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齊景公待孔子曰 若季氏則吾不能이어니와 以季孟之間待之하리라하고
注
季氏為上卿하야 最貴하고 孟氏為下卿하야 不用事라
疏
‘齊景公待孔子’者, 待, 遇也. 謂以祿位接遇孔子也.
‘曰若季氏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者, 魯三卿.
景公言 “我待孔子以上卿之位, 若魯季氏, 則不能.” 以其有田氏專政故也. 又不可使其位卑, 若魯孟氏.
‘曰 吾老矣 不能用也’者, 時景公為臣下所制, 雖說孔子之道, 而終不能用,
注
○正義曰 : 案世家云 “魯昭公奔齊. 頃之, 魯亂.
異日, 景公止孔子曰 ‘奉子以季氏, 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景公曰 ‘吾老矣, 弗能用也.’ 孔子遂行, 反乎魯.” 是其事也.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孔子를 대우하며 말하기를 “〈노군魯君이〉 계씨季氏를 대우하듯이 내 그대를 대우할 수 없으나, 계씨季氏와 맹씨孟氏의 중간으로 대우하겠소.”라고 하고서,
注
계씨季氏가 상경上卿이어서 가장 존귀尊貴하고, 맹씨孟氏는 하경下卿이어서 용사用事(권력을 잡음)하지 못하였다.
또 말하기를 “내 늙어서 등용할 수 없소.”라고 하니, 공자孔子께서 〈제齊나라를〉 떠나셨다.
注
성인聖人의 도道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내가 늙어서 등용할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공자孔子께서 처소處所를 잃은 일을 말한 것이다.
[齊景公待孔子] 대待는 우遇(대우)이니, 봉록俸祿과 작위爵位로써 공자孔子를 대우함을 이른다.
[曰若季氏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노魯나라는 경卿이 셋이다.
계씨季氏가 상경上卿이어서 가장 존귀하고, 맹씨孟氏는 하경下卿이어서 권력을 잡지 못하였다.
경공景公이 “내가 공자孔子를 상경上卿의 지위로 대우하여, 노군魯君이 계씨季氏를 대우하는 것처럼 대우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제齊나라에 전씨田氏가 정권政權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공자孔子의 지위地位를 낮추어 노군魯君이 맹씨孟氏를 대우하는 것처럼 대우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계씨季氏와 맹씨孟氏 두 사람의 중간으로 대우하고자 한 것이다.
[曰 吾老矣 不能用也] 이때 경공景公이 신하에게 압제壓制받고 있었으므로 비록 공자孔子의 도道를 좋아하였으나, 끝내 공자孔子를 등용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의 도道는 이루기 어려우니, 내가 늙어서 등용할 수 없다는 말로 핑계 댄 것이다.
[孔子行] 제齊나라를 떠나 노魯나라로 돌아오신 것이다.
注
○정의왈正義曰 : 고찰하건대,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노魯나라 소공昭公이 제齊나라로 출분出奔하니, 오래지 않아 노魯나라가 혼란混亂하였다.
공자孔子께서 제齊나라로 가시니, 경공景公이 자주 정치政治를 물었다.
경공景公이 기뻐하여 이계尼谿의 땅에 공자孔子를 봉封하려 하자, 안영晏嬰이 간諫하여 저지하였다.
후일後日에 경공景公이 공자孔子를 만류挽留하며 말하기를 ‘〈노군魯君이〉 계씨季氏를 대우하듯이 내 그대를 대우할 수는 없으나, 계씨季氏와 맹씨孟氏의 중간으로 대우하겠소.’라고 하였다.
제齊나라 대부大夫가 공자孔子를 해치고자 하니, 공자孔子께서 이 소문을 들으셨다.
경공景公이 ‘내가 늙어서 등용할 수 없소.’라고 하니, 공자孔子가 드디어 제齊나라를 떠나 노魯나라로 돌아오셨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일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