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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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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君召使擯이어시든
임금이 불러서 을 시키시면
[注]鄭曰 君召使擯者 有賓客使迎之
정왈鄭曰 : 군소사빈君召使擯은 〈내방來訪한〉 빈객賓客을 영접하게 함이다.
色勃如也하시며
얼굴빛을 바꾸시고,
[注]孔曰 必變色이라
공왈孔曰 : 반드시 얼굴빛을 바꾸셨다.
足躩如也러시다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셨다.
[注]包曰 足躩
포왈包曰 : 족곽足躩반벽盤辟하는 모양이다.
揖所與立하시되 左右手러시니 衣前後襜如也러시다
함께 선 사람들에게 을 하시되 손을 로 돌리기도 하고 로 돌리기도 하셨는데, 옷의 앞뒷자락이 가지런하였다.
[注]鄭曰 揖左人 左其手하고 揖右人 右其手
정왈鄭曰 :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을 할 때는 손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을 할 때에는 손을 오른쪽으로 돌리신 것이다.
一俛一仰 衣前後襜如也
한 번 몸을 굽히고 펼 때마다 옷의 앞뒷자락이 가지런하였다.
翼如也러시다
추창趨蹌해 나아가실 때에 〈두 소맷자락이〉 마치 새가 날개를 편 것 같으셨다.
[注]孔曰 言端好
공왈孔曰 : 단정하고 아름다웠다는 말이다.
賓退어든 必復命曰 賓不顧矣라하시다
이 물러가면 반드시 “이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라고 복명復命하셨다.
[注]鄭曰 復命 白君賓已去矣
정왈鄭曰 : 복명復命은 임금에게 빈객賓客이 이미 떠났음을 아뢴 것이다.
[疏]‘君召使擯’至‘顧矣’
의 [君召使擯]에서 [顧矣]까지
○正義曰 : 此一節言君召孔子, 使爲擯之禮也.
정의왈正義曰 : 이 한 은 임금이 공자孔子를 불러 이 되게 했을 때의 를 말한 것이다.
擯, 謂主國之君所使出接賓者也.
주국主國의 임금이 빈객賓客접대接待하도록 내보낸 사람을 이른다.
‘色勃如也 足躩如也’者, 勃然變色也. 足躩, 盤辟貌.
[色勃如也 足躩如也] 〈색발여色勃如는〉 갑자기 얼굴빛을 바꿈이고, 족곽足躩은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는 모양이다.
旣傳君命以接賓, 故必變色而加肅敬也.
임금의 을 전하고 나서 빈객賓客접대接待하기 때문에 반드시 얼굴빛을 바꾸어 더욱 공경恭敬을 표한 것이다.
足容盤辟, 躩然不敢懈慢也.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는 것은 빨리 걷고 감히 게을리 걷지 않는 것이다.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襜如也’者, 謂傳命時, 揖左人, 左其手, 揖右人, 右其手. 一俛一仰, 衣前後襜如也.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襜如也] 가 벌여 서서 을 전할 때에,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을 할 때는 손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을 할 때는 손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몸을 한 번 굽히고 펼 때마다 옷의 앞뒷자락이 가지런했음을 이른다.
‘趨進 翼如也’者, 謂疾趨而進,端好, 爲鳥之張翼也.
[趨進 翼如也] 추창해 앞으로 나아갈 때 두 손을 포개어 잡고서 두 팔꿈치를 밖으로 편 모습이 단정端整하고 아름다워 마치 새가 날개를 편 것 같음을 이른다.
‘賓退 必復命曰 賓不顧矣’, 謂畢, 上擯送賓出, 反告白君, 賓已去矣, 不反顧也.
[賓退 必復命曰 賓不顧矣] 빈례賓禮를 마치고서 상빈上擯을 전송하기 위해 나갔다가 돌아와서 자국自國의 임금에게 ‘빈객賓客이 이미 떠났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라고 고했음을 이른다.
[疏]○注 ‘鄭曰’至‘如也’
의 [鄭曰]에서 [如也]까지
○正義曰 : 云‘揖左人 左其手 揖右人 右其手’者, 謂傳擯時也.
정의왈正義曰 : [揖左人 左其手 揖右人 右其手] 에게 〈임금의 을〉 전할 때의 동작을 말한 것이다.
案諸侯自相爲賓之禮, 凡賓主各有副, 賓副曰介. 主副曰擯及行人.
고찰하건대, 제후諸侯가 직접 서로 이 되었을 때의 에게 모두 각각 보좌관[副]이 있는데, 빈국賓國의 보좌관을 ‘’라 하고, 주국主國의 보좌관을 ‘’ 및 ‘행인行人’이라 한다.
