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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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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445. 나라 문공文公 때에
燕文公時, 秦惠王以其女爲婦.
문공文公 혜왕惠王이 자기 딸을 나라 태자太子로 삼아 주었다.
文公卒, 易王立.
그후 문공이 죽자 태자가 역왕易王으로 즉위하였다.
因燕喪攻之, 取十城.
선왕宣王은 연나라에 상사喪事가 생긴 것을 틈타 공격하여 10개 성을 빼앗았다.
蘇秦爲燕說齊王, 再拜而賀, 因仰而弔.
무안군武安君 소진蘇秦이 연나라를 위하여 제왕에게 유세하면서 먼저 재배하여 축하하고는 즉시 하늘을 우러러 조의를 표하였다.
齊王曰:
제왕은 이상하여 창에다 손을 대며 물러서며 물었다.
“此一何慶弔相隨之速也?”
“이 어찌 축하와 조의를 이렇게 급히 동시에 하는가?”
對曰:
소진이 대답하였다.
“人之飢所以不食者, 以爲雖偸充腹, 而與死同患也.
“사람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오훼烏喙를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을 먹으면 비록 잠시 배는 부르나 곧 뒤따라 그 독 때문에 죽음과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今燕雖弱小, 强秦之少婿也.
지금 연나라가 비록 약소국이기는 하나 강한 진나라의 젊은 사위 나라입니다.
王利其十城, 而深與强秦爲仇.
대왕이 그의 10개 성을 이익으로 여기고 있지만, 이는 강한 진나라에 깊은 원한을 사는 것입니다.
今使弱燕爲鴈行, 而强秦制其後, 以招天下之精兵, 此食烏喙之類也.”
지금 약한 연나라를 앞세워 대열을 이루고, 강한 진나라가 뒤를 제압하고 있는데 천하의 정병精兵을 불렀으니, 이는 바로 오훼를 먹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齊王曰:
제왕이 말하였다.
“然則奈何?”
“그럼 어쩌면 좋겠소?”
對曰:
소진이 말하였다.
“聖人之制事也, 轉禍而爲福, 因敗而爲功.
“성인은 일을 처리함에 를 돌려 으로 만들고, 패배를 바탕으로 공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而名益尊, 而交愈固,
그래서 환공桓公은 한 부인을 쫓음으로써 명성이 더욱 높아졌고, 한헌韓獻은 죄를 얻고도 사귐이 더욱 굳어졌던 것입니다.
此皆轉禍而爲福, 因敗而爲功者也.
이는 모두 으로 돌리고, 패배를 인하여 을 세운 좋은 예입니다.
王能聽臣, 莫如歸燕之十城, 卑辭以謝秦.
왕께서 저의 말을 들어주신다면 우선 먼저 연나라에게 그 10개 성을 되돌려 주시고 겸손한 말로 진나라에게 사죄하느니만 못합니다.
秦知王以己之故歸燕城也, 秦必德王. 燕無故而得十城, 燕亦德王.
그렇게 하면 진나라는 자기 때문에 연나라의 10성을 반환한 것으로 알고 틀림없이 왕을 덕스럽게 여길 것이며 연나라로서는 까닭 없이 10성을 되돌려 받는 것으로, 역시 대왕을 덕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是棄强仇而立厚交也.
이는 강한 원수를 버리고 두터운 교분을 세우는 것이 됩니다.
且夫燕‧秦之俱事齊, 則大王號令天下皆從.
그래서 연나라와 진나라가 함께 제나라를 섬기게 되면 대왕의 호령은 천하가 모두 따르게 됩니다.
是王以虛辭附秦, 而以十城取天下也.
바로 허사虛辭로 진나라를 끌어들이고 10성의 일로 천하를 얻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此霸王之業矣. 所謂轉禍爲福, 因敗成功者也.”
이는 곧 패왕霸王이며 이른바 화를 돌려 복을 삼고 패배를 인하여 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齊王大說, 乃歸燕城. 以金千斤謝其後, 頓首塗中, 願爲兄弟, 而請罪於秦.
제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에 10성을 연나라에 돌려주고 금 1천 근을 뒤따라 보내 주며, 진나라에게는 땅에 머리를 조아려 형제국이 되겠다며 죄를 빌었다.
역주
역주1 : 이 장의 사실은 《史記》 〈蘇秦列傳〉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내용은 약간 차이가 있다.
역주2 燕 太子 : 나중에 易王이 되었다. 재위 10년 만에 왕을 칭하였다. 본문 ‘其女爲燕太子婦’는 〈秦策〉 ‘公孫衍欲窮張儀’를 참고할 것.
역주3 齊 宣王 : 田辟彊, 威王의 아들이며 湣王의 父.
역주4 武安君 : 蘇秦이 六國合從을 이룬 후 趙에 돌아오자 肅侯가 武安君에 封하였다.
역주5 桉戈而卻 : 桉은 按과 같다. ‘칼을 만지며 물러서다.’의 뜻. 《史記》에는 이 말이 없다.
역주6 烏喙 : 약초 이름. 附子. 뿌리가 두텁고 劇毒性이 있다.
역주7 桓公負婦人 : 《史記》 〈齊世家〉에 의하면 桓公이 蔡姬와 뱃놀이를 하는데, 채희가 물장난을 심하게 하였다. 환공이 말렸으나 듣지 않아 친정 蔡나라로 돌려 보냈다. 그러자 채나라에서 다른 곳으로 출가시키자 齊桓公이 怒하여 정벌하고 이후 楚를 치고 楚와 召陵에서 盟約을 맺었다.
역주8 韓獻開罪 : 韓獻은 春秋 晉의 卿인 韓闕. 죽은 후 號를 獻子라고 하였다. 開罪는 得罪의 뜻. 晉 靈公 때 당시 中軍元帥인 趙盾이 秦과 싸울 때 門客이 韓闕 韓獻을 추천하여 中軍司馬을 삼았다. 趙盾의 䡍가 잘못하여 뒤따르고 있던 수레의 飮具를 부수어 韓闕이 그를 군법대로 처형하였다. 어떤 사람이 趙盾에게 韓闕은 背恩忘德한 놈이라고 하자 오히려 그를 불러 크게 칭찬하였다. 《左傳》 獻公 12년(B.C.597년) 참조.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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