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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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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子張曰
자장子張이 말하였다.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이라하니 何謂也잇고
“《상서尙書》에 ‘고종高宗양음諒陰하는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니, 무슨 뜻입니까?”
[注]孔曰 高宗 殷之中興王武丁也
공왈孔曰 : 고종高宗나라를 중흥中興시킨 은왕殷王 무정武丁이다.
信也 猶默也
(信任)이고 (말이 없음)과 같다.
子曰
께서 말씀하셨다.
何必高宗이리오
“어찌 반드시 고종高宗뿐이었겠느냐?
古之人皆然하니라
옛사람들은 모두 그리하였다.
君薨이면 百官總己하야
임금이 훙서薨逝하면 백관百官이 자신의 직무職務총섭總攝(主宰)하여,
[注]馬曰 己 百官이라
마왈馬曰 : 백관百官이다.
以聽於冢宰三年하니라
3년 동안 총재冢宰의 명을 들었느니라.”
[注]孔曰 冢宰 天官卿이니 佐王治者
공왈孔曰 : 총재冢宰천관天官으로 보좌輔佐해 정치를 하는 자이다.
三年喪畢然後 王自聽政이라
3년의 상제喪制를 마친 뒤에야 이 직접 청정聽政(政務를 처리함)한다.
[疏]‘子張’至‘三年’
의 [子張]에서 [三年]까지
○正義曰 : 此章論天子諸侯居喪之禮也.
정의왈正義曰 : 이 천자天子제후諸侯거상居喪하는 를 논한 것이다.
‘子張曰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 何謂也’者, “高宗諒陰, 三年不言” 周書無逸篇文也.
[子張曰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 何謂也] “고종량음高宗諒陰 삼년불언三年不言”은 《상서尙書》 〈주서周書 무일無逸〉篇의 글이다.
高宗, 殷王武丁也.
고종高宗은왕殷王 무정武丁이다.
諒, 信也. 陰, 默也. 言武丁居父憂, 信任冢宰, 默而不言三年矣.
이고, 이니, 무정武丁이 아버지 상중喪中에 있을 때에 총재冢宰를 신임하여 묵묵히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子張未達其理, 而問於夫子也.
자장子張이 그 이유를 몰라서 부자夫子께 물은 것이다.
‘子曰 何必高宗古之人皆然 君薨百官總己 以聽於冢宰三年’者, 孔子答言 “何必獨高宗,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 以聽於冢宰三年] 공자孔子께서 “어찌 반드시 고종高宗뿐이었겠느냐?
古之人皆如是.”
옛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이 하였다.”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諸侯死曰薨.
제후諸侯의 죽음을 ‘’이라 한다.
言君旣薨, 新君卽位, 使百官各總己職, 以聽使於冢宰, 三年喪畢, 然後王自聽政.
임금이 이미 훙서薨逝하였으면 새 임금은 즉위卽位하여 백관百官으로 하여금 각각 자기의 직무職務총섭總攝하여 총재冢宰의 명을 듣게 하였다가 3년의 상제喪制를 마친 뒤에야 (新王)이 직접 정무政務를 처리한다.
[疏]○注 ‘孔曰’至‘默也’
의 [孔曰]에서 [默也]까지
○正義曰 : 云‘高宗 殷之中興王武丁也’者, 孔安國云 “盤庚弟小乙子名武丁, 德高可尊, 故號高宗.”
정의왈正義曰 : [高宗 殷之中興王武丁也] 공안국孔安國은 “반경盤庚의 아우 소을小乙의 아들 이름이 무정武丁인데, 이 높아 존경할 만하였기 때문에 묘호廟號고종高宗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喪服四制引書云
예기禮記》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상서尙書》의 말을 인용하고서 다음과 같이 문답한 내용이 실려있다.
“高宗諒陰, 三年不言, 善之也.
“《상서尙書》에 ‘고종高宗양음諒陰하는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라고 한 것은 고종高宗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王者莫不行此禮, 何以獨善之也.”
왕자王者 중에 이 를 행하지 않은 이가 없는데, 어째서 유독 고종高宗만을 훌륭하게 여긴 것인가?”
대답하였다.
“高宗者, 武丁. 武丁者, 殷之賢王也.
고종高宗무정武丁이고, 무정武丁나라의 현왕賢王이다.
繼世卽位, 而慈良於喪.
선왕先王이 뒤를 이어 왕위王位에 올라 부친父親자량慈良(孝誠을 다함)하였다.
當此之時, 殷衰而復興, 禮廢而復起,
이때를 당하여 하였던 나라가 다시 일어나고 폐하였던 가 다시 거행되었다.
故載之於書中而高之,
그러므로 《상서尙書》에 기재記載하여 높인 것이다.
故謂之高宗.
그러므로 그를 고종高宗이라 한 것이다.
