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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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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孟之反 不伐이로다
맹지반孟之反을 자랑하지 않았다.
[注]孔曰 魯大夫孟之側 與齊戰하야 軍大敗
공왈孔曰:나라 대부 맹지측孟之側나라와 전쟁하여 군대가 대패하였다.
不伐者 不自伐其功이라
불벌不伐은 스스로 자기의 을 자랑하지 않음이다.
奔而殿타가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라하니라
패주敗走할 때에 맨 뒤에 오다가 성문을 들어서려 할 때에 그 말에 채찍을 치며 말하기를 ‘감히 뒤에 오려 한 것이 아니라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이다.’라고 하였다.”
[注]馬曰 殿 在軍後
마왈馬曰:殿은 군대의 후미後尾에 있는 것이다.
前曰啓 後曰殿이라
앞에 가는 군대를 라 하고, 뒤에 가는 군대를 殿이라 한다.
孟之反賢而有勇하야 軍大奔 獨在後爲殿이라
맹지반孟之反은 현명하면서도 용기가 있어서 군대가 대패해 도망해 올 적에 홀로 뒤에 떨어져서 전군殿軍(後軍)이 되었다.
人迎功之하니 不欲獨有其名하야 曰 我非敢在後拒敵이라 馬不能前進이라하니라
사람들이 맞이해 〈뒤에 온 것을〉 공으로 여기니, 그 명성을 독차지하고자 하지 않아 “내가 감히 뒤에 오면서 적을 막으려 한 것이 아니라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子曰’至‘進也’
의 [子曰]에서 [進也]까지
○正義曰:此章言功以不伐爲善也.
○正義曰:이 장은 을 자랑하지 않은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孟之反不伐’者, 誇功曰伐.
[孟之反不伐] 공을 자랑하는 것을 이라 한다.
孟之反, 魯大夫孟之側也. 有軍功而不誇伐也.
맹지반孟之反나라 대부 맹지측孟之側인데, 군공軍功이 있는데도 자랑하지 않은 것이다.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者, 此其不伐之事也.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이것이 그가 공을 자랑하지 않은 일이다.
在軍後曰殿.
군대의 후미에 있는 것을 殿이라 한다.
策, 捶也.
은 채찍이다.
魯與齊戰, 魯師敗而奔, 孟之反賢而有勇, 獨在後爲殿.
나라가 나라와 전쟁하다가 노나라 군대가 패배하여 도망해 올 적에 맹지반孟之反은 현명하면서도 용기가 있어서 홀로 뒤에 떨어져 후군後軍이 되었다.
人迎功之, 不欲獨有其名.
사람들이 맞이해 이를 공으로 여겼으나, 그는 그 명성을 독차지하고자 하지 않았다.
故將入國門, 乃捶其馬, 欲先奔者入城也.
그러므로 국문國門을 들어오려 할 때에 그 말에 채찍을 쳐서 도망해 오는 다른 군사들보다 먼저 성 안으로 들어가려 한 것이다.
且曰 “我非敢在後爲殿以拒敵, 馬不能前進故也.”
그러면서 말하기를 “내가 감히 뒤에 떨어져 후군後軍이 되어서 적을 막으려 한 것이 아니라,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뒤에 오면서 적을 막은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疏]○注 ‘孔曰 魯大夫孟之側’
의 [孔曰 魯大夫孟之側]
○正義曰:杜預曰 “之側, 孟氏族, 字反.” 是也.
○正義曰:두예杜預가 “지측之側맹씨孟氏의 종족으로 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사람이다.
[疏]○注 ‘馬曰’至‘前進’
의 [馬曰]에서 [前進]까지
○正義曰:云 ‘殿 在軍後 前曰啓 後曰殿’者, 案司馬法謀帥篇曰 “夫前驅啓, , 倅車屬焉.” 大震, 卽大殿也,
○正義曰:[殿 在軍後 前曰啓 後曰殿] 고찰하건대 《사마법司馬法》 〈모수편謀帥篇〉에 “선봉부대[前驅]가 출발[啓行]하면 병거兵車를 탄 후군後軍[大震]과 부거副車[倅車]가 따른다.”고 하였는데, 대진大震대전大殿(後軍)이다.
音相似.
음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대진大震이라 한 것이다.
襄二十三年左傳曰 “齊侯伐衛, 大殿, 商子游御夏之御寇.” 詩曰 “元戎十乘, 以先啓行.” 是殿在軍後, 前曰啓也.
양공襄公 23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제후齊侯나라를 토벌할 때, 대전大殿(後軍)은 상자유商子游하지어구夏之御寇의 수레를 몰았다.”고 하였고, 《모시毛詩》 〈소아小雅 유월六月〉에 “원융元戎(큰 병거兵車) 10으로 먼저 길을 떠났다.”고 하였으니, 殿은 군대의 후미에 있는 것이고, 앞에 있는 군대를 라 한다.
案哀十一年左傳說此事云 “齊師伐我, 及淸, 孟孺子洩帥右師, 冉求帥左師, 師及齊師戰于郊, 右師奔, 齊人從之.
고찰하건대 애공哀公 11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 일에 대해 말하기를 “나라 군대가 우리나라를 치기 위해 에 집결하니, 맹유자설孟孺子洩우군右軍을 거느리고 염구冉求좌군左軍을 거느리고서 노군魯軍제군齊軍과 노나라 교외에서 교전하였는데, 우군右軍이 도주하니 제군齊軍이 추격하였다.
孟之側後入以爲殿, 抽矢策其馬曰 ‘馬不進也.’”
맹지측孟之側후군後軍이 되어 뒤에 들어왔는데, 화살을 뽑아 그 말에 채찍질을 하면서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이다.’라고 했다.” 하였다.
文不同者, 各據所聞而記之也.
글이 같지 않은 것은 각각 들은 바에 의거해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乘車大震 : 미상이다. 大震은 大殿과 같은 말로 後軍을 뜻하니, 전차부대가 후군이 된다는 말인지, 아니면 후군은 전차를 탄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논어주소(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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