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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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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執圭 鞠躬如也하사 如不勝하시며
를 잡으실 때에 몸을 굽히시어 〈를〉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셨으며,
[注]包曰 爲君使하야 聘問隣國 執持君之
포왈包曰 : 임금의 사신使臣이 되어 이웃나라를 빙문聘問하실 때에 임금의 를 잡으신 것이다.
鞠躬者 敬愼之至
몸을 굽히신 것은 지극히 공경하고 삼가신 것이다.
上如揖하시고 下如授하시며 勃如戰色하시며 足蹜蹜如有循이러시다
를〉 헌상獻上할 때에는 하듯이 하셨고, 〈를 바치고〉 내려올 때에도 를 헌상할 때처럼 하셨으며, 얼굴빛을 바꾸어 두려워하는 기색을 지으셨으며, 발을 앞쪽은 들고 뒤꿈치는 끌어 마치 〈발을〉 땅에 붙이고서 가는 것 같으셨다.
[注]鄭曰 上如揖 授玉宜敬이요 下如授 不敢忘禮
정왈鄭曰 : 상여읍上如揖을 바칠 때에 공경해야 하기 때문이고, 하여수下如授는 감히 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戰色 敬也
전색戰色은 공경함이다.
足蹜蹜如有循 擧前曳踵行이라
족축축여유순足蹜蹜如有循은 발을 앞쪽은 들고 뒤꿈치는 끌면서 가는 것이다.
享禮 有容色하시며
향례享禮를 거행하실 때는 화열和悅한 기색이 있으셨으며,
[注]鄭曰 享 獻也
정왈鄭曰 : (바침)이다.
聘禮旣聘而享 用圭璧有庭實이라
빙례聘禮를 거행할 적에는 빙문聘問를 마치고서 향례享禮(禮物을 진헌進獻하는 의식)를 거행하는데, 이때 〈예물禮物로는〉 규벽圭璧을 쓰고, 조당朝堂의 뜰에 각종 진상물進上物을 벌여놓는다.
私覿 愉愉如也러시다
사사로이 〈빙문국聘問國의 임금을〉 알현謁見하실 때는 화열和悅하셨다.
[注]鄭曰 覿 見也 旣享하고 乃以私禮見이라
정왈鄭曰 : 覿알현謁見함이니, 향례享禮를 마치고서 사적私的으로 예물禮物을 가지고 빙문국聘問國의 임금을 알현謁見함이다.
愉愉 顔色和
유유愉愉안색顔色화열和悅함이다.
[疏]‘執圭’至‘愉愉如也’
의 [執圭]에서 [愉愉如也]까지
○正義曰 : 此一節記爲君使聘問隣國之禮容也.
정의왈正義曰 : 이 한 은 임금의 사신使臣이 되어 인국隣國빙문聘問하셨을 때의 예용禮容을 기록한 것이다.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者, 言執持君之圭, 以聘隣國, 而鞠躬如不能勝擧, 愼之至也.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 임금의 를 가지고서 이웃 나라를 빙문聘問할 때 몸을 굽히시어 마치 를 들 수 없는 것처럼 하셨다는 말이니, 지극히 삼가신 것이다.
‘上如揖 下如授’者, 上謂授玉時, 宜敬, 故如揖也.
[上如揖 下如授] 빙문국聘問國의 임금에게 을 바칠 때를 이르니, 공경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처럼 하신 것이다.
下謂旣授玉而降, 雖不執玉, 猶如授時, 不敢忘禮也.
을 바치고 내려올 때를 이르니, 비록 손에 을 들지 않았으나 을 바칠 때처럼 〈삼가시어〉 감히 를 잊지 않으신 것이다.
‘勃如戰色 足蹜蹜如有循’者, 亦謂執圭行聘時戰栗, 其顔色敬也. 足則擧前曳踵而行, 蹜蹜如有所循也.
[勃如戰色 足蹜蹜如有循] 이 또한 를 잡고서 빙례聘禮를 행하실 때 두려워하셨음을 말한 것이니, 그 안색顔色은 경건하셨고, 발을 앞쪽은 들고 뒤꿈치는 끌고 걸으시는 모습이 발을 좁게 자주 떼시어 〈발을〉 땅에 붙이고서 가는 것 같으셨던 것이다.
