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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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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소진蘇秦이 처음에 연횡설連橫說을 유세하다
소진蘇秦이 처음에 연횡설連橫說 혜왕惠王에게 유세하였다.
“大王之國, 西有巴‧蜀‧漢中之利, 北有胡貉‧代馬之用,
“대왕의 국가는 서쪽으로는 한중漢中의 이익이 있고, 북쪽으로는 호지胡地에서 나는 맥피貉皮 땅에서 나는 양마良馬로 군용에 충당할 수 있습니다.
南有巫山‧黔中之限, 東有之固.
남쪽으로는 무산巫山검중黔中천험天險의 요새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효산肴山(崤山)과 함곡관函谷關의 견고한 요새가 있습니다.
田肥美, 民殷富, 戰車萬乘, 奮擊百萬,
농토는 비옥하고 백성은 부유하여 전거戰車 1만 분격奮擊 1백 만 명을 모을 수 있습니다.
沃野千里, 蓄積饒多, 地勢形便,
옥야沃野가 1천 리나 뻗쳐 있고 축적蓄積이 풍부하며 지세地勢 또한 더없이 좋습니다.
此所謂天府, 天下之雄國也.
이는 이른바 천부天府라는 곳으로 천하의 웅국雄國입니다.
以大王之賢, 士民之衆, 車騎之用, 兵法之敎, 可以幷諸侯, 呑天下, 稱帝而治.
그러니 대왕의 현명함과 많은 백성들에다 군대를 일으켜 훈련만 잘 시키면 제후들을 겸병하고, 천하를 통일하여 를 칭하면서 통치할 수 있습니다.
願大王少留意,
원컨대 대왕께서 조금 유념해 주십시오.
臣請奏其效.”
청컨대 은 그 효험을 상주하겠습니다.”
秦王曰:
진왕秦王이 말하였다.
“寡人聞之:毛羽不豐滿者, 不可以高飛; 不成者, 不可以誅罰. 道德不厚者, 不可以使民, 政敎不順者, 不可以煩大臣.
과인寡人이 듣기로 ‘깃털이 풍부하지 못한 새는 높이 날 수가 없고, 문장文章을 이루지 못한 자는 주벌誅罰을 마구 베풀 수 없으며, 도덕이 돈후하지 못한 자는 백성을 부릴 수 없고, 정교政敎하지 못한 자는 대신을 번거롭게 부리지 못한다’고 하였소.
今先生儼然不遠千里而庭敎之, .”
이제 선생은 엄연儼然하게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셔서 조정에서 나를 가르치려 하시는데, 후일에 가르침 받기를 원합니다.”
蘇秦曰:
소진이 말하였다.
“臣固疑大王之不能用也.
“저는 본디 대왕께서 제 말을 쓰지 못하시리라 의심하였었습니다.
옛날, 신농씨神農氏보수補遂를 쳤고, 황제黃帝탁록涿鹿에서 치우蚩尤를 쳐서 사로잡았으며, 환도驩兜를 벌하였고, 삼묘三苗를 벌하였으며, 공공共工을 쳤습니다.
그리고 유하有夏를 치고, 문왕文王을 쳤으며, 무왕武王를 쳤으며, 환공桓公은 전쟁을 하여 천하를 제패하였습니다.
由此觀之, 惡有不戰者乎?
이렇게 볼진대 어찌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古者, 使車轂擊馳, 言語相結, 天下爲一, 約從連橫, 兵革不藏, 文士並飭, 諸侯亂惑, 萬端俱起, 不可勝理,
옛날에는 사신의 수레가 달리다가 서로 부딪쳐 몇 마디 말로 약속만 하고도 천하가 통일되었는데, 그 후에는 약종約從연횡連橫으로도 무기를 수장收藏할 수 없게 되었으며 문사文士들은 서로 문사文辭를 수식하고, 제후들은 난혹亂惑하여 온갖 문제가 일어나 다스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科條旣備, 民多僞態, , 百姓不足,
법령 조문條文이 빈틈없이 갖추어질수록 백성은 허위를 짓게 되었으며, 문서가 번거롭고 어지러워져 백성은 풍족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上下相愁, 民無所聊, 明言章理, 兵甲愈起, 辯言偉服, 戰攻不息, 繁稱文辭, 天下不治,
상하가 서로 근심하나 백성은 생활할 수가 없게 되었고, 말이 명확하고 이론이 뛰어날수록 전쟁은 더욱 일어났으며, 사자使者의 언변이 뛰어나고 복장服裝기위奇偉할수록 전공戰攻은 그치지 않았으며, 번거롭고 화려한 문사文辭로도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았습니다.
