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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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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圍雍氏,
韓令冷向借救於秦, 秦爲發使入韓.
公仲曰:
“子以秦爲將救韓乎?
其不乎?”
對曰:
之言曰: ‘請道於以入攻楚, 出兵於以待公.’
殆不合, 軍於南鄭矣.”
公仲曰:
“奈何?”
對曰:
“秦王必祖張儀之故謀.
楚威王攻梁, 張儀謂秦王曰: ‘與楚攻梁, 魏折而入於楚.
韓固其與國也,
是秦孤也. 故不如出兵以勁魏.’
於是攻. 魏氏勁,
威王怒, 楚與魏大戰, 秦取之外以歸.
今也其將言救韓, 而陰善楚,
公恃秦而勁, 必輕與楚戰. 楚陰得秦之不用也, 必易與公相支也.
公戰勝楚, 遂與公乘楚, 易三川而歸, 公戰不勝楚, 塞三川而守之, 公不能救也.
臣甚惡其事.
三反之郢矣, 甘茂與昭獻遇於境, 其言曰收璽, 其實猶有約也.”
公中恐曰:
“然則奈何?”
對曰:
“公必先韓而後秦, 先身而後張儀.
公不如亟以國合於齊‧楚,
秦必委國於公以解伐.
是公之所以而已, 其實猶之不失秦也.”


397. 나라가 옹씨雍氏 땅을 포위하다
나라가 나라 옹씨雍氏 땅을 포위하였다.
한나라는 냉향冷向(영향泠向)을 나라에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자 진나라는 우선 공손매公孫昧를 사신으로 한나라에 보냈다.
공중公仲이 말하였다.
“그대는 장차 진나라가 우리 한나라를 구해 줄 것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도와주지 않으리라 보십니까?”
공손매가 대답하였다.
진왕秦王이 말하기를 ‘남정南鄭남전藍田의 길을 거쳐 들어가 초나라를 공격할 테니 공중치께서는 삼천三川에서 출병하여 기다리게 하라.’ 하였소.
제가 보기에는 거의 연합하지 않고 남정에 와서 주둔할 뿐일 것 같습니다.”
공중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소?”
공손매가 대답하였다.
“진왕은 틀림없이 장의張儀의 옛날 방법을 본받을 것입니다.
즉 초나라 위왕威王나라 대량大梁을 공격할 때, 장의는 진왕秦王에게 ‘〈진나라가〉 초나라와 함께 대량을 공격하게 되면 위나라는 오히려 초나라에게로 귀속될 것입니다.
한나라는 원래부터 위나라와 동맹국입니다.
이는 진나라의 고립만 초래할 뿐이므로 출병하여 오히려 위나라를 강하게 해주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피씨皮氏 땅을 공격하여 위나라를 강하게 해주었습니다.
위왕威王은 노하여 위나라와 더욱 큰 싸움을 벌였고, 진나라는 그 틈을 이용하여 서하西河의 밖을 차지한 후 돌아가 버렸습니다.
지금 그 방법은 진나라가 겉으로 한나라를 구해 준다고 큰소리치면서 속으로는 몰래 초나라와 친선親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진나라를 믿고 강한 척하면서 경솔히 초나라와 싸우게 될 것이요, 초나라는 진나라가 더 이상 용병用兵하지 않는다고 밀약한 바가 있어 틀림없이 쉽게 한나라와의 싸움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초나라를 이기면, 진나라는 그대가 초나라를 이기는 틈을 타서 곧 삼천三川 지방을 쉽게 차지해 돌아가 버릴 것이요, 그대가 초나라를 이기지 못하면 삼천을 봉쇄하여 이를 지켜 당신은 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까 저는 큰 걱정입니다.
사마강司馬康이 세 번이나 초나라 을 다녀왔고, 감무甘茂소헌昭獻이 국경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해서 회담을 갖고 서로 진나라의 회수回收한다는 것이었으나 사실은 또 다른 밀약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중이 두려워서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소?”
공손매가 대답하였다.
“그대는 반드시 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를 뒤로하실 것이며, 자신을 먼저 하고 장의를 뒤로 하십시오.
그러자면 어서 빨리 한나라를 제나라‧초나라와 연합시키느니만 못합니다.
진나라는 틀림없이 나라를 그대에게 맡겨 제후들의 진나라에 대한 공격을 해결해 줄 것입니다.
이는 겉으로 장의만 멀리 할 뿐이지 사실은 진나라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역주
역주1 : 이 사건은 《史記》 〈韓世家〉에도 실려 있다. 雍氏는 陽翟이라고도 하며, 河南省 禹縣과 扶南縣 사이의 땅이다. 楚는 먼저 秦 惠王 때에 雍氏를 포위한 일이 있었으며 그후 다시 秦 昭王 때에 포위하였으니, 여기 사건은 두 번째의 일이다.
역주2 公孫昧 : 秦나라 신하.
역주3 秦王 : 昭王. 혹은 昭襄王.
역주4 南鄭‧藍田 : 지금의 陝西省의 南鄭縣과 藍田縣.
역주5 三川 : 지금의 河南省 洛陽縣 부근. 그 땅은 河水‧洛水‧伊水가 흘러 생긴 이름.
역주6 皮氏 : 지금의 山西省 河津縣 西楊村. 원래 魏의 邑名이지 韓의 땅이 아니니, 오류인 듯하다. 《史記》에도 ‘於是攻皮氏’의 다섯 글자가 없다.
역주7 西河 : 魏의 郡, 황하의 서쪽.
역주8 揚(陽) : 鮑彪本에 의하여 ‘陽’으로 고쳤다.
역주9 司馬康(庚) : 秦나라 大夫. 《史記》에는 ‘司馬庚’으로 되어 있다.
역주10 [以] : 劉敞本에 의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1 外者儀 : 儀는 張儀. 그러나 이때는 이미 張儀가 죽은 지 10년 후이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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