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戰國策(2)

전국책(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秦王謂曰:
“昔歲, 韓爲中軍, 以與諸侯攻秦.
韓與秦接境壤界, 其地不能千里, 展轉不可約.
日者, 秦‧楚, 韓出銳師以佐秦, 秦戰不利, 因轉與楚,
不固信盟, 唯便是從. 韓之在我, 心腹之疾.
吾將伐之, 何如?”
公子他曰:
“王出兵韓, 韓必懼,
懼則可以不戰而深取割.”
王曰: “善.” 乃起兵, 一軍臨, 一軍臨太行.
韓恐, 使入謝於秦, 請效上黨之地以爲和,
告上黨之守靳黃重曰:
“秦起二軍以臨韓,
韓不能有. 今王令韓興兵以上黨入和於秦, 使陽言之太守,
太守其效之.”
靳黃重曰:
“人有言: ‘苛甁之知, 不失守器.’
王則有令, 而臣太守,
雖王與子, 亦其猜焉.
臣請悉發守以應秦,
若不能卒, 則死之.”
韓陽趨以報王,
王曰:
“吾始已諾於矣, 今不與, 是欺之也.”
乃使馮亭代靳黃重.
馮亭守三十日, 陰使人請趙王曰:
“韓不能守上黨, 且以與秦,
其民皆不欲爲秦而願爲趙.
今有城市之邑七十,
願拜內之於王, 唯王之.”
喜, 召而告之曰:
“韓不能守上黨, 且以與秦, 其吏民不欲爲秦而皆願爲趙.
今馮亭令使者以與寡人,
何如?”
趙豹對曰:
“臣聞聖人甚禍無故之利.”
王曰:
“人懷吾義, 何謂無故乎?”
對曰:
“秦蠶食韓氏之地, 中絶不令相通, 故自以爲坐受上黨也.
且夫韓之所以內趙者, 欲嫁其禍也.
秦被其勞, 而趙受其利,
雖强大不能得之於小弱, 而小弱顧能得之强大乎?
今王取之, 可謂有故乎?
且秦以牛田, 水通糧,
其死士皆列之於上地. 令嚴政行, 不可與戰.
王自圖之!”
王大怒曰:
“夫用百萬之衆, 攻戰踰年歷歲, 未見一城也.
今不用兵而得城七十, 何故不爲?”
趙豹出.
王召而告之曰:
“韓不能守上黨, 今其守以與寡人,
有城市之邑七十.”
二人對曰:
“用兵踰年, 未見一城, 今坐而得城, 此大利也.”
乃使趙勝往受地.
趙勝至曰:
“敝邑之王, 使使者臣勝, 太守有詔, 使臣勝謂曰:
『請以三萬戶之都封太守, 千戶封縣令, 諸吏皆益爵三級, 民能相集者, 賜家六金.』”
馮亭垂涕而曰:
“是吾處三不義也:
爲主守地而不能死, 而以與人, 不義一也; 主內之秦, 不順主命, 不義二也; 賣主之地而食之, 不義三也.”
辭封而入韓, 謂韓王曰:
“趙聞韓不能守上黨, 今發兵已取之矣.”
韓告秦曰:
“趙起兵取上黨.”
秦王怒, 令以兵遇趙於.


232. 진왕秦王공자公子 에게 말하다
소왕昭王공자公子 에게 말하였다.
“몇 해 전 효산殽山 아래에서의 전쟁 때 나라가 중군中軍이 되어 제후들과 함께 우리 진나라를 공격하였소.
그때 한나라는 우리 진나라와 국경이 맞닿게 되었지만 땅이 1천 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우리와 강화講和를 맺지 못하겠다고 하였소.
지난번 우리 진나라가 나라와 남전藍田에서 싸울 때 한나라는 날랜 군대를 보내어 우리를 돕는 척하다가 우리가 승산이 없음을 보고는 곧바로 초나라 편으로 돌아섰소.
이처럼 한나라는 실로 신의의 맹약을 할 수 없고 오직 편리한 이익만 따르는 자들이어서 한나라는 우리에게 가슴속의 병과 같소.
내가 이를 치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공자 타가 말하였다.
“왕께서 나라에 출병만 하셔도 한나라는 틀림없이 겁을 먹을 것입니다.
