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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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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 趙且與秦伐齊.
齊懼, 令以陽武合於趙, 而以順子爲質.
趙王喜, 乃案兵告於秦曰:
“齊以賜弊邑而納, 欲以解伐.
敢告下吏.”
秦王使之趙, 謂趙王曰:
“齊與大國救魏而倍約,
不可信恃, 大國不義, 以告弊邑,
而賜之, 以奉祭祀.
今又案兵, 且欲合齊而受其地, 非使臣之所知也.
請益甲四萬, 大國裁之.”
,蘇代爲齊獻書穰侯曰:
“臣聞曰:秦且益趙甲四萬人以伐齊.
臣竊必之弊邑之王曰:秦王明而熟於計, 穰侯智而習於事, 必不益趙甲四萬人以伐齊.
是何也? 夫三晉相結, 秦之深讎也.
三晉百背秦, 百欺秦,
不爲不信, 不爲無行.
今破齊以肥趙, 趙, 秦之深讎, 不利於秦.
一也.
秦之謀者必曰:破齊弊晉, 而後制晉‧楚之勝.
夫齊, 罷國也, 以天下擊之, 譬猶以千鈞之弩潰癰也.
秦王安能制晉‧楚哉!
二也.
秦少出兵, 則晉‧楚不信;
多出兵, 則晉‧楚爲制於秦.
齊恐, 則必不走於秦且走晉‧楚.
三也.
齊割地以實晉‧楚, 則晉‧楚安. 齊擧兵而爲之頓劍, 則秦反受兵.
四也.
是晉‧楚以秦破齊, 以齊破秦, 何晉‧楚之智而齊‧!
五也.
秦得, 善齊以安之, 亦必無患矣.
秦有安邑, 則韓‧魏必無上黨哉!
夫取三晉之與出兵而懼其不反也, 孰利?
故臣竊必之弊邑之王曰:秦王明而熟於計, 穰侯智而習於事, 必不益趙甲四萬人以伐齊矣.”


형산陘山의 전투
형산陘山의 전투에서 나라는 장차 나라와 연합하여 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제나라는 두려워 전장田章으로 하여금 양무陽武 땅을 떼어 조나라와 강화하도록 하면서, 공자公子 순자順子를 인질로 보냈다.
조왕趙王(惠文王)은 좋아하며, 이에 군대를 멈추어 놓고 나라에 고하였다.
“제나라가 양무의 땅을 우리 조나라에 주며, 순자까지 인질로 보내 주어 우리가 공격을 풀어주기를 원하고 있소.
그 까닭으로 감히 귀국의 하리下吏에게 이를 통고하는 바입니다.”
진왕秦王공자公子 를 조나라에 보내어 조왕趙王에게 말하였다.
“제나라는 일찍이 귀국과 연합하여 나라를 구출하기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으면서도 귀국과 약속을 어겨 그때 귀국은 제나라를 옳지 못하다고 여겨 저희 나라에 그 사실을 통고하였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진나라는 이사二社의 땅을 귀국에게 주어 제사를 계속 받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군대를 멈추어 놓고 도리어 그 제나라와 연합하여 땅을 받고 싶어하니, 이는 우리나라 사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우리나라 신하들로 하여금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갑병甲兵 4만 명을 증원시킬 테니 귀국이 판단하시오.”
소대蘇代가 제나라를 위해 양후穰侯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 주었다.
“제가 진나라를 왕래하는 자들의 말을 듣건대 ‘진나라가 조나라를 위해 갑병 4만 명을 증원하여 제나라를 공격할 것이다’라고 하는데,
저는 반드시 몰래 우리 제나라 임금에게 ‘진왕은 영명英明하여 계책을 세움에 빈틈이 없고, 양후는 지혜롭고 일의 처리에 능하여 결코 4만 명을 증원하여 조나라를 도와 우리 제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일러 줄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삼진三晉이 결합하면 나라의 깊은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삼진이 진나라를 1백 번 배반하면 진나라는 1백 번 모두 그대로 속고 맙니다.
그들의 말을 믿어 주지 않을 수 없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 제나라를 깨뜨려 조나라를 비대하게 해 준다면 조나라는 진나라와 깊은 원한을 가진 사이이므로 진나라에게 불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이유입니다.
