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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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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소진蘇秦이태李兌에게 유세하다
蘇秦說曰:
소진蘇秦이태李兌에게 유세하였다.
“雒陽蘇秦, 家貧親老, 無罷車‧駑馬‧桑輪,
낙양雒陽 승헌리乘軒里 출신 소진은 집은 가난하고 양친은 연로하며, 낡은 수레 하나, 늙은 말 한 필, 뽕나무로 만든 수레바퀴 하나조차 없었습니다.
蓬篋羸㬺, 負書擔橐, 觸塵埃, 蒙霜露, 越漳‧河, 足重繭, 日百而舍, 造外闕,
그래서 쑥대로 엮은 상자 하나에 헝겊으로 발을 싸맨 채, 책을 짊어지고 괴나리봇짐을 멘 채 흙먼지를 밟고 서리와 이슬을 뒤집어쓰며 장수漳水, 하수河水를 건너오느라 발은 겹겹의 누에고치처럼 부어 올랐는데, 하루 1백 리를 걸어야 겨우 쉴 자리를 얻어 잠을 자면서 이제 바깥채에 도착하였습니다.
願見於前, 口道天下之事.”
원컨대 앞에서 뵙고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李兌曰:
이태가 말하였다.
“先生以鬼之言見我則可, 若以人之事, 兌盡知之矣.”
“선생이 귀신 이야기로 나를 만나자면 좋지만 인간의 일이라면 내가 모두 알고 있소.”
蘇秦對曰:
소진이 대답하였다.
“臣固以鬼之言見君,
“저는 실로 귀신의 이야기로 뵙자는 것입니다.
非以人之言也.”
인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李兌見之.
이태가 소진을 접견하였다.
蘇秦曰:
소진이 말하였다.
“今日臣之來也暮,
“오늘 제가 오던 때가 저녁이었습니다.
後郭門, 藉席無所得, 寄宿人田中,
곽문郭門이 닫힌 뒤라 쉴 만한 자리를 찾았지만 얻지 못하여 남의 밭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傍有. 夜半, 鬪曰: 『汝不如我,
그 옆에 큰 사당이 있었는데, 한밤중에 토우土偶목우木偶가 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토우가〉 ‘너는 나만 못하다.
我者乃土也.
나는 흙으로 만들어졌다.
使我逢疾風淋雨, 懷沮, 乃復歸土.
나에게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나는 허물어져 흙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今汝非木之根, 則木之枝耳.
너는 나무뿌리 아니면 나뭇가지로 만들어졌다.
汝逢疾風淋雨, 漂入漳‧河, 東流至海, 氾濫無所止.』
네가 비바람을 만나면 장수漳水, 하수河水를 거쳐 동쪽 바다로 흘러가 둥둥 떠다니며 어디 머물 곳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臣竊以爲土梗勝也.
그래서 저는 속으로 토우가 이겼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주보主父(무령왕武靈王)를 죽이고 이를 멸족시켰습니다.
君之立於天下, 危於累卵.
그렇게 하고도 께서 천하에 서 있는 것은 계란을 포개 쌓는 것보다 더 위험합니다.
君聽臣計則生, 不聽臣計則死.”
께서 저의 계책을 들으면 살 수 있으려니와 저의 계책을 듣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李兌曰:
이태가 말하였다.
“先生就舍, 明日復來見兌也.”
“선생은 숙소로 가 계시다가 내일 다시 와서 저를 만나 주십시오.”
蘇秦出.
소진은 나갔다.
李兌舍人謂李兌曰:
이태의 사인舍人이 이태에게 말하였다.
“臣竊觀君與蘇公談也, 其辯過君, 其博過君,
“제가 소진蘇秦의 대화를 엿들어보았더니 소진의 언변이 군보다 낫고 그 박식함도 보다 나았습니다.
君能聽蘇公之計乎?”
소진의 계책을 능히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李兌曰:
이태가 말하였다.
“不能.”
“들어줄 수 없을 것이다.”
舍人曰:
사인이 말했다.
“君卽不能, 願君堅塞兩耳, 無聽其談也.”
“군께서 들어줄 수 없다면 원컨대 께서는 두 귀를 막고 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明日復見, 終日談而去.
이튿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종일 말을 나누고서야 헤어졌다.
舍人出送蘇君, 蘇秦謂舍人曰:
사인이 나와서 소진을 전송하자 소진이 사인에게 물었다.
“昨日我談粗而君動, 今日精而君不動, 何也?”
“어제는 내가 대강만 말해도 움직이더니, 오늘은 아주 자세히 말해도 움직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오?”
舍人曰:
사인이 말하였다.
“先生之計大而規高, 吾君不能用也.
“선생의 계책은 크고 그 규모가 높아서 저의 주인께서 이를 쓸 수가 없습니다.
乃我請君塞兩耳, 無聽談者.
그래서 제가 주인께 두 귀를 틀어막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고 하였지요.
雖然, 先生明日復來,
비록 그렇기는 하나 선생께서 내일 다시 와 보십시오.
吾請資先生厚用.”
제가 선생에게 후한 용돈을 노자로 드리도록 청해 놓겠습니다.”
明日來, 抵掌而談.
다음날 소진이 다시 와 손바닥을 치면서 담론談論이 벌어졌다.
李兌送蘇秦明月之珠‧‧黃金百鎰.
이태는 소진에게 명월주明月珠, 화씨벽和氏璧, 흑초구黑貂裘, 그리고 황금 1백 을 주어 보냈다.
蘇秦得以爲用, 西入於秦.
소진은 이를 노자로 하여 서쪽의 나라로 들어갔다.
역주
역주1 : 이 이야기의 일부는 〈齊策〉에서 孟嘗君이 秦나라로 가려 할 때 말렸던 蘇秦의 말과 내용이 동일하다.(138장) 한편 이 사건은 蘇秦의 사망 연대(B.C.317년)와 沙丘之變(B.C.295년)이 서로 맞지 않아 많은 문제점이 있다. 특히 내용 자체도 齊策 138장과 비슷해 후인이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역주2 李兌 : 趙나라의 重臣. 《史記》 〈齊世家〉 참조. 成皐之戰의 奉陽君이 곧 李兌라는 說도 있다.
역주3 乘軒車(里) : 원문 ‘車’는 ‘里’의 誤字임.
역주4 大叢 : 神祠(《新譯戰國策》), 神叢(何建章 《戰國策注釋》)이라 하여 祠堂.
역주5 土梗與木梗 : 흙으로 만든 인형[土偶]과 나무로 만든 인형[木偶].
역주6 殺主父而族之 : 趙나라 武靈王이 왕자 何를 왕으로 삼으니, 이가 곧 惠文王이다. 그러나 뒤에 主父로 물러난 武靈王은 長子 章을 불쌍히 여겨 趙나라를 둘로 나누어 그 반을 章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는 곧 章과 何의 싸움을 유발하여, 패한 章이 아버지가 있는 沙丘의 離宮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또 다른 公子인 成(242장 참조)은 李兌와 함께 王子 何의 명을 받고 沙丘의 離宮을 포위, 결국 章을 죽게 만든다. 章이 죽었음에도 후환을 두려워한 成과 李兌는 이 離宮을 1백 일 동안이나 계속 포위, 끝내 主父(武靈王)는 굶어 죽고 만다.(B.C.295년의 일)
역주7 和氏之璧 : 戰國時代 楚의 卞和가 얻었다는 옥. 여기서처럼 李兌가 蘇秦에게 주었다는 和氏璧이 곧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082장 참조)
역주8 黑貂之裘 : 검은색 담비 털로 만든 외투.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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