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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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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객경客卿나라를 위하여 진왕秦王에게 말하다
爲韓謂秦王曰:
〈어떤〉 객경客卿나라를 위하여 진왕秦王(소양왕昭襄王)에게 말하였다.
“韓珉之議, 知其君不知異君, 知其國不知異國.
한민韓珉의 의논은 자신의 임금만 알지 남의 임금은 모르며, 자기 국가만 알지 남의 국가는 모릅니다.
彼公仲者, 秦勢能詘之.
공중公仲 같은 인물이어야 나라의 세력으로 능히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秦之强, 首之者, 珉爲疾矣.
진나라가 강하게 되면 제일 먼저 침공을 받아 한민은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進齊‧宋之兵至, 遠薄梁郭, 所以不及魏者, 以爲成而過之道, 欲以四國西首也.
〈한나라가 일찍이〉 나라‧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 수원首垣까지 침공하였으며, 더욱 멀리 나라 수도 대량大梁 외곽 가까이까지 갔으면서도, 위나라로 더 들어가지 못한 것은 위나라와 강화講和하기 위해 남양南陽요로要路를 거쳐 네 나라()와 힘을 모아 서쪽 진나라로 머리를 돌리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所以不者, 皆曰以, , , 此皆絶地形, 羣臣比周以蔽其上, 大臣爲諸侯輕國也.
그런데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모두를 ‘나라는 제나라에게 망하였고, 위나라는 진나라에게 망하였으며, 나라와 나라는 나라에게 망하였는데, 이는 모두 교통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며.’ 군신들이 작당하여 임금의 안목을 가리고, 대신들은 〈사욕에 빠져 다른 제후를 위해〉 자기 국가의 이익을 무시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今王位正, 張儀之貴, 不得議, 是從臣不事大臣也;
지금 왕께서는 다행히 귀천貴賤의 지위를 바로잡으시어 장의張儀의 존귀함으로도 공손학公孫郝에 대해 의논하지 못하니, 이는 낮은 신하가 대신의 일에 간섭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公孫郝之貴, 不得議, 則大臣不得事近臣矣.
또 공손학의 존귀로도 감무甘茂를 논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대신은 근신近臣의 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貴賤不相事, 各得其位, 輻湊以事其上, 則羣臣之賢不肖, 可得而知也. 王之明一也.
귀천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각 자기의 바른 위치를 지켜 함께 몰려들어 대왕을 모시게 하시어 군신의 현능과 불초함을 알 수 있었으니, 이것이 왕의 첫째 명철하신 점입니다.
公孫郝嘗疾齊‧韓而不加貴, 則爲大臣不敢爲諸侯輕國矣; 齊‧韓嘗因公孫郝而不受, 則諸侯不敢因羣臣以爲能矣.
다음은 일찍이 공손학이 제나라‧한나라와 긴밀히 연합하다가 더 존립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는 대신된 자가 감히 다른 제후를 위해 자기 나라의 이익을 무시한 것을 보여 주신 것이며 제나라와 한나라는 일찍이 공손학 때문에 〈진나라의〉 용납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다른 제후들이 남의 나라 군신群臣이 자기의 이익을 얻는 일에 간여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外內不相爲, 則諸侯之情僞可得而知也. 王之明二也.
이처럼 내외가 서로 결당하지 못하게 하시어 제후들의 진정과 허위를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대왕의 두 번째 명철하신 점입니다.
公孫郝‧樗里疾請無攻韓, 陳四辟去, 王猶攻之也. 甘茂約楚‧趙而反敬魏, 是其講我,
공손학과 저리질樗里疾나라를 치지 말자고 하여 네 번이나 진술, 한나라가 사방으로 물러가자고 진술하였지만 왕께서는 이를 쳐서 성공하였고, 감무가 초나라‧조나라와 약속하고 돌아와서도 위나라를 경중敬重하자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강화를 맺었습니다.
茂且攻, 王猶校之也. 羣臣之知, 無幾於王之明者,
감무가 장차 한나라 의양을 공격하려 하자 대왕께서는 오히려 그 이해득실利害得失을 따지도록 했으니 군신들의 지혜가 대왕의 명찰에 따를 수 없었습니다.
臣故願公仲之國以侍於王, 而無自左右也.”
그래서 저는 원하옵건대 공중公仲이 국가로써 대왕을 받들어 모시도록 하고, 좌우 신하의 의논은 듣지 마소서.”
역주
역주1 : 이 사건은 秦 武王 때로 여겨진다. 宜陽之戰(002‧031‧064‧068‧384‧385‧386장)은 武王 말년의 일이다.
역주2 客卿 : 他國人으로서 卿이 된 자. 여기서는 秦의 客卿을 말한다.
역주3 首坦(垣) : 원문 ‘坦’은 垣의 誤字. 首垣은 長垣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河北省 長垣縣.
역주4 南陽 : 河南省 沁陽縣.
역주5 燕亡於齊 : 周 赧王 元年(B.C.314년)에 齊의 湣王이 燕噲의 讓國事件을 틈타 起兵해서 공격. 2년 후에 燕 昭王이 다시 나라를 일으켰다.
역주6 魏亡於秦 : 周 顯王 29년(B.C.340년)에 秦이 魏를 공격, 魏는 西河를 떼어 주고 수도를 大梁으로 옮겼다.
역주7 陳‧蔡亡於楚 : 周 敬王 42년(B.C.478년)에 陳이 楚에게 멸망. 그후 周 貞王 22년(B.C.447년)에 蔡도 楚에게 멸망당하였다.
역주8 公孫郝 : 《史記》에는 公孫奭. 혹은 公孫衍. 혹은 犀首로 되어 있다. 秦의 相國.
역주9 甘戊(茂) : 원문 ‘戊’는 ‘茂’의 誤字. 秦 武王 때 左丞相. 뒤에 樗里疾과 사이가 나빠 魏로 도망하였다.
역주10 宜陽 : 지금의 河南省 宜陽縣. 韓의 重邑.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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