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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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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子曰
南人有言曰 人而無恒이면 不可以作巫醫라하니
[注]孔曰 南人 南國之人이라
鄭曰 言巫醫不能治無恒之人이라
善夫ᄂ저
[注]包曰 善南人之言也
不恒其德이면 라하니
[注]孔曰 此易恒卦之辭 言德無常이면 則羞辱承之
子曰
不占而已矣니라
[注]鄭曰 易所以占吉凶이나 無恒之人 易所不占이라
[疏]‘子曰’至‘已矣’
○正義曰 : 此章疾性行無恒之人也.
‘子曰 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者, 南人, 南國之人也.
南國之人嘗有言曰 “人而性行無恒, 不可以爲巫醫” 言巫醫不能治無恒之人也.
‘善夫’者, 孔子善南人之言有徵也.
‘不恒其德 或承之羞’者, 此易恒卦之辭, 孔子引之, 言德無恒則羞辱承之也.
‘子曰 不占而已’者, 孔子旣言易文, 又言夫易所以占吉凶, 無恒之人, 易所不占也.
[疏]○注 ‘孔曰’至‘承之’
○正義曰 : 云‘此易恒卦之辭’者, 謂此經所言, 是易恒卦九三爻辭也.
王弼云 “處三陽之中, 居下體之上, 處上體之下.
, 體在乎恒, 而分無所定, 無恒者也.
德行無恒, 自相違錯, 不可致詰,
故或承之羞也.”


께서 말씀하셨다.
“남쪽 나라 사람들의 말에 ‘사람으로서 항덕恒德이 없으면 무당과 의원醫員치료治療할 수 없다.’고 하니,
공왈孔曰 : 남인南人은 남쪽 나라 사람이다.
정왈鄭曰 : 무당과 의원도 항덕이 없는 사람은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다.
좋은 말이다.”
포왈包曰 : 남쪽 나라 사람들의 말을 좋게 여기신 것이다.
“그 항구恒久히 지키지 않으면 혹 수치羞恥가 이른다.”라고 하니,
공왈孔曰 : 이것은 《주역周易항괘恒卦효사爻辭이니, 덕행德行이 일정하지 않으면 수욕羞辱이 이른다는 말이다.
께서 말씀하셨다.
을 칠 수 없을 뿐이다.”
정왈鄭曰 : 《》은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인데, 항덕恒德이 없는 사람은 《》으로 점을 칠 수 없는 대상이다.
의 [子曰]에서 [已矣]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성행性行항덕恒德이 없는 사람을 미워하신 것이다.
[子曰 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남인南人은 남쪽 나라의 사람이다.
교접交接하여 요사妖邪를 제거하는 일을 주업主業으로 하고, 질병疾病을 치료하는 일을 주업主業으로 한다.
남쪽 나라 사람이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성행性行항덕恒德이 없으면 무의巫醫도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항덕恒德이 없는 사람은 무당과 의원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다.
[善夫] 공자孔子께서 남인南人의 말이 징험徵驗이 있음을 좋게 여기신 것이다.
[不恒其德 或承之羞] 이것은 《주역周易항괘恒卦효사爻辭인데, 공자孔子께서 이를 인용하시어, 덕행德行이 일정하지 않으면 수욕羞辱이 이른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子曰 不占而已] 공자孔子께서 이미 《주역周易》의 글을 말씀하시고서 또 《》은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인데, 항덕恒德이 없는 사람은 《》으로 점을 칠 수 없는 대상이라고 말씀하셨다.
의 [孔曰]에서 [承之]까지
정의왈正義曰 : [此易恒卦之辭] 이 경문經文에 말한 것이 바로 《주역周易항괘恒卦 구삼효사九三爻辭라는 말이다.
왕필王弼은 “〈구삼九三이〉 세 양효陽爻 가운데 위치하여, 하체下體(下卦)의 위에 있고 상체上體(上卦)의 아래에 있다.
위에 있으나 온전히 높지 않고 아래에 있으나 온전히 낮지 않으며, 〈세 양효陽爻의〉 가운데 있으나 일체一體이 아니고, 에 있으나 분수分守가 정해진 바가 없으니 항덕恒德이 없는 것이다.
