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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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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召, 因留之.
爲之謂曰:
“春平侯者, 之所甚愛也, 而郞中甚妬之,
故相與謀曰: ‘春平侯入秦, 秦必留之.’ 故謀而入之秦.
今君留之, 是空絶趙, 而郞中之計中也.
故君不如遣春平侯而留.
春平侯者, 必厚割趙以事君, 而贖平都侯.”
文信侯曰: “善.” 因與接意而遣之.


285. 나라가 춘평후春平侯를 부르다
나라가 〈나라의〉 춘평후春平侯를 불러 인질로 잡아두려 하였다.
〈진나라 대부〉 세균世鈞이 이를 위하여 문신후文信侯(여불위呂不韋)에게 말하였다.
“춘평후란 자는 조왕趙王이 매우 아끼는 인물이면서 궁중의 낭중郎中들이 심히 질투를 하고 있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서로 모략하기를 ‘춘평후가 진나라로 들어가면 진나라가 틀림없이 잡아 인질로 남겨 둘 것’이라고 좋아하면서 진나라로 들어가도록 모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군께서 이를 잡아 두면 이는 조나라와 외교만 단절되고 낭중의 계략에 걸려 드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군께서는 춘평후는 보내 주시고 대신 〈같이 온〉 평도후平都侯를 잡아 두십시오.
춘평후의 말은 조왕이 신뢰하는 터이므로 돌아가서 틀림없이 조나라 땅을 후하게 떼어 군을 섬기면서 평도후의 몸값을 치를 것입니다.”
문신후는 ‘좋다.’라 하고는 춘평후를 후히 접견하고 돌려보내 주었다.


역주
역주1 : 이 사건은 《史記》 〈趙世家〉에도 실려 있으며, 시기는 趙 悼王 2년(B.C.243년)이다.
역주2 春平侯 : 趙나라의 太子, 《史記》에는 春平君으로 되어 있다. 正義에 “趙나라 悼襄王 2년 秦 始皇이 春平侯를 秦의 咸陽으로 불렀다.”라고 되어 있다.
역주3 世鈞 : 秦나라 大夫, 《史記》에는 泄鈞으로 되어 있다.
역주4 文信侯 : 呂不韋. 秦 始皇의 사실상 親父, 始皇은 그를 仲父라 칭하였다.《史記》 〈呂不韋列傳〉 참조.
역주5 趙王 : 悼襄王, 이름은 偃, 孝成王의 아들.
역주6 平都侯 : 이름은 未詳, 春平君을 따라 秦에 갔던 사람.
역주7 言行〈信〉於趙王 : 《史記》 〈趙世家〉에 의해 ‘信’자를 보충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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