‘享禮 有容色’者, 享, 獻也.
[享禮 有容色] 이다.
聘禮旣聘而享, 用圭璧有庭實.
빙례聘禮를 거행함에는 빙문聘問를 마치고서 향례享禮(禮物을 진헌進獻하는 의식)를 거행하는데, 이때 〈예물禮物로〉 규벽圭璧을 쓰고, 조당朝堂의 뜰에 각종 진상물進上物을 벌여놓는다.
聘時執圭致命, 故勃如戰色. 至行享時, 則稍許有容色, 不復戰栗.
빙문聘問할 때는 를 손에 들고서 임금의 을 전하기 때문에 얼굴빛을 바꾸어 두려운 기색氣色을 지으셨지만, 향례享禮를 행하실 때는 약간 화열和悅기색氣色을 띠어도 되기 때문에 더는 두려워하는 기색氣色을 짓지 않으신 것이다.
‘私覿 愉愉如也’者, 覿, 見也. 愉愉, 顔色和也.
[私覿 愉愉如也] 覿알현謁見함이고, 유유愉愉안색顔色화열和悅함이다.
謂旣享, 乃以私禮見, 故顔色愉愉然和說也.
향례享禮를 마친 뒤에 사적私的으로 예물禮物을 가지고 빙문국聘問國의 임금을 알현謁見하기 때문에 안색顔色화열和悅하셨다는 말이다.
[疏]○注 ‘包曰’至‘之至’
의 [包曰]에서 [之至]까지
○正義曰 : 云‘爲君使 聘問隣國 執持君之圭’者, 案聘禮 云 “賓, 執圭, 致命,, 受玉于中堂與東楹之間.” 是其事也.
정의왈正義曰 : [爲君使 聘問隣國 執持君之圭] 고찰하건대 《의례儀禮》 〈빙례聘禮〉에 “이 옷의 앞자락을 여미어 내복內服을 가리고 를 들고서 자기 임금의 을 전하면, 상례자相禮者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옷의 앞자락을 여미고서 의 가운데와 동쪽 기둥 사이에서 (圭)을 받는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 일이다.
凡執玉之禮, 大宗伯云 “公執桓圭.” 注云 “.
을 잡는 에 대해,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에 “환규桓圭를 잡는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운 것을 ‘’이라 한다.
桓, 宮室之象, 所以安其上也.
궁실宮室을 형상한 것이니, 윗사람을 편안하게 하라는 뜻이다.
圭長九寸.”
의 길이는 9이다.”라고 하였다.
故玉人云 “命圭九寸, 公守之.” 是也.
그러므로 《주례周禮》 〈옥인玉人〉에 “9명규命圭이 대대로 지킨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宗伯又云 “侯執信圭, 伯執躬圭.” 注云 “蓋皆象以人形爲琢飾, 文有麤縟耳,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에 또 “신규信圭를 잡고, 궁규躬圭를 잡는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 “모두 인형人形조각彫刻해 꾸민 것인데, 문양文樣정조精粗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欲其愼行以保身.
인형人形을 조각한 것은〉 행동을 삼가 몸을 보존하게 하고자 하는 뜻이다.
圭皆長七寸.”
는 모두 길이가 7이다.”라고 하였다.
故玉人云 “命圭七寸, 謂之信圭, 侯守之. 命圭七寸, 謂之躬圭, 伯守之.”
그러므로 〈옥인玉人〉에 “7명규命圭신규信圭라 하는데, 가 대대로 지키고, 7명규命圭궁규躬圭라 하는데, 이 대대로 지킨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江南儒者解云 “直者爲信, 其文縟細. 曲者爲躬, 其文麤略.” 義或然也.
강남江南의 어떤 유자儒者는 “곧은 것을 이라 하는데 문양文樣이 섬세하고, 굽은 것을 이라 하는데 문양이 거칠다.”라고 해석하였는데, 뜻으로 보아 혹 그럴 듯하다.
