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秦地半天下, 兵敵四國, 被山帶河, 四塞以爲固.
之士百餘萬, 車千乘, 騎萬疋, 粟如丘山. 法令旣明, 士卒安難樂死.
雖無出兵甲, 席卷
之險, 折天下之脊, 天下後服者先亡.
且夫爲從者, 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也. 夫虎之與羊, 不格明矣.
而大王不與秦, 秦下甲兵, 據宜陽, 韓之上地不通; 下
, 取
, 韓必入臣於秦.
夫以弱攻强, 不料敵而輕戰, 國貧而驟擧兵, 此危亡之術也.
臣聞之, 兵不如者, 勿與挑戰; 粟不如者, 勿與持久.
夫從人者, 飾辯虛辭, 高主之節行, 言其利而不言其害,
秦西有巴蜀, 方船積粟, 起於
, 循江而下, 至郢三千餘里.
舫船載卒, 一舫載五十人, 與三月之糧, 下水而浮, 一日行三百餘里;
扞關驚, 則
, 盡城守矣, 黔中‧巫郡非王之有已.
秦兵之攻楚也, 危難在三月之內; 而楚恃諸侯之救, 在半歲之外, 此其勢不相及也.
夫恃弱國之救, 而忘强秦之禍, 此臣之所以爲大王之患也.
且夫秦之所以不出甲於函谷關十五年以攻諸侯者, 陰謀有呑天下之心也.
楚王大怒, 興師襲秦, 戰於藍田, 又卻. 此所謂兩虎相搏者也.
夫秦‧楚相弊, 而韓‧魏以全制其後, 計無過於此者矣,
大王悉起兵以攻宋, 不至數月而宋可擧. 擧宋而東指, 則
十二諸侯, 盡王之有已.
夫以一詐僞反覆之蘇秦, 而欲經營天下, 混一諸侯, 其不可成也亦明矣.
大王誠能聽臣, 臣請秦太子入質於楚, 楚太子入質於秦, 請以秦女爲大王箕箒之妾, 効萬家之都, 以爲
,
長爲昆弟之國, 終身無相攻擊. 臣以爲計無便於此者.
故敝邑秦王, 使使臣獻書大王之從車下風 須以決事.”
“楚國僻陋, 託東海之上. 寡人年幼, 不習國家之長計.
장의張儀가 진秦나라를 위해 초왕楚王에게 합종合從을 깨고 연횡連橫할 것을 유세하다
장의張儀가 진秦나라를 위하여 종친從親(合從)을 파破하고 연횡連橫해야 한다고 초왕楚王(懷王)에게 유세하였다.
“진秦나라는 천하 토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병력은 사방 국가를 대항할 수 있고, 산은 자연 요새를 이루고 있으며, 강은 띠처럼 둘러 있어, 사경四境이 험요險要하며 견고합니다.
용맹한 군사는 1백만이 넘고, 병거兵車는 1천 량, 기마騎馬는 1만 필에다가 군량은 산처럼 쌓여 있으며, 법령은 엄하여 사졸들은 위난危難을 겁내지 않고 죽기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임금은 엄嚴하여 명찰明察하며, 장수는 지혜롭고 용무勇武이 넘칩니다.
그래서 비록 출병을 하지 않고도, 상산常山의 험요險要를 석권하여 천하의 등뼈를 꺾어버려 천하 제후로 하여금 나중에 귀복歸服할수록 먼저 망하게 합니다.
또 대저 합종合從이란 마치 양떼를 몰아 맹호를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무릇 범에게 있어서 양은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맹호와 함께 하지 않고 양의 편을 드시니, 제 생각에 대왕의 계획은 잘못이라고 여깁니다.
무릇 천하의 강국은 진秦나라 아니면 곧 초楚나라요, 초나라가 아니면 곧 진나라입니다.
양국의 세력은 서로 비슷하여 서로 싸우면 그 형세상 끝내 양립兩立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진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니, 진秦나라는 곧 발병發兵하여 의양宜陽을 점거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韓나라의 상지上地가 불통不通되고, 하동河東으로 내려와 성고成皐를 취하면 한韓나라는 틀림없이 진秦나라에 입조入朝해 올 것입니다.
한나라가 입조入朝해 오면 위魏나라는 바람을 따르듯 움직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진나라가 초나라의 서쪽을 치고 한나라‧위나라는 초나라의 북쪽을 치게 된다면, 초나라 사직社稷에 어찌 위험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합종이란 약한 무리를 모아 지극히 강한 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무릇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공격하면서 적의 힘을 헤아리지도 않고 경솔히 개전開戰하며, 국가가 빈곤한 데도 갑자기 병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술책입니다.
저는 듣건대 병력이 그만 못하면 더불어 도전하지 말고, 양식이 그만 못하거든 지구전持久戰을 벌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합종을 주장하는 자들은 꾸며낸 거짓말로 임금의 절조節操와 품행品行을 찬양하되 이익만 말하고 그 손해되는 일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진나라가 초楚나라를 공격하는 화환禍患을 당하게 되지만 때는 늦고 맙니다.
