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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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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禮也어늘 今也純하니이라
마포麻布치포관緇布冠을 만드는 것이 인데, 지금은 (生絲)으로 만드니 검약儉約하다.
吾從衆호리라
나는 대중大衆을 따르겠다.”
[注]孔曰 冕
공왈孔曰 : 치포관緇布冠이다.
古者績麻三十布以爲之
옛날에는 30새[升]의 삼베를 짜서 면관冕冠을 만들었다.
絲也 絲易成이라
(生絲)이니, 생사生絲로 30승포升布를 짜기는 쉽다.
故從이라
그러므로 검약儉約을 따르신 것이다.
拜下 禮也어늘 今拜乎上하니 泰也
당하堂下에서 절을 하는 것이 인데, 지금은 당상堂上에서 절을 하니 교만驕慢하다.
雖違衆이나 吾從下호리라
비록 대중大衆을 어기는 것이지만 나는 당하堂下에서 절하는 를 따르겠다.”
[注]王曰 臣之與君行禮者 成禮成禮어늘 時臣驕泰 故於上拜
왕왈王曰 : 신하臣下로서 임금과 를 행하는 자는 당하堂下에서 절을 한 뒤에 당상堂上으로 올라가서 배례拜禮를 마쳐야 하는데, 당시 신하臣下들은 교만방자驕慢放恣하였으므로 당상堂上으로 올라가서 절을 하였다.
從下 禮之恭也
“나는 당하堂下에서 절하는 예를 따르겠다.”라고 하신 것은 공손한 를 따르겠다는 말이다.
[疏]‘子曰’至‘從下’
의 [子曰]에서 [從下]까지
○正義曰 : 此章記孔子從恭儉.
정의왈正義曰 : 이 공자孔子께서 공손恭遜검약儉約을 따르신 일을 기록한 것이다.
吾從衆’者, 冕, 緇布冠也.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 치포관緇布冠이다.
古者績麻三十升布以爲之, 故云 “麻冕, 禮也.”
옛날에는 30새[升]의 삼베를 짜서 을 만들었기 때문에 “마포麻布(緇布冠)을 만드는 것이 예이다.”라고 한 것이다.
今也謂當孔子時.
지금은 공자孔子 당시當時를 이른다.
純, 絲也. 絲易成,
생사生絲이니, 생사로 30승포升布를 짜기는 쉽다.
故云 “純, 儉.”
그러므로 “지금은 (生絲)으로 만드니 검약儉約하다.”라고 하신 것이다.
用絲雖不合禮, 以其儉易, 故孔子從之也.
생사生絲를 사용하는 것이 비록 에 맞지 않지만, 검약하여 만들기 쉽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그것을 따르신 것이다.
‘拜下 禮也 今拜乎上 泰也雖違衆 吾從下’者, 禮, 臣之與君行禮者, 下拜然後升成拜, 是禮也. 今時之臣, 皆拜於上, 長驕泰也.
[拜下 禮也 今拜乎上 泰也 雖違衆 吾從下] 신하臣下로서 임금과 를 행하는 자는 당하堂下에서 절을 한 뒤에 당상堂上으로 올라가서 배례拜禮를 마치는 것이 예인데, 당시의 신하臣下들은 모두 당상堂上에서 절을 하여 교만驕慢함을 키웠다.
孔子以其驕泰則不孫,
공자孔子께서는 신하들이 교만驕慢하면 공손恭遜하지 못하다고 여기셨다.
故違衆而從下拜之禮也.
그러므로 대중大衆을 어기더라도 당하堂下에서 절하는 를 따르신 것이다.
下拜, 禮之恭故也.
당하堂下에서 절을 하는 것이 공손한 이기 때문이다.
[疏]○注 ‘孔曰’至‘從儉’
의 [孔曰]에서 [從儉]까지
○正義曰 : 云‘冕 緇布冠也’者, 冠者, 首服之大名, 冕者, 冠中之別號,
정의왈正義曰 : [冕 緇布冠也] 은 머리에 쓰는 복식服飾총칭總稱이고, 의 일종이다.
故冕得爲緇布冠也.
그러므로 치포관緇布冠이라 한 것이다.
曰 “, 緇布冠, 靑組纓屬于(頍)[缺].”曰 “始冠, 緇布之冠也.
의례儀禮》 〈사관례士冠禮〉에 “진복陳服하되, 치포관의 결항缺項은 푸른 실을 꼬아 만든 끈이 달려있다.”고 하였고, 에 “〈관례冠禮를 행할 때〉 처음에 씌우는 치포관緇布冠이다.
大古冠布, 齊則緇之.
태고시대太古時代에는 백포관白布冠을 썼고, 제사 때에만 백포관白布冠에 검은 물을 들여 썼다.
其緌也, 孔子曰 ‘吾未之聞也. 冠而敝之, 可也.’”
고대古代관유冠緌(늘어진 갓끈)가 있었는지에 대해 공자孔子께서 ‘나는 듣지 못하였으니, 시가始加를 마치고는 치포관을 폐기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云‘古者績麻三十升布以爲之’者, 鄭注喪服云 “布八十縷爲升.”
[古者績麻三十升布以爲之] 정현鄭玄의 《의례儀禮》 〈상복喪服에 “베 80올[縷]이 1이다.”라고 하였다.
[疏]○注 ‘王曰’至‘恭也’
의 [王曰]에서 [恭也]까지
○正義曰 : 云‘臣之與君行禮者 下拜然後升成禮’者, 案燕禮, 君燕卿大夫之禮也.
정의왈正義曰 : [臣之與君行禮者 下拜然後升成禮] 고찰하건대 연례燕禮는 임금이 대부大夫들과 연음宴飮(잔치를 열어 술을 마심)하는 이다.