三年之喪, 君不言也.”
3년의 상중喪中에 임금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是說不言之意也.
이것은 말을 하지 않는 뜻을 설명한 것이다.
云‘諒 信也 陰 默也’者, 謂信任冢宰, 默而不言也.
[諒 信也 陰 默也] 총재冢宰신임信任하여 묵묵히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禮記作諒闇. 鄭玄以爲凶廬,
예기禮記》에는 ‘양암諒闇’으로 되어있고, 정현鄭玄은 “〈양암諒闇은〉 흉려凶廬(居喪하는 방실房室)이다.”라고 하였다.
非孔義也, 今所不取.
이는 공안국孔安國 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정현鄭玄을〉 취하지 않았다.
[疏]○注 ‘孔曰’至‘聽政’
의 [孔曰]에서 [聽政]까지
○正義曰 : 云‘冢宰 天官卿 佐王治者’者,
정의왈正義曰 : [冢宰 天官卿 佐王治者]
案周禮天官 “大宰之職, 掌建邦之六典, 以佐王治邦國”
주례周禮》 〈천관天官〉을 고찰하건대, “태재大宰직책職責은 나라의 육전六典을 세워 을 보좌해 방국邦國을 다스리는 일을 맡는다.”라고 하였는데,
云 “乃立天官冢宰, 使帥其屬, 而掌邦治, 以佐王均邦國.
서관敍官에 “천관天官 총재冢宰를 세워 그 하속下屬을 거느리고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맡아 을 보좌해 방국邦國을 공평하게 다스리게 한다.
治官之屬, 大宰卿一人.”
치관治官(天官의 관원官員을 이름)에 관원官員 중에 태재大宰 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鄭注引此文云 “君薨, 百官總己, 以聽於冢宰.” 言冢宰於百官無所不主.
정현鄭玄에 《논어論語》의 “군훙君薨 백관총기百官總己 이청어총재以聽於冢宰”를 인용하고서, “총재冢宰백관百官의 일을 주재主宰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爾雅曰 “冢, 大也, 冢宰, 大宰也.”
이아爾雅》에 “이니 총재冢宰태재大宰이다.”라고 하였다.
變冢言大, 進退異名也.
을 고쳐 로 말한 것은 상황에 따라 명칭名稱을 달리한 것이다.
百官總焉, 則謂之冢, 列職於王, 則稱大.
백관百官총섭總攝(主宰)할 때에는 이라 이르고, 에게 직책職責을 나열할 때에는 라 칭한다.
冢, 大之上也.
보다 위이다.
曰冢,
정상頂上이라 한다.
故云“冢宰, 天官卿, 佐王治者也”
그러므로 “총재冢宰천관天官으로 을 보좌해 정치를 하는 자이다.”라고 한 것이다.
云‘三年喪畢 然後王自聽政’者, 謂卒哭除服之後, 三年心喪已畢, 然後王自聽政也.
[三年喪畢 然後王自聽政] 졸곡卒哭하고 을 벗은 뒤에 3년의 심상心喪을 다 마치고서야 이 직접 청정聽政함을 이른 것이다.
知非衰麻三年者.
〈이곳에 말한 3년이〉 최마삼년衰麻三年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전거典據에 의해〉 알 수 있다.
晉書云 “太始十年, 元皇后崩, 依漢‧魏舊制, 旣葬, 帝及群臣皆除服.
진서晉書》 〈예지禮志〉에 “태시泰始 10년에 원황후元皇后붕어崩御하니, 나라와 나라의 옛 제도에 따라 장사葬事를 마친 뒤에 황제皇帝군신群臣이 모두 을 벗었다.
疑皇太子亦應除否, 詔諸尙書會僕射盧欽論之.
황태자皇太子을 벗는 것이 마땅한지가 의심스러워 여러 상서尙書들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복야僕射 노흠盧欽회합會合하여 논의論議하게 하였다.
唯預以爲, ‘古者天子諸侯三年之喪始服齊斬, 旣葬, 除喪服, 諒闇以居, 心喪終制, 不與士庶同禮.’
오직 두예杜預만이 ‘옛날에 천자天子제후諸侯삼년상三年喪에 처음에는 자최복齊衰服이나 참최복斬衰服을 입었다가 장사葬事를 지내고는 상복喪服을 벗고서 양암諒闇에 거처하면서 심상心喪하여 상제喪制를 마쳤으니, 사서인士庶人가 같지 않다.’라고 하였다.
於是盧欽‧魏舒問預證據. 預曰
이에 노흠盧欽위서魏舒두예杜預에게 증거證據가 있느냐고 물으니, 두예杜預가 대답하였다.
‘春秋, 晉侯享諸侯, 子産相鄭伯,
‘《춘추春秋소공昭公 12년에 진후晉侯연회宴會를 열어 제후諸侯접대接待할 때에 자산子産정백鄭伯(鄭 정공定公)을 보좌輔佐하였다.