이런 까닭으로 대왕께서는 숙고熟考하시기 바랍니다.
진나라는 서쪽에 파巴와 촉蜀이 있어 배에 곡식을 싣고 문산汶山을 출발하여, 강을 따라 내려오면 영郢까지는 3천 리가 됩니다.
배에 군사를 실으면 한 배에 50인과 3개월 분의 식량을 싣고 물을 타고 내려와 하루 3백 리씩 갑니다.
거리는 멀지만 말이 땀을 흘리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미처 열흘이 되기 전에 한관扞關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한관이 경동驚動하면 경릉竟陵 동쪽은 모두 힘을 다해 성을 지켜야 할 것인데, 그러는 사이 검중黔中과 무군巫郡은 왕의 땅이 아니게 됩니다.
진나라가 군대를 내어 무관武關을 넘어 남쪽으로 향해 공격하면 북쪽 영토가 끊어집니다.
진秦나라 군사가 초나라를 공격하는 위난危難은 3개월 내에 결판나고 마는데, 초나라가 제후의 구원을 믿으려면 반년 이상이 걸려서 미치지 못할 형세입니다.
무릇 약한 나라의 구원을 믿고 강한 나라의 화禍를 망각하고 있으니, 이 때문에 제가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또 대왕께서 일찍이 오吳나라와 오전삼승五戰三勝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으나 결국 진중陣中의 병졸은 다 잃고 말았습니다.
신성新城을 치우치게 지키느라고 그곳 백성들만 고생을 하였습니다.
제가 듣건대 강대국을 공격하게 되면 쉽게 위험에 빠지게 되고, 백성이 피폐하게 되면 윗사람을 원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쉽게 무너질 공功을 지키느라 강한 진나라의 마음만 거역하고 있으니, 저는 대왕을 위해 위험하다고 여기는 바입니다.
하물며 진나라가 15년 동안이나 함곡관函谷關 너머로 출병하여 제후諸侯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천하를 병탄하려는 음모를 꾸미느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초나라가 일찍이 진나라와 사이가 벌어져 한중漢中에서 일전一戰을 벌였으나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통후通侯‧집규執珪 등 고관으로서 죽은 자가 70여 명이나 되어 끝내 한중을 잃고 말았습니다.
초왕楚王께서 더욱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여 남전藍田에서 싸웠지만 역시 퇴각당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경우를 일러 양호상박兩虎相搏이라 합니다.
무릇 진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피폐해지면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온전하여 그 뒤를 공략할 것이니, 계책 중에 이보다 더 큰 과실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원컨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위衛나라의 양진陽晉을 치면 틀림없이 문을 열듯 천하의 가슴을 열어버리는 것이 됩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대왕께서는 군대를 다 내어 송宋나라를 치면 몇 달 걸리지 않고 송나라를 점령할 수 있으며, 다시 송나라를 몰아 동쪽으로 향하면 사수泗水 부근의 12 제후는 모두 왕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무릇 천하가 믿었던 바의 합종을 견고히 했던 자는 소진蘇秦인데, 그는 무안군武安君에 봉封해지고 연燕나라의 상국相國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연왕燕王과 음모陰謀하여 제齊나라를 삼킨 후, 그 제나라의 영토를 나누어 갖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죄罪를 지은 것처럼 꾸며 제나라로 들어가자 제왕齊王은 그를 받아들여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2년이 지난 후 이런 사실이 발각되자 제왕齊王은 크게 노하여 소진을 잡아 시중市中에서 거열형車裂刑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무릇 이토록 간사하게 사기꾼 짓을 반복反覆하는 소진의 정책을 써서 천하를 경영하고 제후를 통일하려고 하니, 성공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는 국경이 서로 접接해 있어 본래 형세상 친한 나라입니다.
대왕께서 능히 저의 의견을 들어주신다면 저는 청컨대 진나라 태자를 초나라에 인질로 들이고, 초나라 태자 역시 진나라에 인질로 보내고, 장차 진왕秦王의 딸을 대왕의 시중을 드는 첩妾으로 들이도록 청하겠으며, 일만 호구의 대도大都를 바쳐 대왕의 탕목읍湯沐邑으로 삼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영원히 형제지국兄弟之國이 되어 종신토록 서로 공격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니, 제 생각에 이보다 더 편리한 계획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저희 진왕秦王(惠文王)께서 저를 사신으로 삼아 보내 국서國書를 대왕께 바치고 수종隨從을 들며 대왕의 결정을 기다리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 초나라는 벽루僻陋하여 동해東海 가에 의지하고 있으며, 또 과인은 나이가 어려 국가를 위해 장구한 계책도 익히지 못하고 있는 터입니다.
지금 상객上客께서 다행히 진왕秦王의 명령을 가르쳐 주시니, 과인은 이를 듣고 공경히 나라를 바쳐 따르겠습니다.”
이에 초왕은 사신을 파견하여 수레 1백 승에 계해지서鷄駭之犀와 야광지벽夜光之璧을 진왕秦王에게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