其禮云 “公坐取大夫所媵觶, 興以酬賓, 賓降西階下, 再拜稽首.
의례儀禮》 〈연례燕禮〉에 “(임금)이 앉아서 대부大夫가 올린 (술잔의 일종)를 들고 일어나 〈서계西階 위로 가서〉 에게 술을 권하면 서계西階 아래로 내려가서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公命小臣辭, 賓升成拜.” 鄭注 “升成拜, 復再拜稽首也.
소신小臣을 보내어 사양辭讓하는 말을 전하면, 이 서계 위로 올라가서 배례拜禮를 마친다.”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승성배升成拜는 다시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림이다.
先時君辭之, 於禮若未成然.”
이는 앞서 〈서계 아래로 내려갔을 때에〉 임금이 사양辭讓하였으므로 를 완성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又覲禮 “天子賜侯氏以車服, 諸公奉篋服, 于其上. 升自西階東面, .
또 《의례儀禮》 〈근례覲禮〉에 “천자天子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후씨侯氏[諸侯]에게 거복車服하사下賜하면 〈천자天子을 받은〉 제공諸公(天子의 제공諸公)이 명복命服이 담긴 상자를 받들고 그 위에 명서命書(車服을 하사下賜하는 조서詔書)를 올려놓고서, 서계西階로부터 〈으로 올라가〉 동향東向해 서고, 태사太史제공諸公의 오른쪽에 선다.
侯氏升西面立,
후씨侯氏는 〈조계阼階(東階)로부터〉 위로 올라가 서향西向해 선다.
大史述命. 侯氏降兩階之間, 北面再拜稽首,
태사太史천자天子명서命書를 읽으면 후씨侯氏에서 내려와 양계 사이에서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升成拜.” 皆是臣之與君行禮, 下拜然後升成禮也.
〈태사가 후씨에게 당하에서 절하지 말라고 사양하면〉 위로 올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배례를 마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신하臣下가 임금과 를 행할 때에 당하堂下에서 절을 한 뒤에 당상堂上으로 올라가서 배례拜禮를 마치는 것이 예임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흔히 天子‧諸侯‧卿‧大夫 등이 朝儀나 祭禮 때 쓰던 禮冠으로 알려져 있으나, 注와 疏에서 모두 緇布冠이라 하여 士人이 사용하는 禮冠으로 규정하였다.
역주2 緇布冠 : 古代에 士人이 常用하던 禮冠이다.
역주3 : 피륙의 날줄을 세는 단위이니, 날줄 80올이 한 새[升]이다. 새가 높을수록 피륙이 精細하다.
역주4 : 사람의 품이 덜 든다는 뜻이다. 生絲로 30升布를 짜는 것이 麻絲로 30升布를 짜는 것에 비해 품이 절약된다는 뜻이다.
역주5 下拜然後[升]成禮 : 燕禮를 거행할 때 임금이 술잔을 들어 신하들에게 주면 술잔을 받은 신하는 堂에서 내려가 西階下에서 절을 한다. 이때 임금이 사양하면 신하는 곧 당상으로 올라가서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拜禮를 마치는 것이다. 《禮記 燕義》
역주6 [升]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皇本에는 ‘成’ 위에 ‘升’자가 있고, 邢疏에도 ‘升’자가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7 (今)[吾] : 저본에는 ‘今’으로 되어있으나, 經文에 ‘吾從下’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吾’로 바로잡았다.
역주8 [麻冕 禮也 今也純 儉]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恭儉 아래에 「麻冕 禮也 今也純 儉」 8字가 빠져있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9 冠禮 : 옛날에 사내아이가 20세가 되면 三加(冠을 세 차례 바꾸어 씌움)의 禮를 거행하여 成人이 되었음을 알리던 儀式이다. 관례에는 主人이 學德이 높은 사람을 賓으로 초빙하여 관례를 주재하게 하는데, 그 賓이 세 차례 관을 바꾸어 씌운다. 처음에 緇布冠을 씌우고, 다음에 皮弁을 씌우고, 또 다음에 爵弁을 씌우는데, 冠弁을 바꾸어 씌울 때마다 冠弁에 맞는 服裝으로 갈아입히고, 祝辭를 한다.
역주10 陳服 : 冠禮를 행하는 날 아침에 각종 服裝을 房中에 陳列하는 것으로, 服은 冠을 바꾸어 씌울 때마다 갈아입힐 옷을 이른다.
역주11 (頍)[缺]項 : 저본에는 ‘頍項’으로 되어있으나, 《儀禮》 〈士冠禮〉에 ‘缺項’으로 되어있는 것에 의거하여 ‘頍’를 ‘缺’로 바로잡았다. 缺項은 치포관이 벗겨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치이다.
역주12 : 《儀禮》 各篇의 後尾에 있는 作者未詳의 문장으로, 經을 해석하거나 보충한 글이다.
역주13 (如)[加] : 저본에는 ‘如’로 되어있으나, 《儀禮》 〈覲禮〉에 의거하여 ‘加’로 바로잡았다.
역주14 命書 : 天子의 命이 적힌 文書를 이른다.
역주15 大史(氏)[是]右 : 저본에는 ‘氏’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北監本에 ‘氏’가 ‘是’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是’로 쓰는 것이 《儀禮》 〈覲禮〉와 부합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是’로 고쳤다. 그러나 阮刻本에서도 언급하였듯이 ‘氏’는 古文에서 ‘是’와 통용하던 글자이므로 誤字는 아님을 밝혀둔다. 이 말은 太史가 諸公의 오른쪽에 선다는 말이다. 鄭玄의 注에 “‘是右’는 비로소 따라 들어와서 堂에 올라 동쪽을 향해 섰을 때 그 오른편에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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