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管仲은 齊大夫로 名夷吾니 相桓公하여 霸諸侯하니라 器小는 言其不知聖賢大學之道라 故로 局量褊淺하고 規模卑狹하여 不能正身修德以致主於王道라
或[이] 曰 管仲은(이) 儉乎ㅣ잇가 曰 管氏ㅣ 有三歸며 官事[를] 不攝니 焉得儉이리오
注
或人은 蓋疑器小之爲儉이라 三歸는 臺名이니 事見說苑하니라 攝은 兼也니 家臣은 不能具官하고 一人常兼數事어늘 管仲이 不然하니 皆言其侈라
然則管仲은(이) 知禮乎ㅣ잇가(잇가) 曰 邦君이(이아) 樹塞門이어 管氏ㅣ 亦樹塞門며 邦君이(이아) 爲兩君之好애 有反坫이어 管氏ㅣ 亦有反坫니 管氏而知禮면 孰不知禮리오
注
或人은 又疑不儉爲知禮라 屛을 謂之樹요 塞은 猶蔽也니 設屛於門하여 以蔽內外也라 好는 謂好會요 坫은 在兩楹之間하니 獻酬飮畢이면 則反爵於其上이라 此皆諸侯之禮어늘 而管仲이 僭之하니 不知禮也라 ○ 愚謂孔子譏管仲之器小하시니 其旨深矣라 或人이 不知而疑其儉이라 故로 斥其奢하여 以明其非儉하시고 或又疑其知禮라 故로 又斥其僭하여 以明其不知禮하시니 蓋雖不復明言小器之所以然이나 而其所以小者를 於此에 亦可見矣라 故로 程子曰 奢而犯禮하니 其器之小를 可知라 蓋器大면 則自知禮而無此失矣라하시니 此言을 當深味也니라 蘇氏曰 自修身正家로 以及於國이면 則其本深하고 其及者遠이니 是謂大器라 揚雄所謂大器는 猶規矩準繩하여 先自治而後治人者 是也라 管仲은 三歸反坫하고 桓公은 內嬖六人하여 而霸天下하니 其本이 固已淺矣라 管仲死하고 桓公薨에 天下不復宗齊하니라 楊氏曰 夫子大管仲之功而小其器하시니 蓋非王佐之才면 雖能合諸侯, 正天下라도 其器를 不足稱也라 道學이 不明하여 而王霸之略을 混爲一途라 故로 聞管仲之器小면 則疑其爲儉하고 以不儉告之면 則又疑其知禮하니 蓋世方以詭遇爲功하여 而不知爲之範하니 則不悟其小 宜矣로다
[James Legge] The Master said, “Small indeed was the capacity of Kwan Chung!”
2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管仲)은 그릇이 작구나.”
[James Legge] Some one said, “Was Kwan Chung parsimonious?” “Kwan,” was the reply, “had the San Kwei, and his officers performed no double duties; how can he be considered parsimonious?”
이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관중(管仲)은 검소했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삼귀대(三歸臺)를 지었으며 가신(家臣)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James Legge] “Then, did Kwan Chung know the rules of propriety?” The Master said, “The princes of States have a screen intercepting the view at their gates. Kwan had likewise a screen at his gate. The princes of States on any friendly meeting between two of them, had a stand on which to place their inverted cups. Kwan had also such a stand. If Kwan knew the rules of propriety, who does not know them?”
“그러면 관중(管仲)은 예(禮)를 알았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임금이어야 병풍으로 문을 가릴 수 있는데 관중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임금이어야 두 임금이 우호(友好)로 만날 때에 술잔을 되돌려 놓는 자리를 둘 수 있는데 관중도 술잔을 되돌려 놓은 자리를 두었으니, 그가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