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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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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陳司敗問
나라 사패司敗가 물었다.
昭公知禮乎잇가
소공昭公를 알았습니까?”
[注]孔曰 司敗 官名이니 陳大夫
공왈孔曰:사패司敗관명官名이니, 나라 대부大夫이다.
昭公 魯昭公이라
소공昭公 소공昭公이다.
孔子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知禮시니라
를 아셨습니다.”
孔子退커시늘 揖巫馬期而進之하야
공자孔子께서 나가시자, 〈사패司敗가〉 무마기巫馬期에게 하고 그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吾聞君子不黨이라하야늘 君子亦黨乎
“내가 듣기에 군자君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군자君子을 합니까?
君取於吳하니 爲同姓이라
노군魯君나라 여인女人을 아내로 취하였으니, 동성同姓끼리 혼인을 한 것입니다.
謂之吳孟子라하니 君而知禮 孰不知禮리오
〈그런데 동성혼인同姓婚姻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 여인女人을 ‘오맹자吳孟子’라 하였으니, 이런 임금을 를 안다고 한다면 누가 를 모르겠습니까?”
[注]孔曰 巫馬期 弟子 名施
공왈孔曰:무마기巫馬期제자弟子이니 이름은 이다.
相助匿非曰黨이라
서로 도와 잘못을 숨겨주는 것을 이라 한다.
魯吳俱姬姓이라
나라와 나라는 같은 희성姬姓이다.
同姓不昏이어늘
에 의하면 동성同姓끼리는 혼인婚姻하지 않는다.
而君取之하니 當稱吳姬어늘 諱曰孟子라하니라
그런데 나라 임금이 나라 여인女人을 아내로 취하였으니, 응당 ‘오희吳姬’라고 해야 하는데 동성혼同姓婚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맹자孟子’라고 한 것이다.
巫馬期以告한대 子曰
무마기巫馬期사패司敗의 말을 공자께 아뢰니, 께서 말씀하셨다.
丘也幸이로다
“나는 다행이다.
苟有過 人必知之온여
진실로 허물이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아는구나.”
[注]孔曰 以司敗之言告也
공왈孔曰:사패司敗의 말을 〈공자께〉 아뢴 것이다.
諱國惡 禮也로되 聖人道弘이라 故受以爲過하시니라
국가의 수치스러운 일을 숨기신 것이 에 맞는 일이었는데도 성인聖人가 크기 때문에 사패司敗의 비난을 받아들여 자신의 허물로 여기신 것이다.
[疏]‘陳司’至‘知之’
의 [陳司]에서 [知之]까지
○正義曰:此章記孔子諱國惡之禮也.
○正義曰:이 공자孔子께서 국가의 수치스러운 일을 숨기신 것이 에 부합했음을 기록한 것이다.
‘陳司敗問 昭公知禮乎’者, 陳大夫爲司寇之官, 舊聞魯昭公有違禮之事, 故問孔子 昭公知禮乎.
[陳司敗問 昭公知禮乎] 나라 대부大夫사구司寇관직官職을 맡은 자가 전에 소공昭公를 어긴 일이 있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공자孔子에게 ‘소공昭公를 알았느냐?’고 물은 것이다.
‘孔子曰 知禮’者, 答言昭公知禮也.
[孔子曰 知禮] ‘소공昭公를 아셨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 曰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者, 相助匿非曰黨.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 曰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 서로 도와 잘못을 숨겨주는 것을 이라 한다.
孔子旣答司敗而退去, 司敗復揖弟子巫馬期而進之, 問曰 “我聞君子不阿黨, 今孔子言昭公知禮, 乃是君子亦有黨乎.”
공자孔子께서 사패司敗에게 대답하고 나서 물러가시니, 사패司敗가 다시 제자弟子 무마기巫馬期에게 하고 그에게 나아가 ‘내가 듣기에 군자君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금 공자孔子소공昭公를 아셨다고 말하였으니, 군자君子을 합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君取於吳 爲同姓 謂之吳孟子 君而知禮 孰不知禮’者, 孰, 誰也.
[君取於吳 爲同姓 謂之吳孟子 君而知禮 孰不知禮] (누구)이다.
魯吳俱姬姓,
나라와 나라는 모두 희성姬姓이다.
禮同姓不昏,
에 의하면 동성同姓끼리는 혼인婚姻을 하지 않는다.
而君取之, 當稱吳姬, 爲是同姓諱之,
그런데 나라 임금이 나라 여인女人을 아내로 취하였으니 오희吳姬라고 해야 마땅한데, 동성同姓끼리 혼인한 것을 숨기고자 하였다.
故謂之吳孟子.
