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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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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哀公問
弟子孰爲好學이닛고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하야 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하니 未聞好學者也케이다
[注]凡人하여 顔回任道하여 怒不過分이라
遷者 移也 하고
不貳過者 有不善이면 未嘗復行이라
[疏]‘哀公’至‘者也’
○正義曰:此章稱顔回之德.
‘哀公問 弟子孰爲好學’者, 魯君哀公問於孔子曰 “弟子之中, 誰爲樂於好學者.”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者, 孔子對哀公曰 “有弟子顔回者, 其人好學.”
遷, 移也.
凡人任情, 喜怒違理, 顔回任道, 怒不過分而當其理, 不移易, 不遷怒也.
人皆有過憚改, 顔回有不善, 未嘗不知, 知之, 未嘗復行, 不貳過也.
凡事應失而得曰幸, 應得而失曰不幸. 惡人橫夭, 則惟其常, 顔回以德行著名, 應得壽考, 而反二十九髮盡白, 三十二而卒,
故曰 不幸短命死矣.
亡, 無也.
言今則無好學者矣, 未聞更有好學者也.
[疏]○注 ‘凡人’至‘復行’
○正義曰:云 ‘凡人任情 喜怒違理’者, 言凡常之人, 信任邪情, 恣其喜怒, 違於分理也.
云 ‘顔回任道 怒不過分’者, 言顔回好學旣深, 信用至道, 故怒不過其分理也.
云 ‘有不善 未嘗復行’者, 周易下繫辭文.
彼云 “子曰 ‘.
有不善, 未嘗不知, 知之, 未嘗復行也.’” 注云 “, 顔子之分也.
失之於幾, 故有不善, 得之於貳, 不遠而復, 故知之, 未嘗復行也.” 引之以證不貳過也.
此稱其好學, 而言不遷怒貳過者, 以不遷怒貳過, 由於學問旣篤, 任道而行, 故擧以言焉, 以明好學之深也.
一曰 “以哀公遷怒貳過, 而孔子因以諷諫.”


애공哀公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顔回란 자가 있어 배움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거듭 범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목숨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은 자기 뜻대로 행동하여 기뻐하고 노여워함이 사리에 어긋나지만, 안회顔回는 도를 따라서 노여워함이 분수를 넘지 않았다.
은 옮김이니, 노여워함이 그 사리에 맞고, 〈또〉 옮기지 않은 것이다.
불이과不貳過불선不善한 일이 있으면 〈즉시 고쳤고〉 다시 행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의 [哀公]에서 [者也]까지
○正義曰:이 장은 안회顔回의 덕을 칭찬한 것이다.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나라 임금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제자 중에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공자께서 애공에게 “제자 중에 안회란 자가 있어 그 사람이 배움을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은 옮김이다.
일반인들은 자기 뜻대로 행동하여 기뻐하고 노여워함이 사리에 어긋나지만, 안회는 도를 따라서 노여워함이 분수를 넘지 않고 사리에 맞았으며, 옮기지 않았으니, 〈이것이〉 노여움을 옮기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만 안회는 불선不善(잘못)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었고, 알면 다시 행한 적이 없었으니, 〈이것이〉 잘못을 거듭 범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잃는 것이 당연한데도 얻는 것을 ‘’이라 하고, 얻는 것이 당연한데도 잃는 것을 ‘불행不幸’이라 하니, 악인惡人횡요橫夭(뜻밖에 재앙을 받아 요사夭死)하는 것은 정상이지만, 안회는 덕행으로 명성이 드러났으니 장수를 누리는 것이 당연한데, 도리어 29세에 머리가 다 하얗게 세고 32세에 죽었다.
그러므로 “불행히도 목숨이 짧아 죽었다.”고 한 것이다.
이다.
지금은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없으니 다시 배움을 좋아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의 [凡人]에서 [復行]까지
○正義曰:[凡人任情 喜怒違理] 일반인들은 바르지 못한 생각을 믿고 따라서 기쁨과 노여움을 제멋대로 자행하여 분수와 도리를 어긴다는 말이다.
[顔回任道 怒不過分] 안회는 배움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미 깊어 지극한 도를 믿고 따르기 때문에 노여워함이 그 분수와 도리를 넘지 않았다는 말이다.
[有不善 未嘗復行]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의 글이다.
《주역》 〈계사전〉에 “께서 ‘안씨顔氏의 아들은 기미幾微를 아는 데 거의 근접하였다.
불선不善(허물)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다시 행한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라고 하였는데, 한강백韓康伯에 “기미의 이치[幾理]에는 어둡고, 형기形器조성造成되어야 깨달은 것이 안자의 천분天分(타고난 자질)이다.
기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선함이 있었고, 잘못을 거듭 범해서는 안 됨을 알고서 멀리 벗어나지 않고 되돌아왔기 때문에, 알면 다시 행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이끌어 잘못을 거듭 범하지 않은 증거로 삼은 것이다.
이곳의 말은 안자의 호학好學을 칭찬한 것인데, ‘불천노이과不遷怒貳過’를 말한 것은 ‘불천노이과不遷怒貳過’가 학문이 이미 (深厚)하여 도를 믿고 따라 행한 데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들어 말하여 배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깊었음을 밝힌 것이다.
일설一說에 “애공이 노여움을 옮기고 과오를 거듭 범하였기 때문에 공자께서 이 말로 넌지시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任情 : 任意와 같은 말로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함이다.
역주2 喜怒違理 : 喜怒가 도리에서 벗어난다는 말로, 조금 기뻐해야 할 일을 크게 기뻐하거나 크게 기뻐해야 할 일을 조금 기뻐하고, 크게 노해야 할 일을 조금 노하거나 조금 노해야 할 일을 크게 노하는 따위를 이른다.
역주3 怒當其理 : 노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는 말로, 남의 잘못을 보았을 때 그의 잘못이 크면 크게 노하고 그의 잘못이 작으면 작게 노한다는 말이다.
역주4 不移易 : 노여움을 옮기지 않는다는 말로, 甲에게 노한 것을 乙에 옮기지 않는 따위이다.
역주5 [不遷怒 不貳過]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有顔回者好學 아래에 不遷怒 不貳過 6자가 빠져있다.’고 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보충하였다.
역주6 顔氏之子 其殆庶幾乎 : 《周易》 〈繫辭傳〉 疏에 “聖人은 幾微를 알지만 顔子는 버금가는 성인이어서 기미를 알지 못하고 단지 사모하는 데 거의 근접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거의 근접하였다.’고 한 것이다.[言聖人知幾 顔子亞聖 未能知幾 但殆近庶慕而已 故云 其殆庶幾乎]”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知幾’는 일의 吉凶을 豫見함이고, ‘幾’는 길흉의 조짐이 은미하게 胎動한 것이다.
역주7 韓康伯 : 東晉 때 사람으로 《周易》의 〈繫辭傳〉‧〈說卦傳〉‧〈序卦傳〉‧〈雜卦傳〉의 注를 달았다.
역주8 在理則昧 造形而悟 : 《周易》 〈繫辭傳〉 疏에 “顔子는 幾微의 이치에 어두웠기 때문에 불선한 일이 있었고, 形器(外形)로 드러나야 스스로 깨달았다.[顔子於幾理闇昧 故有不善之事 於形器顯著 乃自覺悟]”고 하였다.

논어주소(1) 책은 2021.08.02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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