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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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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소진蘇秦나라에서 나라로 가다
, 始合從, 說趙王曰:
소진蘇秦나라에서 나라로 와서 비로소 합종책合從策을 펴기 시작하여 조왕趙王(숙후肅侯)에게 유세하였다.
“天下之卿相人臣, 乃至布衣之士, 莫不高賢大王之行義, 皆願奉敎陳忠於前之日久矣.
“천하의 경상卿相이나 인신人臣으로부터 포의布衣의 선비에 이르기까지 대왕의 행의行義를 어질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어, 모두 대왕 앞에서 교화를 받들고 충성을 진달하기를 원해 온 지 오래입니다.
雖然, 妬, 大王不得任事, 是以外賓客遊談之士, 無敢盡忠於前者.
그러나 봉양군奉陽君은 투기심이 많고, 대왕께서는 국사를 전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래 빈객과 유세객들 가운데 감히 대왕 앞에 나와 충성을 진달하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今奉陽君捐館舍, 大王乃今然後得與士民相親, 臣故敢獻其愚, 效愚忠.
지금은 봉양군이 죽었고, 대왕께서도 이후부터 사민士民들과 서로 친할 수 있다기에 신이 감히 어리석은 계책을 올려 우충愚忠을 펼까 합니다.
爲大王計, 莫若安民無事, 請無庸有爲也.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는 안민무사安民無事만한 것이 없으니, 청컨대 억지로 일을 만들어 번거롭게 하지 마십시오.
安民之本, 在於擇交.
안민安民의 근본은 외교의 선택에 있습니다.
擇交而得則民安, 擇交不得則民終身不得安.
외교를 선택해서 성공하면 백성은 안정될 것이요, 외교를 잘못 선택하면 백성이 종신토록 안정을 얻지 못합니다.
請言外患:
청컨대 밖으로부터의 화환禍患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齊‧秦爲兩敵, 而民不得安;
나라와 나라는 〈조나라의〉 두 적국이어서 그 때문에 백성이 안정될 수가 없습니다.
倚秦攻齊, 而民不得安; 倚齊攻秦, 而民不得安.
진나라를 믿고 제나라를 쳐도 백성이 안정되지 못하고, 제나라를 의지해 진나라를 공격해도 백성들은 역시 안정되지 못합니다.
故夫謀人之主, 伐人之國, 常苦出辭, 斷絶人之交, 願大王愼無出於口也.
그러므로 남을 모해謀害하는 군주이거나 남의 나라를 치는 경우에는 항상 외교를 단절해야겠다는 말을 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만 대왕께서 이런 말을 삼가서 다시는 입밖에 내지 마십시오.
請屛左右,
청컨대 좌우 신하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曰言所以異, 陰陽而已矣.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음양陰陽처럼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大王誠能聽臣, 燕必致氈裘狗馬之地, 齊必致海隅魚鹽之地, 楚必致橘柚雲夢之地, 韓‧魏皆可使致封地湯沐之邑,
대왕께서 진실로 제 의견을 들어주신다면 나라는 틀림없이 전구구마氈裘狗馬가 나는 땅을 바쳐 올 것이며, 나라도 틀림없이 해안의 어염魚鹽이 출산되는 토지를 바칠 것이며, 나라도 반드시 귤과 유자가 나는 운몽雲夢의 땅을 들고 올 것이며, 나라와 나라도 봉내의 토지를 탕목읍湯沐邑으로 바쳐오게 할 수 있습니다.
貴戚父兄皆可以受封侯.
〈그렇게 되면 대왕의〉 귀척貴戚과 부형들을 모두 로 봉할 수 있습니다.
夫割地效實, 五伯之所以覆軍禽將而求也;
무릇 토지를 헌납받는 효과는 과거 춘추春秋 오패五伯(오패五霸)들도 적군을 꺾고 적장을 사로잡는 등 〈갖은 신고辛苦 끝에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封侯貴戚, 湯‧武之所以放殺而爭也.
왕후에 봉하고 친척들을 현달하게 하는 것은 옛날 상탕商湯이나 무왕武王 같은 이조차도 남을 죽이고 내쫓고 한 후에야 겨우 쟁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今大王垂拱而兩有之, 是臣之所以爲大王願也.
지금 대왕께서는 편안히 옷깃을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 채, 이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있으니, 이를 왕께서 해 주시기를 바라는 일입니다.
