‘問於桀溺’者, 長沮不告津處, 故子路復問桀溺.
[問於桀溺] 장저長沮가 나루터를 일러주지 않기 때문에 자로子路가 다시 걸닉桀溺에게 물은 것이다.
‘桀溺曰 子為誰’者, 不識子路, 故問之.
[桀溺曰 子為誰] 자로子路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曰 為仲由’者, 子路稱姓名以答也.
[曰 為仲由] 자로子路가 자기의 성명姓名을 칭해 대답한 것이다.
‘曰 是魯孔丘之徒與’者, 桀溺舊聞魯孔丘之門徒有仲由, 有恐非是, 故復問之曰 “.”
[曰 是魯孔丘之徒與] 걸닉桀溺이 이전에 나라 공구孔丘문도門徒 중에 중유仲由라는 자가 있다는 것을 들었으나,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다시 “바로 나라 공구孔丘문도門徒이냐?”고 물은 것이다.
‘曰 然’者, 然, 尤是也.
[曰 然] 은 더욱 옳음이다.
子路言己是魯孔丘之徒也.
자로子路는 자기가 바로 나라 공구孔丘문도門徒라고 말한 것이다.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者, 此譏孔子周流天下也.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이것은 천하天下를 두루 돌아다니는 공자孔子를 비난한 것이다.
滔滔, 周流之貌.
도도滔滔는 〈물이〉 두루 흐르는 모양이다.
言孔子何事滔滔然周流者乎.
공자孔子는 무엇 때문에 물이 두루 흐르듯이 두루 돌아다님을 일삼는가?
當今天下治亂同, 皆是無道也, 空舍此適彼, 誰以易之為有道者也.
오늘날 천하天下가 〈가는 곳마다〉 치란治亂이 같아서 모두 무도無道한데, 공연히 이곳을 버리고 저곳으로 가니, 누가 〈로〉써 〈세상을〉 바꾸어 가 있는 세상으로 만들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者, 士有辟人‧辟世之法, 謂孔子從辟人之法, 長沮‧桀溺自謂從辟世之法.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는 사람을 피하고 세상을 피하는 법이 있는데, 공자孔子를 일러 사람을 피하는 법을 따른다고 하고, 장저長沮걸닉桀溺 자신들은 세상을 피하는 법을 따른다고 한 것이다.
且而, 皆語辭.
차이且而는 모두 어사語辭이다.
與, 猶等也.
(비교)과 같다.
旣言天下皆亂, 無以易之, 則賢者皆合隱辟.
이미 천하天下가 모두 어지러워 변역시킬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현자賢者들은 모두 은거隱居해 세상을 피함이 합당하다.
且等其隱辟, 從辟人之法, 則有周流之勞, 從辟世之法, 則有安逸之樂, 意令孔子如己也.
그리고 또 〈두루 돌아다니는 것을〉 은거隱居해 세상을 피하는 것과 비교[等]하여, 사람을 피하는 법을 따르면 두루 돌아다니는 노고勞苦가 있고, 세상을 피하는 법을 따르면 안일安逸한 즐거움이 있다고 한 것은 그 의도가 공자孔子로 하여금 자기들과 같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耰而不輟’者, 耰, 覆種也. 輟, 止也.
[耰而不輟] 는 씨앗을 덮음이고, 은 멈춤이다.
覆種不止, 不以津告.
씨앗 덮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나루를 일러주지 않은 것이다.
‘子路行以告’者, 子路以長沮‧桀溺之言告夫子.
[子路行以告] 자로子路장저長沮걸닉桀溺의 말을 부자夫子한 것이다.
‘夫子憮然’者, 憮, 失意貌, 謂不達己意而便非己也.
[夫子憮然] 실의失意한 모양이니, 나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 나를 비난한 것을 이른다.
‘曰 鳥獸不可與同群’者, 孔子言其不可隱居避世之意也.
[曰 鳥獸不可與同群] 공자孔子께서 당신은 은거隱居해 세상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山林多鳥獸, 不可與同群.
산림山林에 많은 조수鳥獸와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다.
若隱於山林, 是同群也.
