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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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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주소(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4.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하니 子曰 與之釜하라
[注]馬曰 子華 弟子公西華赤之字
六斗四升曰釜
請益하니 曰 與之庾하라
[注]包曰 十六斗曰庾
冉子與之粟五秉하니
[注]馬曰 十六斛曰秉이니 五秉 合爲八十斛이라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하고 衣輕裘하니라
吾聞之也호니 君子周急이요 不繼富라하니라
[注]鄭曰 非冉有與之太多
[疏]‘子華’至‘繼富’
○正義曰:此章論君子當賑窮周急.
‘子華使於齊’者, 弟子公西赤, 字子華, 時仕魯, 爲魯使適於齊也.
‘冉子爲其母請粟’者, 冉子, 卽冉有也.
爲其子華之母, 請粟於夫子, 言其子出使而家貧也.
‘子曰 與之釜’者, 夫子令與粟六斗四升也.
‘請益’者, 冉有嫌其粟少,
故更請益之.
‘曰 與之庾’者, 夫子令益與十六斗也.
‘冉子與之粟五秉’者, 冉有終以爲少,
故自與粟八十斛也.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 不繼富’者, 此孔子非冉有與之太多也.
赤, 子華名. 適, 往也.
言子華使往齊國, 乘駕肥馬, 衣著輕裘,
則是富也, 富則
母不闕粟. 吾嘗聞之, 君子當周救人之窮急, 不繼接於富有.
今子華家富, 而多與之粟, 則是繼富, 故非之也.
[疏]○注 ‘馬曰’至‘曰釜’
○正義曰:史記弟子傳云 “公西赤, 字子華.”
鄭玄曰 “魯人, 少孔子四十二歲.”
云 ‘六斗四升曰釜’者, 昭三年左傳 “晏子曰 ‘齊舊四量, 豆‧區‧釜‧鍾.
四升爲豆, .’” 杜注云 “四豆爲區, 區十六升, 四區爲釜, 釜六斗四升.” 是也.
[疏]○注 ‘包曰 十六斗曰庾 馬曰 十六斛曰秉’
○正義曰:案聘禮記云 “十斗曰斛, 十六斗曰籔, 十籔曰秉.” 鄭注云 “秉, 十六斛.
今江淮之間, 量名有爲籔者.
今文籔爲逾.”
是庾‧逾‧籔, 其數同,
故知然也.


자화子華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염자冉子자화子華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청하니, 께서 “1를 주라.”고 하셨다.
마왈馬曰:자화子華는 제자 공서화公西華 이다.
6 4을 ‘’라 한다.
더 주기를 청하니, 께서 “1를 주라.”고 하셨다.
포왈包曰:16라 한다.
염자冉子가 곡식 5을 주니,
마왈馬曰:16이라 하니, 5이면 도합 80이 된다.
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갈 적에 살진 말을 메운 수레를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君子궁박窮迫한 사람을 구제하고 부유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정왈鄭曰:염유冉有가 너무 많이 준 것을 나무라신 것이다.
의 [子華]에서 [繼富]까지
○正義曰:이 장은 군자는 궁박窮迫한 사람을 구제함이 마땅함을 논한 것이다.
[子華使於齊] 제자 공서적公西赤자화子華이니, 이때 노나라에 벼슬하여 노나라의 사신으로 제나라에 갔다.
[冉子爲其母請粟] 염자冉子는 바로 염유冉有이다.
염자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자夫子께 곡식 주기를 청하였으니, 그 아들은 외국에 사신으로 나갔고 집은 가난하다고 말한 것이다.
[子曰 與之釜] 부자께서 곡식 6 4을 더 주게 하신 것이다.
[請益] 염유는 그 곡식이 너무 적은 것을 혐의쩍게 여겼다.
그러므로 다시 더 주기를 청한 것이다.
[曰 與之庾] 부자께서 16를 더 주게 하신 것이다.
[冉子與之粟五秉] 염유는 끝내 16를 적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멋대로 곡식 80을 준 것이다.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 不繼富] 이것은 공자께서 염유가 너무 많이 준 것을 꾸짖으신 것이다.
자화子華의 이름이고, 은 감이다.
자화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갈 적에 살진 말을 메운 수레를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으니, 이는 부자富者이다.
부자라면 그 어머니도 양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군자는 마땅히 궁박한 사람을 구제해야 하고 부자를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말이다.
지금 자화는 집이 부자인데도 곡식을 많이 주었으니, 이는 부자富者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라신 것이다.
의 [馬曰]에서 [曰釜]까지
○正義曰:《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공서적公西赤은 자가 자화子華이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은 “나라 사람인데, 공자보다 42세가 적다.”고 하였다.
[六斗四升曰釜] 소공昭公 3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안자晏子가 말하기를 ‘나라에는 예로부터 네 종류의 양구量具가 있었는데, 이다.
4이 1인데, 각각 4배수로 단위가 커져서 에 이른다.’고 했다.” 하였는데, 두예杜預에 “4가 1이니 는 1 6이고, 4가 1이니 는 6 4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의 [包曰 十六斗曰庾]와 [馬曰 十六斛曰秉]
○正義曰:고찰하건대, 《의례儀禮》 〈빙례기聘禮記〉에 “10이라 하고, 16라 하고, 10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에 “은 16이다.
지금 강회江淮 사이에 명칭名稱하는 양구量具가 있다.
금문今文에는 로 쓴다.”고 하였다.
는 그 용량容量가 같다.
그러므로 가 16임을 안 것이다.


역주
역주1 各自其四 以登于釜 : 각각 4배를 더하여 釜에 이른다는 말로, 4升이 1豆가 되고, 4豆가 1區가 되고, 4區가 1釜가 된다는 말이다.

논어주소(1) 책은 2021.08.02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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