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戰國策(2)

전국책(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張孟談旣固趙宗, 廣封疆, 發五百(伯),
乃稱以告襄子曰:
“昔者, 前之御有之曰:
『五百之所以致天下者, 約勢能制臣, 無令臣能制主.
故貴爲列侯者, 不令在相位, 自將軍以上, 不爲近大夫.』 今臣之名顯而身尊, 權重而衆服,
臣願捐功名ㆍ去權勢以離衆.”
襄子恨然曰:
“何哉?
吾聞輔主者名顯, 功大者身尊, 任國者權重, 信忠在己而衆服焉.
此先聖之所以集國家ㆍ安社稷乎!
子何爲然?”
張孟談對曰:
“君之所言, 成功之美也; 臣之所謂, 持國之道也.
臣觀成事, 聞往古, 天下之美同, 臣主之權均之能美, 未之有也.
前事之不忘, 後事之師.
君若弗圖, 則臣力不足.”
愴然有決色.
襄子去之.
臥三日, 使人謂之曰:
“晉陽之政, 臣下不使者何如?”
對曰:
“死僇.”
張孟談曰:
“左司馬見使於國家,
安社稷, 不避其死, 以成其忠, 君其行之.”
君曰:
“子從事.”
乃許之.
張孟談便厚以便名, 納地釋事以去權尊,
而耕於.
故曰, 賢人之行, 明主之政也.
耕三年, 韓‧魏‧齊‧負親以謀趙,
襄子往見張孟談而告之曰:
“昔者, 知氏之地, 趙氏分則多十城,
, 而今諸侯, 孰謀我, 爲之奈何?”
張孟談曰:
“君其負劍而御臣以之國,
舍臣於廟, 授吏大夫,
臣試計之.”
君曰:
“諾.”
張孟談乃行, 其妻之楚, 長子之韓, 次子之魏, 少子之齊. 四國疑而謀敗.


224. 장맹담張孟談나라 종실宗室을 확고하게 하다
장맹담張孟談이 이미 나라 종실을 확고히 하고는, 영토를 넓히고 오패五霸발양發揚토록 하였다.
그리고 간자簡子의 업적을 칭송하며 양자襄子에게 이렇게 고하였다.
“옛날 국지군國地君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패가 천하를 복종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맹약을 맺어 그 군주君主의 세력으로 능히 신하들을 제압하고, 신하가 능히 그 군주의 세력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족으로 열후列侯인 자는 재상의 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하고, 장군 이상은 측근의 대부大夫로 삼지 말도록 하라.’ 그런데 지금 저는 이미 이름이 드날리고 몸이 존귀해졌으며 권세가 높아 대중이 복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명功名을 덜고 권세를 버려 대중을 떠나겠습니다.”
양자가 유감스럽게 여겨 말하였다.
“무슨 뜻이오?
나는 듣건대 임금을 보필한 자는 이름이 드러나게 되고, 큰 공을 세운 자는 그 몸이 존귀해지며,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권세가 중하기 마련이며, 믿음과 충성이 몸에 갖추어지면 무리들이 복종하게 마련이라 하였소.
이것이 곧 옛 성인들이 나라와 사직을 안정시킨 방법이오.
그대는 어찌 그런 말을 하오?”
장맹담이 대답하였다.
께서 지금 하신 말씀은 공명을 이루고 나서의 아름다움이요, 제가 말한 것은 국가를 지속持續시키는 도리를 밝힌 것입니다.
제가 보건대 일을 성취시킴에 있어서, 옛날 말을 들어보면, 천하의 아름다움은 다 같았지만 신하와 임금의 권세가 동등하면서 능히 그 아름다움을 갖춘 경우는 없었습니다.
옛일을 잊지 않는 것은 뒤에 올 일의 스승입니다.
임금께서 만약 도모하지 않으신다면 제 힘으로는 도저히 부족합니다.”
장맹담은 창연愴然히 결심한 얼굴빛을 하였다.
양자襄子는 그를 떠나게 했다.
양자는 사흘을 누워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사람을 시켜 〈장맹담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진양晉陽 싸움 때에 신하로서 시키는 일을 제대로 못해 낸 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장맹담이 말하였다.
“죽여 버리십시오.”
그리고는 덧붙여 이렇게 말하였다.
좌사마左司馬는 나라를 위해 쓸 만합니다.
사직社稷을 편안히 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니, 그 충성을 이루도록 께서는 그를 등용하십시오.”
양자가 말하였다.
“그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바라오.”
그리고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장맹담은 명성名聲보지保持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 봉토封土를 되돌려 주고, 정사를 놓고 권세와 존귀를 버렸다.
그리고는 부친負親이라는 산에 은거하여 스스로 밭을 갈았다.
그래서 이를 두고 〈장맹담〉의 행동은 현인의 행동이었으며 〈조 양자의 정치는〉 명주明主의 훌륭한 정치라고 말한 것이다.
〈장맹담이〉 농사를 짓기 3년 만에, 한‧위‧제‧초나라가 친호親好를 저버리고 조나라를 공격할 모책을 서두르고 있었다.
양자는 장맹담을 찾아가 이를 고하며 말하였다.
“지난날 지백知伯의 땅을 나누어 가질 때, 우리 조나라는 겨우 10여 개 을 나누어 가졌을 뿐이오.
그런데 지금 제후들이 다시 와서 나를 치려고 모책하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장맹담이 말하였다.
“군께서는 지금 칼을 등에 지고 저를 직접 수레에 태워 나라로 부르십시오.
그리고 저를 종묘宗廟에 머물게 하여 대부大夫의 권력을 지닌 벼슬을 주십시오.
제가 계책을 짜겠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다.”
장맹담은 가면서 자신의 아내는 나라로 보내고, 큰 아들은 나라로, 둘째 아들은 나라로, 그리고 막내아들은 나라로 보내니, 네 나라가 이를 의심하여 모책謀策이 실패하고 말았다.


역주
역주1 : 黃丕烈은 闕文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역주2 簡之塗 : “簡子之迹”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迹’은 事迹을 뜻한다.[三民本]
역주3 國地君 : 趙 簡子를 가리킨다. 당시에 제후가 아니었으므로 높여 부른 것. 나라의 지방 군주라는 뜻으로 여겨지나 확실치 않다.
역주4 [兩]主 : ‘兩’은 衍文이라는 鮑彪의 說을 따랐다.
역주5 負親之丘 : 趙나라의 언덕 이름. 張孟談이 은거하였던 곳. 그러나 肙山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潛夫論》 志氏姓에 “張孟談相趙襄子以滅智伯, 遂逃功賞, 耕於肙山”이라 하였다.
역주6 燕(楚) : 원문 ‘燕’은 鮑本과 아랫 글에 의하여 ‘楚’로 고쳤다.
역주7 復來 : 吳師道의 說에 의하여 ‘而今諸侯復來’로 고쳐 번역하였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