만약 산림山林은거隱居한다면 이것이 바로 〈조수鳥獸와〉 함께 무리 지어 삶이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者, 與, 謂相親與. 我非天下人之徒衆相親與而更誰親與.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는 서로 친여親與(친하게 교유交遊)함을 이르니, 내가 천하天下 사람들의 무리와 서로 친하게 교유하지 않고 다시 누구와 친하게 교유하겠는가?
言吾自當與此天下人同群, 安能去人從鳥獸居乎.
나는 본래 이 천하 사람들과 함께 무리 지어 살아야 하니, 어찌 사람을 버리고 조수鳥獸와 어울려 살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天下有道 丘不與易也’者, 言凡天下有道者, 我皆不與易也, 為其己大而人小故也.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천하天下가 있다 해도 나는 모두 〈나의 를 저들의 와〉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니, 이는 나의 가 크고 저들의 가 작기 때문이다.
○注‘耜廣五寸 二耜為耦’
의 [耜廣五寸 二耜為耦]
○正義曰 : 此周禮考工記文也.
정의왈正義曰 : 이것은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의 글이다.
鄭注云 “古者耜一金, 兩人竝發之.
정현鄭玄에 “옛날에는 쟁기 끝에 하나의 쇳조각(보습)을 끼워 두 사람이 함께 땅을 일구었다.
今之耜歧頭兩金, 象古之耦也.”
지금은 쟁기 끝의 갈라진 곳에 두 개의 쇳조각(보습)을 끼우니, 옛날의 ‘’를 형상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月令云 “脩耒耜.” 鄭注云 “耜者, 耒之金.”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쟁기와 보습을 수리한다.[脩耒耜]”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보습[耜]은 쟁기 끝에 끼우는 〈삽 모양의〉 쇳조각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滔滔者天下皆是 : 天下가 모두 똑같이 다 昏亂하다는 말이다. 滔滔는 물이 성대하게 흐르는 모양이니, 곧 세상의 혼란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2 而誰以易之 : 이 句의 해석에 4종의 說이 있다. 孔安國의 說은 “누가 道로써 세상을 바꾸겠느냐?”는 것이고, 皇侃의 說은 “孔子는 어찌하여 이리 周流하는가? 오늘날 천하가 〈가는 곳마다〉 治亂이 같으니, 이곳을 버리고 저곳에 간들 누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는 것이고, 邢昺의 說은 “오늘날 天下가 〈가는 곳마다〉 治亂이 같아서 모두 無道한데, 공연히 이곳을 버리고 저곳으로 간들 누가 道로써 〈세상을〉 바꾸어 有道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고, 朱子의 說은 “그대[而]가 누구와 더불어 세상을 변역시키겠느냐?”는 것이다.
역주3 且而與其從辟(피)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 이 節을 注疏에 따라 해석하면 “그것(周流와 隱避)을 비교[與]하면 사람을 피하는 법을 따르는 선비가 어찌 세상을 피하는 법을 따르는 선비만 하겠느냐?”는 뜻이 되며, 두 ‘從’字도 子路가 따르는 것이 아니라 孔子와 長沮‧桀溺이 따르는 것이 되니, 經旨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論語集註》의 說을 따라 번역하였다. 皇侃의 《論語集解義疏》와 朱熹의 《論語集註》 및 劉寶楠의 《論語正義》에는 모두 두 ‘從’字를 子路가 따르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邢昺의 疏에 “且而는 語辭이고, 與는 等(비교)이다.”라고 하였고, 《論語集註》에는 ‘而’를 ‘汝(너. 子路를 이름)’로, ‘以’를 ‘與(더불어)’로 풀었다. 劉寶楠은 朱子의 說을 취하였다. 《論語集註》의 說이 매우 타당하니, 다시 바꿀 수 없는 定論이라 하겠다.
역주4 : 서로 친하게 지냄이다.
역주5 凡天下有道者 丘不與易也 : 注疏를 따르면 “道가 있는 세상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治民의 大道를 저들의 隱避의 小道와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니, 곧 세상에 道가 있다 하여도 나는 周流하는 것을 버리고 隱避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論語集註》를 따르면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는 저들(沮‧溺)과 더불어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劉寶楠은 이 注說이 매우 歪曲되었으므로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
역주6 是[魯國孔丘之徒]與 : 저본에는 ‘是與’로 되어있으나, “浦鏜이 ‘是魯國孔丘之徒與 8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魯國孔丘之徒’ 6자를 보충하였다.

논어주소(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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