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戰國策(2)

전국책(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秦將伐魏.
魏王聞之, 夜見孟嘗君, 告之曰:
“秦且攻魏,
子爲寡人謀,
奈何?”
孟嘗君曰:
“有諸侯之救, 則國可存也.”
王曰:
“寡人願子之行也.”
重爲之約車百乘.
孟嘗君之趙, 謂趙王曰:
“文願借兵以救魏.”
趙王曰:
“寡人不能.”
孟嘗君曰:
“夫敢借兵者, 以忠王也.”
王曰:
“可得聞乎?”
孟嘗君曰:
“夫趙之兵, 非能彊於魏之兵; 魏之兵, 非能弱於趙也.
然而趙之地不歲危, 而民不歲死;
而魏之地歲危, 而民歲死者, 何也?
以其西爲趙蔽也.
今趙不救魏, 魏歃盟於秦,
是趙與强秦爲界也, 地亦且歲危, 民亦且歲死矣.
此文之所以忠於大王也.”
趙王許諾, 爲起兵十萬, 車三百乘.
又北見燕王曰:
“先日常約兩王之交矣.
今秦且攻魏, 願大王之救之.”
燕王曰:
“吾歲不熟二年矣,
今又行數千里而以助魏, 且奈何?”
田文曰:
“夫行數千里而救人者, 此國之利也.
今魏王出國門而望見軍,
雖欲行數千里而助人, 可得乎?”
燕王尙未許也. 田文曰:
“臣效便計於王, 王不用臣之忠計, 文請行矣.
恐天下之將有大變也.”
王曰:
“大變可得聞乎?”
曰:
“秦攻魏未能克之也,
而臺已燔, 游已奪矣.
而燕不救魏, 魏王折節割地, 以國之半與秦,
秦必去矣.
秦已去魏, 魏王悉韓‧魏之兵, 又西借秦兵, 以因趙之衆, 以四國攻燕, 王且何利?
利行數千里而助人乎?
利出燕南門而望見軍乎?
則道里近而輸又易矣,
王何利?”
燕王曰:
“子行矣,
寡人聽子.”
乃爲之起兵八萬, 車二百乘, 以從田文.
魏王大說,
曰: “君得燕‧趙之兵甚衆且亟矣.”
秦王大恐, 割地請講於魏.
因歸燕‧趙之兵, 而封田文.


339. 나라가 장차 나라를 치려 하다
나라가 장차 나라를 치려 하였다.
위왕魏王(소왕昭王)이 이 소식을 듣고 밤중에 맹상군孟嘗君을 만나 이렇게 고하였다.
“진나라가 장차 우리 위나라를 치려 하오.
그대는 나를 위해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겠소.
어찌하면 좋겠소?”
맹상군이 말하였다.
“제후들의 도움만 얻어낼 수 있다면 나라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그대가 갔으면 합니다.”
그리고는 후하게 수레 1백 을 준비해 주었다.
맹상군은 나라로 가서 조왕趙王(혜문왕惠文王)에게 말하였다.
“저는 귀국의 군대를 빌려 위나라를 구원하고 싶소.”
조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그럴 수 없소.”
맹상군이 말하였다.
“감히 병력을 빌려달라는 것은 왕께 충성하기 위함이오.”
왕이 말하였다.
“무슨 말인지 들려줄 수 있겠소?”
맹상군이 말하였다.
“무릇 조나라 군대는 우리 위나라 군대만큼 강하지 못하고, 위나라 병력이 조나라보다 약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조나라는 해마다 위험한 일도 없고, 백성 또한 해마다 죽음에 내몰리지도 않습니다.
그에 비하여 위나라는 해마다 위험에 처하고, 해마다 백성이 죽고 있으니,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바로 위나라가 조나라의 서쪽에 있어 진나라를 막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조나라가 우리 위나라를 구해 주지 않는다면, 위나라는 삽혈歃血하여 진나라와 맹약을 맺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조나라는 강한 진나라와 국경이 맞닿게 되어 땅은 해마다 위태로워지고 백성 역시 해마다 죽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왕에게 충성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조왕은 허락을 하고 군대 10만과 병거 3백 승을 내주었다.
전문田文은 다시〉 북쪽으로 연왕燕王(소왕昭王)을 찾아갔다.
“지난날 공자公子께서 늘 연나라와 위나라 두 임금을 교류시키셨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려 하니, 원컨대 대왕께서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왕이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곡식이 익지 못하여 흉년이 든 지 2년이나 되오.
그런데 지금 다시 수천 리를 넘어 위나라를 구하라니 어찌 될 일이겠소?”
전문田文은 말하였다.
“무릇 수천 리를 넘어 남을 구원한다는 것은 이 나라에게 그만큼 이롭다는 뜻입니다.
지금 위왕魏王은 문만 열면 바로 적군과 마주칩니다.
그런 경우 수천 리를 넘어 남을 돕고 싶어도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연왕이 여전히 허락할 뜻을 보이지 않자 전문이 말하였다.
“저는 대왕께 유리한 계책을 말씀드렸는데도 왕께서 저의 충성스런 계책을 들어주지 않으시니, 저는 떠나겠습니다.
그러나 장차 천하에 큰 변고가 있을 것이 두렵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큰 변고에 대하여 들어볼 수 있겠소?”
전문이 말하였다.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고 있지만 아직 이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나라의 누대樓臺는 이미 불탔고, 놀이터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절박한 때에 연나라가 위나라를 구해 주지 않으면 위왕은 어쩔 수 없이 부절符節을 꺾고 땅을 떼어, 나라의 반을 진나라에게 주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진나라는 철수할 것입니다.
진나라가 위나라에서 철수하고 나면 위나라는 나라‧나라의 병력을 합해 놓고, 서쪽 진나라에 가서 군대를 빌려 조나라처럼 많은 군대와 네 나라가 함께 연나라를 치게 될 것이니, 왕께서는 어느 것이 이익이라고 보십니까?
수천 리를 지나 남을 돕는 것이 이익입니까?
아니면 연나라 남문을 나서서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이익입니까?
그때 상대 나라는 길이 가까워 물자를 옮기기도 쉽습니다.
왕께서는 어느 것이 이익이라 생각하십니까?”
연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어서 떠나시오.
과인은 그대의 말을 듣겠소.”
이에 군사 8만과 병거 2백 승을 일으켜 전문을 따르게 하였다.
위왕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대가 연나라‧조나라로부터 얻어온 군대가 많기도 하고 또 빠르기도 하군요.”
진왕秦王(소왕昭王)은 크게 두려워하여 도리어 자신의 땅을 떼어 위나라에 주면서 강화를 요청해 왔다.
위왕은 연나라‧조나라의 병력을 귀국시키고 전문에게 땅을 해 주었다.


역주
역주1 : 《史記》 〈孟嘗君列傳〉에 의하면 孟嘗君이 齊를 떠나 魏나라 재상이 된 것은 B.C.286년이다. 그후 다시 B.C.284년에 자신의 봉지인 薛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이 장의 내용은 孟嘗君이 魏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의 사건으로 보인다.
역주2 公子 : 孟嘗君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說과 魏의 어떤 公子라는 說이 있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