若諸侯自行, 則.
제후諸侯가 직접 가는 경우에는 ‘’를 각자 자신의 명수命數대로 대동한다.
至主國大門外, 主人及擯出門相接. 若主君是公, 則擯者五人, 侯伯則擯者四人, 子男則擯者人.
〈행차가〉 주국主國궐문闕門 밖에 이르면 주국主國의 임금과 이 대문을 나가 영접迎接하는데, 주국主國 임금의 작위爵位일 경우 이 5, 일 경우 이 4, 일 경우 이 3이다.
所以不隨命數者, 謙也,
자기의 명수命數대로 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겸양謙讓의 뜻을 보이기 위함이다.
故竝用强半之數也.
그러므로 모두 〈자기 명수命數의〉 절반이 조금 넘는 인원수人員數를 사용한다.
賓若是公, 來至門外, 直當, 去門九十步而下車, 當軹北嚮而立.
으로 온 사람의 작위爵位일 경우, 행차가 궐문闕門 밖에 이르면 얼서闑西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문과의 거리가 90 되는 곳에서 수레에서 내려 (굴대 끝) 곁에서 북쪽을 해 선다.
鄭注考工記云 “軹, 轂末也.”
정현鄭玄의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곡말轂末(바퀴통의 끝)이다.”라고 하였다.
其侯伯立當, 子男立當衡.
으로 온 사람의 작위爵位일 경우 전후前侯를 괸 곁에 서며, 일 경우 곁에 선다.
注 “衡謂車軛.”
정현鄭玄에 “거액車軛(멍에)이다.”라고 하였다.
其君當軫, 而九介立在君之北, 邐迤西北, 竝東嚮而列. 主公出, 直闑東, 南嚮立. 擯在主人之南, 邐迤東南立, 竝西嚮也.
으로 온 임금이 (수레 뒤턱에 가로 댄 나무) 곁에 서고 아홉 명의 가 그 임금의 북쪽에서 서북西北으로 길게 이어 나란히 동쪽을 향해 벌여 서면 주국主國의 임금이 나와서 얼동闑東에서 남쪽을 해 서고, 주인主人의 남쪽에서 동남東南으로 길게 이어 서서 모두 서쪽을 향한다.
使末擯與末介相對, 中間傍相去三丈六尺.
말빈末擯말개末介를 서로 마주보고 서게 하는데, 그 사이의 거리가 3 6이다.
列擯‧介旣竟, 則主君就.
가 벌여 서는 일이 끝나면 주군主君에게 가서 구사求辭(온 이유를 물음)하게 한다.
所以須求辭者, 不敢自許, 人己, 恐爲他事而至,
반드시 구사求辭하는 까닭은 감히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이 나에게 온 것이 혹 다른 일 때문이 아닐까 우려해서이다.
故就求辭, 自謙之道也.
그러므로 가서 구사求辭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스스로 겸양하는 도리이다.
求辭之法,
구사求辭하는 은 다음과 같다.
主人先傳求辭之言與上擯, 上擯以至次擯, 次擯繼傳以至末擯,
주인主人이 먼저 구사求辭할 말을 상빈上擯에게 전하면 상빈上擯은 그 말을 차빈次擯에게 전하고, 차빈次擯은 계속해 전하여 말빈末擯에 이른다.
末擯傳與賓末介, 末介以次繼傳, 上至於賓.
말빈末擯이 그 말을 빈국賓國말개末介에게 전하면 말개末介는 차례로 그 말을 전하여 위로 에게 이른다.
賓答辭隨其來意, 又從上介而傳, 下至末介, 末介又傳與末擯,
이 자신이 온 뜻을 대답하는 말을 다시 상개上介에게 전하고 〈상개는 차개次介에게 전하여〉 아래로 말개末介에 이르면 말개末介는 다시 그 말을 말빈末擯에게 전한다.
末擯傳相次而上至於主人.
말빈末擯이 차례로 전하여 위로 주인主人에 이른다.
傳辭旣竟, 而後進迎賓至門.
말을 전하는 일이 끝난 뒤에 주인主人이 나아가 영접迎接하여 에 이른다.
知擯‧介如此者, 大行人職文.
조위朝位가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주례周禮》 〈대행인직大行人職〉의 글을 통해서이다.
又知傳辭拜迎賓前至門者, 司儀職文.
또 말을 전하는 것과 앞에서 절하고 영접迎接하여 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주례周禮》 〈사의직司儀職〉의 글을 통해서이다.
其傳辭, 司儀之交擯也.
말을 전하는 것은 〈사의司儀〉에 말한 ‘교빈交擯’이다.
