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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2)

논어주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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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南宮适
남궁괄南宮适
[注]孔曰 适 南宮敬叔이니 魯大夫
공왈孔曰 : 남궁경숙南宮敬叔이니 나라 대부大夫이다.
問於孔子曰
공자孔子께 물었다.
羿 善射하고 盪舟호되
羿는 활을 잘 쏘았고, 육지陸地에서 배를 밀고 다녔으되,
[注]孔曰 羿 有窮國之君이라
공왈孔曰 : 羿나라의 임금이다.
篡夏后相之位러니 其臣寒浞 殺之하고 因其室而生奡하니라
나라 임금 왕위王位찬탈簒奪하였는데, 그 신하 한착寒浞羿를 죽이고서 그 아내를 취하여 를 낳았다.
奡多力하야 能陸地行舟러니 爲夏后少康所殺하니라
는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밀고 다닐 정도였는데, 나라 임금 소강少康에게 살해殺害되었다.
俱不得其死然이요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하였고,
[注]孔曰 此二子者 皆不得以壽終이라
공왈孔曰 : 이 두 사람은 모두 수종壽終(天壽를 다하고 죽음)하지 못하였다.
禹稷躬稼而有天下하니이다
은 몸소 농사를 지었으되 천하를 소유하였습니다.”
夫子不答하시고
부자夫子께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注]馬曰 禹 盡力於溝洫하고 播百穀이라
마왈馬曰 : 구혁溝洫(水路)에 힘을 다하고, 백곡百穀의 씨앗을 뿌렸다.
故曰躬稼라하니라
그러므로 ‘궁가躬稼(몸소 농사를 지었다)’라고 한 것이다.
禹及其身하고 稷及後世하야 皆王하니라
는 자신의 에, 후손後孫에 미쳐 모두 이 되었다.
适意欲以禹稷比孔子 孔子謙이라 故不答也시니라
남궁괄南宮适의 생각은 공자孔子에 빗대고자 한 것인데 공자孔子는 겸손하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南宮适커늘 子曰
남궁괄南宮适이 나가자, 께서 말씀하셨다.
君子哉
군자君子로다.
若人이여
이 사람이여!
尙德哉
을 숭상하는구나.
若人이여
이 사람이여!”
[注]孔曰 賤不義而貴有德이라
공왈孔曰 : 의롭지 못한 자들을 하게 여기고 이 있는 이들을 귀하게 여겼다.
故曰君子라하시니라
그러므로 ‘군자君子’라고 하신 것이다.
[疏]‘南宮适’至‘若人’
의 [南宮适]에서 [若人]까지
○正義曰 : 此章賤不義而貴有德也.
정의왈正義曰 : 이 은 의롭지 못한 자들을 하게 여기고 이 있는 이들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南宮适’者, 魯大夫南宮敬叔也.
[南宮适] 나라 대부大夫 남궁경숙南宮敬叔이다.
‘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者, 羿, 有窮國之君,
[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羿나라의 임금이다.
以其善射, 篡夏后相之位, 其臣寒浞殺之.
활을 잘 쏘았으므로 나라 임금 왕위王位찬탈簒奪하였는데, 그 신하 한착寒浞羿살해殺害하였다.
奡, 寒浞之子, 多力.
한착寒浞의 아들로 힘이 세었다.
盪, 推也, 能陸地推舟而行, 爲夏后少康所殺.
(밂)이니, 육지에서 배를 밀고 다닐 정도로 힘이 세었으나, 나라 임금 소강少康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然猶焉也.
과 같다.
此二子者, 皆不得其壽終而死焉.
이 두 사람은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하였다.
禹盡力於溝洫, 洪水旣除, 烝民乃粒.
구혁溝洫에 힘을 다하여 홍수洪水를 제거하니 백성들이 곡식을 먹게 되었다.
稷, 后稷也,
후직后稷이다.
名棄, 周之始祖, 播種百穀.
이름은 인데 나라의 시조始祖백곡百穀의 씨앗을 뿌렸다.
皆以身親稼穡, 故曰 “禹‧稷躬稼”也.
〈이 두 사람은〉 모두 몸소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우직궁가禹稷躬稼’라고 한 것이다.
禹受舜禪, 稷及后世, 至文‧武皆王天下,
선위禪位를 받고, 은 그 후손 문왕文王무왕武王에 이르러 모두 천하天下를 통치하는 이 되었다.
故曰 “而有天下也”.
그러므로 ‘이유천하야而有天下也’라고 한 것이다.
‘夫子不答’者, 适意欲以禹‧稷比孔子, 孔子謙, 故不答也.
[夫子不答] 남궁괄南宮适의 생각은 공자孔子에 빗대고자 한 것인데, 공자孔子는 겸손하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南宮适出’者, 旣問而退也.
