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論語注疏(1)

논어주소(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논어주소(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8. 孟武伯問
子路仁乎잇가
子曰
不知也로라
[注]孔曰 仁道至大하니 不可全名也
又問한대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어니와
[注]孔曰 賦 兵賦
不知其仁也로라
求也何如하니잇고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어니와
[注]孔曰 千室之邑 卿大夫之邑이라
卿大夫稱家
諸侯千乘이요 大夫百乘이라
家臣이라
不知其仁也로라
赤也何如하니잇고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하야 可使與賓客言也어니와
[注]馬曰 赤 弟子公西華
有容儀하니 可使爲行人이라
不知其仁也로라
[疏]‘孟武’至‘仁也’
○正義曰:此章明仁之難也.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者, 魯大夫孟武伯問於夫子曰 “弟子子路, 有仁德否乎.” 夫子以爲仁道至大, 不可全名,
故答曰 “不知也.”
‘又問’者, 武伯意其子路有仁, 故夫子雖答以不知, 又復問之也.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者,
此夫子更爲武伯說子路之能, 言 “由也有勇, 千乘之大國, 可使治其兵賦也, 不知其仁也.” 言仁道則不全也.
‘求也何如’者, 此句又武伯問辭. 言弟子冉求仁道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者,
此孔子又答武伯以冉求之能也,
言 “求也, 若卿大夫千室之邑, 百乘卿大夫之家, 可使爲之邑宰也, 仁則不知也.”
‘赤也何如’者, 此句又武伯問辭, 言弟子公西赤仁道何如.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者,
此孔子又答以公西赤之才也,
言 “赤也有容儀, 可使爲行人之官, 盛服束帶立於朝廷, 可使與隣國之大賓小客言語應對也, 仁則不知.”
[疏]○注 ‘孔曰 賦 兵賦’
○正義曰:案隱四年左傳云 “敝邑以賦, 與陳‧蔡從.” 服虔云 “賦, 兵也.
以田賦出兵, 故謂之兵賦.” 正謂以兵從也.
其賦法, 依周禮, 九夫爲井, 四井爲邑, 四邑爲丘, 丘十六井, 出戎馬一匹‧牛三頭, 四丘爲甸, 甸六十四井, 出長轂一乘‧戎馬四匹‧牛十三頭‧甲士三人‧步卒七十二人, 是也.
[疏]○注 ‘孔曰’至‘家臣’
○正義曰:云 ‘千室之邑 卿大夫之邑’者,
大學云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鄭注云 “百乘之家, 有采地者也.”
又鄭注云 “采地, 一同之廣輪也.”
然則此云 ‘千室之邑 百乘之家’者, 謂卿大夫采邑, 地有一同, 民有千家者也.
左傳曰 “唯卿備百邑.” 司馬法 “成方十里, 出革車一乘.”
故知百乘之家, 地一同也.
[疏]○注 ‘馬曰’至‘行人’
○正義曰:云 ‘赤 弟子公西華’者, 案史記弟子傳云 “公西赤, 字子華.”
鄭玄曰 “魯人,
少孔子四十二歲.”
云 ‘有容儀 可使爲行人’者, 按周禮, 有大行人‧小行人之職, 掌賓客之禮儀及朝覲‧聘問之事, 言公西華任此官也.


