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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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之民有者,
正議閔王, 斮之, 百姓不附.
齊孫室子直言, 殺之, 宗族離心.
爲政者也, 殺之, 大臣不親.
以故燕擧兵, 使將而擊之. 齊使將而應之.
齊軍破, 向子以輿一乘亡.
收餘卒, 復振, 與燕戰, 求所以者, 閔王不肯與, 軍破走.
王奔, 數之曰:
“夫之間, 方數百里, 雨血沾衣, 王知之乎?”
王曰:
“不知.”
之間, 地坼至泉, 王知之乎?”
王曰:
“不知.”
“人有當闕而哭者, 求之則不得, 去之則聞其聲, 王知之乎?”
王曰:
“不知.”
淖齒曰:
“天雨血沾衣者, 天以告也; 地坼至泉者, 地以告也; 人有當闕而哭者, 人以告也.
天地人皆以告矣, 而王不知戒焉, 何得無誅乎?”
於是殺閔王於.
太子乃解衣免服, 逃之家爲漑園. , 太史氏女, 知其貴人, 善事之.
之城, 破亡餘卒, 破燕兵, 紿, 遂以復齊, 遽迎太子於莒, 立之以爲王.
襄王卽位, 君王后以爲后, 生齊王.


나라 부곽지민負郭之民
나라 성곽 밖에 사는 사람 중에 호훤狐咺이라는 자가 있었다.
바른말로 민왕閔王을 비판하자 민왕閔王이 그를 단구檀衢에서 참수해 버리니, 백성들이 임금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
종실宗室 중에 진거陳擧라는 자 역시 직언을 하니, 동려東閭에서 죽여 종족의 마음도 멀어지고 말았다.
집정자執政者사마양저司馬穰苴마저 죽여버리자 대신들도 임금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창국군昌國君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게 하니, 나라는 향자向子를 시켜 맞아 싸우게 하였다.
나라 군대가 패하여 상자는 수레 하나를 타고 도망하고 말았다.
달자達子잔병殘兵을 모아 다시 떨쳐 일어나 연나라와 교전하면서 보상을 요구하였으나 민왕이 이를 거부하여, 그 군대도 깨어져 도망하고 말았다.
민왕은 로 도망하였는데 요치淖齒가 따져 물었다.
천승千乘박창博昌 사이 수백 리 땅에 피 비가 내려 옷을 적시고 있는데 왕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모른다.”
사이에 땅이 황천黃泉이 솟는 깊은 곳까지 갈라졌는데, 왕께서는 아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모른다.”
“궁궐 앞에서 사람의 곡성哭聲이 들려 찾아가 보면 보이지 않고 비켜나면 다시 그 소리가 들리는데, 왕께서는 아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모른다.”
요치淖齒가 말하였다.
“하늘에서 피 비가 내려 옷을 적시는 것은 하늘이 경고하는 것이요, 땅이 지하수 있는 깊은 곳까지 갈라진 것은 땅이 경고하는 것이며, 궁궐 앞에서 사람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사람이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 다 경고하고 있는 데도 왕께서는 경계할 줄 모르시니 어찌 주벌誅罰이 없겠습니까?”
그리고는 민왕을 고리鼓里에서 죽여 버렸다.
태자太子(法章)는 이에 복장을 바꾸고 태사씨太史氏 집에 숨어 꽃밭에 물을 주는 원정園丁이 되었는데 군왕후君王后는 그가 귀인貴人임을 알고 잘 대해 주었다.
전단田單즉묵성卽墨城으로써 패망한 나머지 군사를 모아 나라 군대를 깨뜨리고, 연장燕將 기겁騎劫을 속여 마침내 나라 국토를 회복하고는, 급히 태자를 땅에서 맞아 왕으로 세우게 되었다.
양왕襄王이 즉위하자 군왕후君王后는 왕후가 되었으며 제왕齊王 을 낳았다.


역주
역주1 160. 齊負郭之民 : B.C.314년 齊나라는 이 내란으로 燕나라로부터 침략을 받아 莒와 卽墨 두 성을 남기고 70여 성을 빼앗기고 만다. 128‧450‧453장 참조.
역주2 負郭 : 城郭 밖 가까운 곳. 가난한 사람이면서, 의기가 곧은 처사나 원로 선비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역주3 [孤]狐咺 : 戰國時代 齊人. 孤는 衍文. 狐喧으로도 쓰며 《古今人名表》에는 狐爰, 《呂氏春秋》 〈貴直〉에는 狐援으로 되어 있다.
역주4 檀衢 : 齊나라 도읍인 臨淄의 거리 이름. 四通八達의 거리를 衢라고 한다.
역주5 陳擧 : 齊나라의 公族. 戰國時代 齊나라의 본래 姓은 陳氏였는데 그 조상인 陳完이 齊나라로 도망하여 田으로 고쳤다.
역주6 東閭 : 齊都 동쪽의 閭門.
역주7 司馬穰苴 : 本姓은 田氏, 용병에 능해서 大司馬가 되었기 때문에 司馬穰苴라 일컬었다. 그러나 사마양저는 원래 춘추말기 齊 景公 때의 인물로 시기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
역주8 昌國君 : 燕나라 장군 樂毅를 가리키며, 封號가 昌國君이다. 《史記》 〈樂毅田單列傳〉 참조.
역주9 向子 : 齊나라 장수. 子는 남자의 美稱. 성씨일 경우 向의 음은 ‘상’.
역주10 達子 : 齊나라 장수. 이름은 알 수 없다.
역주11 : 賞과 通用된다.
역주12 : 齊나라 邑名. 지금의 山東省 동부. 春秋 三莒의 하나. 여기서는 지금의 莒縣이 아니다.
역주13 淖齒 : 원래 楚나라 장수로 楚王이 齊나라의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齊나라를 통치하고자 淖齒를 보낸 것이다. 〈秦策〉 084장 范雎至秦(下) 註 96) 참조.
역주14 千乘‧博昌 : 모두 齊나라 邑名으로 山東省에 있다. 千乘은 高苑縣, 博昌은 博昌縣.
역주15 嬴‧博 : 齊나라 邑 이름. 嬴은 山東省 萊蕪縣, 博은 泰安縣.
역주16 鼓里 : 莒城 밖의 작은 地名.
역주17 太史 : 원래 관직명이었으나 뒤에 성씨가 되었다. 《史記》 〈田敬仲完世家〉에 의하면 이름은 敫이다. 167장 참조.
역주18 君王后 : 즉 太史의 딸. 뒤에 太子가 襄王이 되자 后가 되었다. 167장 참조.
역주19 田單以卽墨 : 田單은 齊나라의 장수. 卽墨은 齊邑으로 지금의 山東省 平度縣. 지금의 卽墨縣이 아님. 전단은 齊나라가 위급해지자 卽墨을 근거로 燕나라 군사를 大敗시켰다.
역주20 騎劫 : 燕나라 大夫. 田單이 反間計를 써서 燕昭王과 樂毅를 이간시키자 昭王은 악의 대신 그를 장수로 삼아 齊나라와 싸웠으나 敗死하였다. 《史記》 〈田單樂毅列傳〉‧〈燕世家〉‧〈齊世家〉 참조.
역주21 : 齊 襄王의 아들. 뒤에 秦나라로 도망하여 諡號가 없다. 그 때문에 齊王建, 혹은 王建으로 불린다. 167‧168장 참조.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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