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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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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혜왕惠王이 죽다
死, 葬有日矣.
혜왕惠王이 죽어 장례날이 결정되었다.
天大雨雪, 至於牛目, 壞城郭,
마침 이날 큰 눈이 내려 소의 눈높이까지 쌓였으며 성곽도 허물어졌다.
且爲棧道而葬.
그런데도 잔도棧道를 설치하여 장례를 행하려 하였다.
羣臣多諫者, 曰:
여러 신하들이 다투어 태자太子에게 간언하였다.
“雪甚如此而喪行, 民必甚病之. 官費又恐不給, 請弛期更日.”
“눈이 이렇게 많이 내렸는데도 장례식을 행하게 되면 백성의 고통이 심할 뿐더러 관비官費조차도 모자라게 되오니, 연기하기를 청합니다.”
太子曰:
태자가 말하였다.
“爲人子, 而以民勞與官費用之故, 而不行先王之喪, 不義也.
“사람의 아들 된 자로서 백성이 힘들어 하고 관비가 부족하다고 해서 선왕先王을 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다.
子勿復言.”
그대들은 더 이상 말하지 말라.”
羣臣皆不敢言, 而以告犀首.
여러 신하들은 모두 감히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서수犀首에게 고하였다.
犀首曰:
서수가 말하였다.
“吾未有以言之也,
“나도 어떻게 말할 수 없소.
是其唯乎!
오직 혜자惠子라면 말할 수 있겠지요.
請告惠公.”
청컨대 그에게 말해 보시오.”
惠公曰: “諾.” 駕而見太子曰:
혜자가 ‘해보겠소.’라 하고는 수레를 타고 가서 태자를 만났다.
“葬有日矣.”
“오늘이 장례일로 정해진 날입니다.”
太子曰:
태자가 말하였다.
“然.”
“그렇소.”
惠公曰:
혜자가 말하였다.
“昔王葬於楚山之尾, 齧其墓, 見.
“옛날 나라에서 왕계력王季歷초산楚山 자락에 장례를 마치고 나자 물이 넘쳐 그 무덤으로 밀려들어, 관의 앞쪽 나무가 드러났었습니다.
曰: ‘嘻!
문왕文王이 이를 보고 ‘아!
先君必欲一見羣臣百姓也夫, 故使灓水見之.’ 於是出而爲之, 百姓皆見之,
선군께서 군신과 백성을 보고 싶으셔서 물로 하여금 분묘를 허물어 관의 앞쪽을 드러나게 하셨구나.’하고는 이에 관을 다시 파내어 장막을 치고는 거기에 안치시켜 놓아, 백성들이 모두 뵙게 되었습니다.
三日而後更葬. 此文王之義也.
그리고 사흘 후에 다시 장례를 치렀으니, 이는 바로 문왕의 입니다.
今葬有日矣, 而雪甚, 及牛目, 難以行, 太子爲及日之故, 得毋嫌於欲亟葬乎?
지금 선왕의 장례일이 이미 정해졌는데 눈이 많이 내려 높이가 소의 눈까지 쌓여서 다니기조차 힘든 데도 태자께서는 꼭 기일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시니 이는 너무 급히 장례를 치르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願太子更日.
원컨대 태자께서는 날짜를 다시 잡으십시오.
先王必欲少留而扶社稷‧安黔首也, 故使雪甚. 因弛期而更爲日,
선왕께서 며칠을 더 기다려 그 사이에 사직을 부지扶持하고 백성을 안정시키시고 싶어서 눈을 이렇게 많이 내리게 하신 것이니, 아무쪼록 기일을 미루어 다른 날로 정하십시오.
此文王之義也.
이것은 곧 문왕의 대의와 같은 것입니다.
若此而弗爲, 意者羞法文王乎!”
만약 이와 같은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각하건대 문왕을 본받는데 수치가 되지 않겠습니까.”
太子曰:
태자가 말하였다.
“甚善.
“매우 훌륭합니다.
敬弛期, 更擇日.”
공경히 날짜를 연기하여 다시 택일하겠습니다.”
惠子非徒行其說也, 又令魏太子未葬其先王而因又說文王之義.
혜자는 자기의 말을 행함에 헛되지 않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태자太子로 하여금 선왕의 장례를 치르지 않게 하고 그로 인해 문왕의 까지 설명하였다.
說文王之義以示天下, 豈小功也哉!
문왕의 의를 설명하여 천하에 보였으니 그것이 어찌 작은 이겠는가!
역주
역주1 : 이 사건은 B.C.319년이다. 그러나 《史記》 〈魏世家〉에는 335년의 일로 되어 있다.
역주2 惠王 : 이름은 罃, 武侯의 아들, 孟子가 만난 梁 惠王.
역주3 太子 : 惠王의 아들, 뒤에 襄王이 되었다.
역주4 惠公 : 惠子. 이름은 惠施, 宋나라 사람, 당시 魏의 相國이었는데 말을 잘하였으며 莊周(莊子)와 친하였다. 저서로 《惠子》가 있다고 하나 傳하지 않음.
역주5 季歷 : 周 文王의 아버지로 武王이 追尊하여 王으로 높였다.
역주6 灓水 : 漏水와 같은 말, 또는 水名.
역주7 棺之前和 : 棺의 양쪽 앞부분.
역주8 文王 : 季歷의 아들. 姬昌, 殷末에 西伯이 되었다. 그의 아들 武王이 殷의 紂를 쳐 통일한 후, 文王으로 追尊하였다.
역주9 張於朝 : 高誘 注에 “장막을 치고 朝會하였다.[張帳以朝]”라 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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