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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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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道千乘之國호되
천승千乘의 나라를 다스리되,
[注]馬曰 道 謂爲之政敎
마왈馬曰:정치政治교화敎化를 펴는 것을 이른다.
司馬法 六尺爲步 步百爲畝 畝百爲夫 夫三爲屋이며 屋三爲井이요 井十爲通이며 通十爲成이니 成出革車一乘이라
사마법司馬法》에 “6이 1이고, 100가 1이며, 100가 1이고, 3가 1이며, 3이 1이고, 10이 1이며, 10이 1이니, 1에서 혁거革車(兵車) 1을 낸다.”고 하였다.
然則 其地千成이요 居地方三百一十六里有畸 唯公侯之封 乃能容之
그렇다면 천승千乘병부兵賦를 낼 수 있는 나라는 그 지역地域이 1,000이고, 점유占有[居]한 땅이 사방 316 남짓하니, 오직 공후公侯봉강封疆만이 〈천승千乘을〉 용납할 수 있다.
雖大國之賦라도 亦不是過焉이라
비록 큰 나라라 하더라도 그 병부가 천승을 초과할 수 없다.
○包曰 道 治也
포왈包曰:“이다.
千乘之國者 百里之國也
천승千乘의 나라는 백리百里의 나라이다.
古者井田하니 方里爲井이요 爲乘이니 百里之國 適千乘也
옛날에는 전지田地정자형井字形으로 구획區劃하였는데, 사방 1가 1이고, 10이 1이니, 백리百里의 나라는 천승千乘에 해당한다.” 하였다.
融依周禮하고 包依王制孟子하니 義疑
마융馬融은 《주례周禮》에 의거하고, 포씨包氏는 《예기禮記》 〈왕제王制〉와 《맹자孟子》에 의거하였으니, 뜻이 의심스럽다.
故兩存焉하니라
그러므로 두 을 모두 존록存錄(收錄)하였다.
敬事而信하며
일처리를 신중히 하고, 백성을 성신誠信으로 대하며,
[注]包曰 爲國者 擧事必敬愼하고 與民必誠信이라
포왈包曰: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일처리를 반드시 신중히 하고, 백성을 반드시 성신誠信으로 대해야 한다.
節用而愛人하며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注]包曰 節用 不奢侈
포왈包曰:절용節用은 사치하지 않음이다.
國以民爲本이라 故愛養之니라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백성을 사랑해 기른다.
使民以時니라
백성을 부리기를 때에 맞게 하여야 한다.”
[注]包曰 作使民 必以其時하야 不妨奪農務
포왈包曰:공사工事를 일으켜 백성을 사역使役할 때에는 반드시 적당한 시기(農閒期)를 이용하여, 농사를 방해妨害하지도 농시農時를 빼앗지도 않는 것이다.
[疏]‘子曰道’至‘以時’
의 [子曰道]에서 [以時]까지
○正義曰:此章論治大國之法也.
○正義曰:이 장은 대국大國을 다스리는 법을 논한 것이다.
馬融以爲 “道, 謂爲之政敎, 千乘之國, 謂公侯之國, 方五百里四百里者也.”
마융馬融은 “정치政治교화敎化를 펴는 것을 이르고, 천승千乘의 나라는 의 나라를 이르니, 사방 500리나 400리가 되는 나라이다.”라고 하였다.
言爲政敎以治公侯之國者, 擧事必敬愼, 與民必誠信, 省節財用, 不奢侈, 而愛養人民, 以爲國本, 作事使民, 必以其時, 不妨奪農務, 此其爲政治國之要也.
이는 정치政治교화敎化를 펴서 의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일처리를 반드시 신중히 하고, 백성을 성신誠信으로 대하고, 재용財用을 절약하여 사치하지 않고, 인민人民을 사랑해 양육養育하여 나라의 근본으로 삼고, 공사工事를 일으켜 백성을 사역할 때에는 반드시 적당한 시기를 이용하여 농사를 방해하지도 농시農時를 빼앗지도 않는 것이 위정자爲政者가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要諦임을 말한 것이다.
包氏以爲 “道, 治也.
포씨包氏는 “는 다스림이다.
千乘之國, 百里之國也, 夏卽公侯, 殷周惟上公也.
