他人之賢者는 丘陵也니 猶可踰也어니와 仲尼는 日月也니 無得而踰焉이라
疏
‘子貢曰 無以為也 仲尼不可毀也’者, 言無用為此毀訾, 夫仲尼之德不可毀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者, 子貢又為設譬也.
言他人之賢, 譬如丘陵, 雖曰廣顯, 猶可踰越, 至於仲尼之賢, 則如日月
, 不可得而踰也.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者, 言人雖欲毀訾夫日月, 特自絶棄, 於日月其何能傷之乎.
故人雖欲毀仲尼, 亦不能傷仲尼也, 多見其不知量也.
多, 猶適也.
但不能毀仲尼, 又適足自見其不知量也.
注
○正義曰 : 云‘適足自見其不知量也’者, 據此注意, 似訓多為適,
‘多見其不知量’, 猶襄二十九年左傳云 “多見疏也.” 服虔本作“祗見疏.” 解云 “祇, 適也.”
張衡西京賦云 “炙炮夥, 淸酤多, 皇恩溥, 洪德施.” 施與多為韻.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중니仲尼를 헐뜯으니,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다른 사람의 어짊은 〈비유하자면〉 구릉丘陵과 같으니 오히려 넘을 수 있으나, 중니仲尼는 일日‧월月과 같으니 넘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해와 달을〉 끊으려 한들 어찌 해와 달에 손상損傷이 되겠습니까?
단지 자기의 역량力量을 알지 못함을 보일 뿐입니다.”
注
사람이 비록 스스로 일日‧월月을 끊어버리려 한들 어찌 일日‧월月을 손상損傷할 수 있겠는가?
단지 스스로 역량力量을 알지 못함을 보일 뿐이라는 말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 또한 중니仲尼의 덕德을 밝힌 것이다.
[叔孫武叔毀仲尼] 공자孔子의 덕德을 헐뜯은 것이다.
[子貢曰 無以為也 仲尼不可毀也] 이렇게 헐뜯어봐야 소용없으니, 중니仲尼의 덕德은 헐뜯을 수 없다는 말이다.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자공子貢이 또 비유를 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어짊은 비유하자면 구릉丘陵과 같아서, 비록 광대하게 드러났다 하더라도 오히려 넘을 수 있지만, 중니仲尼의 어짊으로 말하면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麗天] 규율規律을 지키며 운행하여 항상 밝은 것[貞明]과 같아서 넘을 수 없다는 말이다.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사람이 비록 해와 달을 헐뜯으며 스스로 끊어버리고자 한들 해와 달에게 무슨 손상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비록 중니仲尼를 헐뜯고자 하여도 중니仲尼를 손상시킬 수 없고, 단지 자기의 역량力量을 알지 못함을 보일 뿐이라는 말이다.
다多는 적適(다만)과 같으니, 비단 중니仲尼를 헐뜯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다만 스스로 역량을 알지 못함을 보일 뿐이라는 말이다.
注
○정의왈正義曰 : [適足自見其不知量也] 이 주注의 뜻에 의거하면 ‘다多’를 ‘적適’으로 훈해訓解한 것 같다.
‘다多’를 ‘적適’으로 풀 수 있는 까닭은, 고인古人들은 ‘다多’와 ‘기祇’를 동음同音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多見其不知量]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9년에 “다만 소원疏遠히 여김을 드러낸 것뿐이다.”라고 하였는데, 복건본服虔本에는 ‘지견소祗見疏’로 되어있고, “기祇는 적適이다.”라고 해석하였다.
진본晉本‧송본宋本‧두본杜本에는 모두 ‘다多’로 되어있다.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구운 고기 많고 맑은 술 알맞으며[多] 황상皇上의 은혜恩惠 널리 미치고 크나큰 덕德 베푸셨네[施].”라고 하여, 시施와 다多를 운韻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다多’를 ‘적適’으로 훈석訓釋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