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子[ㅣ] 曰 爲命애 裨諶이(은) 草創之고 世叔이(은) 討論之고 行人子羽ㅣ() 修飾之고 東里子産이(은) 潤色之니라(니라)
注
裨諶以下四人은 皆鄭大夫라 草는 略也요 創은 造也니 謂造爲草藁也라 世叔은 游吉也니 春秋傳에 作子大叔하니라 討는 尋究也요 論은 講議也라 行人은 掌使之官이요 子羽는 公孫揮也라 修飾은 謂增損之라 東里는 地名이니 子産所居也라 潤色은 謂加以文采也라 鄭國之爲辭命에 必更此四賢之手而成하여 詳審精密하여 各盡所長이라 是以로 應對諸侯에 鮮有敗事하니 孔子言此는 蓋善之也시니라
[James Legge] The Master said, “In preparing the governmental notifications, P'î Shan first made the rough draft; Shî-shû examined and discussed its contents; Tsze-yü, the manager of foreign intercourse, then polished the style; and, finally, Tsze-ch'ân of Tung-lî gave it the proper elegance and finish.”
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鄭)나라에서 외교문서(外交文書)를 만들 때에 비침(裨諶)이 초안을 작성하고 세숙(世叔)이 검토하여 따지고 행인(行人)인 자우(子羽)가 수식(修飾)을 하고 동리(東里)의 자산(子産)이 윤색(潤色)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