그러므로 그 여인女人을 일러 ‘맹자孟子’라고 한 것이다.
若以魯君昭公而爲知禮, 又誰不知禮也.
만약 〈이런 짓을 한〉 나라 임금 소공昭公를 알았다고 한다면 또 누가 를 알지 못하겠느냐는 말이다.
‘巫馬期以告 子曰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者, 巫馬期以司敗之言, 告孔子也.
[巫馬期以告 子曰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무마기巫馬期사패司敗의 말을 공자孔子에게 아뢴 것이다.
孔子初言昭公知禮, 是諱國惡也.
공자孔子께서 처음에 ‘소공昭公를 아셨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국가의 수치스러운 일을 숨기신 것이다.
諱國惡, 禮也, 但聖人道弘. 故受以爲過, 言丘也幸,
국가의 수치스러운 일을 숨기신 것이 에 맞는 일이었으되, 성인聖人가 크기 때문에 사패司敗의 비난을 받아들여 자신의 허물로 여기시면서 ‘나는 다행多幸이다.
苟有過, 人必知之也.
진실로 잘못이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아는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疏]○注 ‘司敗官名 陳大夫’
의 [司敗 官名 陳大夫]
○正義曰:文十年左傳云 “楚子西曰 ‘臣歸死於司敗也.’” 杜注云 “陳‧楚, 名司寇爲司敗也.”
○正義曰:문공文公 10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라 자서子西가 ‘사패司敗에게 가서 죽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였고, 두예杜預에 “나라와 나라는 사구司寇의 명칭을 사패司敗라고 했다.” 하였다.
傳言歸死於司敗, 知司敗主刑之官, 司寇是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사패司敗에게 가서 죽겠다.’고 하였으니, 이로 인해 사패司敗형벌刑罰을 주관하는 관직임을 알 수 있으니, 바로 사구司寇이다.
此云 ‘陳司敗’ 楚子西亦云 ‘司敗’ 知陳‧楚同此名也.
이곳에 ‘나라 사패司敗’라고 하였고, 나라 자서子西도 ‘사패司敗’로 칭하였으니, 나라와 나라가 이 명칭을 같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疏]○注 ‘孔曰’至‘孟子’
의 [孔曰]에서 [孟子]까지
○正義曰:云 ‘巫馬期 弟子 名施’者, 史記弟子傳云 “巫馬施, 字子旗, 少孔子三十歲.” 鄭玄云 “魯人也.”
○正義曰:[巫馬期 弟子 名施]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무마시巫馬施자기子旗이고, 공자孔子보다 30세 적다.”라고 하였고, 정현鄭玄은 “나라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云 ‘魯‧吳俱姬姓’者, 魯, 周公之後, 吳, 泰伯之後.
[魯吳俱姬姓] 나라는 주공周公의 후예이고, 나라는 태백泰伯의 후예이다.
故云俱姬姓也.
그러므로 모두 희성姬姓이라고 한 것이다.
云 ‘禮同姓不昏’者, 曲禮云 “取妻, 不取同姓.
[禮同姓不昏]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아내를 취하되 동성同姓을 취하지 않는다.
故買妾, 不知其姓則卜之.”
그러므로 을 살 때 을 알 수 없으면 을 친다.”라고 하였고,
또 《예기禮記》 〈대전大傳〉에 “〈동성인同姓人은〉 한 으로 연계連繫되어 이 다르지 않고, 종자宗子가 연회를 열어 족인族人연합聯合할 때 원족遠族이라 하여 대우를 달리하지 않으니, 동성인同姓人은 촌수가 아무리 멀어도 서로 혼인婚姻을 하지 않는 것은 나라 제도가 그러하였다.”라고 하였다.
云 ‘而君取之 當稱吳姬 而諱曰孟子’者, 案春秋哀十二年 “夏五月甲辰, 孟子卒.” 左氏傳曰 “昭公娶於吳, 故不書姓.” 此云 “君娶於吳 爲同姓
[而君取之 當稱吳姬 而諱曰孟子] 고찰하건대, 《춘추春秋애공哀公 12년에 “여름 5월 갑진일甲辰日맹자孟子하였다.”라고 기록한 것에 대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소공昭公나라 여인女人을 아내로 취하였기 때문에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고, 이곳에는 “노군魯君나라 여인女人을 아내로 취하였으니, 동성同姓끼리 혼인을 한 것이다.
謂之吳孟子” 是魯人常言稱孟子也.
