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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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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齊田單以卽墨破燕, 殺騎劫.
初, 燕將攻下, 人或讒之.
燕將懼誅, 遂保守聊城, 不敢歸.
田單攻之歲餘, 士卒多死, 而聊城不下.
乃書, 約之矢以射城中, 遺燕將曰:
“吾聞之, 智者不倍時而棄利, 勇士不怯死而滅名, 忠臣不先身而後君.
今公行一朝之忿, 不顧燕王之無臣, 非忠也;
殺身亡聊城, 而威不信於齊, 非勇也;
功廢名滅, 後世無稱, 非知也.
故知者不再計, 勇士不怯死.
今死生榮辱, 尊卑貴賤, 此其一時也. 願公之詳計而無與俗同也.
且楚攻, 魏攻, 齊無南面之心, 以爲亡南陽之害, 不若得之利,
故定計而堅守之.
今秦人下兵, 魏不敢東面, 橫秦之勢合, 則楚國之形危.
且棄南陽, 斷右壤, 存濟北, 計必爲之.
今楚‧魏交退, 燕救不至, 齊無天下之規, 與聊城公據朞年之弊, 卽臣見公之不能得也.
齊必決之於聊城, 公無再計.
彼燕國大亂, 君臣過計, 上下迷惑, 之衆, 五折於外, 萬乘之國, 被圍於趙, 壤削主困, 爲天下戮,
公聞之乎?
今燕王方寒心獨立, 大臣不足恃, 國弊禍多, 民心無所歸.
今公又以弊聊之民, 距全齊之兵, 朞年不解, 是之守也;
食人炊骨, 士無反北之心, 是‧吳起之兵也. 能以見於天下矣!
故爲公計者, 不如罷兵休士, 全車甲, 歸報燕王, 燕王必喜. 士民見公, 如見父母, 交游攘臂而議於世, 功業可明矣.
上輔孤主, 以制群臣; 下養百姓, 以資說士.
矯國革俗於天下, 功名可立也.
意者, 亦捐燕棄世, 東游於齊乎?
請裂地定封, 富比, 世世稱孤寡, 與齊久存, 此亦一計也.
二者顯名厚實也, 願公熟計而審處一也.
且吾聞, 傚小節者不能行大威, 惡小恥者不能立榮名.
此三行者, 鄕里不通也, 世主不臣也.
使管仲終窮抑, 幽囚而不出, 慚恥而不見, 窮年沒壽, 不免爲辱人賤行矣.
然而管子幷三行之過, 據齊國之政, 一匡天下, 九合諸侯, 爲首, 名高天下, 光照鄰國.
爲魯君將, 三戰三北, 而喪地千里.
使曹子之足不離陳, 計不顧後, 出必死而不生, 則不免爲敗軍禽將.
曹子以敗軍禽將, 非勇也; 功廢名滅, 後世無稱, 非知也.
故去三北之恥, 退而與魯君計也, 曹子以爲遭.
齊桓公有天下, 朝諸侯. 曹子以一劍之任, 劫桓公於壇位之上,
顔色不變, 而辭氣不悖. 三戰之所喪, 一朝而反之, 天下震動驚駭, 威信吳‧楚, 傳名後世.
若此二公者, 非不能行小節, 死小恥也,
以爲殺身絶世, 功名不立, 非知也. 故去忿恚之心, 而成終身之名; 除感忿之恥, 而立累世之功.
故業與爭流, 名與天壤相敝也. 公其圖之!”
燕將曰:
“敬聞命矣!”
而去.
故解齊國之圍, 救百姓之死, 仲連之說也.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여 70여 하다
나라가 나라를 공격하여 70여 을 탈취하고 오직 즉묵卽墨만 함락되지 않고 있었다.
나라의 전단田單즉묵卽墨으로써 나라를 격파하고 그 장수 기겁騎劫을 죽였다.
처음에 연나라 장수가 요성聊城을 공격하여 점령하자, 어떤 사람이 〈연왕燕王에게 연나라 장수가 반역을 품고 있다고〉 참소하였다.
연장燕將은 주살당할까 두려워 그만 요성을 지키면서 감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전단이 1년 남짓 공격하였으나 사졸만 많이 죽었을 뿐 요성은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노련魯連이 글을 써서 화살 끝에 매어 성안에 있는 연장燕將에게 쏘아 보냈다.