덕행德行항구恒久하지 않으면 스스로 어긋나고 잘못되는 〈일이 많아서 이루 다〉 힐문詰問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간혹 수욕羞辱이 이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或承之羞 : 皇侃의 《論語義疏》에는 “항상[或] 羞辱을 당한다(받는다).”로 해석하고서, 《詩經》 〈小雅 天保〉의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松柏처럼 무성하여 항상 계승하리)”의 ‘或’을 鄭玄의 箋에 “或은 常이다.”라고 한 것과 《老子道德經》 4章의 “湛兮似或存(해맑아 항상 존재함)”의 ‘或’을 河上公의 注에 “或은 常이다.”라고 한 것을 그 典據로 提示하였다. 그러나 程伊川의 《易傳》에는 “或承之 謂有時而至也(或承之는 때로 이름이 있음을 이른다.)”라고 하여, ‘或’을 ‘時’로 ‘承’을 ‘至’로 풀었는데, 譯者는 이 說을 취하여 ‘承’을 ‘이름’으로 번역하였다.
역주2 巫主接神除邪 醫主療病 : 經文의 ‘不可以作巫醫’와 《論語正義(邢昺의 疏)》의 ‘巫主接神治邪 醫主療病’에 대하여, 毛奇齡은 《論語稽求篇》에서 “《禮記》 〈緇衣〉에 子께서 ‘남쪽 나라 사람들의 말에 「사람으로서 恒德이 없으면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점(卜筮)을 칠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古人의 遺言인 듯하다.’라고 하시고, 《周易》의 ‘그 德을 恒久히 지키지 않으면 혹 羞恥가 이른다.’라고 한 말과 또 ‘그 德을 恒久히 지키면 〈지킴이〉 貞固하니 婦人은 吉하고 夫子(남자)는 흉하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셨으니, 앞뒤에 인용하신 것이 모두 卜筮의 일이다. 그러므로 ‘不占而已’라고 하신 것이다. ‘不占’은 바로 卜筮할 수 없다는 말이니, 그렇다면 巫醫는 卜筮의 誤字인 듯하다. 〈巫醫 두 字를〉 卜筮 두 자로 고치면 ‘不占’이란 글귀의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緇衣曰 子曰 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爲卜筮 古之遺言與 易曰 不恒其德 或承之羞 又曰 恒其德 貞 婦人吉 夫子凶 凡前後所引 皆卜筮之事 故曰 不占而已 不占者 正言不可爲卜筮也 則似巫醫爲卜筮之誤 易卜筮二字 則不占句更較明白]”라고 하였고, 兪樾은 《群經評議》에서 “《楚詞》 〈天問篇〉에 ‘化하여 누런 곰이 되었으니, 무당이 어찌 되살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王逸의 注에 ‘鮌이 죽은 뒤에 化하여 누런 곰이 되어 羽淵으로 들어갔으니 어찌 巫醫가 다시 살릴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巫와 醫를 옛날에는 通稱하였던 것이다. 이곳에 말한 ‘不可以作巫醫’의 ‘醫’도 ‘巫’이다. 《廣雅》 〈釋詁〉에 ‘醫는 巫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禮記》 〈緇衣〉에 ‘子께서 남쪽 나라 사람들의 말에 「사람으로서 恒德이 없으면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점을 칠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古人의 遺言인 듯하다.’라고 하셨다. 《禮記》에 말한 ‘卜筮’와 《論語》에 말한 ‘巫醫’는 그 뜻이 같다. 下文에 《周易》 恒卦의 爻辭를 인용하고, 또 ‘不占而已矣’라고 하신 것은 모두 卜筮로써 말한 것이니, 醫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 《論語正義》에 巫와 醫를 나누어 두 가지로 만든 것은 古義가 아니다.[楚詞天問篇曰 化爲黃熊 巫何活焉 王逸注曰 言鮌死後化爲黃熊入於羽淵 豈巫醫所能復生活 是巫醫 古得通偁 此云不可以作巫醫 醫 亦巫也 廣雅釋詁曰 醫 巫也 是其證也 禮記緇衣篇 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爲卜筮 古之遺言與 彼言卜筮 此言巫醫 其義一也 下文引易恒卦之辭 又曰 不占而已矣 皆以卜筮言 與醫不涉 正義分巫醫而二之 非古義矣]”라고 하였다.
역주3 上不全尊……中不在體 : 孔穎達의 疏에 의하면 ‘上不全尊, 下不全卑’는 九三이 비록 세 陽爻의 가운데 위치하였으나, 위치한 곳이 正卦의 中位가 아니기 때문에 위에 있으나 온전히 높지 못하고 아래에 있으나 온전히 낮지 않다는 말이고, ‘中不在體’는 비록 세 陽爻의 가운데 있으나 一體의 中이 아니라는 말이다. 王弼의 注에는 ‘上不全尊 下不全卑’의 두 ‘全’字가 ‘至’字로 되어있고, 孔穎達의 疏에는 ‘全’字로 되어있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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