〈그런데 동성혼인同姓婚姻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 여인女人을 ‘오맹자吳孟子’라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에서 노인魯人들이 일상적으로 그를 ‘맹자孟子’로 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坊記云 “魯春秋 去夫人之姓曰吳, ” 是舊史書爲孟子卒,
예기禮記》 〈방기坊記〉에 “〈노후魯侯오후吳侯의 딸을 아내로 취하였으니, 그 부인夫人을 ‘오희吳姬’로 기록하는 것이 마땅한데〉 《노춘추魯春秋》에 부인夫人삭제削除하고 라는 국명國名만을 기록하였고, 부인夫人의 죽음을 기록함에도 ‘맹자孟子하다.[孟子卒]’라고 하였다.” 하였으니, 이에서 구사舊史(공자孔子수정修正하기 이전의 《노춘추魯春秋》)에도 ‘맹자졸孟子卒’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及仲尼脩春秋, 以魯人已知其非, 諱而不稱姬氏. 諱國惡, 禮也,
중니仲尼가 《춘추春秋》를 수찬修撰하실 때 나라 사람들이 이미 그 잘못을 알면서도 숨기고서 희씨姬氏라고 칭하지 않아 국가의 수치스러운 일을 숨긴 것이 에 맞는 일이라고 여기셨다.
因而不改, 所以順時世也.
그러므로 구사舊史의 기록을 그대로 따르고 고치지 않으셨으니, 이는 시대에 순응하기 위함이셨다.
魯春秋 去夫人之姓曰吳, 春秋無此文.
‘《노춘추魯春秋》에 부인夫人삭제削除하고 라는 국명國名만을 기록하였다.[魯春秋 去夫人之姓曰吳]’는 문구文句가 《춘추春秋》에는 없다.
坊記云然者, 禮, 夫人初至必書於冊.
방기坊記〉에 이렇게 말한 뜻은 〈다음과 같다.〉 부인夫人이 처음 시집오면 반드시 사책史冊에 기록하는 것이 이다.
若娶齊女, 則云 ‘夫人姜氏至自齊.’ 此孟子初至之時, 亦當書曰 ‘夫人姬氏至自吳.’
예컨대 나라 여인을 아내로 맞은 경우는 ‘부인夫人 강씨姜氏나라에서 왔다.’라고 기록하였으니, 이 맹자孟子가 처음 왔을 때도 당연히 ‘부인夫人 희씨姬氏나라에서 왔다.’라고 기록했어야 한다.
同姓不得稱姬, 舊史所書, 蓋直云 ‘夫人至自吳.’ 是去夫人之姓, 直書曰吳而已.
그러나 동성同姓이어서 희씨姬氏라고 칭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구사舊史에 단지 ‘부인夫人나라에서 왔다.’라고만 기록한 것이니, 이것이 부인夫人삭제削除하고 단지 라는 국명國名만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仲尼脩春秋, 以犯禮明著, 全去其文,
중니仲尼께서 《춘추春秋》를 수찬修撰하실 때 〈소공昭公이〉 를 범한 일이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그 글을 완전히 삭제하셨다.
故經無其事也.
그러므로 경문經文에 이 일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이다.
[疏]○注 ‘孔曰’至‘爲過’
의 [孔曰]에서 [爲過]까지
○正義曰:云 ‘諱國惡 禮也’者, 僖元年左傳文也.
○正義曰:[諱國惡 禮也] 희공僖公 원년元年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글이다.
案坊記云 “善則稱君, 過則稱己, 則民作忠. 善則稱親, 過則稱己, 則民作孝.” 是君親之惡, 務於欲掩之,
예기禮記》 〈방기坊記〉를 고찰하건대 “잘한 일은 임금의 으로 돌리고 허물은 자기의 잘못으로 돌리면 백성들이 충성忠誠하고, 잘한 일은 부모의 으로 돌리고 허물은 자기의 잘못으로 돌리면 백성들이 효도孝道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임금과 어버이의 잘못을 덮고자 힘쓰는 것이다.
是故聖賢作法, 通有諱例.
그러므로 성현聖賢이 만든 에는 모든 일에 하는 가 있다.
杜預曰 “有時而聽之則可也, 正以爲後法則不經,
두예杜預가 말하기를 “하는 것을 때에 따라 허락하는 것은 괜찮지만, 하는 것을 후세의 으로 확정確定[正]하는 것은 상도常道에 맞지 않는다.
故不奪其所諱, 亦不爲之定制.” 言若正爲後法, 每事皆諱, 則爲惡者無復忌憚, 居上者不知所懲, 不可盡令諱也.
그러므로 휘하는 것을 금하지도 않았지만, 또 그것을 일정한 제도制度로 삼지도 않았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만약 휘하는 것을 후세의 법으로 확정하여 매사每事에 모두 휘하면, 악행惡行을 저지르는 자가 다시 기탄하는 바가 없고, 윗자리에 있는 자가 징계懲戒할 바를 모를 것이니, 모든 일에 다 휘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人之所極, 唯君與親.
