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子華使於齊에 冉子爲其母請粟하니 子曰 與之釜하라
注
[注]馬曰 十六斛曰秉이니 五秉은 合爲八十斛이라
疏
‘子華使於齊’者, 弟子公西赤, 字子華, 時仕魯, 爲魯使適於齊也.
爲其子華之母, 請粟於夫子, 言其子出使而家貧也.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 不繼富’者, 此孔子非冉有與之太多也.
母不闕粟. 吾嘗聞之, 君子當周救人之窮急, 不繼接於富有.
今子華家富, 而多與之粟, 則是繼富, 故非之也.
疏
云 ‘六斗四升曰釜’者, 昭三年左傳 “晏子曰 ‘齊舊四量, 豆‧區‧釜‧鍾.
四升爲豆,
.’” 杜注云 “四豆爲區, 區十六升, 四區爲釜, 釜六斗四升.” 是也.
疏
[疏]○注 ‘包曰 十六斗曰庾 馬曰 十六斛曰秉’
○正義曰:案聘禮記云 “十斗曰斛, 十六斗曰籔, 十籔曰秉.” 鄭注云 “秉, 十六斛.
자화子華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염자冉子가 자화子華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청하니, 자子께서 “1부釜를 주라.”고 하셨다.
注
마왈馬曰:자화子華는 제자 공서화公西華 적赤의 자字이다.
더 주기를 청하니, 자子께서 “1유庾를 주라.”고 하셨다.
注
마왈馬曰:16곡斛을 병秉이라 하니, 5병秉이면 도합 80곡斛이 된다.
“적赤이 제齊나라에 갈 적에 살진 말을 메운 수레를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君子는 궁박窮迫한 사람을 구제하고 부유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注
정왈鄭曰:염유冉有가 너무 많이 준 것을 나무라신 것이다.
疏
○正義曰:이 장은 군자는 궁박窮迫한 사람을 구제함이 마땅함을 논한 것이다.
[子華使於齊] 제자 공서적公西赤은 자字가 자화子華이니, 이때 노나라에 벼슬하여 노나라의 사신으로 제나라에 갔다.
[冉子爲其母請粟] 염자冉子는 바로 염유冉有이다.
염자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자夫子께 곡식 주기를 청하였으니, 그 아들은 외국에 사신으로 나갔고 집은 가난하다고 말한 것이다.
[子曰 與之釜] 부자께서 곡식 6두斗 4승升을 더 주게 하신 것이다.
[請益] 염유는 그 곡식이 너무 적은 것을 혐의쩍게 여겼다.
[曰 與之庾] 부자께서 16두斗를 더 주게 하신 것이다.
[冉子與之粟五秉] 염유는 끝내 16두斗를 적다고 여겼다.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 不繼富] 이것은 공자께서 염유가 너무 많이 준 것을 꾸짖으신 것이다.
자화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갈 적에 살진 말을 메운 수레를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으니, 이는 부자富者이다.
부자라면 그 어머니도 양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찍이 ‘군자는 마땅히 궁박한 사람을 구제해야 하고 부자를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말이다.
지금 자화는 집이 부자인데도 곡식을 많이 주었으니, 이는 부자富者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라신 것이다.
疏
○正義曰:《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공서적公西赤은 자가 자화子華이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은 “노魯나라 사람인데, 공자보다 42세가 적다.”고 하였다.
[六斗四升曰釜] 소공昭公 3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안자晏子가 말하기를 ‘제齊나라에는 예로부터 네 종류의 양구量具가 있었는데, 두豆‧구區‧부釜‧종鍾이다.
4승升이 1두豆인데, 각각 4배수로 단위가 커져서 부釜에 이른다.’고 했다.” 하였는데, 두예杜預의 주注에 “4두豆가 1구區이니 구區는 1두斗 6승升이고, 4구區가 1부釜이니 부釜는 6두斗 4승升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
○주注의 [包曰 十六斗曰庾]와 [馬曰 十六斛曰秉]
○正義曰:고찰하건대, 《의례儀禮》 〈빙례기聘禮記〉에 “10두斗를 곡斛이라 하고, 16두斗를 수籔라 하고, 10수籔를 병秉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에 “병秉은 16곡斛이다.
지금 강회江淮 사이에 수籔로 명칭名稱하는 양구量具가 있다.
금문今文에는 수籔를 유逾로 쓴다.”고 하였다.
유庾‧유逾‧수籔는 그 용량容量의 수數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