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엔 事之以禮하고 死엔 葬之以禮하며 祭之以禮니라
疏
‘孟懿子問孝’者, 魯大夫仲孫何忌, 問孝道於孔子也.
‘子曰無違’者, 此夫子答辭也. 言行孝之道, 無得違禮也.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者, 孟孫, 卽懿子也.
孔子恐孟孫不曉無違之意, 而懿子與樊遲友善, 必將問於樊遲,
‘樊遲曰 何謂也’者, 樊遲, 亦未達無違之旨, 故復問曰 “何謂也.”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者, 此夫子爲言無違之事也.
死葬之以禮, 謂爲之棺槨衣衾而擧之, 卜其
之之屬也.
祭之以禮, 謂春秋祭祀, 以時思之, 陳其簠簋而哀戚之之屬也.
必告樊遲者, 恐孟孫以爲從父之令是無違, 故旣與別後, 告於樊遲, 將使復告孟孫也.
疏
○正義曰:春秋定六年經, 書“仲孫何忌如晉.” 傳曰 “孟懿子往.” 是知孟懿子卽仲孫何忌也.
疏
○正義曰:案史記弟子傳曰 “樊須, 字子遲, 齊人, 少孔子三十六歲也.”
注
공왈孔曰:〈맹의자孟懿子는〉 노魯나라 대부 중손하기仲孫何忌이다.
번지樊遲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자子께서 번지에게 말씀하셨다.
“맹손孟孫이 나에게 효孝를 묻기에 내가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注
정왈鄭曰:맹손孟孫이 무위無違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장차 번지樊遲에게 물을 것으로 여기셨다.
“살아 계실 때는 예禮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禮로써 장사 지내고, 예禮로써 제사 지내는 것이다.”
疏
○正義曰:이 장은 효孝는 반드시 예禮로써 섬겨야 함을 밝힌 것이다.
[孟懿子問孝] 노魯나라 대부 중손하기仲孫何忌가 공자孔子께 효도를 물은 것이다.
[子曰 無違] 이것은 부자夫子께서 대답하신 말씀이니, 효孝를 행하는 도리는 예禮를 어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樊遲御] 제자 번수樊須가 부자를 위하여 수레를 몬 것이다.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맹손孟孫은 바로 의자懿子이다.
공자孔子께서는 맹손이 무위無違의 뜻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였고, 의자는 번지樊遲와 친한 벗이니, 반드시 장차 번지에게 물을 것으로 여기셨다.
[樊遲曰 何謂也] 번지도 무위無違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무슨 뜻이냐’고 물은 것이다.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이것은 부자께서 무위無違의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살아 계실 때에 예禮로써 섬기는 것’은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 잠자리를 정해드리고 새벽에 안부를 살피는 등의 일을 이르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禮로써 장사 지내는 것’은 관곽棺槨‧의금衣衾을 만들어 시신屍身을 관棺 속에 모시고, 묘지墓地를 잡아 안장安葬하는 등의 일을 이르고,
‘예禮로써 제사 지내는 것’은 봄과 가을에 제사하여 철에 따라 어버이를 생각하고 보궤簠簋(祭器)를 진설陳設해놓고서 슬퍼하는 등의 일을 이르니,
이런 예禮를 어기지 않는 것이 바로 ‘무위無違’의 이치이다.
직접 맹손에게 일러주지 않으신 것은 당초에는 간략하게 말씀하시어 의자懿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 터득하게 하려는 데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반드시 번지에게 일러주신 것은 맹손이 아버지의 명을 따르는 것을 ‘무위無違’로 여길까 우려하셨기 때문에 그와 헤어진 뒤에 번지에게 일러주시어 번지로 하여금 장차 다시 맹손에게 일러주게 하신 것이다.
疏
○正義曰:《춘추春秋》 정공定公 6년 경經에 “중손하기仲孫何忌가 진晉나라에 갔다.[仲孫何忌如晉]”라고 기록하였는데, 그 전傳에 “맹의자孟懿子가 갔다.[孟懿子往]”라 하였으니, 이에서 맹의자가 바로 중손하기임을 알 수 있다.
〈시법諡法〉에 “온화溫和하고 유순柔順하며 현명賢明하고 선량善良한 것을 ‘의懿’라 한다.”고 하였다.
疏
○正義曰:상고하건대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번수樊須는 자가 자지子遲이고 제齊나라 사람인데, 공자孔子보다 36세가 적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