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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3)

논어주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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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주소(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9. 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矣로소이다
君子三年不為禮 禮必壞하고 三年不為樂이면 樂必崩하리이다
舊穀旣沒하고 新穀旣升하며 改火하나니 期可已矣로소이다
[注]馬曰 月令 有更火之文하니 春取榆柳之火하고
夏取棗杏之火하고 季夏取桑柘之火하고 秋取柞楢之火하고 冬取槐檀之火니라
一年之中 鑽火各異木이라 故曰改火也라하니라
子曰
食夫稻하며 衣夫錦 於女安乎
하니이다
女安則為之하라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하며 聞樂不樂하며 居處不安이라
故不為也하나니
今女安則為之하라
[注]孔曰 旨 美也
責其無仁恩於親이라
故再言女安則為之시니라
宰我出커늘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하나니
[注]馬曰 子生 為父母所懷抱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注]孔曰 自天子達於庶人이라
[注]孔曰 言子之於父母 欲報之인댄 昊天罔極이어늘 而予也有三年之愛乎
[疏]‘宰我’至‘母乎’
○正義曰 : 此章論三年喪禮也.
‘宰我問三年之喪 期已久矣’者, 禮喪服為至親者三年.
宰我嫌其大遠, 故問於夫子曰 “三年之喪, 期已久矣乎.”
‘君子三年不為禮 禮必壞 三年不為樂 樂必崩’者, 此宰我又說喪不可三年之義也.
言禮檢人迹, 樂和人心, 君子不可斯須去身.
在喪則皆不為也.
不為旣久, 故禮壞而樂崩也.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者, 宰我又言三年之喪, 一期為足之意也.
夫人之變遷, 本依天道,
一期之, 則舊穀已沒, 新穀已成.
鑽木出火謂之燧. 言鑽燧者又已改變出火之木.
天道萬物旣已改新, 則人情亦宜從舊,
故喪禮但一期而除, 亦可已矣.
‘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者, 孔子見宰我言至親之喪, 欲以期斷, 故問之.
言禮為父母之喪, 旣殯, 食粥, 居倚廬, 斬衰三年.
期而小祥, 食菜果, 居堊室, 練冠縓緣, 要絰不除.
今女旣期之後, 食稻衣錦, 於女之心, 得安否乎.
‘曰 安’者, 宰我言, 旣期除喪, 卽食稻衣錦, 其心安也.
‘女安則為之’者, 孔子言, 女心安, 則自為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為也 今女安則為之’者, 孔子又為說不可安之禮.
旨, 美也.
言君子之居喪也, 疾卽飲酒食肉,
雖食美味, 不以為甘, 雖聞樂聲, 不以為樂, 寢苫枕塊, 居處不求安也,
故不為食稻衣錦之事. 今女旣心安, 則任自為之.
責其無仁恩於親, 故再言 “女安則為之.”
‘宰我出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者, 予, 宰我名.
宰我方當愚執, 夫子不欲面斥其過,
故宰我旣問而出去, 孔子對二三子言曰 “夫宰予不仁於父母也.
凡人子生未三歲, 常為父母所懷抱, 旣三年然後免離父母之懷.
是以聖人制喪禮, 為父母三年.”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者, 通, 達也, 謂上自天子下達庶人, 皆為父母三年,
故曰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者, 為父母愛己, 故喪三年. 今予也不欲行三年之服, 是有三年之恩愛於父母乎.
○注‘馬曰’至‘火也’
○正義曰 : 云‘周月令 有更火之文’者, 周書, 孔子所刪尙書百篇之餘也.
康中得之汲冢, 有月令篇, 其辭亡.
案周禮 “司爟掌行火之政令, 四時變國火, 以救時疾.” 鄭玄注云 “行, 猶用也. 變, 猶易也.” 鄭司農說以鄹子曰 “春取榆柳之火,
夏取棗杏之火, 季夏取桑柘之火, 秋取柞楢之火, 冬取槐檀之火.” 其文與此正同.
釋者云 “榆柳靑故春用之, 棗杏赤故夏用之, 桑柘黃故季夏用之, 柞楢白故秋用之, 槐檀黑故冬用之.
○注‘孔曰 自天子達於庶人’
○正義曰 : 禮記三年問云 “夫三年之喪, 天下之喪也.” 鄭玄云 “達, 謂自天子至於庶人.”
喪服四制曰 “此喪之所以三年, 賢者不得過, 不肖者不得不及.”
檀弓曰 “先王制禮也, 過之者俯而就之, 不至者跂而及之也.”
聖人雖以三年為文, 其實二十五月而畢.
若駟之過隙然而遂之, 則是無窮也,
故先王為之立中制節, 壹使足以成文理則釋之矣.