宗伯又云 “子執穀璧, 男執蒲璧.” 注云 “穀所以養人. 蒲爲席, 所以安人.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에 또 “곡벽穀璧을 잡고, 포벽蒲璧을 잡는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 “은 사람을 기른다는 뜻이고, (부들)는 방석을 만드는 것이니,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뜻이다.
이〉 를 잡지 않는 것은 성국成國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蓋琢爲穀稼及蒲葦之文, 蓋皆徑五寸,
곡벽穀璧포벽蒲璧은〉 곡식穀食포위蒲葦(부들과 갈대)의 문양文樣을 새긴 것으로, 모두 지름이 5이다.
故大行人云 “子執穀璧, 男執蒲璧五寸.” 是也.
그러므로 《주례周禮》 〈대행인大行人〉에 “곡벽穀璧을 잡고, 포벽蒲璧을 잡는데, 길이는 5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凡圭廣三寸, 厚半寸, 剡上左右各寸半.
모든 는 너비가 3이고 두께가 반촌半寸인데, 상부上部좌우左右를 각각 1 씩 깎아내었다.
知者, 聘禮記文.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의례儀禮》 〈빙례기聘禮記〉를 통해서이다.
其璧則內有孔, 外有肉. 其孔謂之好,
은 가운데에 구멍이 있고, 밖에 둘레[肉]가 있는데, 가운데 구멍을 ‘’라 한다.
故爾雅釋器云 “肉倍好謂之璧, 好倍肉謂之瑗, 肉好若一謂之環.”
그러므로 《이아爾雅》 〈석기釋器〉에 “둘레[肉]의 폭이 구멍[好]의 가 되는 것을 이라 하고, 구멍의 크기가 둘레의 폭의 가 되는 것을 이라고 하며, 둘레의 폭과 구멍의 크기가 같은 것을 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此謂諸侯所執圭璧, 皆朝於王及相朝所用也,
이것은 제후諸侯가 잡는 규벽圭璧을 말하는데, 모두 천자天子에게 조회朝會하거나 제후諸侯가 서로 회견會見할 때 쓰는 것이다.
故典瑞前旣陳玉則云 “朝覲宗遇會同於王,
그러므로 《주례周禮》 〈전서典瑞〉에 먼저 을 열거한 뒤에 “천자天子에게 를 행한다.
諸侯相見亦如之.” 是也.
제후諸侯가 서로 회견會見할 때에도 이와 같이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其公‧侯‧伯朝后皆用璋,
황후皇后조현朝見할 때는 예물禮物(끝을 깎아 뾰족하게 만든 옥홀玉笏)을 사용한다.
知者, 以聘禮聘君用圭, 聘夫人以璋,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의례儀禮》 〈빙례聘禮〉의 “국군國君에게 빙문聘問할 때에는 를 사용하고, 군부인君夫人에게 빙문聘問할 때에는 을 사용한다.”라고 한 것을 통해서이다.
則知於天子及后亦然也.
그렇다면 천자天子황후皇后에게도 그렇게 함을 알 수 있다.
其子‧男旣朝王用璧, 朝后宜用琮, 以璧‧琮相對故也.
은 〈예물禮物로〉 을 올려 천자天子알현謁見하고 나서 을 올려 황후皇后를 알현하니, 이는 (圓形의 )과 (方形의 )이 서로 가 되기 때문이다.
鄭注小行人云 “其上公及, 享天子, 享后.
주례周禮》 〈소행인小行人정현鄭玄에 “상공上公이왕二王(夏‧)의 후예後裔천자天子에게 와 말[馬]을 진헌進獻하고, 황후皇后에게 피물皮物진헌進獻하며,
其侯‧伯‧子‧男享天子, 享后.
, 천자天子에게 진헌進獻하고, 황후皇后에게 진헌進獻하는데,
의 크기는 각각 올리는 자의 명수命數와 같다.”라고 하였다.
知者, 玉人云 “璧琮九寸, 諸侯以享天子.”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주례周禮》 〈옥인玉人〉에 “은 9이니, 제후諸侯천자天子에게 진헌進獻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통해서이다.
是也. 其諸侯相朝, 所執之玉, 與朝天子同.
제후諸侯가 서로 회견會見할 때에 잡는 천자天子조현朝見할 때와 동일하다.
