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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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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曰:
“臣竊惑王之輕齊易楚, 而也.
臣聞, 王兵勝而不驕, .
勝而不驕, 故能服世; 約而不忿, 故能從鄰.
今王廣德魏‧趙, 而輕失齊, 驕也;
戰勝宜陽, 不恤楚交, 忿也. 驕忿非伯主之業也.
臣竊爲大王慮之而不取也.
詩云:靡不有初, 鮮克有終.
之所重者, 唯始與終.
何以知其然? 昔智伯瑤殘范‧中行, 圍逼晉陽, 卒爲三家笑;
吳王夫差, 勝齊於艾陵, 爲黃池之遇, 無禮於宋, 遂與勾踐禽, 死於;
伐楚勝齊, 制趙‧韓之兵, 驅十二諸侯, 以朝天子於孟津, 後子死, .
三者非無功也, 能始而不能終也.
今王破宜陽, 殘, 而使天下之士不敢言; 雍天下之國, 徙兩周之疆, 而世主;
取黃棘, 而韓‧楚之兵不敢進.
王若能爲此尾, 則三王不足四, 五伯不足六. 王若不能爲此尾, 而有後患, 則臣恐諸侯之君, , 以王爲也.
詩云:. 此言末路之難.
今大王皆有驕色, 以臣之心觀之, 天下之事, 依世主之心, 非楚受兵, 必秦也.
何以知其然也? 秦人援魏以拒楚, 楚人援韓以拒秦,
四國之兵敵, 而未能復戰也. 齊‧宋在繩墨之外以爲權, 故曰先得齊‧宋者伐秦.
秦先得齊‧宋, 則韓氏鑠; 韓氏鑠, 則楚孤而受兵也;
楚先得齊, 則魏氏鑠; 魏氏鑠, 則秦孤而受兵矣.
若隨此計而行之, 則者, 必爲天下笑矣.”


진왕秦王에게 말하다
어떤 이가 진왕秦王에게 말하였다.
“저는 대왕께서 나라를 가볍게 여기고 나라를 쉽게 생각하며 나라를 짐승 취급하는 것이 못내 의혹됩니다.
저는 듣건대 왕자王者는 싸움에 이겨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패자伯者맹주盟主가 되어도 원망을 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맹주가 되고도 원망을 사지 않기 때문에 이웃 나라가 복종해 오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나라‧나라에게는 은덕을 널리 베풀면서 나라를 경홀輕忽히 여기는 것은 교만입니다.
의양宜陽 싸움에서 이긴 후, 그때 우방이던 나라와의 외교를 돌보지 않으신 것이 곧 원망을 사는 일인데, 이 교만과 원망은 패주伯主가 할 일이 아닙니다.
제가 대왕을 위해서 생각해 보아도 잘못이라고 여겨집니다.
시경詩經》에 ‘처음에는 잘하려 하지 않은 이가 없으나 끝까지 잘하는 이는 드물다[靡不有初 鮮克有終]’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선왕先王들께서 중하게 여긴 바는 시작과 끝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느냐 하면 옛날 지백智伯 범씨范氏중항씨中行氏잔멸殘滅시킨 후에 〈 양자襄子를〉 진양晉陽에서 포위 압박하다가 마침내 삼가三家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오왕吳王 부차夫差월왕越王 구천勾踐을 몰아 회계산會稽山에서 살게 하고, 애릉艾陵에서 나라를 크게 이기고는 황지黃池에서 회맹會盟할 때 나라에 무례하게 굴다가 마침내 월왕 구천에게 사로잡혀 간수干隧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양왕梁王(魏 혜왕惠王)이 나라‧나라를 쳐 이기고, 나라‧나라의 군대를 제압한 후, 열두 제후를 몰고 맹진孟津에서 천자天子를 알현하였으나 후에 태자는 죽고 자신은 포관布冠으로 나라에 구류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셋은 공이 없는 게 아니나 다만 시작은 잘하였으나 끝을 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종말을 맞은 것입니다.
지금 대왕은 의양宜陽을 깨뜨리고 삼천三川을 잔폐시켜 천하天下의 선비들로 하여금 감히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시고, 천하 영토를 끌어안아 차지하고 양주兩周의 땅을 옮겨 놓아 제후들이 감히 양후陽侯의 요새를 엿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조黃棗 땅을 취하자 나라‧나라의 군사들이 진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마무리를 잘하신다면 삼왕三王사왕四王으로 해도 부족하고, 오패五伯육백六伯로 해도 부족하다 하겠지만 만약 왕께서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여 후환이 생긴다면, 저로서는 제후의 임금들과 근처의 선비들이 대왕을 옛날 오왕吳王 부차夫差지백智伯 처럼 만들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시경詩經》에 ‘1백 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가서도 절반 왔다고 여기라[行百里者 半於九十]’라고 하였으니, 이는 마지막 마무리가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교만한 표정을 짓고 계시는데, 제 마음으로 보건대 천하의 일은 제후들의 마음에 따라 나라 아니면 나라가 반드시 병화兵禍를 입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떻게 그럴 줄 아는가 하면 나라가 나라를 원조하면서 초나라를 거절하면, 초나라는 나라를 도와 진나라에 대항할 것입니다.