사람이 극진極盡히 모셔야 할 대상은 임금과 어버이뿐이다.
纔有小惡, 卽發其短, 非復臣子之心, 全無愛敬之義.
〈그런데 임금과 어버이에게〉 겨우 작은 잘못이 있으면 즉시 그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은 다시 신하와 자식의 마음이 아니며 애경愛敬의 의리가 전혀 없는 것이다.
是故不抑不勸, 有時聽之,
그러므로 휘하는 것을 억제하지도 권면勸勉하지도 않고 때에 따라 허락함이 있었다.
以爲諱惡者禮也, 無隱者直也, 二者俱通以爲世敎也.
〈이는 군부君父의〉 을 휘하는 것은 이고 은휘隱諱하지 않는 것은 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함께 세교世敎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云 ‘聖人道弘 故受以爲過’者, 孔子所言, 雖是諱國惡之禮, 聖人之道弘大, 故受以爲過也.
[聖人道弘 故受以爲過] 공자孔子께서 〈소공昭公를 아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비록 국가의 수치스러운 일을 숨기신 였지만, 성인聖人가 크기 때문에 사패司敗의 비난을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으로 삼으신 것이다.
孔子得巫馬期之言, 稱己名云 “是己幸.” 受以爲過.
공자孔子께서 무마기巫馬期의 말을 듣고서 자신의 이름을 일컬으시며 ‘이것은 나의 다행多幸이다.’라고 하여 사패司敗의 비난을 받아들여 자신의 허물로 삼으셨다.
故云 “苟有過, 人必知之.”
그러므로 “진실로 허물이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아는구나.”라고 하신 것이다.
所以然者, 昭公不知禮, 我答云知禮, 若使司敗不譏我, 則千載之後, 遂永信我言, 用昭公所行爲知禮, 則亂禮之事, 從我而始.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소공昭公를 알지 못하였는데 내가 ‘예를 아셨다.’고 대답하였으니, 만약 사패司敗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면 천년 뒤의 사람들이 마침내 영원히 나의 말을 믿고서 소공昭公이 행한 일을 를 안 것으로 여길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를 어지럽히는 일이 나의 〈이 말에서〉 비롯될 것이다.
今得司敗見非而受以爲過, 則後人不謬, 故我所以爲幸也.
그런데 지금 사패司敗비난非難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여 나의 허물로 삼는다면 후인後人들이 오해誤解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나는 사패의 비난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신 것이다.
繆協云
무협繆協은 이렇게 말하였다.
“諱則非.
“〈공자孔子께서 처음에〉 숨긴 것은 잘못이 아니다.
若受而爲過, 則所諱者又以明矣, 亦非諱也.
만약 받아들여 자기의 허물로 삼는다면 숨긴 내용이 더욱 분명해지니, 숨겼어도 숨긴 것이 아니다.
曏司敗之問, 則詭言以爲諱, 今苟將明其義. 故曏之言爲合禮也.
앞서 사패司敗의 물음에 거짓말로 숨겼으나, 지금 그 뜻을 밝히고자 하셨기 때문에 앞서 하신 말씀은 에 부합한 것이 된다.
苟曰合禮, 則不爲黨矣. 若不受過, 則何禮之有乎.”
진실로 에 부합하였다면 을 한 것이 아니지만 만약 허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찌 에 부합하였다고 하겠는가.”
역주
역주1 (一) : 저본에는 ‘一’이 있으나, 《春秋左氏傳》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2 繫之以姓而弗別‧‧‧‧‧‧周道然也 : 이 말은 寸數가 멀어져 親屬關係가 끝났으면 서로 通婚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답한 말로, 곧 촌수가 아무리 멀어도 한 姓으로 連繫되어 姓이 다르지 않고, 宗子가 연회를 열어 族人을 聯合할 때 遠族이라 하여 대우를 달리하지 않으니, 同姓人은 촌수가 아무리 멀어도 서로 婚姻을 하지 않는 것이 周나라의 제도라는 것이다.
역주3 其死 曰孟子卒 : 《春秋》의 例에 의하면 응당 ‘夫人姬氏薨’으로 稱해야 하는데, 同姓이기 때문에 夫人과 氏를 칭하지 않고 단지 그 字(孟子)만을 칭하고, 또 薨이라 칭하지 않고 卒이라 칭한 것을 이른다.
역주4 (我答云) : 저본에는 ‘我答云’ 3字가 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 세 자는 마땅히 衍文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한 것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5 (諱)[過] : 저본에는 ‘諱’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아래의 諱字는 마땅히 過字의 誤字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한 것에 의거해 ‘過’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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