천승千乘의 나라는 백리百里의 나라이니, 나라 때는 가 천승이었고, 나라와 나라 때는 오직 상공上公만이 천승이었다.
.”
나머지는 같다.”고 하였다.
[疏]○注 ‘馬曰道’至‘過焉’
의 [馬曰道]에서 [過焉]까지
○正義曰:以下篇‘子曰 道之以政.’ 故云 “道, 謂爲之政敎.”
○正義曰:하편下篇에 “자왈子曰 도지이정道之以政(백성을 정사[法制와 敎命]로 교화해 유도誘導한다.)”이란 말이 있기 때문에, 마융馬融이 “정치政治교화敎化를 펴는 것을 이른다.”고 한 것이다.
史記 “齊景公時, 有司馬田穰苴善用兵.”
사기史記》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에 “ 경공景公 때에 사마전양저司馬田穰苴란 자가 있었는데 용병用兵을 잘하였다.”고 하였다.
周禮 “司馬掌征伐.”
주례周禮》에 “사마司馬정벌征伐을 관장한다.”고 하였다.
六國時, 齊威王使大夫追論古者兵法, 附穰苴於其中, 凡一百五十篇, 號曰司馬法.
육국六國(戰國) 때에 나라 위왕威王대부大夫들에게 옛날의 병법兵法추론追論하고 양저穰苴의 병법을 그 가운데 부기附記하여 모두 150편으로 만들게 하고서 이름을 《사마법司馬法》이라 하였다.
此‘六尺曰步’至‘成出革車一乘’ 皆彼文也.
이곳에 말한 ‘육척왈보六尺曰步’에서 ‘성출혁거일승成出革車一乘’까지는 모두 저 《사마법司馬法》의 글이다.
引之者, 以證千乘之國爲公侯之大國也.
이 말을 인용한 것은 천승千乘의 나라는 대국大國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云 ‘然則千乘之賦, 其地千成’者, 以成出一乘, 千乘故千成.
[然則千乘之賦 其地千成] 1에서 병거 1을 내니, 천승千乘이기 때문에 천성千成이라고 한 것이다.
云 ‘居地方三百一十六里有畸’者, 以方百里者一, 爲方十里者百, 方三百里者, 三三而九, 則爲方百里者九.
[居地方三百一十六里有畸] 사방 100리의 땅 하나로 사방 10리의 땅 100개를 만들 수 있으니, 사방 300리의 땅은 ‘3×3=9’이므로 사방 100리의 땅이 아홉이 된다.
合成方十里者九百, 得九百乘也.
이를 합산하면 사방 10리의 땅이 900개이니 900을 얻을 수 있다.
計千乘, 猶少百乘方百里者一也.
천승千乘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오히려 백승百乘과 사방 100리의 땅 하나가 부족하다.
又以此方百里者一, 六分破之, 每分得廣十六里, 長百里, 引而接之, 則長六百里, 廣十六里也.
또 사방 100리의 땅 하나를 여섯으로 쪼개어 나누면 너비 16리, 길이 100리의 땅이 여섯이 되니, 이를 이어 붙이면 길이가 600리이고 너비가 16리이다.
半折之, 各長三百里, 將埤前三百里南西兩邊, 是方三百一十六里也.
또 이를 반으로 꺾으면 각각 길이가 300리이니, 이를 앞에 말한 300리 땅의 서쪽과 남쪽 두 가장자리에 보태면 사방 316리가 된다.
然西南角, 猶缺方十六里者一也.
그래도 오히려 서남쪽 모퉁이에 사방 16리의 땅 하나가 부족하다.
方十六里者一, 爲方一里者二百五十六.
사방 16리의 땅 하나는 사방 1리의 땅 256개이다.
然曏割方百里者爲六分, 餘方一里者四百, 今以方一里者二百五十六埤西南角, 猶餘方一里者一百四十四.
그러나 앞서 사방 100리의 땅을 쪼개어 여섯으로 나눌 적에 사방 1리의 땅 400개가 남았으니, 지금 사방 1리의 땅 256개를 서남쪽 모퉁이에 보태더라도 여전히 사방 1리의 땅 144개가 남는다.