時簡公未葬, 請免喪以聽命, 君子謂之「得禮」. 宰咺歸惠公‧仲子之賵, 傳曰 「弔生不及哀」. 此皆旣葬除服諒陰之證也.
이때 아직 간공簡公(定公의 부친父親)의 장전葬前이므로 〈연향宴享참석參席하기를 사양하고서〉 을 벗은 뒤에 진군晉君을 따르겠다고 한 일에 대해 군자君子가 이를 「禮에 맞았다.」고 하였고, 은공隱公 원년元年천왕天王 (훤)을 보내어 혜공惠公중자仲子(賻儀)을 준 데 대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산 사람에 대한 조위弔慰를 슬퍼할 때에 미처 하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장사葬事를 마치면 을 벗고 양음諒陰한 증거이다.
書傳之說旣多, 學者未之思耳.
서전書傳(典籍)에 이에 대한 이 많은데, 학자學者들이 사고思考하지 않았을 뿐이다.
喪服, 「諸侯爲天子亦斬衰」, 豈可謂終服三年也’
의례儀禮》 〈상복喪服에 「諸侯가 천자天子를 위해서도 참최삼년복斬衰三年服을 입는다.」라고 한 것이 어찌 3년 동안 최복衰服을 입고서 상기喪期를 마치는 것을 말한 것이겠는가?’
預又作議曰 ‘周景王有后‧世子之喪, 旣葬, 除喪而宴樂.
두예杜預는 또 주의문奏議文을 지었는데, 그 글에 ‘ 경왕景王왕후王后세자世子을 당하여, 장사葬事를 마치고는 을 벗고서 연회宴會를 열어 즐겼다.
晉叔向譏之曰 「三年之喪, 雖貴遂服, 禮也. 王雖不遂, 宴樂以早」 天子喪事見於古也.
나라 숙향叔向이 비난하기를 「三年喪은 비록 존귀尊貴한 〈천자天子라 해도〉 수복遂服(定해진 상기喪期를 채워 복상服喪함)하는 것이 인데, 주왕周王이 비록 수복遂服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연회宴會를 열어 즐긴 것이 너무 일렀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고문古文에 보이는 천자天子복상服喪에 관한 일이다.
稱高宗不言三年, 而云諒陰三年, 此釋服心喪之文也.
고종高宗이 「服喪三年」하였다고 말하지 않고 「諒陰三年」하였다고 말하였으니, 이는 심상心喪의 복을 입었음을 해석한 글이다.
譏景王, 不譏其除喪, 而, 而違諒闇之節也.
경왕景王을 비난한 것은 그가 복을 벗은 것을 비난한 것이 아니고, 그가 연회를 열어 즐긴 것이 너무 일렀음을 비난한 것이니, 장사葬事를 마치고서 복을 벗는 것은 마땅하고, 양암諒闇예절禮節을 어긴 것만이 〈옳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堯喪, 舜諒闇三年, 故稱遏密八音. 由此言之, 天子居喪, 齊斬之制, 杖絰帶, 當遂其服.
제요帝堯제순帝舜양암삼년諒闇三年하였기 때문에 「遏密八音」이라 하였으니, 이로써 말하면 천자天子거상居喪자최齊衰참최斬衰복제服制는 짚신‧상장喪杖수질首絰마대麻帶를 갖추어 〈장사葬事를 마칠 때까지〉 입는 것이 마땅하다.
旣葬而除, 諒闇以終之, 三年無改於父之道,
그러나 장사葬事를 지낸 뒤에는 을 벗고 양암諒闇하며 상기喪期를 마치고, 3년 동안 아버지의 를 고침이 없어야 한다.
故曰 「百官總己以聽冢宰」.
그러므로 「百官이 자기의 직책을 총섭總攝하여 총재冢宰의 명을 듣는다.」라고 한 것이다.
喪服旣除, 故更稱不言之美, 明不復寢苫枕塊, 以荒大政也.
상복喪服을 이미 벗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미덕美德을 다시 칭찬하였으니, 다시 거적자리 위에 흙덩이를 베고 자며 〈상제 노릇을 하여, 나라의〉 대정大政폐기廢棄하지 않은 것을 밝힌 것이다.
禮記云 「三年之喪, 自天子達」 又云 「父母之喪, 無貴賤一也」 又云 「端衰喪車皆無等」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3년의 복상服喪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통행한다.」라고 하고, 또 〈중용中庸〉에 「父母의 에 〈3년을 복상服喪〉하는 것은 귀천貴賤의 구분 없이 모두 같다.」라고 하고, 또 〈잡기雜記 〉에 「端衰(喪服의 상의上衣)와 상거喪車는 모두 〈귀천貴賤의〉 차등이 없다.」라고 하였다.