이 네 나라의 군사는 서로 비슷하여 다시 싸울 수 없는데, 그렇게 되면 나라나 나라는 규획規劃할 수 없는 권한을 누리게 되므로 먼저 제나라‧송나라를 끌어들이는 나라가 진나라를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진나라가 먼저 제나라‧송나라를 끌어들이면 한나라가 사그라지고, 한나라가 사그라지면 초나라가 고립되어 병화兵禍를 입을 것입니다.
초나라가 먼저 제나라를 끌어들이면 위나라가 사그라지고, 위나라가 사그라지면 진나라가 고립되어 병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런 계략에 따라 실행된다면 진나라‧초나라 두 나라는 틀림없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역주
역주1 103. 謂秦王 : 이 장의 사건은 宜陽之戰(002‧031‧064‧068‧207‧234‧384‧385‧386장) 조금 뒤의 일로 보인다. 101‧102‧159장 등 참조.
역주2 秦王 : 원주에는 秦 始皇이라 하였지만, 내용으로 보아 武王이나 昭王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역주3 卑畜韓 : 韓나라를 소, 닭 등 가축처럼 천시함.
역주4 원주] 伯主約而不忿 : 霸者는 約儉勞謙하므로 때문에 忿怨을 사지 않는다는 뜻.
역주5 先王 : 聖王. 堯‧舜‧禹‧湯과 文王‧武王을 가리킴. 원주에 “先王은 聖王이다. 敬始愼終하므로 그 때문에 唯始與終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6 棲越於會稽 : 周 敬王 26년(B.C.494)에 越王 勾踐이 吳를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夫椒山에서 吳에게 대패하였다. 이에 勾踐은 會稽山(浙江省 紹興縣)에 피하여 臥薪嘗膽하며 살았다. 그후 周 元王 3년(B.C.473)에 吳가 齊를 치고, 晉‧宋과 다투는 사이에 越이 다시 공략하여 결국 吳는 망하고 만다.
역주7 원주] 干隧 :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를 포로로 잡은 곳. 지금의 강소성 吳縣 북쪽. 부차는 伍子胥의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자살하고 말았다. 어떤 本에는 隧가 隊로 되어 있다.
역주8 梁君 : 梁 惠王. 양혜왕이 楚‧齊를 쳐 이기고 趙‧韓을 누른 다음, 魯‧衛‧曹‧宋‧鄭‧陳‧許 등을 거느리고 周 天子를 孟津(지금의 河南省 孟縣 河陽渡)에서 朝見하였다. 그후 周 顯王 16년(B.C.353) 齊나라가 田忌‧孫臏 등을 시켜 趙나라를 구하게 하였다. 魏나라는 太子 申과 龐涓 등으로 馬陵(지금의 河北省 大名縣)에서 막게 하였지만 대패하여 龐涓은 자살하고 太子 申도 포로가 되었다가 자살하고 만다. 《史記》 〈孫子吳起列傳〉 참조.
역주9 身布冠而拘於秦(齊) : 다른 책에는 이런 내용이 보이지 않으나 《呂氏春秋》 〈不屈〉篇에 “혜왕이 布冠차림으로 陻에 구류되었는데, 齊 威王이 하마터면 받아들이지 않을 뻔했다.”라고 하였다. 秦은 齊의 誤字.
역주10 三川 : 伊河, 洛河, 黃河가 흘러가는 곳. 원주에는 “처음에 秦 昭王이 東‧西周를 멸하고 宜陽 및 三川郡을 두었다. 그 때문에 ‘破宜陽 殘三川’이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1 不敢交(窺)陽侯之塞 : 陽侯는 古代 諸侯國 이름. 孟津 근처에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 땅의 위치를 말한다. 交는 交會의 뜻인데 窺로 된 本도 있어 이를 따랐다.
역주12 河‧濟之士 : 黃河와 濟水 유역의 나라. 즉 齊‧趙‧韓‧魏.
역주13 원주] 吳‧智之事 : 吳는 吳王 夫差, 智는 智伯이며 事는 滅亡之事이다.
역주14 行百里者 半於九十 : 지금의 《詩經》에 없는 逸詩로 본 《戰國策》에 의해 널리 알려진 구절이다.
역주15 원주] 兩國 : 秦나라와 楚나라이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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