其享玉皆以璧享君, 以琮享夫人, 明相朝禮亦當然.
을 진헌할 때 모두 국군國君에게 진헌進獻하고 군부인君夫人에게 진헌進獻하니, 제후가 서로 회견하는 도 이와 같이 함이 당연함을 밝힌 것이다.
子‧男相享, 則降用琥以繡‧璜以黼,
이 서로 진헌進獻하는 경우에는 등급을 낮추어 , 를 〈예물禮物로〉 사용한다.
故鄭注小行人云 “其於諸侯亦用璧琮耳.
그러므로 《주례周禮》 〈소행인小行人정현鄭玄에 “〈이왕二王후예後裔는〉 제후諸侯에게 〈예물禮物로〉 을 사용할 뿐이다.
子‧男於諸侯則享用琥璜,.” 是也.
제후諸侯에게 진헌進獻할 때는 을 사용하니, 그 서옥瑞玉등급等級을 낮춘 것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其諸侯之臣聘天子及聘諸侯, 其聘玉及享玉, 降其君瑞一等,
제후諸侯의 신하가 천자天子 및 다른 제후諸侯빙문聘問할 때 그 빙례聘禮에 사용하는 향례享禮에 사용하는 은 자기 임금의 서옥瑞玉에 비해 한 등급을 낮춘다.
故玉人云 “璋八寸, 璧琮八寸, 以.” 是也.
그러므로 《주례周禮》 〈옥인玉人〉에 “전규瑑圭의 길이는 8이고, 의 길이는 8인데, 조례覜禮빙례聘禮에 사용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注 ‘足蹜蹜如有循 擧前曳踵行’
의 [足蹜蹜如有循 擧前曳踵行]
○正義曰 : 按玉藻云 “執龜玉, 擧前曳踵, 蹜蹜如也.” 踵, 謂足後跟也.
정의왈正義曰 : 고찰하건대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귀갑龜甲을 잡을 때에는 발의 앞쪽은 들고 뒤꿈치는 끌어, 〈그 모양이〉 발걸음을 좁게 자주 떼는 것 같다.”고 하였는데, 〈그 에〉 “은 발뒤꿈치를 이른다.
謂將行之時, 初擧足前, 後曳足跟, 行不離地, 蹜蹜如也, 言擧足狹數, 蹜蹜如也.
걸으려 할 때 처음에 발의 앞쪽은 들고 뒤꿈치는 끌어서, 걸음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 마치 발걸음을 좁게 자주 떼는 것 같았다는 말이니, 축축蹜蹜히 발걸음을 좁게 자주 떼는 것을 말한다.
玉藻又云 “.” 鄭注云 “圈, 轉也.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또 “발걸음을 옮길 때 발을 땅에 붙이고 들지 않으면 옷자락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 같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발걸음을 옮김)이다.
豚之言, 若有所循, 不擧足曳踵, 則衣之齊如水之流矣.
은 발을 땅에 붙인 것 같음이니, 발을 들지 않고 뒤꿈치를 끌면 옷자락이 〈땅에 끌리는 것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 같다.
孔子執圭則然. 此徐趨也.”
공자께서 를 잡았을 때에 그리하였으니, 이것이 서추徐趨이다.”라고 하였다.
[疏]○注 ‘鄭曰’至‘庭實’
의 [鄭曰]에서 [庭實]까지
○正義曰 : ‘享 獻也’, 釋詁文也.
정의왈正義曰 : [享 獻也]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云‘聘禮旣聘 而享用圭璧有庭實’者, 案覲禮侯氏旣見王, 乃云 “四享皆,.” 鄭玄云 “四當爲三.
[聘禮旣聘 而享用圭璧有庭實] 고찰하건대, 《의례儀禮》 〈근례覲禮〉에 후씨侯氏(諸侯)가 천자天子알현謁見한 뒤에 “네 차례 거행하는 향례享禮에 모두 비단 묶음 위에 을 얹어 올리고, 그 나라에만 있는 방물方物을 뜰에 벌여놓는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은 “이 되어야 한다.
大行人職曰 ‘諸侯廟中將幣, 皆三享.’.