此通謂天子居喪, 衣服之制同於凡人, 心喪之禮終於三年, 亦無服喪三年之文.
이는 모두 천자天子거상居喪할 때에 입는 의복衣服의 제도는 범인凡人과 같고, 심상心喪는 3년에 끝난다는 것을 이른 것이니, 역시 3년 동안 상복喪服을 입는다는 글은 없다.
天子之位至尊, 萬機之政至大, 群臣之衆至廣, 不得同之於凡人,
천자天子의 지위는 지극히 높고 만기萬機정사政事는 지극히 크며, 군신群臣의 무리는 지극히 많으니 상복喪服 입는 기간이 범인凡人과 같을 수 없다.
故大行旣葬, 祭於廟, 則因疏而除之. 己不除則群臣莫敢除.
그러므로 대행왕大行王을 장사 지내고서 태묘太廟부제祔祭한 뒤에는 〈신하들의〉 상소上疏에 따라 을 벗으니, 이는 자기가 복을 벗지 않으면 신하들이 감히 복을 벗을 수 없기 때문이다.
故屈己以除之, 而諒闇以終制, 天下之人皆曰我王之仁也. 屈己以從宜, 皆曰我王之孝也.
뜻을 굽혀 복을 벗고서 양암諒闇하며 상제喪制를 마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우리 임금님은 인자仁慈하시다.」라고 하고, 뜻을 굽혀 시의時宜를 따르면 모두 「우리 임금님은 효성孝誠스러우시다.」라고 하고,
旣除而心喪, 我王猶若此之篤也. 凡我臣子, 亦安得不自勉以崇禮.
복을 벗은 뒤에 심상心喪하면 「우리 임금님은 이처럼 독실하시다.」라고 할 것이니, 모든 우리의 신자臣子들 또한 어찌 스스로 노력해 을 숭상하지 않겠는가?
此乃聖制移風易俗之本也.’
이것이 바로 성인聖人이 〈를〉 제정制定하여 이풍역속移風易俗(풍속을 개선改善함)한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議奏, 皇太子遂除衰麻而諒闇喪終.”
의론議論을 아뢰니, 황태자皇太子가 마침내 최마衰麻를 벗고 양암諒闇하며 상기喪期를 마쳤다.”
是知三年喪畢, 謂心喪畢, 然後王自聽政也.
이에서 삼년상三年喪을 마친다는 것은 심상心喪을 마침을 이른 것이고, 그런 뒤에 이 직접 청정聽政(政務를 처리함)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敍官 : 《周禮》의 〈天官〉‧〈地官〉‧〈春官〉‧〈夏官〉‧〈秋官〉 및 〈考工記〉 등 6篇의 篇首에 六官이 통솔하는 官屬의 職掌과 人員數를 대략 列記한 부분을 이른다.
역주2 (預)[頂] : 저본에는 ‘預’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北監本과 毛本에 ‘預’가 ‘頂’으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頂’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頂’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杜預傳)[禮志] : 저본에는 ‘杜預傳’으로 되어있으나 이 뒤에 인용된 내용이 《晉書》 〈杜預傳〉에는 상세하지 않고 〈禮志 中〉에 상세히 보이며, 아래 주석 5)와 6)에 보이듯이 阮刻本에서 이곳의 인용 문구를 교감할 때도 〈杜預傳〉이 아닌 〈禮志〉를 근거로 삼았다. 따라서 ‘杜預傳’은 ‘禮志’의 잘못으로 판단되므로 ‘禮志’로 바로잡았다.
역주4 (比亦)[此皆] : 저본에는 ‘比亦’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北監本에 ‘比’가 ‘此’로 되어있다. 살펴보건대 ‘比’는 誤字이다.”라고 한 것과 《晉書》 〈禮志 中〉에 ‘比亦’이 ‘此皆’로 되어있는 것에 의거해 ‘此皆’로 바로잡았다.
역주5 (喪服)[服喪] : 저본에는 ‘喪服’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晉書》 〈禮志〉에 ‘服喪’으로 되어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服喪’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譏其宴樂[已]早 (則)[明]旣葬應除 : 저본에는 ‘譏其宴樂早 則旣葬應除’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晉書》 〈禮志〉에 ‘早’ 위에 ‘已’자가 있고 ‘則’이 ‘明’으로 되어있는데,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早’ 위에 ‘已’字를 보충하고, ‘則’을 ‘明’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非)[菲] : 저본에는 ‘非’로 되어있으나 《晉書》 〈禮志 中〉에 의거해 ‘菲’로 바로잡았다.
역주8 (拊)[祔] : 저본에는 ‘拊’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살펴보건대 ‘拊’는 ‘祔’가 되어야 하니, ‘拊’자는 그릇된 것이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祔’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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