겁을 먹게 되면 싸우지 않고도 그들 깊이 들어가 땅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왕은 ‘그렇소.’ 하고는 군대를 일으켜 일군一軍형양滎陽에, 일군一軍태행太行(태항)에 임하게 하였다.
한나라는 두려운 나머지 양성군陽城君을 사신으로 진나라에 보내어 사죄함과 아울러 상당上黨 땅을 바치는 조건으로 화의를 청하였다.
그리고는 한양韓陽을 시켜 상당을 지키는 태수 근황중靳黃重(근주)에게 고하도록 하였다.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두 길로 우리 한나라로 쳐들어 오고 있소.
한나라는 버틸 수가 없어 한흥韓興(양성군陽城君)을 진나라에 보내어 상당 땅을 진나라에 주기로 하고 강화를 맺고, 그리고 나 한양韓陽으로 하여금 그대 태수께 이를 알리도록 하였소.
그러니, 태수는 땅을 진나라에게 주도록 하시오.”
근주가 말하였다.
“사람들이 ‘물병을 갖고 물을 길을 줄 아는 정도의 작은 지혜만 있어도 그릇을 잃어버리는 법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임금은 명령을 내리면 그만이지만 나는 태수입니다.
비록 왕과 그대가 함께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더라도 나는 이를 의심할 것입니다.
저는 이곳 사람들을 모두 동원해서 수비하여 진나라에 응전하겠습니다.
만약 끝까지 지키지 못하면 저는 여기서 죽겠습니다.”
한양은 이를 왕에게 급히 보고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처음에 이미 진나라 응후應侯에게 주기로 허락하였는데, 지금 주지 않으면 속이는 셈이 된다.”
그리고는 풍정馮亭으로 하여금 근주를 대신하게 하였다.
풍정이 지킨 30일 만에 몰래 사람을 나라 왕에게 보내어 청하였다.
“한나라가 상당上黨을 지키지 못하자 장차 이를 진나라에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모두 진나라의 백성이 되느니 차라리 조나라의 백성이 되겠다고 원합니다.
지금 〈상당은〉 성시城市의 읍이 70여 개나 됩니다.
대왕께서 받아 주시기를 절하여 원하오니, 오직 대왕께서 결정하소서.”
조나라 왕은 기쁜 나머지 평양군平陽君(조표趙豹)을 불러 이를 고하였다.
“한나라가 상당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이를 진나라에 주려고 하였지만 그 백성과 관리들이 진나라의 백성이 되기보다는 모두가 우리 조나라의 백성이 되겠다고 하오.
지금 풍정이 사람을 내게 보내어 과인에게 허락하였소.
어떻게 생각하오?”
조표趙豹가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에 성인聖人은 이유 없는 이익을 가장 큰 로 여긴다고 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들이 나의 의로움을 믿고 내 품에 안기겠다는데 그것이 어찌 이유 없는 〈이익이란〉 말이오?”
조표가 대답하였다.
나라는 나라 땅을 잠식하면서 중간에서 상당과 한나라가 서로 연락되지 못하도록 해야 상당을 앉아서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또 한나라가 그 상당을 우리 조나라에 주겠다는 이유는 〈진나라의〉 병화兵禍를 우리 조나라에게 전가轉嫁시키려는 것입니다.
진나라는 그처럼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 조나라가 그 이익을 얻는다고 해보십시오.
비록 강대한 〈진나라일지라도〉 약한 〈한나라로부터〉 땅을 얻는 것이 쉽지 않은데, 우리처럼 약한 나라가 강한 진나라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왕께서 이를 취하는 것이 까닭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 진나라는 밭 가는 소까지 동원하고 있으며, 뱃길을 통해 군량을 나르고 있습니다.
죽음을 무릅쓴 병사들이 좋은 땅을 상으로 받겠다고 줄을 서 있으며, 법령과 정치가 엄격하여 상대하여 싸울 수 없습니다.
왕께서는 잘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무릇 1백만 명의 군사를 써서 1년을 넘기며 싸워도 하나 얻지 못하오.
이제 군대 하나 쓰지 않고 70여 개 성을 얻는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요?”
조표는 나가버렸다.
왕은 다시 조승趙勝(평원군平原君)과 조우趙禹를 불러 고하였다.
“한나라가 상당을 지키지 못하자 지금 그곳 태수가 그 땅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하오.