大王與秦, 則秦必弱韓‧魏; 與齊, 則齊必弱楚‧魏.
대왕께서 나라와 연합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한나라‧위나라를 약화시킬 것이요, 제나라와 연합하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초나라와 위나라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魏弱則割河外, 韓弱則效宜陽.
위나라가 약해지면 하외河外가 깎여 나가고, 한나라가 약해지면 의양宜陽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宜陽效則上郡絶, 河外割則道不通.
의양을 바치고 나면 상군上郡격절隔絶당하고, 하외가 깎여 나가면 〈상군과의〉 길은 통할 수 없게 됩니다.
楚弱則無援.
초나라가 약해지면 조나라는 구원을 잃게 됩니다.
此三策者, 不可不熟計也.
그러니 이 세 가지 계책은 깊이 계산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夫秦下軹道則南陽動, 劫韓包周則趙自銷鑠,
무릇 나라가 지도軹道로 내려오면 남양南陽이 위험해지고, 한나라를 위협하여 주실周室을 포위하면 조나라는 스스로 녹아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據衛取淇則齊必入朝.
〈진나라가〉 나라를 점거하고 땅을 취해 버리면 제나라는 할 수 없이 〈진나라에게〉 굴복하고 말 것입니다.
秦欲已得行於山東, 則必擧甲而向趙.
진나라가 산동山東의 여러 나라에 뜻을 둔다면 틀림없이 군대를 일으켜 〈제일 먼저〉 조나라로 향할 것입니다.
秦甲涉河踰漳, 據番吾, 則兵必戰於邯鄲之下矣. 此臣之所以爲大王患也.
진나라가 하수河水를 건너 장수漳水를 넘어 파오番吾를 점거하게 되면 한단邯鄲 성 아래에서 싸움을 벌이게 되니, 이를 제가 대왕을 위하여 걱정하는 바입니다.
當今之時, 山東之建國, 莫如趙强.
지금 이때에 산동에 세워진 여러 나라 중에서 조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趙地方二千里, 帶甲數十萬, 車千乘, 騎萬匹, 粟支十年.
조나라의 토지는 2천 리이며, 대갑帶甲은 수 십만, 수레 1천 에 기마는 1만 필, 식량은 능히 10년을 지탱할 수 있습니다.
西有常山, 南有河‧漳, 東有淸河, 北有燕國.
서쪽으로는 상산常山이 있고, 남쪽으로는 하수河水장수漳水, 동쪽으로는 청하淸河, 북쪽으로는 나라가 있습니다.
燕固弱國, 不足畏也.
연나라는 참으로 약한 나라이니 겁낼 것 없습니다.
且秦之所畏害於天下者, 莫如趙.
또 진나라가 천하에 가장 겁내는 나라로 조나라보다 더한 상대가 없습니다.
然而秦不敢擧兵甲而伐趙者, 何也?
그렇지만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에 군사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畏韓‧魏之議其後也.
그것은 나라‧나라가 연합하여 자기의 뒤를 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然則韓‧魏, 趙之南蔽也.
이렇게 보면 한나라‧위나라는 곧 남쪽으로 조나라의 방패 구실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秦之攻韓‧魏也, 則不然.
그러나 진나라가 한나라‧위나라를 치려면 그렇지 않습니다.
無有名山大川之限, 稍稍蠶食之, 傅之國都而止矣.
그들 나라에는 유명한 산천의 천연 요새가 없어, 다만 조금씩 잠식당하다가 결국 국도國都에까지 이르러 끝이 나게 됩니다.
韓‧魏不能支秦, 必入臣.
한나라‧위나라가 진나라에게 견디다 못하면 틀림없이 진나라의 신하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韓‧魏臣於秦, 秦無韓‧魏之隔, 禍中於趙矣.
한나라‧위나라가 진나라 신하가 되고 나면, 진나라로서는 한나라ㆍ위나라의 막힘이 없어 진나라의 화가 바로 조나라에게 닥쳐올 것입니다.
此臣之所以爲大王患也.
이것이 제가 임금을 위하여 걱정하고 있는 바입니다.
臣聞, 堯無, 舜無咫尺之地, 以有天下; 禹無百人之聚, 以王諸侯;
저는 듣건대 임금은 세 사람 장부丈夫 몫의 토지도 없었고, 임금은 지척의 토지도 없었으면서도 천하를 소유하였고, 임금은 1백 명도 되지 않는 촌락으로부터 제후의 왕이 되었습니다.
