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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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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奉陽君告曰:
‘齊王使曰: 「必不反, 今召之矣.
必不任蘇子以事, 今封而相之.
令不合燕, 今以燕爲上交.
吾所恃者也, 今其言變有甚於其父,
順始與蘇子爲讎. 見之無厲,
今賢之兩之, 已矣,
吾無齊矣!」 奉陽君之怒甚矣.
之不信趙, 而小人奉陽君也, 因是而倍之.
不以今時大紛之, 解而復合, 則後不可奈何也.
故齊‧趙之合苟可循也, 死不足以爲臣患;
逃不足以爲臣恥;
爲諸侯, 不足以爲臣榮;
被髮自漆爲厲, 不足以爲臣辱.
然而臣有患也,
臣死而齊‧趙不循, 惡交分於臣也, 而後相效,
是臣之患也.
若臣死而必相攻也, 臣必勉之而求死焉.
堯‧舜之賢而死, 禹‧湯之知而死, 孟賁之勇而死, 之力而死,
生之物固有不死者乎?
在必然之物以成所欲, 王何疑焉?
臣以爲不若逃而去之.
臣以韓‧魏循, 自齊
而爲之取秦, 深結趙以勁之.
如是則近於相攻.
臣雖爲之累燕,
奉陽君告朱讙曰: 「蘇子怒於燕王之以吾,
故弗予相, 又不予卿也, 殆無燕矣.」
其疑至於此, 故臣雖爲之不累燕, 又不王.
再逃湯而之桀, 再逃桀而之湯,
果與, 而以湯爲天子.
逃楚而之吳, 果與
之戰, 而報其父之讎.
今臣逃而紛齊‧趙, 始可著於春秋.
且擧大事者, 孰不逃?
桓公之難, 逃於魯; 陽虎之難, ; 逃於楚; 逃於秦;
相中山也使趙,
趙劫之求地, 望諸攻關而出逃; , 薛公釋逃出於關, 三晉稱以爲士.
故擧大事, 逃不足以爲辱矣.”
卒絶齊於趙, 趙合於燕以攻齊, 敗之.


459. 봉양군奉陽君주환朱讙조족趙足에게 고하다
소대가 연소왕에게 말하였다. “봉양군奉陽君주환朱讙조족趙足에게 고하였습니다.
제왕齊王(민왕閔王)이 공옥단公玉丹을 시켜 이태李兌에게 한민韓珉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였는데 지금 한민을 불러들였다.
소대蘇代나라에서 임무를 맡기지 말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역시 그를 봉하여 재상으로 삼았다.
그런가 하면 나라와는 연합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연나라와 외교가 가장 밀접하다.
내가 믿었던 것은 우리에게 인질로 와 있는 제나라 공자公子 인데 그의 언변은 자기 아버지보다 변화가 심하다.
순은 처음에는 소대와 원수 사이여서 서로 만난다 해도 우리에게는 해롭지 않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어질다고 칭찬하면서 둘이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이제 제나라의 지지를 잃었다.’ 봉양군은 아주 심하게 화가 나 있습니다.
제나라 왕이 조나라를 믿지 못한 것을 안다면 봉양군은 소인이어서 이를 인하여 결국 제나라를 배반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이때에 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큰 분란이 일어나게 하지 못하고 그들이 다시 화해하고 연합하게 되면 그 뒷일은 연나라로서 감당해 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나라‧조나라가 둘 모두 진실로 연나라에 따르면 저는 죽어도 걱정이 없겠습니다.
또 어디로 쫓김을 당해도 저는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겠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제후가 되어도 저는 이를 영광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또 머리를 풀어헤치고 스스로 옻칠을 하여 몹쓸 병을 앓는다 해도 저는 이를 치욕으로 여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단 하나 근심되는 것이 있습니다.
저만 죽고 제나라‧조나라가 연나라를 따르지 않으면서 저 때문에 세 나라 모두의 외교가 악화되면 이는 저의 책임으로 뒷사람들이 이를 흉내내어 모방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근심입니다.
만약 제가 죽고 제나라‧조나라가 서로 침벌하기만 하면 저는 힘써 죽음의 길을 택할 것입니다.
은 어질었으나 죽었고, 은 지혜로웠으나 죽었으며 맹분孟賁 같은 용사勇士는 물론, 오획烏獲 같은 역사力士도 결국 죽었습니다.
생명을 가진 것으로 과연 죽음이 없는 것이 있습니까?
틀림없이 죽을 목숨을 가지고 뜻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데 왕께서는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제가 거짓 연나라를 도망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가 나라‧나라를 거쳐 다시 제나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제나라를 위해 나라와 연합하고, 깊이 조나라와 결교結交하여 그 세력을 강화시키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서로 공격할 형세에 근접하게 됩니다.
신이 그렇게 하겠지만 나라에 를 끼치게 될까 염려됩니다.
봉양군이 주환에게 ‘소대가 연왕에게 당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다.
연나라가 그에게 재상 자리도 주지 않고 상경上卿조차도 임명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마음 속에 연나라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의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제가 그렇게 하더라도 연나라에 어떤 폐도 끼치지 않게 되며 또 대왕께 도 되지 않습니다.
