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大縣也, 上黨‧
積之久矣, 名爲縣, 其實郡也.
臣聞張儀西幷
之地, 北取
, 南取
, 天下不以爲多張儀而賢先王.
人告曾子母曰:曾參殺人. 曾子之母曰:吾子不殺人. 織自若.
頃之, 一人又告之曰:曾參殺人. 其母懼, 投杼踰牆而走.
夫以曾參之賢, 與母之信也, 而三人疑之, 則慈母不能信也.
今臣之賢不及曾子, 而王之信臣又未若曾子之母也, 疑臣者不適三人,
果攻宜陽, 五月而不能拔也. 樗里疾‧公孫衍二人在, 爭之王,
“과인은 수레를 몰아 한韓나라 삼천三川 땅을 지나 주실周室을 엿보고자 하오.
그렇게 하면 과인이 죽고 나서도 그 명성이 썩지 않겠지요?”
“청컨대 위魏나라에 가서 함께 한韓나라를 침벌할 맹약을 맺겠습니다.”
왕은 이에 상수向壽를 부사副使로 삼아 보냈다.
“그대는 돌아가 왕에게 ‘위魏나라가 저의 약정을 다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아직 한나라를 공격하지는 말아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되어 일이 성공하면 모두 그대의 공이 될 것이오.”
상수가 진秦나라로 돌아와 왕에게 고하자 진왕秦王은 식양息壤 땅에서 감무를 맞이하였다.
감무가 이르자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감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의양宜陽은 큰 현縣으로 상당上黨과 남양南陽의 재물을 축적해 둔 지 오래인데, 이름만 현이지 실제로는 군郡입니다.
왕께서 지금 숱한 위험을 두고 천 리나 되는 먼 길을 가서 그곳을 치겠다 하니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듣건대 장의張儀가 서쪽으로는 파巴‧촉蜀의 땅을 병탄倂呑하고, 북으로는 서하西河 밖까지 취하고, 남으로는 상용上庸까지 탈취하였지만 천하가 장의를 칭찬하지 않고, 선왕(惠王)을 훌륭하다 여기고 있습니다.
또 위魏 문후文侯가 악양樂羊을 장군으로 삼아 중산中山을 공격하여 3년 만에 겨우 탈취하고, 악양이 돌아와 공을 논하게 되었습니다.
문후가 악양을 비방하는 많은 상소문上疏文을 모아 놓은 상자를 꺼내 보이자 악양은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고는 ‘이는 저의 공이 아닙니다.
저리질樗里疾과 공손연公孫衍 두 사람은 한韓나라를 끼고 이 나라의 국정을 의논하는 판이니, 왕께서는 틀림없이 그들의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는 위魏나라를 속이는 것이 되며, 저는 한韓나라 공중치公仲侈에게 원한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증자曾子가 비읍費邑에 살 때에 비읍 사람으로 증자와 동성동명同姓同名인 어떤 사람이 살인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증자 어머니에게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다’라고 알려 왔으나 증자의 어머니는 ‘내 아들은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태연히 베틀에서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
조금 후 어떤 사람이 똑같이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라고 알려 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태연자약하였습니다.
조금 후 또 한 사람이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라고 알려 주자 그 어머니는 두려워서 북[杼]을 내던지고 담을 넘어 달려 나갔습니다.
무릇 증삼과 같이 어진 사람, 그것을 믿는 그 어머니의 굳은 믿음도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게 되며, 그토록 인자한 어머니도 아들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의 어짊은 증자만 못할 뿐만 아니라 대왕께서 저를 믿는 것도 그 어머니만 못하며 저를 의심하는 자가 세 사람만이 아닙니다.
저는 임금께서 저 때문에 북을 내던질까 두렵습니다.”
이에 그 식양息壤 땅에서 맹세의 의식까지 치렀다.
과연 의양宜陽 땅을 공격하는 데 5개월이 되도록 탈취하지 못하자 저리질과 공손연 두 사람이 다투어 임금에게 감무를 비방하였다.
왕은 그들의 비방을 듣고 감무를 소환하여 물을 참이었다.
인하여 온 군사를 다 모아 감무에게 주어 다시 의양을 공격토록 하여 드디어 의양을 함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