“내가 듣건대 ‘지혜로운 자는 기회를 어겨 를 놓치는 일이 없으며, 용사는 죽음이 두려워 명예를 멸하지 아니하며, 충신은 자신을 먼저하고 임금을 뒤로 미루지 않는다’고 하였소.
그런데 께서는 하루 아침의 분노 때문에 연왕燕王이 신하를 잃게 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불충不忠이외다.
몸을 죽여 요성을 하고도 위세가 제나라에 미치지 못하니 이는 용맹이라 할 수 없소이다.
은 사라지고 명예는 무너져 후세에 일컬어짐이 없음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오.
그러므로 지자知者는 계획을 다시 짜지 아니하며 용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오.
지금 생사‧영욕과 존비‧귀천이 모두 이 순간에 결정되니, 원컨대 께서는 잘 생각해서 속인俗人들과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남양南陽을 공격하고 나라는 평륙平陸을 공격하지만 우리 제나라는 남쪽으로 그들과 대항할 마음이 없으며 오히려 남양을 잃더라도 제북濟北을 얻느니만 못하다고 여기고 있소.
그러므로 계책을 정하여 견고하게 이를 지키고 있는 것이외다.
지금 나라가 우리를 돕기 위해 군대를 내려보내고 있으니, 나라는 감히 동쪽으로 향하지 못하고, 진나라‧제나라가 연횡해서 세력을 합하면 초나라의 형세가 위험해지게 됩니다.
또 우리는 남양을 포기하더라도 우양右壤을 끊어 제북濟北을 지키는 계획은 반드시 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나라와 나라가 차례로 퇴각하고 나라는 구원병을 보내 주지도 않고, 천하에 제나라를 괴롭힐 제후가 없는 상태에서, 요성을 1년 넘도록 공수攻守하느라 서로 지쳐 있으나 내가 보기에 께서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제나라는 반드시 요성에서 승부를 결판내려고 하니, 그렇게 되면 그대는 더 이상 다른 계책을 세울 수도 없게 됩니다.
나라의 국내에서는 대란이 일어나 군신君臣실책失策하여, 상하上下가 모두 미혹되어 있고, 율복栗腹은 십만 대군을 이끌고 국외에서 싸웠으나 다섯 번이나 패배하고 만승지국萬乘之國나라에게 포위당해서 국토는 깎이고 임금은 곤궁에 빠져 천하의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들었는지요?
지금 연왕이 바야흐로 두려움 속에 고립되어 있는데, 대신들조차 믿을 수 없는 지경이며, 국가는 피폐하고 화란禍亂이 많아 민심이 의지할 곳을 잃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공께서는 또 요성의 피폐한 백성을 제나라를 막는 군사로 이용하여, 한 해가 넘도록 포위를 풀지 않고 있으니 이는 묵적墨翟 같은 자의 수비 방법입니다.
사람을 잡아먹고 뼈를 땔감으로 쓰고 있는데도 병졸이 배반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손빈孫臏이나 오기吳起 같은 병법으로 천하가 공의 재능을 이미 보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을 위한 계책으로는 군대를 해산해 거갑車甲을 온전히 하여 연왕에게 돌아가 보고하는 것만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연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며, 사민士民들도 그대를 마치 부모를 보듯 고마워할 것이며, 친구들은 팔을 걷어올리며 세상에 당신을 자랑하고 다녀, 그대의 공업功業이 밝혀질 것입니다.
위로는 외로운 임금을 보좌하여 여러 신하들을 견제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어루만져 길러서 유세遊說하는 선비들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십시오.
그런 연후에 국정을 바로잡고 풍속을 혁신하여 천하에 이를 밝히면 공명을 가히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혹자는 역시 그대에게 나라를 버리고 세상의 비난을 아랑곳하지 말고 동으로 나라에 귀부歸附하라고 권하지 않습니까?
내가 제왕齊王에게 당신을 위해 땅을 떼어 하게 청하면 그대의 위염魏冉이나 상군商君에 비할 만하여 대대로 니 하면서 나라와 함께 누릴 것이니, 이도 하나의 계략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가 이름을 드러내고 실리實利가 많은 것이니, 원컨대 께서는 자세히 생각해서 그중 하나를 택하기 바랍니다.