其列擯‧介, 傳辭委曲, 約聘禮文.
가 벌여 서서 말을 자세히 전하는 것은 《의례儀禮》 〈빙례聘禮〉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若諸侯使卿大夫相聘, 其介與主位, 則大行人云 “卿大夫之禮, 各下其君二等.” 鄭注云 “介與朝位.” 是也.
제후諸侯이나 대부大夫를 보내어 빙문聘問하는 경우, 주인主人조위朝位에 대해 《주례周禮》 〈대행인大行人〉에 “〈그 임금의 명을 받고 내빙來聘제후諸侯의〉 이나 대부大夫예수禮數(신분에 따라 적용하는 의 등급을 달리하는 제도)는 각각 그 임금에 비해 두 등급等級을 낮춘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두 등급等級을 낮추는 것은〉 의 숫자와 조위朝位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主君待之, 擯數如待其君. 其有異者, 主君至大門而不出限, 南面而立也.
주국主國의 임금이 빈국賓國이나 대부大夫접대接待할 때 의 숫자는 내빙국來聘國의 임금을 접대接待할 때와 같고, 다른 것은 주국主國의 임금이 대문까지만 나아가고 문지방을 넘지 않고서 남면南面하여 서는 것이다.
若公之使, 亦直闑西北嚮, 七介, 而去門七十步.
내빙來聘한 사람이 사신使臣인 경우에도 얼서闑西에서 북쪽을 향해 서는데, 는 7명이고, 대문과 70보의 거리를 둔다.
侯伯之使, 列五介, 而去門五十步.
사신使臣인 경우에는 5명의 를 벌여 세우고서 대문과 50보의 거리를 둔다.
子男之使, 三介, 而去門三十步.
사신使臣인 경우에는 는 3명이고, 대문과 30보의 거리를 둔다.
上擯出閾外闑東南西嚮, 陳介西北, 東面邐迤, 如君自相見也,
상빈上擯이 대문의 (문지방) 밖으로 나아가 얼동闑東에서 남서南西해 서면 〈도〉 여러 들을 서북西北에서 동면東面하여 길게 벌여 세워 임금끼리 직접 접견할 때처럼 한다.
而末介‧末擯相對亦相去三丈六尺.
말개末介말빈末賓이 서로 마주보고 서는데, 그 사이도 3 6이다.
陳擯‧介竟, 則不傳命, 而上擯進至末擯間, 南揖賓, 賓亦進至末介間, 上擯與賓相去亦三丈六尺,
가 벌여 서는 일이 끝나면 차례로 을 전하지 않고, 상빈上擯이 앞으로 가서 말빈末擯 사이에 이르러 남쪽을 향해 에게 하면 또한 앞으로 가서 말개末介의 사이에 이르는데, 상빈上擯의 사이도 3 6이다.
而上擯揖而請事, 入告君.
상빈上擯하고서 방문訪問한 이유를 물은 뒤에 들어가서 임금에게 한다.
君在限內, 後乃相與入也.
임금은 대문의 문지방 안에 있다가 뒤에 함께 들어간다.
知者, 約聘禮文.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의례儀禮》 〈빙례聘禮〉를 요약한 글을 통해서이다.
不傳辭, 司儀及聘禮謂之.
차례로 말을 전하지 않는 것을 《주례周禮》 〈사의司儀〉와 《의례儀禮》 〈빙례聘禮〉에 ‘여빈旅擯’이라 하였다.
君自來, 所以必傳命者, 聘義云 “君子於其所尊弗敢質, 敬之至也.”
임금이 직접 왔을 때에는 반드시 차례로 을 전하는 것에 대해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군자君子는 자신이 존경尊敬하는 분과 감히 대등對等하게 처신하지 않으니, 이는 지극히 공경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又若天子春夏受朝宗則無迎法,則有之,
천자天子가 봄과 여름에 을 받을 경우에는 〈천자天子제후諸侯를〉 영접迎接하는 법이 없으나, 수향受享하는 경우에는 〈제후를 영접함이〉 있다.
故大行人云 “” 鄭云 “朝先享, 不言朝者, 也.”
그러므로 《주례周禮》 〈대행인大行人〉에 “종묘宗廟장폐將幣하고서 세 차례 방물方物을 올린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조정朝廷에 먼저 폐백幣帛를 올리는데 조정朝廷을 말하지 않은 것은 조정朝廷를 바르게 행하는 곳이므로 차등差等이 있음을 혐의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若秋冬覲遇一受之於廟, 則亦無迎法,
가령 가을의 근례覲禮와 겨울의 우례遇禮라면 모두 종묘宗廟에서 받을 뿐이니, 영접迎接하는 법이 없다.