舌弊耳聾, 不見成功, 行義約信, 天下不親.
떠드는 자는 혀가 닳고, 듣는 자는 귀가 먹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성취한 공효는 드러나지 않으며, 설령 를 행하고 을 약속해도 천하를 서로 친하게 할 수 없습니다.
於是, 乃廢文任武, 厚養死士, 綴甲厲兵, 效勝於戰場.
이에 문치文治를 폐하고 무공武功에 맡겨,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勇士를 기르며, 갑옷을 잘 수리하고 병기를 날카롭게 하는 것만이 전장戰場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夫徒處而致利, 安坐而廣地, 雖古, 明主賢君, 常欲坐而致之, 其勢不能,
무릇 대왕께서 하는 일 없이 이익을 구한다거나 편안히 앉아서 국토 확장을 바란다면 비록 오제五帝삼왕三王오패五伯 같은 명주明主 현군賢君이라 할지라도 항상 앉아서 이를 이루어 내기란 그 형세로 보아 불가능합니다.
故以戰續之.
그렇기 때문에 결국 전쟁으로 목적을 이룰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寬則兩軍相攻, 迫則杖戟相橦, 然後可建大功.
양편 군대가 거리를 두고 있으면 서로 공격하여 접근해야 하고, 마주치면 몽둥이나 창으로 맞닥뜨려 싸운 후에야 대공大功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是故兵勝於外, 義强於內, 威立於上, 民服於下.
그렇기 때문에 군대軍隊는 밖에서 싸워 이기고 임금은 안에서 인의仁義를 행하며, 위에서는 위망威望을 세우고, 백성은 아래에서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今欲幷天下, 凌萬乘, 詘敵國, 制海內, , 臣諸侯, .
지금 천하를 병탄倂呑하여 만승萬乘을 능가하며, 적국을 굴복시켜 해내海內를 제압하고, 백성을 애호하여 제후를 신하臣下로 복종시키려 한다면 전쟁이 아니고는 불가합니다.
今之嗣主, 忽於至道, 皆惛於敎, 亂於治, 迷於言, 惑於語, 沈於辯, 溺於辭.
그러나 지금 왕위를 이으신 임금께서 지극한 도리를 가벼이 여기시고, 교화에 대해서 전혀 혼암하시어 말에 미혹迷惑되고 변론에 빠져 있으며, 사설邪說에 휘말려 있습니다.
以此論之, 王固不能行也.”
이로써 논하건대 왕께서는 진실로 능히 실행하실 수가 없습니다.”
說秦王書十上而說不行.
소진은 진왕秦王에게 10여 차례 글을 지어 올렸으나 유세가 행해지지 않았다.
, 黃金百斤盡, 資用乏絶, 去秦而歸.
나라로부터 얻은〉 흑초黑貂의 외투가 다 떨어지고, 1백 근의 황금은 바닥이 나고 자용資用은 거덜나고 말아 나라를 떠나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羸縢履蹻, 負書擔橐, 形容枯槁, 面目犁黑, .
파리한 모습에 다리를 헝겊으로 칭칭 감고 짚신을 신고 책 보따리를 둘러멘 채, 몸은 마를 대로 마르고 얼굴은 까맣게 타서 부끄러운 기색이었다.
歸至家, 妻不下紝, 嫂不爲炊, 父母不與言.
집에 다다르니 아내는 베틀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형수는 밥도 지어 주지 않았으며, 부모조차도 말을 하려 들지 않았다.
蘇秦喟歎曰:
소진은 탄식하였다.
“妻不以我爲夫, 嫂不以我爲叔, 父母不以我爲子, 是皆秦之罪也.”
“처는 나를 지아비로 여기지 않고, 형수는 나를 시동생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부모님은 나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니 이 모든 게 나의 죄이다.”
乃夜發書,
이에 밤을 새워 책을 펴 보기 시작하였다.
陳篋數十, 得之謀, 伏而誦之, 簡練以爲.
그래서 책 궤짝 수십 개를 펼쳐 놓고 태공망太公望의 《음부경陰符經》의 모책謀策을 찾아내어 엎드려 읽고 외고 가려 뽑아 연습하며 열심히 연구하였다.
讀書欲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피가 다리까지 흘러내렸다.
曰:
소진은 중얼거렸다.
“安有說人主不能出其金玉錦繡, 取卿相之尊者乎?”
“군주에게 유세遊說하여 금옥, 비단 정도도 내놓게 하지 못하면서 어찌 경상卿相의 높은 지위를 얻겠는가?”
期年揣摩成, 曰:
1년 후에 췌마법揣摩法을 터득하자 이렇게 말하였다.