喪服四制曰 “始死, 三日不怠, 三月不解, 期悲哀, 三年憂, 恩之殺也.”
故孔子云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達喪也.”
所以喪必三年為制也.
○注‘孔曰’至‘愛乎’
○正義曰 : 云‘欲報之德 昊天罔極’者, 小雅蓼莪文.
鄭箋云 “之, 猶是也. 我欲報父母是德, 昊天乎, 我心無極.”
云‘予也有三年之愛乎’者, 言宰予不欲服喪三年, 是無三年之愛也.
繆協云 “爾時禮壞樂崩, 三年不行. 宰我大懼其往, 以為聖人無微旨以戒將來,
故假時人之謂, 啓憤於夫子, 義在屈己以明道也.”


재아宰我가 물었다.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은 기간期間이 너무 깁니다.
군자君子가 3년 동안 를 익히지 않으면 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을 익히지 않으면 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이 이미 없어지고 햇곡식이 이미 익으며, 나무를 뚫어 불씨를 바꾸니, 〈복상服喪도〉 1년이면 그쳐야 합니다.”
마왈馬曰 : 《주서周書》 〈월령月令〉에 〈철 따라〉 불을 바꾼다는 글이 있으니, 봄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의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와 살구나무의 불을 취하고, 계하季夏(6월 12일~6월 30일)에는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불을 취하고, 가을에는 떡갈나무와 참나무의 불을 취하고, 겨울에는 느티나무와 박달나무의 불을 취한다.
1년 중에 〈철 따라〉 각각 다른 나무를 사용해 구멍을 뚫어 불을 취하기 때문에 ‘불을 바꾼다.’고 한 것이다.
께서 말씀하셨다.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네 마음에 편안하냐?”
재아宰我가 대답하였다.
“편안합니다.”
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편안하다면 그리하라.
군자君子상중喪中에 있을 때에 맛난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방 안에 거처해도 편안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네가 편안하면 그리하라.”
공왈孔曰 : 는 아름다운 〈음식〉이다.
재아宰我가 어버이에 대한 인애仁愛은정恩情이 없음을 꾸짖으셨다.
그러므로 ‘네가 편안하다면 그리하라.’고 두 번 말씀하신 것이다.
재아宰我가 나가자, 께서 말씀하셨다.
재여宰予불인不仁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니,
마왈馬曰 : 자식이 태어나서 세 살이 되기 전에는 부모의 품안에서 지낸다.
〈부모를 위해〉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은 천하天下 사람이 통용通用하는 상제喪制이다.
공왈孔曰 :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통용通用한다.
재여宰予는 그 부모에게 3년의 사랑이 있었더냐?”
공왈孔曰 : 자식이 부모에게 은덕을 갚고자 하면 하늘처럼 끝이 없어 갚을 길이 없는데, 재여宰予는 그 부모에게 3년의 사랑이 있기나 한 것이냐는 말이다.
의 [宰我]에서 [母乎]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은 3년의 상례喪禮를 논한 것이다.
[宰我問三年之喪 期已久矣] 《의례儀禮》 〈상복喪服〉에 의하면 지친至親을 위해 을 입는 자는 3년을 입는다.
재아宰我는 3년이 너무 길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부자夫子께 “부모의 에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은 기간期間이 너무 길지 〈않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君子三年不為禮 禮必壞 三年不為樂 樂必崩] 이것은 재아宰我가 또 3년을 복상服喪해서는 안 되는 뜻을 말한 것이다.
는 사람의 행동[迹]을 검속檢束하고 은 사람의 마음을 화평和平하게 하니, 군자君子가 잠시도 몸에서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직 상중喪中에 있을 때만은 〈을〉 모두 익히지 않는다.
익히지 않는 기간이 너무 오래기 때문에 이 무너진다는 말이다.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재아宰我가 또 〈부모를 위해〉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은 1년이면 충분하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사람의 변천은 본래 천도天道를 따라야 한다.
1년의 사이에는 묵은 곡식이 이미 다하고 햇곡식이 이미 익는다.
나무를 뚫어 불을 내는 것을 라 하니, 나무를 뚫어 마찰시켜 불을 얻을 때 또 〈그 계절季節이 지나면〉 불을 취하는 나무를 바꿈을 말한다.
천도天道만물萬物이 이미 〈수명이〉 다하여 새 것으로 바뀌었으니, 인정人情도 옛날(喪을 당하기 이전의 일상日常)을 따르는 것[從舊]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상례喪禮도 1(1년)만 복상服喪하고 제복除服(脫喪)하여도 가하다는 것이다.
[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공자孔子께서, 지친至親상기喪期기년期年으로 자르고자 하는 재아宰我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물으신 것이다.