[南宮适出] 묻고 난 뒤에 물러간 것이다.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者, 以其賤奡‧羿之不義, 貴禹‧稷之有德,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 그가 羿불의不義를 천하게 여기고 유덕有德을 귀하게 여겼다.
故美之曰 “君子哉,
그러므로 그를 아름답게 여기시어 “군자君子로다.
若此人也,
이 사람이여!
尙德哉,
을 숭상하는구나.
若此人也”.
이 사람이여!”라고 하신 것이다.
[疏]○注 ‘孔曰 适 南宮敬叔 魯大夫’
의 [孔曰 适 南宮敬叔 魯大夫]
○正義曰 : 此卽南宮縚也,
정의왈正義曰 : 이가 바로 남궁도南宮縚이다.
字子容.
자용子容이다.
鄭注檀弓云 “敬叔, 魯孟僖子之子仲孫閱” 是也.
예기禮記》 〈단궁檀弓〉의 정현鄭玄 에 “경숙敬叔나라 맹희자孟僖子의 아들 중손열仲孫閱이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 사람이다.
[疏]○注 ‘孔曰’至‘所殺’
의 [孔曰]에서 [所殺]까지
○正義曰 : 云‘羿 有窮國之君’者, 羿居窮石之地, 故以窮爲國號,
정의왈正義曰 : [羿 有窮國之君] 羿궁석窮石이란 땅에 살았기 때문에 국호國號로 삼은 것이다.
以有配之, 猶言有周‧有夏也.
에〉 ‘’字를 붙인 것은 〈나라를〉 ‘유주有周’라 하고, 〈나라를〉 ‘유하有夏’라고 하는 것과 같다.
窮國之君曰羿, 羿是有窮君之名號也.
나라 임금을 ‘羿’라 하였으니, 羿는 바로 나라 임금의 명호名號(명칭)이다.
孔注尙書云 “羿, 諸侯名.” 杜注左傳云 “羿, 有窮君之號” 則與孔不同也.
상서尙書》의 공안국孔安國 에는 “羿제후諸侯명호名號이다.”라고 하였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두예杜預 에는 “羿유궁국有窮國 임금의 명호名號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곳의 공안국孔安國과 같지 않다.
說文云 “羿, 帝嚳射官也” 賈逵云 “羿之先祖, 世爲先王射官, 故帝嚳賜羿弓矢, 使司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羿제곡帝嚳사관射官이다.”라고 하였는데, 가규賈逵는 “羿선조先祖가 대대로 선왕先王사관射官이었기 때문에 제곡帝嚳羿에게 궁시弓矢를 주어 활 쏘는 일을 맡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淮南子云 “堯時十日竝 堯使羿射九日而落之” 楚辭天問云 “羿焉彃日, 烏解羽.” 歸藏易亦云 “羿彃十日”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에 “제요帝堯 때에 열 개의 해가 동시에 뜨니, 제요帝堯羿를 시켜 아홉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리게 하였다.”라고 하였고, 《초사楚辭》 〈천문天問〉에 “羿가 해를 쏘니, 까마귀의 깃이 떨어졌다.”라고 하였고, 《귀장역歸藏易》에도 “羿가 열 개의 해를 활로 쏘았다.”라고 하였다.
說文云 “彃者, 射也”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은 활을 쏨이다.”라고 하였다.
此三者, 言雖不經, 難以取信, 要言帝嚳時有羿, 堯時亦有羿,
이 세 책의 기록은 말이 황당하여 믿을 수 없으나, 요컨대 제곡帝嚳 때에도 羿가 있었고, 제요帝堯 때에도 羿가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則羿是善射之號, 非復人之名字.
그렇다면 羿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이르는 칭호稱號이니 다시 사람의 이름자가 될 수 없다.
信如彼言, 則不知此羿名爲何也.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 羿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云‘篡夏后相之位’者,
[篡夏后相之位]
襄四年左傳曰 “昔有夏之方衰也, 后羿自鉏遷於窮石, 因夏民以代夏政”
양공襄公 4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옛날 나라가 쇠락衰落할 때에 후예后羿에서 궁석窮石으로 옮겨 와서 나라 백성에 의지해 〈나라를 무너뜨리고〉 정권政權을 잡았다.”라고 하였는데,
杜注云 “禹孫大康淫放失國, 夏人立其弟仲康, 仲康亦微弱,
두예杜預에 “우왕禹王의 손자 태강太康이 음란하고 방탕하여 나라를 잃으니, 나라 사람들이 그 아우 중강仲康을 임금으로 세웠으나, 중강仲康 역시 미약微弱하였다.
仲康卒, 子相立, 羿遂代相, 號曰有窮” 是也.