주례周禮》 〈대행인직大行人職〉에 ‘제후諸侯묘중廟中에서 빙례聘禮를 거행할 때 폐백幣帛을 올리고서 모두 세 차례 (方物을 올림)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그 의 차등이니 네 차례 진상進上하는 를 취할 이유가 없다.
初享或用馬, 或用虎豹之皮.
처음 올리는 예물禮物로는 말을 쓰기도 하고, 혹은 호표虎豹의 가죽을 쓰기도 한다.
其次享三牲魚腊, 籩豆之實, 龜也, 金也, 丹漆絲纊竹箭也,.
두 번째 올리는 예물禮物로는 삼생三牲(소‧양‧돼지)‧(肉脯)과 에 담는 식물食物귀갑龜甲(銅)‧단사丹砂(옻)‧생사生絲(솜)‧(화살)을 쓴다. 그 밖(九州 밖)의 나라는 규정된 물품이 없다.
此物非一國所能有, 唯國所有, 分爲三享, 皆以璧帛致之.”
이상의 물품들은 모두 한 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어서 〈한 나라에서 갖추기가 어려우니,〉 오직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방물方物만을 세 차례에 나누어 뜰에 벌여놓고, 모두 비단묶음 위에 을 얹어 진헌進獻한다.”고 하였다.
禮器云 “大饗, 其王事與,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대향大饗(先王을 합사合祀하는 협제祫祭)은 아마도 천자天子의 일인 듯하다.
三牲魚腊, 四海九州之美味也. 籩豆之薦, 四時之和氣也.
협제祫祭에〉 삼생三牲을 쓰는 것은 사해四海구주九州에서 진상한 진미珍味이기 때문이고, 에 음식물을 담아 올리는 것은 사시四時화순和順일기日氣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內金, 示和也, 束帛加璧, 尊德也. 龜爲前列, 先知也. . 丹漆絲纊竹箭, 與衆共財也.
협제祫祭를 마치고서 제후가 향례享禮를 거행할 때〉 (銅)을 바치는 것은 〈제후諸侯왕실王室과〉 화락和樂함을 보임이고, 속백束帛을 얹어 바치는 것은 〈천자天子의〉 존숭尊崇함이고, 〈정실庭實(뜰에 각종 물건을 진열陳列)할 때〉 귀갑龜甲을 가장 앞에 진열陳列하는 것은 〈귀갑龜甲이〉 길흉吉凶을 미리 알기 때문이고, 을 그 다음에 진열하는 것은 을 드러내기 때문이고, 맨 끝에 단사丹砂(옻)‧생사生絲(솜)‧(화살)을 진열하는 것은 〈천자天子가〉 민중民衆과 이 재물을 공유共有한다는 뜻이다.
其餘無常貨, 各以其國之所有, 則致遠物也.”
그 밖(九州 밖)의 나라는 규정된 물품이 없고 각각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방물方物진공進貢하게 하니, 이는 원방遠方의 물건을 오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郊特牲曰 “, . 龜爲前列, 先知也.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에 “여러 제후諸侯가 올리는 공물貢物에 일정한 품목이 없는 것은 각국各國에 생산되는 물건이 같지 않음을 감안하고 도로道路원근遠近을 헤아려 진공進貢하는 시기時期조절調節하기 때문이다.
. 虎豹之皮, 示服猛也. 束帛加璧, 往德也.”
정실庭實할 때〉 귀갑龜甲을 맨 앞에 진열하는 것은 〈귀갑龜甲이〉 길흉吉凶을 미리 알기 때문이고, 을 그 다음에 진열하는 것은 조화調和를 〈상징하는 을〉 여러 물건 중간에 진열陳列하기 위함이고, 호표虎豹의 가죽을 진열하는 것은 〈천자天子의 위엄이〉 사나운 자들을 복종服從시켰음을 보임이고, 속백束帛을 얹어 진헌進獻하는 것은 천자天子귀부歸附함을 보임이다.”라고 하였다.
鄭玄覲禮之注所言, 出於彼也.
정현鄭玄의 《의례儀禮》 〈근례覲禮의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諸侯相朝聘, 其禮亦然.
