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或言孔子曰者, 以記非一人, 各以意載, 無義例也.
學業稍成, 能招朋友, 有同門之朋從遠方而來, 與己講習, 不亦樂乎.
旣有成德, 凡人不知而不怒之, 不亦君子乎.” 言誠君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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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云‘子者, 男子之通稱’者, 經傳凡
相謂皆言吾子, 或直言子, 稱師亦曰子, 是子者, 男子有德之通稱也.
公羊傳曰 “子沈子曰” 何休云 “沈子稱子冠氏上者, 著其爲師也.
.
其不冠子者, 他師也.” 然則
直言子曰者, 皆指孔子.
以其聖德著聞, 師範來世, 不須言其氏, 人盡知之故也.
若其他傳受師說, 後人稱其先師之言, 則以子冠氏上, 所以明其爲師也,
若非己師而稱他有德者, 則不以子冠氏上, 直言某子, 若高子‧孟子之類是也.
一, 身中時,
, 時過然後學, 則勤苦而難成.’
故內則云 ‘十年,
, 居宿於外, 學書計, 十有三年, 學樂誦詩舞勺, 十五成童, 舞象’ 是也.
二, 年中時, 王制云 ‘春秋敎以禮樂, 冬夏敎以詩書.’ 鄭玄云 ‘春夏陽也, 詩樂者聲, 聲亦陽也.
又文王世子云 ‘春誦, 夏弦, 秋學禮, 冬讀書.’ 鄭玄云 ‘誦謂歌樂也, 弦謂以絲播
.
陽用事則學之以聲, 陰用事則學之以事,
, 於功易
也.’
三, 日中時, 學記云 ‘故君子之於學也,
.’ 是日日所習也.”
言學者以此時誦習所學篇簡之文及禮樂之容,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所以爲說懌也.
譙周云 “悅深而樂淺也.” 一曰 “在內曰說, 在外曰樂.”
可說可樂之事, 其類非一, 此學而時習, 有朋自遠方來, 亦說樂之事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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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鄭玄注大司徒云 “同師曰朋, 同志曰友.” 然則同門者, 同在師門以授學者也,
故子夏曰 “吾離群而索居.” 鄭玄注云 “群謂同門朋友也.”
此言‘有朋自遠方來’者, 卽學記云 “三年視敬業樂群也.”
朋疏而友親, 朋來旣樂, 友卽可知, 故略不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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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이 장章은 사람들에게 학문을 하여 군자君子가 되기를 권면勸勉한 것이다.
[注] 고인古人들은 스승을 ‘자子’라고 칭하였다.
자子는 남자男子의 통칭通稱인데, 여기에 말한 ‘자子’는 공자孔子를 이른다.
[注]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사詞(말함)이다.
형부形部의 구口와 성부聲部의 을乙을 합성合成한 형성문자形聲文字인데, 입에서 말이 나오는 것을 형상形象한 상형문자象形文字이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이 이하는 공자孔子의 말씀이기 때문에 첫머리에 ‘자왈子曰’을 씌운 것이다.
간혹 ‘공자왈孔子曰’이라고 말한 곳도 있으니, 이는 《논어論語》를 기록한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니, 각각 자기의 뜻대로 기재記載하고 일정한 의례義例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호통白虎通》에 “학學은 각覺(깨달음)이니,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음이다.”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배우는 자가 때에 따라 그 경업經業을 외고 익혀 폐추廢墜됨이 없게 하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학업學業이 약간 이루어져서 붕우朋友들을 부를 수 있게 되어 동문同門의 벗들이 원방遠方에서 와서 나와 함께 강습講習하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이미 덕德을 완성完成하여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도 노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셨으니, 진실로 군자君子라는 말이다.
군자君子의 행실은 하나가 아니니 이것도 그중에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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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子者 男子之通稱] 모든 경전經傳에 서로 대등한 자끼리는 서로 모두 ‘오자吾子’로 칭하기도 하고, 혹은 곧장 ‘자子’로 칭하기도 하였으며, 스승 또한 ‘자子’로 칭하였으니, 여기에 말한 ‘자子’는 덕德이 있는 남자의 통칭通稱이다.
[謂孔子] 다른 스승으로 의심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구별한 것이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은공隱公 11년의 “자심자왈子沈子曰”에 대하여, 하휴何休는 “심자沈子를 자子로 칭하고 씨氏 위에 자子를 씌운 것은 자기의 스승임을 드러낸 것이고, 자왈子曰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공자孔子와 혼동되는 것을 피한 것이다.
자子를 씌우지 않은 것은 다른 스승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경서經書와 전주傳注 등에 단지 ‘자왈子曰’이라고만 칭한 것은 모두 공자孔子를 가리킨 것이다.