“此眞可以說當世之君矣!”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당세의 군왕을 설득시킬 만하다.”
於是乃,
그리고는 나라 가까이 이르러 오집궐烏集闕이라는 요새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그곳 화옥華屋 아래에서 조왕趙王(肅侯)에게 손뼉을 치며 유세하였다.
趙王大悅, 封爲.
조왕趙王은 크게 기뻐하며 소진을 무안군武安君에 봉하였다.
受相印, 革車百乘, 綿繡千純, 百雙, 黃金, 以隨其後,
그리고 재상의 부인符印까지 주며, 혁거革車 1백 , 비단 1천 , 백벽白璧 1백 쌍, 황금 1만 을 주어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합종合從을 맺어 연횡連橫을 흩어버리고, 강한 나라를 억제하게 되었다.
故蘇秦相於趙而關不通.
이렇게 소진이 나라의 재상이 되자 〈나라와 통하던〉 함곡관函谷關이 막혀버렸다.
當此之時, 天下之大, 萬民之衆, 王侯之威, 謀臣之權, 皆欲決蘇秦之策.
이 당시에 광대한 천하, 수많은 민중, 권위 있는 왕후, 권세 있는 모신謀臣들도 모두 소진을 통하여 정책을 결정하게 되었다.
不費斗糧, 未煩一兵, 未戰一士, 未絶一絃, 未折一矢, 諸侯相親, .
한 말의 양식도 소비하지 않고, 한 명의 병사도 번거롭게 하지 않고, 한 병사도 싸움에 나가지 않고, 활줄 하나 끊지 않고, 화살 하나 부러뜨리지 않고도 제후가 서로 친하게 되어 형제보다 더 가깝게 되었다.
夫賢人在而天下服, 一人用而天下從.
무릇 어진 사람이 임직任職하니 천하가 복종하고, 한 사람을 등용하자 천하가 따르게 된 셈이었다.
故曰:式於政, 不式於勇; 式於廊廟之內, 不式於四境之外.
그러므로 정치로써 하였지 무력을 쓸 필요가 없었고, 조정 안에서 일을 처리하였지 변방에서 전쟁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當秦之隆, 黃金萬溢爲用, 轉轂連騎, 炫熿於道,
당시 소진의 극성시기에는 1만 의 황금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그를 따르는 거마車馬가 서로 이어져 지나는 길이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之國, 從風而服, 使趙大重.
그래서 나라의 효산崤山 동쪽 각국은 순풍에 풀이 눕듯이 되어 조나라를 크게 중함을 받는 위치로 올려놓게 되었다.
且夫蘇秦特窮巷掘門‧桑戶棬樞之士耳,
게다가 소진은 원래 누항陋巷의 대문이 뒤틀리고 뽕나무 지게문에 나무를 휘어 만든 돌쩌귀로 된 집의 초라한 선비일 따름이었다.
伏軾撙銜, 橫歷天下, 廷說諸侯之王, 杜左右之口, 天下莫之能伉.
그러나 이렇게 성공하여 수레에 올라서는 위의를 뽐내며 천하를 횡행橫行하였고, 조정에서 제후의 왕들에게 유세遊說할 때면 좌우 대신의 입을 다 막아 천하에 누구 하나 짝을 이룰 자가 없게 되었다.
將說, 路過洛陽,
소진이 장차 초왕楚王에게 유세하러 떠나던 길에 고향 낙양洛陽을 지나가게 되었다.
父母聞之, 淸宮除道, 張樂設飮, 郊迎三十里.
부모가 이 소식을 듣고 집을 청소하고 길을 다듬고, 음악을 준비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30리 교외까지 나와 맞이하였다.
妻側目而視, 傾耳而聽; 嫂蛇行匍伏, 四拜自跪而謝.
그때 처는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귀만 기울여 들을 뿐이었고, 형수는 뱀처럼 엉금엉금 기면서 네 번이나 절을 하며 꿇어앉아 잘못을 사죄하는 것이었다.
蘇秦曰:
이를 본 소진이 말하였다.
“嫂, 何前倨而後卑也?”
“형수는 지난번에는 그리 거만하더니 지금은 어찌 이리 겸손하십니까?”
嫂曰:
형수가 말하였다.
“以季子之位尊而多金.”
“시숙께서 지위가 높고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말하였다.
“嗟乎!
“아!
貧窮則父母不子, 富貴則親戚畏懼.
빈궁할 때에는 부모조차 자식이라 여기지 않더니 부귀해지자 먼 친척까지 다 두려워하는구나.