성시城市의 읍이 70여 개나 된다 하오.”
두 사람이 대답하였다.
“1년이 넘도록 전쟁을 해야 성 하나 얻지 못하는데, 앉아서 이제 성을 얻는다면 이는 큰 이익입니다.”
이에 조승趙勝을 보내어 그 땅을 받도록 하였다.
조승이 이르러 말하였다.
“우리나라 왕께서 나 조승을 사신으로 보내었는데 태수가 우리나라에 글을 보낸 것을 말미암아 조승으로 하여금 선포하게 하기를
‘3만 호의 도읍을 태수 풍정에게 하고, 현령에게는 1천 호를 봉하고, 여러 관리들에게는 삼급三級의 작위를 더하며, 백성들로 서로 안집安集하는 자에게는 가호家戶마다 육금六金씩을 내린다.’ 하였소.”
풍정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떨구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세 가지 불의不義를 저지르고 말았소.
우리 한나라 임금을 위해 땅을 지키다가 죽지 못하고 그 땅을 남에게 주었으니 이것이 그 첫 번째 불의요, 우리 임금이 나라에 주라고 하였으니,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은 것이 두 번째 불의요, 임금의 땅을 팔아 식읍食邑을 얻게 되었으니 이것이 세 번째 불의이오.”
그리고는 봉토封土를 사양하고 나라로 돌아가 한나라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라가 상당上黨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군대를 내어 이미 취하고 말았습니다.”
한나라가 진나라에게 고하였다.
“조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상당을 취해 버렸습니다.”
진왕은 노하여 공손기公孫起왕의王齮에게 명하여 장평長平에서 조나라 군대를 맞아 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 이 일로 인해 전국시대 최대 규모의 長平 싸움이 벌어졌고 여기서 패한 趙나라 군대 40만 명이 생매장당하였다. 《史記》 〈趙世家〉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역주2 公子 他 : 秦의 惠文王의 아들이며 昭王의 兄. 일명 池. 073장 참조.
역주3 殽下之事 : 殽山之戰을 가리킨다. 殽는 崤로도 쓴다. 函谷關의 崤山(지금의 河南省 洛寧縣 서북)에서 일어났던 전쟁. 즉 孟嘗君이 다섯 나라 제후들의 연합군을 이끌고 秦나라를 공격하였었다.(B.C.298~296년) 029‧044‧095장 등 참조.
역주4 戰於藍田 : 藍田之役. 楚 懷王이 張儀에게 속은 분풀이로 秦나라를 공격하여 남전(지금의 陝西省 長安縣 동남)에서 싸움으로 楚나라가 대패하였다. 187장 참조.
역주5 熒(滎)陽 : 韓邑. 지금의 河南省 滎陽縣 북쪽. 원문 ‘熒’은 ‘滎’의 誤字.
역주6 陽城君 : 韓나라 公族. 《史記》에는 城陽君으로 되어 있다. 城陽은 韓나라 땅으로 지금의 山東省 濮縣. 동남. 城陽은 成陽으로도 쓰며 여기서는 이의 오기인 듯하다.
역주7 韓陽 : 韓나라의 公族.
역주8 應侯 : 秦나라 재상 范雎. 《史記》 〈范雎蔡澤列傳〉 및 254‧257장 등 참조.
역주9 : ‘裁’와 같다.
역주10 趙王 : 趙 孝成王.
역주11 平原(陽)君 : 趙나라의 公族 趙豹.
역주12 趙勝 : 전국 四公子의 하나인 趙나라 平原君. 《史記》 〈平原君列傳〉 참조.
역주13 趙禹 : 趙나라의 公族.
역주14 : 黃丕烈은 ‘俛’자라 보았다. 仰의 상대어로 ‘내려다보다, 고개를 떨구다.’로 해석하였다.
역주15 公孫起 : 《史記》에는 白起으로 되어 있다. 《史記》 〈白起王翦列傳〉에 ‘乃陰使武安君白起爲上將軍 而王齮爲尉裨將’이라 하였다.
역주16 王齮 : 당시 秦나라 장군.
역주17 長平 : 趙나라 읍. 上黨郡. 지금의 山西省 高平縣 서북. 253‧256‧257장 등 참조. 전국시대 최대의 血戰인 ‘長平之戰’이 일어났던 곳.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