故郊特牲云 “覲禮, 天子不下堂而見諸侯.” 明冬遇依秋也.
그러므로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근례覲禮(諸侯가 가을에 천자天子배알拜謁하는 )에는 천자天子에서 내려가 제후諸侯접견接見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겨울의 우례遇禮도 가을의 근례覲禮를 따름을 밝힌 것이다.
以爲擯之禮, 依次傳命,
는 차례대로 임금의 을 전하는 것이다.
故揖左人左其手, 揖右人右其手, 一俛一仰, 使衣前後襜如也.
그러므로 〈을 전할 때에〉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을 할 때는 그 손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을 할 때에는 그 손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한 번 몸을 굽히고 펼 때마다 옷의 앞뒷자락을 가지런하게 하신 것이다.
[疏]○注 ‘鄭曰 復命 白君賓已去矣’
의 [鄭曰 復命 白君賓已去矣]
○正義曰 : 案聘禮行禮畢, 賓出, 公再拜送, 賓不. 鄭注云 “公旣拜, 客趨辟.
정의왈正義曰 : 《의례儀禮》 〈빙례聘禮〉를 고찰하건대, 빙향聘享사적私覿를 마치고 이 나갈 때 재배再拜하고서 을 환송하면 은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이 절을 하면 은 빨리 걸어 그 자리를 피한다.
君命上擯送賓出, 反告賓不顧矣.
상빈上擯에게 하여 나가서 을 환송하게 하면 〈상빈上擯을 환송하고서〉 돌아와 ‘이 돌아보지 않았습니다.’라고 한다.
於此君可以反矣.
이때에 이르러서야 노침路寢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盤辟 : 皇疏에 “盤辟은 곧 발걸음을 빠르게 옮김이다.[盤辟 卽足轉速也]”라고 하였다.
역주2 : 禮를 행할 때에 일정한 規則에 맞게 걷는 趨蹌을 이른다. 趨蹌은 두 손을 모아 잡고 허리를 굽히고서 걷는 것이다. 趨에는 徐趨와 疾趨가 있는데, 이곳의 趨는 疾趨이다.
역주3 交擯 : 主國의 君과 來聘國의 賓이 擯과 介를 벌여 세워놓고서 來訪한 諸侯가 내방한 이유를 자신의 上介에게 전하면 상개는 次介에게, 차개는 末介에게 전한다. 말개는 다시 이 명을 主國의 末擯에게 전하고, 말빈은 次擯에게, 차빈은 上擯에게, 상빈은 이 명을 主君에게 전한다.
역주4 張拱 : 揖을 할 때 두 손을 포개어 잡고서 두 팔꿈치를 밖으로 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소맷자락이 아래로 늘어져서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처럼 보인다.
역주5 [者]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矣 아래에 者자가 빠졌다.’고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6 賓禮 : 古代에 諸侯가 직접 가거나 혹은 使臣을 보내어 天子나 제후에게 朝見하던 朝聘의 禮를 이른다. 제후가 직접 가서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朝라 하고, 臣下를 천자나 제후에게 使臣으로 보내어 安否를 묻는 것을 聘이라 한다. 《周禮》 〈春官 大宗伯〉에 의하면 春見을 ‘朝’, 夏見을 ‘宗’, 秋見을 ‘覲’, 冬見을 ‘遇’, 時見(定해진 時期 이외에 朝見하는 것)을 ‘會’, 殷見(사방의 제후가 四時에 나누어 와서 조현하는 것)을 ‘同’, 時聘(천자에게 일이 있으면 제후가 사신을 보내어 聘問하는 것)을 ‘問’, 殷覜(五服 중에 一服의 제후가 와서 朝聘하는 것)를 ‘視’라 한다. 《論語 先進篇 言志章 疏》
역주7 介各從其命數 : 介는 諸侯가 직접 朝聘이나 會盟에 참여할 때 帶同하는 輔佐官을 이른다. 命數는 王(天子)이 내린 爵位의 등급이다. 《周禮》 〈春官 典命〉에 의하면 “上公은 九命으로 方伯이 되고, 侯‧伯은 七命이고, 子‧男은 五命이다.”라고 하였다. 介를 각각 자신의 命數대로 한다는 것은 公‧侯‧伯‧子‧男이 각각 자기의 命數대로 輔佐官을 대동하는 것이니, 곧 九命의 경우 九人, 七命의 경우 7人, 五命의 경우 五人을 대동한다는 말이다.
