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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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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 선왕宣王규류摎留에게 말하다
선왕宣王규류摎留에게 말하였다.
“吾欲兩用, 其可乎?”
“내가 공중公仲공숙公叔 두 사람을 함께 쓰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對曰:
규류가 대답하였다.
“不可.
“안 됩니다.
晉用六卿而國分, 簡公用田成‧監止而弑, 魏兩用而西河之外亡.
옛날 나라는 육경六卿을 썼다가 나라가 분열되었고, 나라 간공簡公전성자田成子감지監止를 함께 썼다가 간공 자신이 시해弑害당하였으며 또 나라는 서수犀首장의張儀를 함께 썼다가 서하西河 밖의 땅을 모두 잃었습니다.
今王兩用之, 其多力者內樹其黨, 其寡力者籍外權.
그런데 왕께서 지금 두 사람을 같이 쓰면, 세력이 큰 자는 국내에 자기 을 끌어 모아 세력을 키울 것이요, 힘이 모자라는 자는 외국의 힘을 빌어 이 나라를 흔들려 할 것입니다.
羣臣或內樹其黨以擅其主, 或外爲交以裂其地, 則王之國必危矣.”
여러 신하들이 안으로 자신의 당을 꾸며 임금을 휘두르거나 혹는 밖으로 외세를 이용하기 위해 땅을 마구 찢어 준다면 왕의 나라는 반드시 위험해질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韓 宣惠王이 公仲과 公叔을 재상으로 삼은 기간은 B.C.322~319년이므로 이는 그때쯤의 일로 볼 수 있다.
역주2 宣王 : 韓나라의 宣惠王.
역주3 摎留 : 繆留, 樛鶩留라고도 한다. 韓나라 신하.
역주4 公仲, 公叔 : 公仲은 韓나라 公仲侈. 公叔은 韓나라 韓公叔.
역주5 簡公 : B.C.485년 齊의 悼公을 이어 즉위한 簡公은 여러 卿 중에 가장 세력이 컸던 田成과 자신이 총애하던 監止(闞止‧闞史)를 좌우의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두 재상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나 B.C.481년에 田成子는 簡公을 감금하고 감지 일당을 없앤 후 마침내 簡公까지 죽이고 簡公의 동생 平公을 왕으로 앉혔다.
역주6 犀首‧張儀 : B.C.322년 張儀가 晉나라의 힘을 업고 魏나라 재상이 되었다. 그러자 犀首(公孫衍)은 그전의 魏나라 재상이었던 韓公叔과 짜고 張儀를 魏나라 재상 자리에서 몰아낸다.(B.C.319년) 이리하여 犀首의 합종설과 張儀의 연횡설이 충돌, 국제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魏나라는 결국 張儀의 연횡설에 굴복하여 자신의 西河 땅을 晉나라에게 할양하고 만다. 298‧297장 참조.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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