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君之言, 危國之道也; 而子又附之, 是危也.”
昔者,
之居,
之波,
之水,
在其南, 而
在其北.
城非不高也, 人民非不衆也, 然而可得幷者, 政惡故也.
294. 위魏 무후武侯가 여러 대부大夫들과 서하西河에서 놀다
위魏 무후武侯가 여러 대부들과 더불어 서하西河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지세〉를 칭탄하여 말하였다.
“산천이 이렇게 험요險要하니 어찌 참으로 견고하다 하지 않겠는가!”
“이는 바로 진晉나라가 강성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만약 정사政事를 잘 닦기만 하면 패왕霸王의 업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임금의 말씀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말인데, 그대가 부언까지 하니 이는 위험을 가중시키는 일입니다.”
“산천이 험요한 것만으로는 보장保障하기에 부족한 것입니다.
패업이란 이러한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삼묘三苗가 살던 곳에는 왼쪽은 팽려彭蠡의 파도가, 오른쪽은 동정洞庭의 물이 막아 주었으며, 문산文山이 그 남쪽을, 형산衡山이 그 북쪽을 막아 주었습니다.
이러한 험요함을 믿고 정치를 소홀히 하였기 때문에 우禹임금이 이를 방축放逐해 버렸습니다.
무릇 하夏나라 걸桀은, 왼쪽은 천문산天門山의 북쪽, 오른 쪽은 천계산天谿山의 남쪽, 여산廬山‧역산睪山이 북쪽을 막아주고 이수伊水‧낙수洛水가 그 남쪽으로 흘렀습니다.
이런 험요이 있었지만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자 탕湯임금이 이를 정벌하였습니다.
또 은殷나라 주紂는, 왼쪽은 맹문산孟門山, 오른 쪽은 장수漳水‧부수釜水, 앞으로는 하수河水가 띠처럼 두르고 뒤로는 산들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런 험요함이 있었지만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자 무왕武王이 쳐버린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따르는 신하를 친히 하시고 성을 쳐서 항복시켰다고 합시다.
그 성들이 결코 높지 않은 것도 아니고 백성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니었는데 병탄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정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면 지형이 험하다고 해서 어찌 족히 패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서하西河의 정치는 오로지 그대에게 맡기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