제후諸侯가 서로 조빙朝聘할 때에도 그 가 이와 같다.
案聘禮 “賓裼奉束帛加璧享.” 記曰 “凡庭實隨入, 左先,.”
고찰하건대 《의례儀禮》 〈빙례聘禮〉에 “(正服의 앞자락을 열어 석의裼衣를 드러냄)하고서 속백束帛을 얹어 진헌進獻한다.”라고 하였고, 《의례儀禮》 〈빙례聘禮에 “정실庭實할 모든 물건은 〈선후의 순서에〉 따라 들어가는데, 왼쪽에 진열할 물건이 먼저 들어간다. 〈정실庭實할 물건 중에〉 피물皮物과 말은 서로 대체代替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小行人職云 “合六幣, 圭以馬, 璋以皮, 璧以帛, 琮以錦, 琥以繡, 璜以黼.
주례周禮》 〈소행인직小行人職〉에 “여섯 가지 폐백幣帛을 다른 예물禮物과 함께 올리는데, 는 말과 함께 올리고, 호표虎豹 가죽과 함께 올리고, 과 함께 올리고, 과 함께 올리고, 와 함께 올리고, 와 함께 올린다.
此六物者, 以和諸侯之好故.” 鄭注云 “合, 同也.
이 여섯 가지 폐백幣帛을 올리는 것은 제후諸侯왕실王室우호友好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함께)이다.
六幣, 所以享也.
육폐六幣진헌進獻하는 예물禮物이다.
五等諸侯享天子用璧, 享后用琮. 其大各如其瑞, 皆有庭實, 以馬若皮.
다섯 등급의 제후諸侯(公‧)가 천자天子에게 진헌進獻할 때는 을 사용하고 황후皇后에게 진헌進獻할 때는 을 사용하는데, 그 크기는 각각 각자의 서옥瑞玉(命圭)의 크기와 같고, 모두 정실庭實이 있는데, 말을 가죽으로 대체하거나 가죽을 말로 대체할 수 있다.
皮, 虎豹皮也.
가죽은 호표虎豹 가죽이다.
用圭璋者, 二王之後也.
을 사용하는 것은 이왕二王후예後裔이다.
二王後尊, 故享用圭璋而特之. 禮器曰 ‘’ 是也.
이왕二王후예後裔존귀尊貴하기 때문에 진헌進獻할 때 만을 올리니,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만을 올린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其於諸侯, 亦用璧琮耳.
이왕二王의 후예는〉 제후諸侯에게도 만을 사용할 뿐이다.
子‧男於諸侯, 則享用琥璜, 下其瑞也.
제후諸侯에게 진헌進獻할 때는 을 사용하니, 서옥瑞玉에 비해 등급等級을 낮춘 것이다.
凡二王後諸侯相享之玉, 大小各降其瑞一等.
이왕二王후예後裔제후諸侯가 서로 진헌進獻하는 은 그 크기를 각자의 서옥瑞玉에 비해 한 등급씩을 낮춘다.
及使卿大夫覜聘, 亦如之.” 是用圭璧有庭實也.
대부大夫를 보내어 조빙覜聘할 때에도 이와 같이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규벽圭璧을 올리고, 정실庭實이 있는 것이다.
[疏]○注 ‘旣享 乃以私禮見’
의 [旣享 乃以私禮見]
○正義曰 : 案聘禮 “擯者出請事, 賓告事畢.
정의왈正義曰 : 고찰하건대, 《의례儀禮》 〈빙례聘禮〉에 “상빈上擯이 나가서 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공사公事가 모두 끝났다고 한다.
賓奉束錦以請覿.” 注云 “覿, 見也.
속금束錦(束帛)을 가지고 가서 사사로이 뵙기를 청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에 “覿알현謁見함이다.
將公事, 是欲交其歡敬也.
조금 전에 봉행奉行한 〈빙례聘禮는〉 공사公事이고, 이것은 〈사사로이〉 교분交分을 맺어 환심歡心을 사고자 함이다.
