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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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謂春申君曰:
“臣聞之春秋:‘’.
今楚王之春秋高矣,
而君之封地, 不可不早定也.
爲主君慮封者, 莫如遠楚.
秦孝公封, 孝公死, 而後不免殺之.
, 惠王死, 而後王奪之.
公孫鞅, 功臣也; 冉子, 親姻也. 然而不免奪死者, 封近故也.
今燕之罪大而,
故君不如北兵以德趙, 踐亂燕,
以定身封, 此百代之一時也.”
君曰:
“所道攻燕, 非齊則魏.
魏‧齊新, 雖欲攻燕, 將道何哉?”
對曰:
“請令魏王可.”
君曰:
“何如?”
對曰:
“臣請到魏, 而使所以信之.”
迺謂魏王曰:
“夫楚亦强大矣, 天下無敵,
乃且攻燕.”
魏王曰:
“鄕也, 子云天下無敵; 今也, 子云乃且攻燕者, 何也?”
對曰:
“今爲馬多力則有矣, 若曰勝則不然者,
何也? 夫千鈞非馬之任也.
今謂楚强大則有矣, 若越趙‧魏而鬪兵於燕, 則豈楚之任也?
非楚之任而楚爲之, 是敝楚也.
敝楚强魏也, ?”


우경虞卿춘신군春申君에게 말하다
우경虞卿춘신군春申君에게 말하였다.
“저는 듣건대 《춘추春秋》에 ‘편안할 때는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울 때는 어떻게 하면 편안할까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초왕楚王(考烈王)의 연세가 높습니다.
그러니 봉지封地를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군을 위해 봉지를 생각해 보면 초나라로부터 멀어야만 합니다.
옛날 효공孝公상앙商鞅상군商君으로 봉하였지만 효공이 죽자 후에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혜왕惠王위염魏冉을 〈양후穰侯로〉 봉하였으나 그 혜왕이 죽자 새 왕은 그의 봉지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공손앙公孫鞅공신功臣이었으며 위염魏冉인척姻戚이었지만 죽고 빼앗김을 면치 못한 것은, 그 봉지封地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태공망太公望은 멀리 땅에 봉해지고, 소공邵公 땅에 봉해져 그 거리가 왕실로부터 멀었습니다.
지금 연나라는 제후에게 산 원망도 크고 나라의 원한이 매우 깊습니다.
그러니 군께서는 지금 북쪽으로 군대를 일으키시어 조나라에게 을 베풀고, 연나라를 짓밟아 버리느니만 못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곳을 자신의 봉지로 삼으면, 이는 백대百代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입니다.”
춘신군이 말하였다.
“연나라를 공략하는 길은 나라 아니면 나라를 거쳐야 하오.
그런데 위나라와 제나라는 우리 초나라와 새로운 원한을 가지고 있으니, 초나라 임금이 비록 연나라를 공격하려 해도 장차 어느 길로 간단 말이오?”
우경이 대답하였다.
“청컨대 위왕魏王으로 하여금 허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춘신군이 말하였다.
“어떻게 말이오?”
우경이 대답하였다.
“청컨대 제가 위나라로 가서 믿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우경은 위나라에 가서 위왕에게 말하였다.
“무릇 초나라 역시 강대한 나라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들이 장차 연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위왕(安釐王)이 말하였다.
“방금 그대는 천하무적이라 해놓고, 지금 자네가 연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하니, 어찌 된 일이오?”
우경이 대답하였다.
“지금 그 말[馬]은 힘이 세다고 말하면 되지만, 1천 을 실을 수 있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저 1천 균 무게는 말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초나라가 강대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만, 만약 조나라‧위나라를 뛰어넘어 연나라와 싸울 수 있다고 한다면 초나라로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초나라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초나라가 한다면 이는 바로 초나라를 피폐시키는 일입니다.
초나라가 피폐해지면 위나라는 강해지는 것이니, 대왕께는 어느 것이 유리하겠습니까?”


역주
역주1 221. 虞卿謂春申君 : 이 사건은 B.C.248년쯤으로 여겨진다.
역주2 虞卿 : 유세객. 趙나라의 上卿을 지냈기 때문에 姓에 卿을 붙여 부른다. 저서에 《虞氏春秋》가 있다.
역주3 於安思危 危則慮安 : 《左傳》 襄公十一年에 나오는 書曰 居安思危라는 말을 演繹하여 한 말이다.
역주4 商君 : 衛鞅, 公孫鞅, 商鞅이라고도 한다. 秦 孝公을 도와 秦나라를 부흥시킨 인물. 《史記》 〈商君列傳〉 및 《商君書》 참조.
역주5 秦惠王封冉子 : 冉子는 魏冉을 가리킴. 위염은 秦나라 相을 지냈는데 면직한 후 昭王이 穰侯에 봉하고 陶를 加封했으니, 여기서 惠王이 봉했다고 한 것은 틀린 것이다.
역주6 太公望封於齊 : 太公望은 呂尙. 周 武王을 도와 殷나라를 멸하였다. 齊, 즉 營丘(지금의 山東省 臨溜縣 西北)에 봉해져 齊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역주7 邵公奭封於燕 : 邵公奭은 周 武王의 庶子로 成王‧康王을 도왔다. 燕, 즉 薊丘(지금의 河北省 大興縣 西南)에 봉해져서 燕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邵는 召로도 쓴다.
역주8 趙怒深 : B.C.251년 燕나라는 長平, 邯鄲의 전쟁(089‧091‧134‧232‧255‧256‧257‧258‧366장)으로 趙나라가 피폐해지자 이 틈을 이용, 2천 輛의 대군으로 趙나라를 침범하였다. 鮑彪本에는 怒가 怨으로 되어 있다.
역주9 怨楚 : 楚나라는 長平에서 秦나라와 趙나라가 대치하고 있을 때 魏나라 편이었던 魯나라를 침략하여, B.C.256년에 魯나라를 멸망시켰다. 이 일로 魏나라는 楚나라에 대해 경계심을 가졌다.
역주10 楚君 : 鮑彪本에는 楚軍으로 되어 있으며, 馬王堆 漢墓帛書에는 이 두 글자가 없다.
역주11 千鈞 : 3만 근의 무게. 1鈞은 30근.
역주12 我(哉) : 鮑彪本에 의거하여 哉로 고쳐 번역하였다.
역주13 見(是) : 鮑彪本에 의거하여 是로 고쳐 번역하였다.
역주14 원주] 其於王孰便也 : 曾鞏本에는 “이하 빠진 문장이 있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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