湯‧武之卒不過三千人, 車不過三百乘, 立爲天子. 誠得其道也.
무왕武王의 군대는 3천 명도 되지 않았고, 전차는 3백 도 되지 않았으면서도 천자에 올랐으니, 진실로 정확한 방법을 터득하였던 것입니다.
是故明主外料其敵國之强弱, 內度其士卒之衆寡‧賢與不肖, 不待兩軍相當, 而勝敗存亡之機節, 固已見於胸中矣,
이런 까닭으로 명철한 군주는 밖으로 적국의 강약을 헤아려 보며, 안으로 자기 병력의 다소와 , 불초不肖를 따져보기 때문에 적국과 개전開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승패 존망의 기미를 이미 가슴속에 알고 있는 것입니다.
豈掩於衆人之言, 而以冥冥決事哉!
그러니 어찌 중인衆人의 말에 가리워져 몽매한 결단을 내리겠습니까.
臣竊以天下地圖案之. 諸侯之地, 五倍於秦; 料諸侯之卒, 十倍於秦.
제가 일찍이 천하의 지도를 놓고 따져보았더니, 〈진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제후들의 토지가 진나라의 5배나 되며, 제후의 병력을 헤아렸더니, 진나라의 10배는 되었습니다.
六國幷力爲一, 西面而攻秦, 秦破必矣.
그러니 산동山東 육국六國이 하나로 단결해서 서쪽으로 진나라를 공격하면 진나라가 깨어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今見破於秦, 西面而事之, 見臣於秦.
그런데 지금 제후들은 도리어 진나라에게 격파擊破되어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기며, 진나라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夫破人之與破於人也, 臣人之與臣於人也, 豈可同日而言之哉!
무릇 남을 깨뜨리는 것과 남에게 격파당하는 것, 그리고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 이 두 가지는 그 차이를 어찌 함께 말할 수 있겠습니까?
夫橫人者, 皆欲割諸侯之地以與秦成.
무릇 연횡連橫을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제후의 토지를 떼어다가 진나라에 바쳐 강화講和하자고 합니다.
與秦成, 則高臺, 美宮室, 聽竽瑟之音, 察五味之和, 前有軒轅, 後有長庭, 美人巧笑,
그리하여 진나라와 강화가 이루어지면 〈태평성대라고〉 누대樓臺를 높이 짓고 궁실宮室을 아름답게 꾸미며, 음악이나 듣고 오미五味를 살펴서 맛보며, 앞에는 수레가 가득하고 후원에다 정원을 꾸며, 미녀의 웃음에 빠집니다.
卒有秦患, 而不與其憂.
그러다가 마침내 진나라의 가 닥치면 그때는 그 근심을 함께 하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是故橫人日夜務以秦權恐猲諸侯, 以求割地.
이런 까닭으로 연횡을 주장하는 자들은 밤낮으로 진나라의 위세를 가지고 제후를 공갈하여 토지를 갉아먹고자 하는 것입니다.
願大王之熟計之也.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臣聞, 明王絶疑去讒, 屛流言之迹, 塞朋黨之門,
저는 듣건대, 명석한 임금은 의심을 끊고 참소를 제거하며, 유언비어流言蜚語의 자취를 물리치고 붕당朋黨의 문을 막아 버린다고 합니다.
故尊主廣地强兵之計, 臣得陳忠於前矣.
그래서 존왕尊王, 광지廣地, 강병强兵의 계책에 대하여 제가 임금 앞에서 그 충정을 펴 보이겠습니다.
故竊爲大王計, 莫如一韓‧魏‧齊‧楚‧燕‧趙, 六國從親, 以儐畔秦.
대왕을 위하여 계책으로는 , 이 여섯 나라가 합종合從 친선하여 진나라를 배반하여 내치는 것만한 정책이 없습니다.
令天下之將相, 相與會於洹水之上, 通質刑白馬以盟之.
그리하여 천하의 장상將相을 모두 원수洹水 가에 모이도록 하여 서로 인질人質을 교환하고 백마白馬를 희생으로 잡아 그 피로 다음과 같이 맹약하십시오.
約曰: ‘秦攻楚, 齊‧魏各出銳師以佐之, 韓絶食道, 趙涉河‧漳, 燕守常山之北.