부모父母를 위한 복상服喪에는 초빈草殯한 뒤에야 죽을 먹으며, 의려倚廬(중문 밖에 세운 여막廬幕)에 거처하며, 3년 동안 참최복斬衰服을 입으며,
1년이 되어 소상제小祥祭를 지내고서야 채소와 과일을 먹으며, 악실堊室(白土로 네 벽을 바른 방)에 거처하며, 연관練冠을 쓰고 붉은색으로 가선을 두른 옷을 입으며, 요질要絰은 벗지 않는 것이 인데,
지금 너는 1년이 지난 뒤에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네 마음에 편안하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曰 安] 재아宰我가, 1년이 되면 탈상脫喪하고서 즉시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마음에 편안하다고 말한 것이다.
[女安則為之] 공자孔子께서 네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為也 今女安則為之] 공자孔子께서 또 재아를 위해 편안히 여겨서는 안 되는 를 말씀해주신 것이다.
는 아름다운 음식이다.
군자君子거상居喪 중에 병이 생기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맛난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음악소리를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적자리 위에 자고, 흙덩이를 베고 지내며 거처가 편안하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지금 네가 마음이 편안하다면 뜻대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재아宰我가 어버이에 대한 인애仁愛은정恩情이 없는 것을 꾸짖으셨기 때문에 ‘네가 편안하다면 그리 하라.’고 두 번 말씀하신 것이다.
[宰我出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懷] 재아宰我의 이름이다.
재아宰我가 어리석은 소견을 고집할 때에 부자夫子께서 면전面前에서 그의 잘못을 질책하려 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재아宰我가 이미 묻고서 나간 뒤에 공자孔子께서 문인門人들[二三子]에게 “재여宰予부모父母에 대해 인애仁愛하는 마음이 없음이여!
무릇 사람의 자식이 태어나서 세 살이 되기 전에는 항상 부모의 품안에서 지내고, 세 살이 지난 뒤에야 부모父母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성인聖人부모父母를 위해 3년을 복상服喪하도록 상례喪禮를 제정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到達)이니, 위로 천자天子로부터 아래로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모父母를 위해 3년을 복상服喪한다.
그러므로 ‘통상通喪’이라 한 것이다.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부모父母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인데, 지금 재여宰予는 3년 동안 복상服喪하는 〈를〉 행하려 하지 않으니, 이것이 부모에게 3년의 은애恩愛가 있는 것이냐?
의 [馬曰]에서 [火也]까지
정의왈正義曰 : [周書月令 有更火之文] 《주서周書》는 공자孔子께서 산정刪定하신 《상서尙書백편百篇여문餘文(遺文)이다.
나라 태강太康(280~289) 연간에 급총汲冢에서 얻은 〈고서古書 중에〉 〈월령月令〉篇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글이 없어졌다.
고찰하건대, 《주례周禮》에 “사관司爟(불)를 사용하는 정령政令을 관장하여, 네 계절마다 국중國中에서 사용하는 취화목取火木을 바꾸어 시질時疾(철 따라 유행하는 병)을 구제救濟한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과 같고, 과 같다.” 하였고, 정사농鄭司農(鄭衆)은 추자鄹子을 인용해 “봄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의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와 살구나무의 불을 취하고, 계하季夏에는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불을 취하고, 가을에는 떡갈나무와 참나무의 불을 취하고, 겨울에는 느티나무와 박달나무의 불을 취한다.”고 하였으니, 그 글이 마융馬融에 인용한 《주서周書》 〈월령月令〉의 내용과 똑같다.
주석注釋가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는 푸르기 때문에 봄에 사용하고, 대추나무와 살구나무는 붉기 때문에 여름에 사용하고, 뽕나무와 산뽕나무는 누렇기 때문에 계하季夏에 사용하고, 떡갈나무와 참나무는 희기 때문에 가을에 사용하고, 느티나무와 박달나무는 검기 때문에 겨울에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의 [孔曰 自天子達於庶人]
정의왈正義曰 : 《예기禮記》 〈삼년문三年問〉에 “무릇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은 천하가 공통으로 행하는 상례喪禮이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은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예기禮記》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이것이 3년을 복상服喪하도록 〈규정한〉 이유이니, 현자賢者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하게 하고, 불초자不肖者는 〈3년에〉 미치지 않을 수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상복喪服중용中庸이다.〉”라고 하였고,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선왕先王상례喪禮를 제정하여, 지나친 자(賢者)는 〈뜻을〉 굽혀 〈3년의 예제禮制〉를 따르게 하고, 이르지 못한 자(不肖者)는 발돋움하여 〈3년의 예제禮制에〉 미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성인聖人이 비록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으로〉 예문禮文을 만들었으나, 사실은 25개월로 〈상기喪期를〉 마친다.