나라의 모사謀士는 틀림없이 ‘제나라를 꺾고 (조나라를 말함)을 피폐하게 만든 다음, 그 후에 나라‧나라를 모두 쳐서 승리를 취하면 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무릇 우리 제나라는 지친 나라인데, 천하의 제후를 모아 공격해 온다면, 비유컨대 1천 이나 되는 강한 활로 다 썩은 종기를 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진왕秦王이 어떻게 능히 나라를 제압한다는 것입니까!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나라가 약간의 군대만 출병시키면 과 초나라는 귀국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많은 군사를 출병시킨다면 진과 나라는 귀국에게 제압을 당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틀림없이 귀국 나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로 달려갈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또 우리 제나라가 땅을 떼어 주면서 과 초나라와의 연합을 튼튼하게 하면 과 초나라는 안정을 얻게 되는데, 이때 제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둔검鈍劍으로 대든다 할지라도 귀국 진나라는 도리어 병화를 입게 됩니다.
이것이 네 번째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과 초나라가 귀국 진나라와 연합해 우리 제나라를 깨뜨리고 우리 제나라로써 귀국 진나라를 깨뜨리겠다고 덤빈다면 과 초나라는 어찌 그렇게 지혜로우며, 제나라‧진나라는 그처럼 어리석습니까?
이것이 다섯 번째 이유입니다.
귀국 나라는 나라로부터 안읍安邑을 얻고, 우리 제나라에게 잘하여 안정시켰기에 그 때문에 역시 아무 걱정거리가 없었습니다.
진나라가 안읍을 잘 지켜내기만 하면 나라‧나라는 틀림없이 상당上黨을 잃고 말 것입니다.
무릇 삼진三晉장위腸胃인 상당을 그대로 취하고 있는 것과, 싸웠다가 되찾아올 수 없을 걱정 중에 어느 것이 귀국의 이익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사사로이 저희 왕에게 ‘진나라 왕은 영명하여 계책에 능숙하고, 양후 역시 지혜롭고 일처리 능력이 있어 결코 갑병 4만 명을 조나라에게 보태어 주면서, 제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리겠다고 한 것입니다.”


역주
역주1 073. 陘山之事 : 이 장은 蘇代의 言論이며 시기는 B.C.301년이다. 한편 이 陘山 싸움은 《史記》 〈穰侯列傳〉에는 白起가 “茫卯를 華陽 아래에서 격파하여 10만 명을 참수하였다.[破芒卯於華陽下 斬首十萬]”의 사건으로 보아 秦 昭王 34년(B.C.273)의 화양의 싸움[華陽之戰]이 아닌가 한다. 《史記》 〈穰侯列傳〉 참조.
역주2 陘山之事 : 陘山은 趙나라의 요새로써 지금의 河北省 井陘縣 동북의 井陘關. 그러나 일설에는 河南省 新鄭縣의 密山(혹은 邢山)으로 보기도 한다. 鮑彪의 註에 “〈양후열전〉에 ‘魏나라가 秦나라를 배반하고 齊나라와 합종하였다. 진나라가 양후를 시켜 조나라, 한나라, 위나라를 화양 아래에서 공격하고, 또 조나라에 군사를 보태 주어 제나라를 공벌하게 한 것이 바로 이 전쟁이다. 陘山은 密에 있다.[穰侯列傳 魏背秦與齊從親 秦使穰侯攻趙 韓魏於華陽下 且益趙以兵伐齊 則此役也 陘山在密]”라고 하였다.
역주3 田章 : 齊나라의 公族.
역주4 陽武 : 齊나라 땅. 지금의 河南省 博浪縣 開封의 서북.
역주5 順子 : 齊나라의 公子. 270‧459장 참조.
역주6 公子 他 : 秦 昭襄王의 公子.
역주7 二社之地 : 《史記》 索隱에 “25家를 1里라 하며 매 里마다 社, 즉 土地廟가 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二社之地란 2리 정도의 땅을 말한다.
역주8 往來之者言 : 鮑彪本에는 往來者之言으로 되어 있다.
역주9 원주] 秦之愚 : 齊‧秦이 晉‧楚의 통솔을 받게 되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한 것이다.
역주10 安邑 : 원래 魏나라 땅. B.C.286년 秦나라에게 빼앗겼다.
역주11 腸胃 : 安邑이나 上黨 등 要害地를 말함.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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