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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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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주소(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齊景公 問政於孔子한대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니이다
[注]孔曰 當此之時하야 陳桓制齊하니 君不君하며 臣不臣하며 父不父하며 子不子
故以對하시니라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하며 臣不臣하며 父不父하며 子不子 雖有粟이나 吾得而食諸
[注]孔曰 言將危也
陳氏果滅齊하니라
[疏]‘齊景’至‘食諸’
○正義曰 : 此章明治國之政也.
‘齊景公問政於孔子’者, 齊君景公問爲國之政於夫子也.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者, 言政者正也. 若君不失君道, 乃至子不失子道, 尊卑有序, 上下不失, 而後國家正也.
當此之時, 陳桓爲齊大夫以制齊國, 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故孔子以此對之.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者, 諸, 之也.
景公聞孔子之言而信服之,
故歎曰 “善哉.
信如夫子之言,
而今齊國君不君, 以至子不子, 雖有其粟, 吾得而食之乎.”
言將見危亡, 必不得食之也.
[疏]○注‘陳氏果滅齊’
○正義曰 : 史記田完世家 完卒, 諡爲敬仲.
仲生穉孟夷, 夷生孟莊, 莊生文子須無, 文子生桓子無宇, 桓子生武子啓及僖子乞, 乞卒, 子, 是爲田成子.
成子弑簡公, 專齊政.
成子生襄子盤, 盤生莊子白, 白生大公, 和遷齊康公於海上, 和立爲齊侯.
和孫威王稱王, 四世而秦滅之.
是陳氏滅齊也.
世家云 “敬仲之齊, 以陳爲田氏.” 左傳終始稱陳,
則田必非敬仲所改, 未知何時改耳.


경공景公공자孔子에게 정치政治를 묻자,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공왈孔曰 : 이때를 당하여 진환자陳桓子나라의 국정國政전제專制하니,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씀으로 대답하신 것이다.
경공景公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내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공왈孔曰 : 장차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말이다.
진씨陳氏가 과연 나라를 하였다.
의 [齊景]에서 [食諸]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政治를 밝힌 것이다.
[齊景公問政於孔子] 제군齊君 경공景公부자夫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政治를 물은 것이다.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 은 바룸이니,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잃지 않는 데서부터 자식이 자식의 도리를 잃지 않는 데까지 이르러, 존비尊卑상하上下가 질서를 잃지 않은 뒤에야 국가國家가 발라진다.
이때를 당하여 진환자陳桓子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어 나라의 국정國政전제專制하여, 임금은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는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답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 말로 대답하신 것이다.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이다.
경공景公공자孔子의 말을 듣고 신복信服하였다.
그러므로 “좋은 말입니다.
참으로 부자夫子의 말씀과 같아야 하지요.
그러나 지금 나라는 임금이 임금답지 못한 데서부터 자식이 자식답지 못한 데까지 이르렀으니,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내가 그 곡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탄식하였다.
장차 위망危亡(멸망)을 당할 것이니, 결코 그 곡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의 [陳氏果滅齊]
정의왈正義曰 : 《사기史記》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에 의하면 “하자, 경중敬仲이라 하였다.
치맹穉孟 를 낳고, 혼맹湣孟 을 낳고, 문자文子 수무須無를 낳고, 문자文子환자桓子 무우無宇를 낳고, 환자桓子무자武子 희자僖子 을 낳았는데, 하자 아들 이 뒤를 이어 섰으니, 이가 전성자田成子이다.
성자成子간공簡公시해弑害하고서 나라 정권政權을 독점하였다.
성자成子양자襄子 을 낳고, 장자莊子 을 낳고, 태공太公 를 낳았는데, 강공康公해상海上으로 옮기고서 제후齊侯가 되었다.
의 손자 위왕威王이라 칭하였는데, 4 만에 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것이 진씨陳氏나라를 멸한 것이다.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에 “경중敬仲나라로 도망가서 진씨陳氏전씨田氏로 고쳤다.”라고 하였으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시종 ‘’으로 칭하였다.
그렇다면 은 결코 경중敬仲이 고친 것이 아니니, 언제 고친 것인지 알 수 없다.


역주
역주1 (泯)(湣) : 저본에 ‘泯’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지금 《史記》 〈田完世家〉에는 ‘泯’이 ‘湣’으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泯’은 바로 ‘湣’의 省文(생략한 글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2 (當)[常]代(之)[立] : 저본에 ‘當代之’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지금 《史記》에는 ‘當’이 ‘常’으로 되어있고, ‘之’가 ‘立’으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常代立’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利)[和] : 저본에 ‘利’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毛本에는 ‘利’가 ‘和’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和’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和’로 바로잡았다.
역주4 (知)[如] : 저본에 ‘知’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毛本에는 ‘知’가 ‘如’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如’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근거하여 ‘如’로 바로잡았다.
역주5 (子)[氏] : 저본에 ‘子’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北監本에는 ‘子’가 ‘字’로 되어있다. 浦鏜이 이르기를 ‘氏의 誤字이다.’라고 하였다.” 한 것에 근거하여 ‘氏’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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