또 내가 듣기로 ‘작은 절조를 본받는 자는 큰 위망威望을 행할 수 없고, 작은 부끄러움을 겁내는 자는 영명榮名을 세울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관중管仲환공桓公의 허리띠고리를 쏘고도 〈그 환공 밑에서 재상이 된〉 것은 찬탈簒奪이며, 공자公子 를 남겨두고 따라 죽지 못한 것은 이며, 질곡桎梏에 묶인 수치는 신욕身辱이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일은 시골 사람에게도 통하지 않을 행동이며, 세상 임금도 신하로 삼기를 싫어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관중으로 하여금 평생 동안 곤궁하게 억눌린 채 유폐幽閉되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부끄러움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였더라면 목숨이 다하도록 사람들의 멸시와 치욕적이고 비천한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중은 비록 세 가지 과오를 저질렀지만 제나라의 정권을 장악하여 한번 천하를 바로잡고, 아홉 번이나 제후와 회합하여 환공으로 하여금 오패五伯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여, 이름을 천하에 높이고 이웃 나라에 그 빛을 비추었습니다.
조말曹沫 같은 이는 나라 임금의 장군이 되어 삼전삼패三戰三敗하여 1천 리의 땅을 잃고 말았소.
이러한 조말로 하여금 전장에서 발을 떼지 못하게 하고 뒷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면서 나가서 반드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게만 하였더라면 패군敗軍하고 포로가 된 장수라는 이름을 면치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말曹末패군敗軍하고 포로가 된 것은 용기는 아니라고 여겼으며, 공이 폐해지고 명성이 소멸되어 후세의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때문에 이 세 번 패전의 수치를 떨쳐버리고 물러나 노나라 임금과 책략을 세우며 종전의 패전은 우연한 불행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때 환공桓公이 이미 천하를 차지하고 제후들의 조회朝會를 받고 있었는데, 조말은 칼 한 자루를 숨기고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환공을 위협하였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 한 마디 어그러짐이 없이, 세 번 싸움에서 잃은 땅을 하루아침에 되찾으니, 이를 본 천하는 진동해 놀랐으며, 그 위신은 나라‧나라까지 뻗치고 그 명성은 후세까지 전해지게 되었소.
이렇게 관중이나 조말 두 사람은 작은 절조節操나 작은 부끄러움에 죽고 싶은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죽어 세상을 하직해 공명을 세우지 않는 일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분한 마음을 참고 종신終身의 명예를 세웠으며,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버리고 후세에 전해질 공로功勞를 이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업功業삼왕三王과 다투어 유전流傳되고 명성은 천지와 서로 맞먹으니 께서는 이를 잘 도모하시오!”
연나라 장수가 말하였다.
“공경히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는 군사를 파하고 화살통을 거꾸로 멘 채 물러갔다.
그러므로 제나라의 포위를 풀고 죽음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게 된 것은 바로 노중련魯仲連의 유세 때문이었다.


역주
역주1 162. 燕攻齊取七十餘城 : 이 장의 이야기는 《史記》 〈魯仲連列傳〉에도 실려 있으나 연대나 인물 등이 사실과 맞지 않다.
역주2 燕攻齊 取七十餘城 : 齊나라가 燕나라의 공격을 받아 70여 성을 모두 잃고 마지막 莒城과 卽墨만 남았다. 田單은 卽墨을 거점으로 유명한 火牛戰法으로 燕나라를 물리치고 국토를 회복하게 된다. 《史記》 〈樂毅列傳〉‧〈田單列傳〉‧〈魯仲連列傳〉 등 참조.
역주3 莒‧卽墨 : 모두 齊나라 城으로 莒는 지금의 山東省 莒縣. 卽墨은 지금의 山東省 平度縣 동남으로 지금의 卽墨이 아니다.
역주4 聊城 : 지금의 山東省 聊城市.
역주5 魯連 : 齊나라의 義士인 魯仲連. 《史記》 〈魯仲連鄒陽列傳〉 참조.
역주6 南陽 : 지금의 山東省 鄒縣.
역주7 平陸 : 지금의 산동성 汶上縣.