又復破而埤三百一十六兩邊, 則每邊不復得半里,
또다시 이를 쪼개어 316리의 양쪽 가장자리에 보태면 두 가장자리에 다시 반리半里가 모자란다.
故云 “三百一十六里有畸”也.
그러므로 “삼백일십육리유기三百一十六里有畸”라고 한 것이다.
[疏]云 ‘唯公侯之封 乃能容之’者,
[唯公侯之封 乃能容之]
案周禮大司徒云 “諸公之地, 封疆方五百里, 諸侯之地, 封疆方四百里,
상고하건대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에 “제공諸公의 땅은 봉강封疆(封地)이 사방 500리이고, 제후諸侯의 땅은 봉강이 사방 400리이고,
諸伯之地, 封疆方三百里, 諸子之地, 封疆方二百里, 諸男之地, 封疆方百里.”
제백諸伯의 땅은 봉강이 사방 300리이고, 제자諸子의 땅은 봉강이 사방 200리이고, 제남諸男의 땅은 봉강이 사방 100리이다.”라고 하였으니,
此千乘之國, 居地方三百一十六里有畸. 伯‧子‧男自方三百而下, 則莫能容之,
천승千乘의 나라는 점유占有한 땅이 사방 316리 남짓하고, 의 땅은 사방 300리 이하이니, 〈천승千乘을〉 용납할 수 없다.
故云 “唯公侯之封, 乃能容之.”
그러므로 “유공후지봉唯公侯之封 내능용지乃能容之”라고 한 것이다.
云 ‘雖大國之賦 亦不是過焉’者, 坊記云 “制國不過千乘.” 然則地雖廣大, 以千乘爲限,
[雖大國之賦 亦不是過焉] 《예기禮記》 〈방기坊記〉에 “제후를 제한하여 천승千乘을 초과할 수 없게 하였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땅이 아무리 광대하여도 천승千乘으로 제한한 것이다.
故云 “雖大國之賦, 亦不是過焉.”
그러므로 “수대국지부雖大國之賦 역불시과언亦不是過焉”이라 한 것이다.
司馬法 “兵車一乘, 甲士三人, 步卒七十二人.” 計千乘, 有七萬五千人, 則是六軍矣.
사마법司馬法》에 “병거兵車 1갑사甲士가 3, 보졸步卒이 72이다.”라고 하였으니, 천승千乘으로 계산하면 7만 5,000이니, 바로 육군六軍이다.
周禮大司馬序官 “凡制軍, 萬有二千五百人爲軍, 王六軍, 大國三軍, 次國二軍, 小國一軍.”
주례周禮》 〈대사마大司馬 서관序官〉에 “군대의 편제編制는 1만 2,500인이 일군一軍이니, 육군六軍, 대국大國삼군三軍, 차국次國이군二軍, 소국小國일군一軍이다.”라고 하였고,
魯頌閟宮云 “公車千乘.”
시경詩經》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병거兵車천승千乘이다.”라고 하였고,
明堂位云 “封周公於曲阜, 地方七百里, 革車千乘.”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주공周公곡부曲阜하였는데, 봉지封地가 사방 700리이고, 혁거革車천승千乘이었다.”라고 하였으니,
及坊記與此文, 皆與周禮不合者,
방기坊記〉와 〈명당위明堂位〉의 말은 모두 《주례周禮》와 부합하지 않는다.
禮, 天子六軍, 出自六鄕, 萬二千五百家爲鄕, 萬二千五百人爲軍.
에 의하면 천자天子육군六軍육향六鄕에서 내는데, 1만 2,500가 1이고, 1만 2,500인이 1이다.
地官小司徒云 “凡起徒役, 無過家一人.” 是家出一人.
주례周禮》 〈지관地官 소사도小司徒〉에 “역도役徒를 일으킴에는 한 집에서 한 사람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한 집에서 한 사람만을 차출差出하는 것이다.
鄕爲一軍, 此則出軍之常也.
1에서 1을 내니, 이것이 군대를 내는 상규常規이다.
[疏]天子六軍, 旣出六鄕, 則諸侯三軍, 出自三鄕.
천자天子육군六軍을 이미 육향六鄕에서 내었다면 제후諸侯삼군三軍삼향三鄕에서 내는 것이다.
閟宮云 “公徒三萬”者, 謂鄕之所出, 非千乘之衆也. 千乘者, 自謂計地出兵, 非彼三軍之車也.