맹무백孟武伯이 물었다.
자로子路합니까?”
께서 대답하셨다.
“모르겠네.”
공왈孔曰:는 지극히 크니, 온전히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다.
맹무백孟武伯이 또 묻자, 께서 말씀하셨다.
천승千乘의 나라에 병부兵賦(兵務)를 다스리게 할 만하지만,
공왈孔曰:병부兵賦이다.
그가 한지는 모르겠네.”
맹무백孟武伯이 물었다. “는 어떻습니까?”
께서 대답하셨다.
천실千室이나 백승百乘의 집에 가 되게 할 만하지만,
공왈孔曰:천실千室경대부卿大夫이다.
경대부를 라 칭한다.
제후는 천승이고, 대부는 백승이다.
는 가신이다.
그가 한지는 모르겠네.”
맹무백孟武伯이 물었다. “은 어떻습니까?”
께서 대답하셨다.
은 띠를 매고 조정에 서서 빈객賓客(外國使臣)과 〈외교外交의 일을〉 논의하게 할 만하지만,
마왈馬曰:은 제자 공서화公西華이다.
용의容儀(용모 동작이 예의에 맞음)가 있으니, 행인行人(外交官)이 되게 할 만하다.
그가 한지는 모르겠네.”
의 [孟武]에서 [仁也]까지
○正義曰:이 장은 을 이루기 어려움을 밝힌 것이다.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나라 대부 맹무백孟武伯부자夫子에게 “제자 자로子路인덕仁德을 가졌습니까?”라고 묻자, 부자께서는 의 도가 지극히 크니 온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고 여기셨다.
그러므로 “모르겠다.”고 답하신 것이다.
[又問] 맹무백은 자로가 인덕仁德을 가졌다고 여겼기 때문에 부자께서 “모르겠다.”고 대답하셨는데도 또다시 물은 것이다.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이것은 부자께서 다시 맹무백을 위하여 자로의 재능을 설명하기를 “는 용기가 있으니, 천승의 대국에 병부兵賦를 다스리게 할 만하지만 그가 한지는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니, 의 도는 온전히 갖추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求也何如] 이 는 또 맹무백이 물은 말이니, 제자 염구冉求인도仁道가 어떠하냐는 말이다.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이것은 공자께서 또 맹무백에게 염구의 재능을 들어 대답하기를
는 천실의 읍이나 백승의 집에 가 되게 할 만하지만 한지는 모르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赤也何如] 이 는 또 맹무백이 물은 말이니, 제자 공서적公西赤인도仁道는 어떠하냐는 말이다.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이것은 공자께서 또 공서적의 재능을 들어 대답하기를
용의容儀가 있으니 행인行人의 관직을 맡겨 옷을 차려입고 띠를 매고서 조정에 서서 이웃나라에서 온 빈객賓客들과 말을 응대하게 할 만하지만 한지는 모르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의 [孔曰 賦 兵賦]
○正義曰:고찰하건대 은공隱公 4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우리나라 군대를 거느리고서 나라‧나라 군대와 함께 종군從軍하겠다.[敝邑以賦 與陳蔡從]”라고 하였는데, 그 복건服虔은 “이다.
전지田地부세賦稅에 따라 군사를 내기 때문에 군대를 병부兵賦라 한다.”고 하였으니, 바로 병기兵器를 들고 종군從軍하는 것을 이른다.
부법賦法은 《주례周禮》에 의하면, 9이고, 4이고, 4인데, 16에서 전마戰馬 1, 소 3를 내고, 4인데, 64에서 장곡長轂(兵車) 1, 전마 4필, 소 13두, 갑사甲士 3, 보졸步卒 72인을 낸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의 [孔曰]에서 [家臣]까지
○正義曰:[千室之邑 卿大夫之邑]
대학大學》에 “백승百乘의 집은 부세를 가혹하게 거둬들이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백승의 집은 채지采地(封地)를 가진 자이다.”라고 하였고,
또 정현의 에 “채지는 면적이 1(사방 100리)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여기에 말한 ‘천실지읍千室之邑 백승지가百乘之家’는 경대부의 채읍采邑으로 사방 100리의 땅과 1,000호의 민가民家를 소유한 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27년에 “오직 만이 백 개의 읍을 소유할 수 있다.”라는 말이 보이는데, 그 주에 “은 사방이 10리인데, 혁거革車(兵車) 1을 낸다.”고 한 《사마법司馬法》을 소개하였다.
그러므로 백승百乘의 집은 땅이 1임을 알 수 있다.
의 [馬曰]에서 [行人]까지
○正義曰:[赤 弟子公西華] 고찰하건대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공서적公西赤은 자가 자화子華이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은 “나라 사람이다.
공자보다 42세가 적다.”라고 하였다.
[有容儀 可使爲行人] 고찰하건대 《주례周禮》에 대행인大行人소행인小行人관직官職이 있어 빈객賓客을 대우하는 예의와 조근朝覲빙문聘問 등의 일을 맡는다고 하였으니, 공서화에게 이 관직을 맡길 만하다는 말이다.



논어주소(1) 책은 2021.08.02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9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