人生世上, 勢位富貴, 蓋可忽乎哉!”
그러니 사람이 세상에 나서 권세와 부귀를 가벼이 볼 수 있으랴!”
역주
역주1 047. 蘇秦始將連橫 : B.C.338년쯤의 일이다. 《史記》 〈蘇秦列傳〉에 이 장의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역주2 蘇秦 : 戰國時代 東周 洛陽 사람. 字는 季子. 張儀와 더불어 鬼谷 선생에게 縱橫說을 배웠다. 처음 본문에서처럼 連橫說로 秦 惠王에게 유세하였으나 실효가 없자 돌아와 姜太公의 《陰符》라는 책을 연구하여 다시 반대로 六國이 秦에 대항해야 한다는 合縱說로 유세, 결국 동시에 六國의 재상이 되었다. 후에 齊나라에서 암살당하였다. 그의 아우 蘇代, 蘇厲와 함께 三蘇라 불리며 戰國時代을 풍미했던 유세가이다.
역주3 連橫說 : 連衡說이라고도 하며, 秦은 서쪽에 치우친 대국이므로 나머지 동쪽의 6국(韓‧魏‧趙‧齊‧燕‧楚)이 강대국 秦을 섬겨야 한다는 설. 이와 반대의 주장인 合縱說이 蘇秦에 의해 처음에 성공하였으나 그 후 張儀에 의해 이 連橫說이 성공하였다.
역주4 秦 惠王 : 秦나라 惠文王. 이름은 駟. 秦 孝公의 아들. 蘇秦이 惠王에게 유세한 것은 惠王 元年(B.C.337)이다.
역주5 肴‧函 : 肴는 肴山(崤山), 函은 函谷關을 가리키며 秦나라의 험준한 要塞이면서 동시에 山東 여섯 나라와의 경계이다.
역주6 文章 : 文物制度와 典章 法式. 원주에는 “文章은 旌旟의 文章이다. 靑과 赤을 文이라 하며, 赤과 白을 章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역주7 願以異日 : 이때 秦 惠王이 새로 즉위하여 商鞅을 제거하고 정치를 개혁하여 內政 때문에 변사를 쓸 수 없어서 한 말이다.
역주8 神農伐補遂 : 神農은 炎帝氏. 백성에게 농사법을 처음으로 가르쳤고, 百草를 맛보고 약을 처음 만들었다는 고대 五帝 중 하나. 補遂는 輔遂라고도 쓰며, 고대의 나라 이름.
역주9 黃帝伐涿鹿而禽蚩尤 : 黃帝는 五帝의 끝 軒轅氏, 혹은 有熊氏. 土德으로 왕이 되어 黃帝라 하였다.(土色은 黃) 涿鹿은 지명으로 지금의 河北省 涿鹿縣. 禽은 擒의 뜻. 蚩尤는 황제 시대의 제후. 《史記》 〈五帝本紀〉에 “치우가 난을 일으키매 황제가 제후의 군사를 징발하여 치우와 탁록의 들판에서 싸워 마침내 치우를 사로잡았다.[蚩尤作亂 黃帝徵師諸侯 與蚩尤戰於涿鹿之野 遂禽殺蚩尤]”고 하였다.
역주10 堯伐驩兜 : 驩兜는 堯의 司徒인데, 악행을 저지르자 堯가 崇山으로 쫓아 버렸다.
역주11 三苗 : 민족 이름으로 지금의 湖南省 岳陽, 湖北의 武昌, 江西의 九江 일대에 분포해 살았었다.
역주12 禹伐共工 : 共工은 工官. 治水를 담당한 관직명. 뒤에 관직명이 성씨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舜 때 四兇의 하나로 禹를 시켜 쳐 없애게 하였다.
역주13 湯伐有夏 : 有夏는 夏의 마지막 임금 桀을 가리킨다. 湯이 그를 쳐서 南巢(지금의 安徽省 巢縣)로 추방하였다.
역주14 文王伐崇 : 崇은 侯爵의 나라 이름. 崇侯가 폭군 紂를 도와 文王을 참소해서 羑里의 옥에 갇히게 하였는데, 文王이 석방된 뒤 쳐 없앴다.
역주15 武王伐紂 : 文王의 아들 武王이 商의 마지막 왕인 폭군 紂를 牧野에서 패배시키니, 紂는 스스로 焚死하여 商王朝가 망하였다.
역주16 원주] 齊桓任戰而伯天下 : 齊桓은 齊나라 桓公으로 이름은 小白이며, 僖公의 아들이다. 兵戰을 쓰면서 仁義을 숭상하여 諸侯를 이끌고 天子를 朝謁하였다. 그래서 伯天下라 한 것이다.