중강仲康이 죽고 그 아들 이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는데, 羿가 드디어 을 죽이고 대신 임금이 되어 국호國號를 ‘유궁有窮’이라 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其臣寒浞殺之 因其室而生奡’者, 傳又曰 “寒浞, 伯明氏之讒子弟也,
[其臣寒浞殺之 因其室而生奡]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또 “한착寒浞백명씨伯明氏간사奸邪한 자식이다.
伯明后寒棄之, 夷羿收之, 信而使之, 以爲己相.
한국寒國의 임금 백명伯明이 그를 버렸는데 후예后羿가 그를 거두어 길러, 믿고서 부려 자기의 승상丞相으로 삼았다.
浞行媚于內, 而施賂于外, 愚弄其民, 而虞羿于田, 之詐慝, 以取其國家, 內外咸服.
한착寒浞은 안으로는 궁중宮中여인女人들에게 아첨하고, 밖으로는 관리官吏들에게 뇌물을 뿌리며, 백성을 우롱愚弄하고 후예后羿를 사냥의 즐거움에 빠지게 하고서 조정朝廷사특邪慝한 무리들을 심어 그 국가國家탈취奪取하니 안팎이 모두 복종服從하였다.
羿猶不悛, 將歸自田, 家衆殺而亨之.
그런데도 후예后羿는 여전히 고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사냥에서 돌아올 때에 가중家衆살해殺害하여 삶았다.
浞因羿室, 生澆及豷” 是也.
한착寒浞후예后羿의 아내를 하여 를 낳았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澆卽奡也,
는 바로 이다.
聲轉字異, 故彼此不同.
이 변하여 글자가 달라졌기 때문에 저곳과 이곳의 글자가 같지 않다.
云‘奡多力 能陸地行舟’者, 以此文云奡盪舟, 盪訓推也,
[奡多力 能陸地行舟] 이 글에 말한 ‘오탕주奡盪舟’의 ‘’은 이 ‘’이다.
故知多力, 能陸地推舟而行也.
그러므로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밀고 다닌 것을 알 수 있다.
云‘爲夏后少康所殺’者, 哀元年左傳曰 “昔有過澆殺斟灌, 以伐斟鄩, 滅夏后相,
[爲夏后少康所殺] 애공哀公 원년元年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옛날에 과국過國짐관斟灌을 죽이고서 짐심斟鄩을 공격하여 하후夏后(夏나라 임금) 을 멸망시켰다.
后緡方娠, 逃出自竇, 歸于有仍, 生少康焉.
이때 하후夏后 의 아내 후민后緡이 임신 중이었는데 수챗구멍으로 도망쳐 나와 나라로 가서 소강少康을 낳았다.
爲仍牧正. 澆能戒之. 澆使椒求之,
뒤에 소강少康나라의 목정牧正이 되어 해독害毒으로 여겨 경계하니, 가 그 신하 를 보내어 소강少康을 잡아오게 하였다.
逃奔有虞, 爲之正, 以除其害.
그러자 소강少康나라로 도망가서 나라의 포정庖正(廚房長)이 되어 그 위해危害를 면하였다.
虞思於是妻之以二姚, 而邑諸綸, 有田一成, 有衆一旅.
나라 임금 는 두 딸을 그의 아내로 주고서 봉읍封邑으로 주니, 소강少康토지土地 1(사방 1)과 민중民衆 1(500人)를 갖게 되었다.
能布其德, 而兆其謀, 以收夏衆, 撫其官職, 使女艾諜澆, 使季杼誘豷, 遂滅過‧戈, 復禹之績” 是也.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고 비로소 나라를 회복恢復할 계획을 세워 나라 유민遺民들을 불러 모으고 관직官職에 있는 자들을 위무慰撫하는 한편 여애女艾간첩間諜으로 보내어 의 동정을 살피게 하고 계저季杼를 보내어 의 아우 를 유인하게 하여 마침내 과국過國과국戈國을 멸하고서 우왕禹王업적業績(領土)을 수복收復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過, 澆國. 戈, 豷國.
의 나라이고, 의 나라이다.
如彼傳文, 當是羿逐出后相, 乃自立爲天子, 相依斟灌‧斟鄩, 夏祚猶尙未滅, 蓋與羿竝稱王也.
전문傳文대로라면 당시에 羿하후夏后 을 축출하고서 스스로 천자天子가 되었으나, 짐관斟灌짐심斟鄩에 의지하여 나라의 국운國運을 이어갔으니, 대개 羿와 함께 나란히 을 칭하였을 것이다.
及寒浞殺羿, 因羿室而生澆, 澆已長大, 自能用師, 始滅后相.