시경詩經》 〈노송魯頌 비궁閟宮〉에 “보병步兵[徒]이 3만이다.”라고 한 것은 에서 낸 군대를 이르니 천승千乘의 군대가 아니고, 천승千乘정지井地를 계산해서 군대를 낸 것을 이르니 저 삼군三軍병거兵車가 아니다.
二者不同, 故數不相合.
두 가지가 같지 않기 때문에 그 가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
所以必有二法者, 聖王治國, 安不忘危, 故今所在皆有出軍之制.
반드시 두 가지 을 둔 까닭은 성왕聖王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편안할 때에도 위란危亂을 잊지 않기 때문에 지금 지방마다 모두 군대를 내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若從王伯之命, 則依國之大小, 出三軍二軍一軍也, 若其前敵不服, 用兵未已, 則盡其境內, 皆使從軍, 故復有此計地出軍之法.
왕자王者패자霸者의 명에 따라 군대를 낼 경우에는 나라의 대소大小에 따라 삼군三軍을 내기도 하고, 이군二軍을 내기도 하고, 일군一軍을 내기도 하지만, 적군敵軍항복降服하지 않아 전쟁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경내境內장정壯丁을 모두 동원하여 종군從軍시켜야 하기 때문에 다시 정지井地를 계산하여 군대를 내는 이 법을 만든 것이다.
但鄕之出軍是正, 故家出一人, 計地所出, 則非常, 故成出一車,
그러나 에서 군대를 내는 것이 정상正常이기 때문에 한 집에서 한 사람만을 내지만, 정지井地를 계산해 군대를 내는 것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100 800)에서 일승一乘을 낸다.
以其非常, 故優之也.
이는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800에서 일승一乘을 내게 하여〉 우대하는 것이다.
[疏]‘包曰 道治也’者, 以治國之法, 不惟政敎而已.
[包曰 道治也]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정치政治교화敎化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道之以德”, 謂道德, 故易之, 但云 “道 治也.”
하문下文(〈위정爲政〉편)에 “백성을 교화하기를 으로써 한다.[道之以德]”고 한 곳의 도덕道德을 이른 것이므로 글자를 바꾸어 단지 “이다.”라고 한 것뿐이다.
云 ‘千乘之國, 百里之國也’者, 謂夏之公侯, 殷‧周上公之國也.
[千乘之國 百里之國也] 나라 때의 공후公侯와, 나라와 나라 때의 상공上公의 나라이다.
云 ‘古者井田, 方里爲井’者, 孟子云 “方里而井, 井九百畝.” 是也.
[古者井田 方里爲井] 《맹자孟子》에 “사방 1가 1이니, 1은 900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 ‘十井爲乘, 百里之國, 適千乘也’者, 此包以古之大國不過百里, 以百里賦千乘,
[十井爲乘 百里之國 適千乘也] 이것은 포씨包氏가 “옛날에 대국大國도 그 땅이 100리를 초과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100리에서 1,000병부兵賦를 내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故計之每十井爲一乘.
그러므로 10에서 1을 내는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是方一里者, 十爲一乘, 則方一里者, 百爲十乘.
이는 사방 1리의 땅 10개에서 1을 내는 것이니, 그렇다면 사방 1리의 땅 100개에서 10을 내는 것이다.
開方之法, 方百里者一方十里者百. 每方十里者一爲方一里者百, 其賦十乘. 方十里者百, 則其賦千乘.
개방법開方法(평방平方입방立方을 계산하는 방법)으로 계산하면 사방 100리의 땅 하나가 사방 10리의 땅 100개이고, 사방 10리의 땅 하나가 사방 1리의 땅 100개이니, 이곳에서 10병부兵賦로 내게 하고, 사방 10리의 땅 100개에서 1,000병부兵賦로 내게 한 것이다.
地與乘數適相當, 故曰“適千乘也.”
그러면 땅의 면적과 거승車乘가 서로 걸맞기 때문에 “적천승適千乘”이라고 한 것이다.
云 ‘融依周禮, 包依王制‧孟子’者,
[融依周禮 包依王制孟子]
馬融依周禮大司徒文, 以爲諸公之地方五百里, 侯四百里以下也.