역주17 書策稠濁 : 書策은 문서나 文件. 稠濁은 너무 많아 繁亂하다는 뜻.
역주18 五帝 : 《史記》에 의하면 黃帝‧顓頊‧帝嚳‧堯‧舜인데, 일정하지 않고 異說이 분분하다.
역주19 三王 : 夏의 禹, 商의 湯, 周의 文王‧武王.
역주20 五伯 : 春秋時代의 五霸를 가리킨다. 齊 桓公, 宋 襄公, 晉 文公, 秦 穆公, 楚 莊王. ‘伯’는 霸와 같다.
역주21 원주] 子元元 : 子는 愛이며 元元은 善이다. 錢藻本과 劉敞本에는 元자가 하나만 있다.
역주22 원주] 非兵不可 : 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五材를 내니, 백성들이 이를 함께 쓴다. 하나라도 廢할 수가 없으니 누가 兵을 없애겠는가?’라고 하였다. 兵의 設置는 오래되었다. 聖人은 그로써 興하고 亂人은 그로써 廢한다. 廢興 存亡이 모두 兵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諸侯를 굴복시킴에 兵이 아니고서는 不可하다.
역주23 黑貂之裘弊 : 黑貂는 검은 담비 가죽인데 귀한 물건으로 친다. 蘇秦이 처음 趙나라에 들어가 재상 兌를 알현하자 兌가 蘇秦의 재주를 두려워해서 등용하지 않고 珠璧‧貂裘‧黃金 등 후한 선물을 주어 秦으로 보내 주었다. 蘇秦이 趙나라에서 벼슬하자, 趙王이 貂裘와 黃金을 밑천으로 주어 秦王에게 유세하여, 關中의 連橫을 깨뜨리고, 진나라로 하여금 趙나라와 合從토록 하였다. 秦王이 合從을 거부하여 그 때문에 蘇秦은 밑천과 황금을 다 쓰고, 貂裘도 다 닳았다고 한 것이다.
역주24 狀有歸(愧)色 : 원문 歸는 愧의 誤字이다. “부끄럽게 여기는 기색이 있었다.”의 뜻.
역주25 太公陰符 : 太公은 姜尙(呂尙), 즉 太公望을 가리킨다. 陰符는 書名, 혹은 陰符經. 일종의 道家書이므로 黃帝가 쓴 것이라고도 하며, 아울러 太公‧范蠡‧鬼谷子‧張良‧諸葛亮‧李筌 등 六家註가 있으며, 책의 眞僞는 알 수 없다.
역주26 揣摩 : 상대의 마음을 읽어 내어 그에 따라 설득시키는 일종의 心靈 話術法. 또는 참뜻을 연구하는 일.
역주27 摩燕烏集闕 : 摩는 ‘가까이 이르다[迫近]’의 뜻. 烏集闕은 요새 이름.
역주28 見說趙王於華屋之下 : 見은 謁見, 說는 遊說. 趙王은 趙 肅侯. 華屋은 산 이름으로 보기도 하며 夏屋으로도 쓴다.
역주29 武安君 : 蘇秦의 封號. 趙 肅侯가 蘇秦을 武安君에 봉하였다. 武安은 趙나라의 읍 이름으로 지금의 河南省 武安縣.
역주30 白壁(璧) : 白璧의 誤記이다.
역주31 萬溢 : 溢은 鎰과 같다. 금을 헤아리는 단위인데, 원주에 “萬溢은 萬金이다. 二十兩이 一溢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2 원주] 約從散橫 以抑强秦 : 關東 六國의 從約을 합하여 서로 친하게 하고, 關中의 連橫을 흩어 秦나라로 하여금 賓服하게 한다. 그러므로 抑强秦이라 한 것이다.
역주33 원주] 賢於兄弟 : 賢은 厚와 같다.
역주34 山東 : 崤山의 동쪽. 전국시대 秦나라를 제외한 六國이 崤山 동쪽에 있었다.
역주35 楚王 : 楚 威王. 이름은 熊商.
역주36 蘇秦曰 : 이하 소진의 말이 《史記》 〈蘇秦列傳〉에는 “이 한몸이 부귀하면 친척도 두려워하고 빈천하면 깔보니, 더군다나 중인들이겠는가? 또 나로 하여금 낙양 근교의 좋은 전답 2頃을 짓도록 했더라면 내가 어떻게 여섯 나라 宰相印을 찰 수 있었겠는가?[此一人之身 富貴則親戚畏懼之 貧賤則輕易之 況衆人乎 且使我有雒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로 되어 있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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