‘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면 제나라‧위나라가 정병을 보내어 이를 도와주며, 한나라는 진나라의 식량 보급 길을 차단하고, 조나라는 하수河水장수漳水를 건너고, 연나라는 상산常山의 북쪽을 지킨다.
秦攻韓‧魏, 則楚絶其後, 齊出銳師以佐之, 趙涉河‧漳, 燕守.
진나라가 한나라‧위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는 그 후면을 단절시키고, 제나라는 정병으로 이를 도와주고, 조나라는 하수‧장수를 건너고, 연나라는 운중雲中을 수비한다.
秦攻齊, 則楚絶其後, 韓守成皐, 魏塞, 趙涉河‧漳ㆍ博關, 燕出銳師以佐之.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는 그 후면을 단절시키고, 한나라는 성고成皐를 지키며, 위나라는 오도午道를 가로막고, 조나라는 하수‧장수‧박관博關을 넘어서며, 연나라는 정병을 보내어 제나라를 돕는다.
秦攻燕, 則趙守常山, 楚軍武關, 齊涉渤海, 韓‧魏出銳師以佐之.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면 조나라는 상산常山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武關에 주둔하고, 제나라는 발해渤海를 건너고, 한나라‧위나라는 정병을 보내어 이를 돕는다.
秦攻趙, 則韓軍宜陽, 楚軍武關, 魏軍河外, 齊涉渤海, 燕出銳師以佐之.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면 한나라는 의양宜陽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에 주둔하며, 위나라는 하외河外를 수비하고, 제나라는 발해渤海를 건너며, 연나라는 정병을 보내어 이를 돕는다.
諸侯有先背約者, 五國共伐之.’ 六國從親以擯秦, 秦必不敢出兵於函谷關以害山東矣!
제후들 중에 누구든 먼저 맹약을 배반하는 자가 생기면 나머지 오국五國이 공동으로 이를 토벌한다.’ 이렇게 여섯 나라가 합종 친선하여 진나라에 대항하게 되면 진나라는 감히 함곡관函谷關을 넘어 산동 여러 나라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如是則伯業成矣!”
이렇게만 된다면 패업霸業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趙王曰:
조왕이 이렇게 말하였다.
“寡人年少, 莅國之日淺, 未嘗得聞社稷之長計.
과인寡人이 아직 나이가 어리고 국정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직社稷의 장구한 계획을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今上客有意存天下, 安諸侯, 寡人敬以國從.”
지금 상객上客께서 천하를 보위하고 제후를 안정시킬 방법을 일러주시니, 과인은 공손히 나라를 받들어 따르겠습니다.”
乃封蘇秦爲武安君, 飾車百乘, 黃金千, 白璧百雙, 錦繡千純, 以約諸侯.
이에 소진蘇秦무안군武安君에 봉하고, 식거飾車 1백 , 황금 1천 , 백벽白璧 1백 , 금수錦繡 1천 등 선물을 주어 제후와 맹약하도록 하였다.
역주
역주1 : 이 이야기는 《史記》 〈蘇秦列傳〉에도 실려 있다. 蘇秦이 이처럼 趙나라 肅侯에게 유세한 것은 B.C.334년이며, 이에 따라 六國이 合從을 이루게 된 것은 그 이듬해이다.
역주2 蘇秦從燕之趙 : 蘇秦은 天下合從說을 펴려고 제일 먼저 趙나라로 갔었다. 당시 趙의 재상인 奉陽君이 이를 거절해 燕으로 가서 1년 후에 겨우 文侯를 만나 인정받게 되며, 그의 도움으로 다시 趙에 오게 된다. 당시 奉陽君은 이미 죽은 후였다.
역주3 奉陽君 : 肅侯의 아우로 이름은 成. 相으로 있으면서 蘇秦을 시기하였다.
역주4 三夫之分 : 田三百畝를 말한다. 古代 一夫에게 1백 畝씩 경작하게 하였다.
역주5 雲中 : 郡名, 지금의 山西省 長城 밖의 일대.
역주6 午道 : 地名. 《史記》 〈張儀列傳〉 索隱에 ‘午道當在趙之東 齊之西也 午道 地名也’라 하였다.
역주7 : 무게의 단위, 고대에는 20, 혹은 24兩을 1鎰로 하였으며, 혹은 1金이라고도 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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