(염소)를 예물禮物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사신使臣으로 온 기회에 사사로이 뵙는 것이고, 개인의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역주
역주1 : 包氏는 ‘執圭’를 ‘執持君之圭’라 하였으니, 圭를 命圭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周禮》 〈考工記〉 疏에 따르면 朝聘할 때 使臣이 사용하는 圭는 瑑圭로, 命圭보다 1寸씩 작은 것이다. 그렇다면 圭를 君之圭, 곧 命圭로 해석한 包氏의 설은 옳지 않다. 命圭는 天子가 나라를 封할 때에 下賜하여 대대로 지키게 하는 것으로 9寸의 桓圭(公), 7촌의 信圭(侯), 7촌의 躬圭(伯), 5촌의 穀璧(子), 5촌의 蒲璧(男) 등을 이르니, 大夫가 聘問할 때 잡는 圭와는 다르다.
역주2 : 古代의 禮服制度는 겨울에는 갖옷을 입고 여름에는 갈옷을 입으며, 갖옷과 갈옷 위에 罩衣(조의)를 입는데, 이를 裼衣라 한다. 裼衣 위에는 正服인 朝服 혹은 皮弁服을 입는데, 성대한 禮式이 아닌 경우에 正服의 앞자락을 열어 裼衣를 드러내는 것을 ‘裼한다.’고 하고, 성대한 禮式인 경우에 앞자락을 여미는 것을 ‘襲한다.’고 한다. 裼한다는 것은 內服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이니, 성대한 예식이 아닌 경우에는 文(화려함)을 숭상하기 때문에 옷의 앞자락을 열어 內服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성대한 예식인 경우에는 質(질박함)을 숭상하기 때문에 옷의 앞자락을 여미어 내복의 아름다움을 가린다. 《儀禮譯註 聘禮》
역주3 公側襲 : 側은 獨의 뜻이니, 신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襲한다는 말이다.
역주4 雙植謂之桓 : 桓圭의 모양이 두 개의 기둥을 세운 것 같다는 말이다.
역주5 不執圭者 未成國也 : 《周禮》 〈春官 大宗伯〉의 ‘五命賜則’ 注에 의하면 國土의 面積이 사방 300里 이상인 나라를 成國이라 한다. 子‧男의 나라는 그 면적이 사방 100里, 혹은 200里에 불과해 아직 成國이 못 되었기 때문에 圭를 잡지 못하고 璧을 잡는다는 것이다.
역주6 二王之後 : 夏王朝와 殷王朝의 後裔로 杞나라와 宋나라를 이른다.
역주7 圭以馬 : 進上할 말을 밖에 두고서 그 말의 나이‧생김새‧건강상태 등을 기록한 문서 위에 圭를 얹어 올리는 것인 듯하다.
역주8 璋以皮 : 虎豹의 가죽 위에 璋(끝을 깎아 뾰족하게 만든 玉笏)을 얹어 올리는 것이다.
역주9 璧以帛 : 束帛 위에 璧(가운데 구멍이 있는 圓形의 玉)을 얹어 올리는 것이다.
역주10 琮以錦 : 비단 위에 琮(玉笏)을 얹어 올리는 것이다.
역주11 其玉大小 各如其命數 : 侯‧伯‧子‧男이 사용하는 玉(圭璧)의 크기는 進獻하는 자의 命數와 같다는 말로, 七命의 侯‧伯은 7寸의 圭를 올리고, 五命의 子‧男은 5寸의 璧을 올린다는 말이다.
역주12 下其瑞 : 子‧男이 諸侯에게 享禮를 거행할 때 그 瑞玉인 穀璧‧蒲璧을 올리지 않고 한 등급 낮추어 琥(범의 모양으로 만든 玉器)‧璜(半圓形의 玉佩)을 올린다는 말이다.
역주13 瑑圭 : 무늬를 새긴 圭玉이다.
역주14 覜聘 : 覜는 衆覜로 여러 나라의 大夫가 함께 와서 天子에게 朝見함이고, 聘은 한 나라의 대부가 와서 聘問함이다.