마융馬融은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에 “제공諸公봉지封地는 사방 500리이고, 는 400리 이하이다.”라고 한 설에 의거하고,
包氏依王制云 “凡四海之內九州, 州方千里, 州建百里之國三十,
포씨包氏는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사해四海 안이 구주九州이고, 는 사방이 1,000리인데, 마다 100리의 나라 30개,
七十里之國六十, 五十里國百有二十, 凡二百一十國也.”
70리의 나라 60개, 50리의 나라 120개를 세우니 모두 211이다.”라고 한 설과,
又孟子云“天子之制, 地方千里, 公侯之制, 皆方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또 《맹자孟子》에 “천자天子의 제도는 땅이 사방 1,000리이고 의 제도는 모두 사방 100리이고, 은 70리이고, 은 50리이다.”라고 한 설에 의거하였다는 말이다.
包氏據此, 以爲“大國不過百里.” 不信周禮有方五百里四百里之封也.
포씨包氏는 《예기禮記》 〈왕제王制〉와 《맹자孟子》의 에 의거하여 “대국大國도 그 땅이 100리를 초과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사방 500리와 400리의 봉국封國이 있다고 한 《주례周禮》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이다.
馬氏言名, 包氏不言名者, 包氏避其父名也.
마씨馬氏는 이름을 말하고 포씨包氏는 이름을 말하지 않은 것은 포씨包氏의 이름이 하안何晏의 아버지 이름과 같아 피휘避諱한 것이다.
[疏]云 ‘義疑, 故兩存焉’者,
[義疑 故兩存焉]
以周禮者, 周公致太平之書, 爲一代大典.
주례周禮》는 주공周公이 태평을 이룩한 서적書籍으로 일대一代대전大典이고,
王制者, 漢文帝令博士所作.
예기禮記》 〈왕제王制〉는 문제文帝박사博士에게 명하여 지은 것이고,
孟子者, 鄒人也, 名軻, 師孔子之孫子思, 治儒術之道, 著書七篇, 亦命世亞聖之大才也.
맹자孟子추인鄒人으로 이름이 ‘’인데,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사사師事하여 유학儒學를 연구하여 《맹자孟子》 7편을 지었으니, 역시 당시에 저명著名한 성인에 버금가는 대재大才이다.
今馬氏‧包氏各以爲據, 難以質其是非, 莫敢去取,
지금 마씨馬氏는 《주례周禮》에 의거하고, 포씨包氏는 《예기禮記》 〈왕제王制〉와 《맹자孟子》에 의거하였으니, 그 시비是非를 판별하기 어려워 감히 어느 을 취하고 어느 을 버릴 수가 없다.
於義有疑, 故兩存其說也.
그러나 뜻이 의심스럽기 때문에 이 두 을 모두 존록存錄(收錄)하였다.
[疏]○‘包曰 作[事]使’至‘農務’
의 [包曰 作[事]使]에서 [農務]까지
○正義曰:云 ‘作[事]使民, 必以其時’者, 謂築都邑城郭也.
○正義曰:[作[事]使民 必以其時] 도읍都邑성곽城郭축조築造함에 대해 말한 것이다.
以都邑者, 人之聚也, 國家之藩衛, 百姓之保障,
도읍都邑인민人民이 모여 사는 곳이니, 국가國家번위藩衛(울타리)이고 백성의 보장保障(보호 장벽)이다.
不固則敗, 不脩則壞,
견고히 쌓지 않으면 무너지고 무너진 곳을 수축修築하지 않으면 파괴된다.
故雖不臨寇, 必於農隙備其守禦, 無妨農務.
그러므로 비록 외구外寇의 침입이 없더라도 반드시 농사農事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농한기農閒期에 〈백성을 동원해 성곽을 수축하여〉 방어防禦를 대비한다.
春秋莊二十九年左氏傳曰 “凡土功, 龍見而畢務, 戒事也.” 注云 “謂今九月, 周十一月.
춘추春秋장공莊公 29년 《좌씨전左氏傳》에 “모든 토목공사土木工事용성龍星동방東方에 출현하면 농사일이 끝나므로, 공사를 준비하도록 명한다.”고 한 에 “지금의 9월은 주정周正의 11월이다.