사마駟馬가 문틈을 지나는 것처럼 〈그 기간이 너무 빠르다 하여,〉 자기의 뜻대로 계속 복을 입는다면[遂之] 복을 마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중도中道에 맞는 예제禮制를 세워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문리文理(禮儀)를 충분히 이루었으면 석복釋服(喪服을 벗음)하게 한 것이다.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어버이가 처음 사망하셨을 때에는 3일 동안 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석 달 동안 옷을 벗고 눕지 않으며, 1년 동안 슬퍼하며, 3년 동안 근심하니, 이는 은혜恩惠에 대한 감정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니, 〈부모를 위해〉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은 천하天下 사람이 공통으로 행하는 상제喪制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의〉 은 반드시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을 예제禮制로 삼는다.
의 [孔曰]에서 [愛乎]까지
정의왈正義曰 : [欲報之德 昊天罔極]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아蓼莪〉의 글이다.
정현鄭玄에 “와 같으니, 내가 부모의 이 을 갚고 싶지만 하늘과 같으시어 내 마음 끝이 없네.”라고 하였다.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재여宰予가 3년을 복상服喪하고자 하지 않으니, 이는 그 부모에게 3년의 은애恩愛가 없는 것이다.
무협繆協이 말하기를 “이때에 예악禮樂이 붕괴되어, 삼년상三年喪을 행하지 않으니, 재아宰我장래將來[往]가 크게 두려운데도 성인聖人께서 심오한 뜻으로 장래를 경계하심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의 말에 가탁하여 부자夫子께 분한 마음을 아뢴 것이니, 그 뜻이 자기를 굽혀 를 밝히는 데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鑽燧 : 原始時代에 불을 취하던 방법이다. 鑽은 송곳처럼 끝을 뾰족하게 만든 나무꼬챙이이고, 燧는 불을 취하는 나무이다. 鑽으로 燧에 구멍을 뚫어 鑽을 구멍에 넣고서 마찰시켜 불을 일으킨다.
역주2 周書 : 《逸周書》인 듯하다.
역주3 [曰] : 저본에는 ‘曰’字가 없으나, “皇本에는 ‘女’ 위에 ‘曰’자가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於二)[未三] : 저본에는 ‘於二’로 되어있으나, “‘二’는 ‘三’이 되어야 한다. 皇本에는 ‘於’가 ‘未’로 되어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未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 朱彬의 《經傳攷證》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有의 뜻은 無이다. 3년의 服喪은 모든 사람이 通行하는 喪禮인데, 어찌 宰予만이 홀로 3년의 恩愛가 없겠느냐는 말이다.[有之爲言 無也 言三年之喪 謂通喪 豈予也獨無三年之恩愛乎]”
역주6 (恩)[德] : 저본에는 ‘恩’으로 되어있으나, 《詩經》 〈蓼莪〉에 “欲報之德 昊天罔極”으로 되어있는 것에 의거하여 ‘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期月)[三年] : 저본에는 ‘期月’로 되어있으나, “北監本과 毛本에는 ‘期月’이 ‘三年’으로 되어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三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 (推)[惟] : 저본에는 ‘推’로 되어있으나, “推는 惟의 잘못이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惟’로 바로잡았다.
역주9 (問)[間] : 저본에는 ‘問’으로 되어있으나, “본래 間인데 問으로 잘못되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間’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禮)[書] : 저본에는 ‘禮’로 되어있으나, 이는 앞의 馬融의 注 첫머리를 그대로 따온 문구이므로 ‘書’로 바로잡았다.
역주11 (成)[太] : 저본에는 ‘成’으로 되어있으나, 四庫全書本에 의거하여 ‘太’로 바로잡았다.
역주12 (令)[今] : 저본에는 ‘令’으로 되어있으나, “본래는 ‘今’인데 ‘令’으로 잘못되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13 (通)[達] : 저본에는 ‘通’으로 되어있으나, 阮元의 校勘記에 “《禮記》 〈三年問〉에 ‘達’로 되어있다.”라고 하였고, 이 문구에 대한 鄭玄의 注에서 ‘達’로 풀이했으므로, ‘達’로 바로잡았다.
역주14 [之] : 저본에는 ‘之’字가 없으나, “지금 《禮記》 〈檀弓〉에는 ‘王’ 아래에 ‘之’자가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5 [焉] : 저본에는 ‘焉’字가 없으나, “지금 《禮記》 〈檀弓〉에는 ‘至’ 아래에 ‘焉’자가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6 [於其父母] : 저본에는 없으나, “浦鏜이 ‘愛 아래에 於其父母 4자가 빠졌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於其父母’ 4자를 보충하였다.

논어주소(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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