역주8 (二)[三] : 저본에는 ‘二’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三의 誤字이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闑西 : 闑은 闕門의 중앙에 박힌 짧은 말뚝이다. 闑의 중앙은 尊者가 서는 곳이기 때문에 신하가 그곳에 설 수 없다. 公門에는 중앙에 짧은 말뚝을 박아 闑東과 闑西로 구분한다. 主國의 君臣은 闑東으로 출입하고, 外賓은 闑西로 출입한다.
역주10 前侯胡下 : 侯와 胡는 서로 通用하니, 前侯는 前胡이다. 또는 ‘前疾’이라고도 하는데, 수레의 끌채 끝에 수레가 땅에 닿지 않도록 괴는 기둥을 이른다. 《周禮》 〈秋官 大行人〉의 鄭衆 注에 “前疾은 駟馬車의 끌채 끝에 〈수레가 땅에 닿지 않도록〉 아래로 드리워 땅에 괴는 기둥이다.[前疾 謂駟馬車轅前胡下垂柱地者]”라고 하였다. 胡下는 下垂이니, 《禮記》 〈深衣〉의 “袂圜以應規”에 대한 鄭玄의 注 “謂胡下也”에 대해 陸德明이 “胡下는, 下垂를 胡라 한다.”라고 풀이하였다.
역주11 (西) : 저본에는 ‘西’字가 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西는 衍字이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12 (擯)[賓] : 저본에는 ‘擯’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을 살펴보건대 ‘賓’자가 되는 것이 마땅하므로 ‘賓’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3 求辭 : 請事와 같은 말로, 온 이유를 묻는 것이다.
역주14 (求詣)[來諸] : 저본에는 ‘求詣’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閩本‧北監本‧毛本에는 ‘詣’가 ‘諸’로 되어있다. 浦鏜이 이르기를 ‘求는 來의 誤字이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來諸’로 바로잡았다.
역주15 [傳] : 저본에는 없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以 위에 傳자가 빠졌다.’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6 朝位 : 대문 밖의 賓이 수레에서 내리는 곳과 王이 맞이하기 위해 나와서 서는 곳을 이르는데, 來聘한 자가 上公인 경우에는 主國의 임금과 90步의 사이를 두고 서고, 諸侯(侯‧伯)인 경우에는 70보의 사이를 두고 서며, 諸子(子‧男)인 경우에는 50보의 사이를 두고 선다.
역주17 旅擯 : 旅는 陳(陳列)이니, 擯을 위해 介들을 벌여 세우는 것이다. 朝見하기 위해 온 賓이 머무는 客館으로 擯을 보내면 賓은 매번 모두 그 擯을 위해 9명의 介를 벌여 세워 놓고서 擯을 영접한다. 그러므로 ‘모두 擯을 위해 介를 벌여 세운다.’고 한 것이다. 鄭玄의 注에 의거하면 旅는 臚로 읽어야 하니 陳의 뜻이다. 그 介들을 벌여 세워놓기만 하고 擯과 介가 차례로 명을 전하는 禮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周禮譯註 秋官 司儀》
역주18 受享 : 諸侯가 올리는 方物을 받는 것이다.
역주19 廟中將幣三享 : 廟는 周 文王의 廟이다. 將은 바침이고, 幣는 玉이니, 곧 公의 경우에는 桓圭, 侯의 경우에는 信圭, 伯의 경우에는 躬圭, 子의 경우에는 穀璧, 男의 경우에는 蒲璧을 바친다. 三享은 賓이 王에게 玉을 바친 뒤에 다시 세 차례에 걸쳐 方物을 올리는 것이다. 《周禮譯註 秋官 大行人》
역주20 朝正禮 不嫌有等 : 朝廷은 禮를 바르게 행하는 곳이므로 尊卑에 따라 禮에 차등을 두는 것을 혐의스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周禮》 〈秋官 大行人〉의 疏에 “朝는 路門 밖에 있는 外朝이다. 君臣尊卑의 禮를 바르게 행하는 곳이므로 90步, 70步, 50步의 차등을 두고서 맞이하는 법을 혐의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차등을 두는 것을 혐의스러워하지 않는다.[朝在路門外 正君臣尊卑之禮 不嫌有九十七十五十步之差等相迎之法 故不嫌有等也]”라고 하였다.
역주21 聘享私覿 : 聘享은 聘問해 禮物을 바침이고, 私覿은 出使한 나라의 임금에게 私的으로 謁見함이다.
역주22 (復)[顧] : 저본에는 ‘復’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儀禮》 〈聘禮〉에 ‘復’이 ‘顧’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顧’로 바로잡았다.
역주23 路寢 : 天子와 諸侯의 正寢으로 政務를 처리하는 곳이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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