옛날 이윤伊尹은 두 번이나 에게서 도망하여 에게 갔다가 또다시 걸을 떠나 탕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명조鳴條의 싸움을 통해 탕을 천자天子가 되게 하였습니다.
오자서伍子胥나라에서 도망하여 나라로 가서 결국 백거柏擧의 전투에서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습니다.
지금 제가 연나라에서 도망하여 제나라와 조나라에 분란이 일어나도록 하여 춘추春秋에 기록되고자 합니다.
큰 일을 이룬 자, 그 누군들 도망자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환공桓公관중管仲나라에서 도망하였고, 양호陽虎의 난 때 공자孔子나라로 도망하였으며, 장의張儀나라에서 도망하였고, 백규白珪나라에서 도망하였습니다.
망제군望諸君중산中山이었을 때 한 번은 그가 나라에 사신으로 갔었습니다.
조나라가 위협하여 땅을 할양하라고 하자 망제군望諸君은 조나라 국경 관문을 공격하고 도망쳐 나와 버렸으며 또 외손外孫의 난 때 설공薛公은 수레에 실은 물건을 모두 버리고 함곡관을 빠져 탈출하였는데 그때 삼진三晉은 모두 그를 뛰어난 인물이라고 칭찬하였지요.
그러므로 큰 일을 하는 자는 절대로 도망을 치욕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마침내 제나라를 조나라로부터 단교시키고 조나라를 연나라와 연합시켜 제나라를 공격하여 이를 패배시켰다.


역주
역주1 : 이 이야기는 앞장인 458장과 연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내용이 매우 복잡하여 난해하다. 여기의 話者는 蘇代이며, 말을 듣고 있는 자는 燕王(昭王)으로 보인다.
역주2 朱讙 : 趙나라 신하.
역주3 趙足 : 趙나라 신하. 132‧272장 참조.
역주4 公王(玉)曰(丹) : 公玉丹의 誤記이다. 《新序》에는 公玉丹. 《史記》에는 公玉帶 등으로 보인다. 公玉이 성씨.
역주5 說(兌) : 원문 ‘說’은 ‘兌’의 誤字.
역주6 韓珉 : 親齊親秦을 주장하던 인물로 당시 趙나라에 있었다. 270‧272장 참조.
역주7 : 齊나라의 公子. 趙나라에 인질로 가 있었다. 073‧270장 참조.
역주8 知(如) : 鮑彪本에 의하여 ‘如’로 고쳤다.
역주9 如(知)齊王[王] : 원문 ‘如’는 ‘知’의 誤字로 보이며 ‘王’자 하나는 衍文이다.
역주10 孟賁‧烏獲 : 孟賁은 고대의 力士.
역주11 [不] : 文義로 보아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2 欲(辱) : 金正煒의 《補釋》에 의하여 ‘辱’으로 고쳤다.
역주13 伊尹 : 《史記》 〈殷本紀〉에 의하면 湯이 다섯 번 초빙하였지만 夏로 도망 갔다가 夏桀의 무도함을 보고 商湯에게 되돌아왔다 한다. 217‧220‧280장 참조.
역주14 鳴條之戰 : 湯이 桀을 멸망시킨 전쟁. 鳴條는 지금의 山西省 安邑縣 북쪽.
역주15 伍子胥 : 父兄이 楚 平王에게 죽자 吳로 도망. 闔廬의 등극을 도운 공으로 重用되어 吳軍을 거느리고 楚나라를 쳐서 郢을 함락하고 이미 죽은 平王의 시신에 채찍질을 하였다. 《史記》 〈伍子胥列傳〉 및 465‧466장 참조.
역주16 伯(柏)擧之戰 : 吳王 闔廬가 伍子胥를 시켜 楚나라 서울 郢을 점령한 전쟁. B.C.506년의 일. 柏擧로도 쓰며, 지금의 湖北省 麻城縣.
역주17 伯(柏)擧 : 《左傳》에 의하여 ‘柏’으로 고쳤다.
역주18 管仲 : 公子 小白과 公子 糾의 齊나라 왕위 다툼에서 公子 糾를 도왔으나 鮑叔의 도움으로 환공의 相이 되었다. 《史記》 〈管晏列傳〉 및 〈齊太公世家〉 등 참조. B.C.685년의 일.
역주19 孔子逃於衛 : 《史記》 〈孔子世家〉에 孔子가 10여 년간 周游할 때 衛의 匡(지금의 河南省 長垣縣)에서 공자가 陽虎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포위되었다.
역주20 張儀 : 《史記》 〈張儀列傳〉에 의하면 張儀가 처음 楚나라에 유세갔다가 和氏璧이 없어졌다는 오해를 받아 구타당한 뒤 돌아왔다.
역주21 白珪 : 魏의 재상. 358장 참조.
역주22 望諸 : 中山의 相을 지낸 인물. 藍諸君(493장)이 아닌가 한다. 원래 望諸君은 樂毅이다.(466장 참조).
역주23 外孫之難 : 薛公 田文(孟嘗君)이 齊나라 相에서 물러난 후 일으킨 사건. 아니면 秦에 들어갔다가 鷄鳴狗盜로 살아난 사건이 아닌가 한다.
역주24 戴(載) : 鮑彪本에 의하여 ‘載’로 고쳤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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