역주15 圈豚行……齊如流 : 《禮記》 〈玉藻〉의 疏에 “圈豚行은 徐趨하는 모양을 해석한 것이다. 圈은 轉(발걸음을 옮김)이고 豚은 循이니, 徐趨法은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끌면서 간다는 말이다. 不擧足은 발을 땅에서 떼지 않는 것이고, 齊如流의 齊는 치맛자락이다. 몸을 굽히고서 발을 들지 않으면 치맛자락이 땅에 끌리니, 발꿈치를 끌면서 가는 모양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6 束帛加璧 : 古代에 朝聘할 때 朝聘한 나라의 君王에게 進獻하는 다섯 필의 비단묶음 위에 璧을 얹어 올림이다.
역주17 庭實唯國所有 : 庭實은 古代에 諸侯가 朝聘할 때 聘問國의 朝堂 뜰에 벌여놓던 貢物이다. 唯國所有는 오직 그 나라에만 있는 土産物이란 말이니, 곧 庭實로는 그 나라에만 있는 土産品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역주18 其禮差又無取於四也 : 享禮에 三享‧一享‧不享이 바로 禮의 차등이니, 四享하는 禮를 취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儀禮》 〈覲禮〉의 疏에 “고찰하건대 〈大行人〉에 ‘다섯 등급의 諸侯는 모두 다같이 三享한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三享‧一享‧不享이 바로 禮의 차등이니, 四享을 취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三을 따르는 것이 옳다.[案大行人 五等諸侯皆同三享 若然 三與一及不享 是其禮之差 是無取於四之義 故從三爲正]”라고 하였다.
역주19 其餘無常貨 : 《禮記》 〈禮器〉의 注에 의하면, 其餘는 九州 밖에 있는 蠻夷國들을 이른다. 無常貨는 규정된 물품이 없는 것이니, 九州 안의 諸侯는 올리는 貢物의 品目이 정해져 있으나, 九州 밖의 蠻夷國의 임금은 一生 동안 한 차례 朝聘하는데, 朝聘할 때에 進貢하는 貢物에 규정된 品目이 없고, 단지 그 나라에서 가장 보물로 여기는 물건을 가져와서 禮物로 바칠 뿐이다.
역주20 金次之 見情也 : 《禮記》 〈禮器〉의 疏에 “金은 사물을 비출 수 있기 때문에 그 정을 드러낸다.[以金能炤物 露見其情]”라고 하였으니, 金은 銅鏡을 이른 듯하다. 銅鏡은 사물을 비추어 그 정상을 露出시킨다.
역주21 旅幣無方 : 旅幣의 旅는 衆이고, 幣는 進貢하는 禮物이고, 無方은 一定한 品目이 없음이니, 곧 여러 諸侯가 올리는 貢物에는 일정한 품목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22 所以別土地之宜 而節遠邇之期也 : 貢物에 일정한 품목이 없는 것은 各國의 土地에 적합한 穀物이나 생산되는 물품이 다른 정황을 감안하고, 道路의 遠近을 헤아려 朝貢하는 時期를 조절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역주23 以鍾次之 以和居參之也 : 鍾을 龜甲 다음에 진열하여, 調和를 〈象徵하는 鍾을〉 여러 庭實物의 중간에 진열한다는 말이다.
역주24 皮馬相間可也 : 間은 代替이니, 皮物과 말[馬]을 서로 代替할 수 있다는 말이다. 피물이 생산되지 않는 나라는 피물 대신 말을 올리고, 말이 없는 나라는 말 대신 피물을 올리는 것이다.
역주25 圭璋特 : 庭實이 없이 圭와 璋만을 올린다는 말이다.
역주26 (卿)[鄕] : 저본에는 ‘卿’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지금 《儀禮》 〈聘禮〉의 注에 ‘卿’이 ‘鄕’으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鄕’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7 不用羔……非特來 : 古人들은 相見할 때 반드시 幣帛을 가지고 가서 서로 만났다. 《周禮》 〈春官 大宗伯〉에 의하면 孤는 皮帛, 卿은 염소, 大夫는 기러기, 士는 꿩, 庶人은 따오기, 商工人은 닭을 폐백으로 가지고 간다. 孔子는 魯나라의 卿이니, 개인의 자격으로 왔다면 염소를 끌고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使臣으로 온 기회에 사사로이 相對國의 임금을 만난 것이므로 염소를 끌고 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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