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趙나라는 백작伯爵이며 영성嬴姓으로 진秦나라와 같은 조상이다. 백익伯益의 후손 비렴蜚廉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악래惡來의 후손은 진秦나라가 되었고 이승李勝의 후손인 조보造父는 조趙 땅에 봉해서 조趙를 성姓으로 삼았다. 이 성씨가 뒤에 나라 이름이 된 것이다. 주실周室의 유왕幽王이 무도해지자 조보의 후손이 진晉나라로 도망하여 대대로 진나라에서 경卿벼슬을 역임하였다. 그런데 이 진晉나라가 춘추 말기에 어지러워지자 당시 진나라 육경六卿(한씨韓氏‧위씨魏氏‧조씨趙氏‧중항씨中行氏‧범씨范氏‧지씨知氏) 등과 함께 세력 다툼에 승리하여 결국 한씨韓氏‧위씨魏氏와 연합하여 당시 가장 큰 세력이었던 지씨知氏를 무너뜨리고 주周의 위열왕威烈王 때에 진토晉土를 과분瓜分, 제후의 반열에 서게 된다.(B.C.453) 흔히 이 진晉나라의 삼분과정 이후를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이 삼진三晉(한韓‧위魏‧조趙)은 모두 전국칠웅戰國七雄에 들게 된다.
조趙나라는 처음에 진양晉陽(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을 도읍으로 삼았으나 뒤에 한단邯鄲(지금의 하북성河北省 한단시邯鄲市)으로 옮겨, 무령왕武靈王 때에는 호복기사胡服騎士 등 개혁을 단행하여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특히 전국戰國 사공자四公子의 하나인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의 활약으로 중원中原의 대국으로 성장하기도 하였으나 전국시대 최대의 전투였던 장평대전長平大戰(B.C. 260)에서 진秦나라에게 크게 패한 후 국력이 쇠락하여 결국 182년 만에 진秦나라 천하통일 전쟁에 망하고 말았다.(B.C. 222년)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한편 포표鮑彪의 주注에는 그 영역에 대하여 “조趙나라는 처음에는 진晉나라를 나누어 세워졌다. 북쪽으로는 신도信都‧진정眞定‧상산常山‧중산中山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다시 탁군涿郡의 고양高陽 막주향鄚州鄕까지였다. 동쪽으로는 광평廣平‧거록鉅鹿‧청하淸河‧하간河間‧발해渤海의 동평東平‧서舒‧중읍中邑‧문안文安‧속주束州‧성평成平‧장무하章武河 이북이었으며, 남쪽으로는 부수浮水‧번양繁陽‧내황內黃‧척구斥丘까지였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태원太原‧정원定原‧상당上黨 지역이었다.”라 하여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중부, 섬서성陝西省 동부, 하북성河北省 서남부 일대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