역주8 濟北 : 濟水 이북 지역. 《史記》 索隱에 “聊城이 있는 땅이다.”라고 하였다.
역주9 栗腹 : 인명. 燕나라의 相國.
역주10 百(十)萬 : 《史記》 〈魯仲連列傳〉에 十萬으로 되어 있어,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11 墨翟 : 墨子. 《墨子》 〈公輸〉에 의하면 公輸般이 雲梯를 만들어 성을 공격하면 墨翟은 그에 상응하는 전법으로 守城하였음.
역주12 孫臏 : 戰國 초기 齊나라 인물, 孫武의 후예. 龐涓과 함께 鬼谷子에게 병법을 배웠다. 龐涓이 魏將이 되자 그를 찾아갔으나 방연은 그를 시기한 나머지 다리를 잘랐다. 뒤에 淳于髡의 도움으로 그 수레에 몰래 실려 齊나라의 서울 臨淄로 왔는데 齊 威王이 그를 將으로 삼아 魏나라를 칠 때 馬陵에서 龐涓을 죽여 복수하였다.
역주13 陶‧衛 : 陶 땅에 봉해진 魏冉과 商君. 商君의 姓氏가 衛이다. 혹 陶는 陶朱公 范蠡로 보기도 한다.
역주14 管仲射桓公中鉤 : 公子 糾와 公子 小白은 齊 襄公의 아들인데 양공이 無道하자 禍를 당할까 걱정되어 공자 규는 魯나라로 出奔해 管仲과 召忽을 師傅로 삼고, 公子 小白은 莒나라로 출분하여 鮑叔牙를 傅로 삼았다. 후일 公孫無知가 제 양공을 시해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두 공자는 서로 임금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둘러 귀국하는데 관중이 쏜 화살이 소백의 허리띠 고리에 맞았다. 소백은 거짓으로 죽은 체하여 먼저 귀국해 임금이 되니, 이가 齊 桓公이다. 후에 제 환공은 鮑叔牙의 천거에 의해 관중을 仲父로 삼아 霸者가 되었다.
역주15 遺公子糾而不能死 : 桓公이 즉위한 후, 노나라가 공자 규를 즉위시키려 했다 해서 군사를 내어 공격하면서 공자 규를 죽이고, 관중을 제나라로 押送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러자 공자 규는 자살하고 말았는데, 이때 관중이 따라 죽지 않았다는 뜻.
역주16 束縛桎桔(梏) : 魯나라가 제나라의 압력에 못 이겨 管仲에게 수갑과 차꼬를 채워 檻車로 압송한 일. 桔은 梏의 誤字.
역주17 五伯 : 春秋時代 천하를 호령하던 다섯 諸侯를 말하는데, 《史記》에서는 齊 桓公, 晉 文公, 宋 襄公, 秦 穆公, 楚 莊王을 들고 있다.
역주18 曹沫 : 春秋時代 魯 莊公의 장수. 《史記》 〈齊太公世家〉에 “5년 魯나라를 침벌하여 노나라 장수를 패퇴시켰다. 魯 莊公이 遂邑을 바치고 강화를 청하자 桓公이 허락하였다. 그래서 노나라와 柯에서 會盟하게 되었는데, 曹沫이 비수를 가지고 단상에 올라와 환공을 위협하면서 빼앗은 노나라 땅을 돌려 달라고 하였다. 환공이 허락하니 조말은 비수를 버리고 北面하여 신하의 자리로 갔다. 환공이 후회하여 노나라 땅을 돌려 줄 생각이 없고 조말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管仲이 말하기를 ‘대저 겁에 눌려 허락했다가 信義를 저버리고 죽이는 것은 조금 상쾌한 일이요, 제후들에게 신의를 버리는 것은 천하의 후원을 잃는 것이어서 불가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환공은 조말이 세 번 敗해서 잃은 노나라 땅을 돌려 주니, 제후들이 그 말을 듣고는 모두 제나라를 믿고 따르려고 하였다.”하였다. 《史記》 〈刺客列傳〉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역주19 三王 : 夏禹, 商湯과 周 文王‧武王을 가리킨다.
역주20 罷兵到讀 : 군대를 해산하고 箭筒을 거꾸로 메어 戰意가 없음을 나타낸다. 到는 倒, 讀은 韇의 假借字.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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