龍星角‧亢, 晨見東方, 三務始畢, 戒民以土功事.”
용성龍星각성角星항성亢星이 새벽에 동방에 나타나면 삼무三務( 세 철의 농사일)가 비로소 끝나므로 백성들에게 토공土功(치수治水축성築城 등의 공사)의 일을 준비하도록 명한다.”고 하였고,
“火見而致用” 注云 “大火, 心星, 次角‧亢見者. 致築作之物.”
화성火星이 동방에 출현하면 공사에 필요한 도구들을 공사장에 갖다 둔다.”고 한 에 “대화大火심성心星이다. 심성이 각성角星항성亢星의 위치에 머물러 〈새벽에 출현하면〉 축성築城 작업에 필요한 물건들을 공사장에 갖다 두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水昏正而栽.” 注云 “謂今十月, 定星昏而中, 於是樹板幹而興作.”
수성水星초혼初昏남방南方에 보이면 축조築造하기 위해 판자板子를 세운다.”고 한 주에 “지금의 10월에 정성定星(房星)이 초혼初昏에 남방에 출현하니, 이때가 되면 판자板子와 버팀목을 세우고서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日至而畢” 注云 “日南至, 微陽始動, 故土功息.”
동지冬至가 되면 공사를 끝마친다.”고 한 에 “동지冬至가 되면 미약微弱이 비로소 발동發動하기 때문에 토공土功을 중지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若其門‧戶‧道‧橋‧城‧郭‧牆‧塹有所損壞, 則特隨壞時脩之, 故僖二十年左傳曰 “凡啓塞 從時.” 是也.
만약 도로道路교량橋梁‧담장‧해자가 손괴損壞되면 무너지는 즉시 보수해야 하기 때문에, 《춘추春秋희공僖公 20년 《좌씨전左氏傳》에 “(도로道路교량橋梁)와 (‧담장‧해자)이 손괴損壞되면 즉시 보수補修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王制云 “用民之力, 歲不過三日.”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백성을 노역勞役에 동원하되 〈한 사람의 복역일수服役日數가〉 1년에 3일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周禮均人職云 “凡均力政, 以歲上下, 豐年則公旬用三日焉, 中年則公旬用二日焉, 無年則公旬用一日焉.”
주례周禮》 〈지관地官 사도司徒 균인직均人職〉에 “역정力征(인력人力을 동원함)을 균등하게 실시하되 농사農事작황作況에 따라 차등을 두어 풍년에는 공순公旬(力役)으로 3일을, 중년中年(平年作)에는 2일을, 흉년에는 1일을 사역使役한다.”고 하였으니,
是皆重民之力, 而不妨奪農務也.
이는 모두 백성의 노동력勞動力을 중시하여 농사에 해를 끼치거나 농시農時를 빼앗지 않기 위함이었다.
역주
역주1 千乘之賦 : 賦는 兵車와 兵士를 이른다. 《司馬法》에 의하면, 병거 1乘에 甲士 3人, 步卒 72인, 馬 4필, 牛 12두, 輜車 1승, 炊事兵 5인, 衣裝守護兵 5인, 牛馬飼養兵 5인, 採樵兵 5인, 汲水兵 5인이 따르니, 千乘之賦는 곧 1천 승의 병거와 7만 5천의 병사, 4천 필의 軍馬, 2만 5천의 雜役軍, 1만 2천 두의 소를 이른다.
역주2 (十井)[井十] : 저본에는 ‘十井’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足利本에는 ‘十井’이 ‘井十’으로 되어있다.” 한 것에 근거하여 ‘井十’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事] : 저본에는 ‘事’가 없으나, 阮刻本에 “北監本과 毛本에는 ‘作’자 밑에 ‘事’자가 있다. ‘作事使民’이 되어야 文意가 분명해진다.”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餘同 : 그 밖에 伯‧子‧男의 封地는 夏‧殷‧周가 모두 같았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5 (云)[文] : 저본에는 ‘云’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閩本‧北監本‧毛本에는 ‘文’으로 되어있다.” 한 것에 의거하여 ‘文’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之] : 저본에는 ‘之’가 없으나, 阮刻本에 “《禮記》 〈王制〉에 ‘里’ 아래에 ‘之’자가 있다.”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논어주소(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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