공자孔子는 성덕聖德이 드러나서 후세後世의 모범模範이 되었으므로 굳이 씨氏를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사설師說을 전수傳授한 후인後人이 선사先師의 말을 칭한 경우는 ‘자子’를 씨氏 위에 씌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스승임을 밝힌 것이다.
‘자공양자子公羊子’, ‘자심자子沈子’의 유類가 이에 해당한다.
자기의 스승이 아닌 다른 유덕자有德者를 칭한 경우는 씨氏 위에 ‘자子’를 씌우지 않고 곧장 ‘모자某子’라고 칭하니 ‘고자高子’, ‘맹자孟子’의 유類가 이에 해당한다.
[時者 學者以時誦習之] 황씨皇氏가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는 신중身中의 시時(그 몸에 가장 알맞은 때)이니,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정욕情欲이 발생한 뒤에 금지하면 정욕이 굳어져서 가르침을 거부해 가르침이 정욕을 이길 수 없고, 시기가 지난 뒤에 배우면 부지런히 노력하여도 성취하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10세가 되면 밖으로 나가 외부外傅에게 취학就學하여 밖에서 기거起居하며 육서六書와 구수九數를 배우고, 13세가 되면 악樂을 배우고 시詩를 음송吟誦하고 작시酌詩의 절주節奏에 맞추어 문무文舞를 추고, 15세가 되어 성동成童이 되면 상시象詩의 절주節奏에 맞추어 무무武舞를 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신중身中의 시時’이다.
둘째는 연중年中의 시時(1년 중에 가장 알맞은 때)이니,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봄과 가을에는 예禮와 악樂을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詩와 서書를 가르친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注에 정현鄭玄은 ‘봄과 여름은 양陽이고, 시詩와 악樂은 성聲인데 성聲 또한 양陽이다.
가을과 겨울은 음陰이고 서書와 예禮는 사事인데, 사事 또한 음陰이다.
호언互言한 것은 모두 사술四術(詩書禮樂)로써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봄에는 시가詩歌를 음송吟誦하고 여름에는 시가詩歌를 금슬琴瑟에 실어 연주하며, 가을에는 예禮를 배우고 겨울에는 서書를 읽는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注에 정현鄭玄은 ‘송誦은 가악歌樂을 이르고, 현弦은 현악기絃樂器에 시詩를 실어 연주함을 이른다.
양陽이 세력을 펼치는 계절에는 성聲을 배우고 음陰이 세력을 펼치는 계절에는 사事를 배워, 철에 따라 기후氣候에 순응하면 공부功夫를 쉽게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셋째는 일중日中의 시時(하루 중에 가장 알맞은 때)이니,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배움에 있어 마음속에 간직하고 수습修習하며 쉴 때나 놀 때에도 항상 학學을 생각한다.[藏焉 修焉 息焉 遊焉]’라고 하였으니, 이는 날마다 익히는 것이다.”
곧 배우는 자가 이때(쉴 때와 놀 때)에도 배운 간편簡篇(冊)을 송독誦讀하고 예악禮樂의 용모를 수습修習하여 날마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고 달마다 이미 능했던 것을 잊지 않기 때문에 기쁘다는 말이다.
초주譙周는 “열悅은 깊고 낙樂은 얕다.” 하였고, 일설一說에는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열說’이라 하고, 밖에 드러난 것을 ‘낙樂’이라 한다.” 하였다.
[注] 대체로 외부의 환경이 마음에 맞으면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기뻐하고 즐거워할 만한 일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니, 이 ‘학이시습學而時習’과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도 기뻐할 만하고 즐거워할 만한 일이다.
그러므로 ‘역亦(또한)’이라 한 것이니, 《역易》에 말한 “역가추야亦可醜也” “역가희야亦可喜也”와 그 용례用例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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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정현鄭玄의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 주注에 “동사왈붕同師曰朋 동지왈우同志曰友”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동문同門은 함께 한 스승의 문하門下에서 수학授學한 자이다.
그러므로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에 자하子夏가 “내 무리[群]를 떠나 홀로 외로이 지냈다.”고 한 곳의 정현鄭玄 주注에 “군群은 동문同門의 붕우朋友를 이른다.”고 하였다.
이곳에 말한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는 바로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말한 “〈입학入學한 지〉 3년에는 학업에 전념하는지 벗끼리 서로 즐겁게 지내는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동지同志는 그 마음과 취향趣向이 같은 사람을 이른다.
붕朋은 소원疏遠하고 우友는 친근親近하니, 붕朋이 와서 이미 즐거웠다면 우友는 이미 왔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하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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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凡人有所不知 君子不怒] 양설兩說이 있다.
일설一說은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그 목적이 자기완성自己完成에 있었으니, 이미 선왕先王의 도道를 얻어 속에 품은 미덕美德이 겉으로 드러나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도 나는 노怒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일설一說은 “군자君子는 섬기기가 쉽고, 한 사람이 모든 재능을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육하는 방법에 있어서 노둔魯鈍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있어도 군자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