한착寒浞羿를 죽이고서 그 아내를 취하여 를 낳았고, 가 장성하여 스스로 군대를 사용해 전쟁을 할 수 있게 되어서야 비로소 하후夏后 격멸擊滅하였다.
相死之後, 始生少康,
이 죽은 뒤에 소강少康출생出生하였다.
少康生杼, 杼又年長, 已堪誘豷, 方始滅浞而立少康.
소강少康를 낳고, 가 또 장성하여 를 유인하는 일을 감당할 만하게 된 뒤에 비로소 한착寒浞격멸擊滅하고서 소강少康을 세웠다.
計大康失邦, 及少康紹國, 向有百載, 乃滅有窮.
태강太康이 나라를 잃은 때로부터 소강少康이 나라를 회복한 때까지를 계산해보면 100년이 지나서야 유궁有窮격멸擊滅한 것이다.
而夏本紀云 “仲康崩, 子相立. 相崩, 子少康立.” 都不言羿‧浞之事, 是馬遷之疎也.
그런데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에는 “중강仲康하자, 아들 즉위卽位하고, 하자 아들 소강少康이 즉위하였다.”라고 하였고, 羿한착寒浞의 일을 전혀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마천司馬遷소루疏陋(見聞이 넓지 않음)해서이다.
[疏]○注 ‘馬曰’至‘答也’
의 [馬曰]에서 [答也]까지
○正義曰 : 云‘禹盡力於溝洫’者, 泰伯篇文.
정의왈正義曰 : [禹盡力於溝洫] 《논어論語》 〈태백泰伯〉篇의 글이다.
云‘稷播百穀’者, 舜典文也.
[稷播百穀] 《서경書經》 〈순전舜典〉의 글이다.
또 〈익직益稷〉에 “후직后稷과 함께 파종하여, 백성들이 먹거리를 얻기 어려운 곳으로 가서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물을 터 어별魚鼈을 잡아 선식鮮食(날로 먹음)하는 법을 가르치고, 〈또 백성들로 하여금〉 있는 것을 없는 곳으로 옮기고 저축하고 있는 물건을 교역交易하도록 권면하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곡식을 먹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故摠曰躬稼.
그러므로 총괄하여 ‘몸소 농사를 지었다.’라고 한 것이다.
云‘禹及其身 稷及後世 皆王’者, 禹受舜禪, 是及身也. 稷后十五世, 至文王受命, 武王誅, 是及後世也.
[禹及其身 稷及後世 皆王] 선양禪讓을 받았으니 자신의 에 미쳐 천자天子가 된 것이고, 후직后稷은 15 뒤에 문왕文王에 이르러 천명天命을 받았고, 무왕武王상주商紂주벌誅伐하였으니 후세後世에 미쳐 이 된 것이다.
皆王有天下而爲王也.
모두 이 되었다는 것은 천하天下소유所有하여 이 되었다는 것이다.
云‘适意欲以禹稷比孔子’者, 言孔子勤行道德, 亦當王有天下也.
[适意欲以禹稷比孔子] 공자孔子도덕道德을 부지런히 실행하셨으니, 공자 또한 이 되어 천하를 소유하심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孔子持謙, 不敢以己比於禹‧稷,
공자孔子께서는 겸손한 덕을 지니셨으므로 감히 자신을 에 견줄 수 없으셨다.
故不答其言也.
그러므로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역주
역주1 (生)[出] : 저본에는 ‘生’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浦鏜이 이르기를 ‘生은 出의 誤字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出’로 바로잡았다.
역주2 (椒)[樹] : 저본에는 ‘椒’로 되어있으나, 《春秋左氏傳》 襄公 4년에 의거해 ‘樹’로 바로잡았다.
역주3 (其心)[惎] : 저본에는 ‘其心’으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明監本과 毛本에 ‘其心’ 2자가 모두 ‘惎’로 되어있으니, 살펴보건대 ‘惎’로 되어있는 것이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惎’로 바로잡았다.
역주4 (苞)[庖] : 저본에는 ‘苞’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明監本과 毛本에 ‘苞’가 ‘庖’로 되어있으니, 살펴보건대 ‘苞’자는 誤字이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庖’로 바로잡았다.
역주5 曁稷播……烝民乃粒 : 이 대목은 《尙書正義》의 孔安國의 傳과 孔穎達의 疏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孔安國은 ‘奏庶艱食’을 ‘백성들[庶]이 먹거리[食]를 구하기 어려운 곳으로 나아가다[奏].’로 해석하여, ‘艱食’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움으로 풀었다.
역주6 (討)[紂] : 저본에는 ‘討’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北監本과 毛本에 ‘討’가 ‘紂’로 되어있으니, 살펴보건대 ‘紂’자가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해 ‘紂’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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