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王后死後,
相齊, 多受秦間金玉, 使賓客入秦,
제齊 민왕閔王이 살해당하자 그 아들 법장法章이 성명을 바꾸고 거성莒城의 태사씨太史氏 집 머슴이 되었다.
태사교太史敫의 딸이 법장의 모습이 특이함을 알아차리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래서 불쌍히 여겨 항상 몰래 음식과 의복을 챙겨 주곤 하다가 결국 사통私通하게 되었다.
얼마 후 거성莒城의 여러 사람들과 제나라의 망명亡命한 신하들이 서로 모여 민왕의 아들을 찾아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법장이 이에 스스로 거성에 있음을 밝히자, 모두 함께 법장을 옹립하여 양왕襄王을 삼았다.
양왕이 즉위하자 태사씨의 딸을 왕후로 삼아, 아들 건建을 낳았다.
“여자가 중매 없이 시집을 갔으니 내 딸이 아니다.
그러나 군왕후君王后는 어진 인물이어서 아버지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식 된 도리를 잃는 일을 하지 않았다.
양왕이 죽자 그 아들 건建이 제왕齊王이 되었다.
군왕후君王后는 진秦나라를 잘 섬겼고, 다른 제후들과도 믿음으로 사귀었다.
그 때문에 건建이 재위한 40여 년이 넘도록 병화兵禍를 입지 않았다.
한편 진秦 소왕昭王이 사자를 보내어 군왕후에게 옥련환玉連環을 선물하면서 말하였다.
“제나라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많다던데 이 팔찌를 풀 수 있을지 모르겠소?”
이에 군왕후는 여러 신하들에게 보여 주었지만 여러 신하 그 누구도 풀어내지 못하였다.
군왕후는 방망이를 가져다가 깨뜨리고는 진나라 사신에게 말하였다.
군왕후가 병들어 죽기에 이르러 건建을 경계하여 말하였다.
“여러 신하 중에 등용할 만한 이는 누구이다.”
붓과 목간木簡을 받아들고 말을 받아 적으려 하니, 군왕후가 말하였다.
군왕후가 죽은 후 후승后勝이 제齊나라 재상이 되어 진나라 간첩으로부터 금‧옥을 많이 받고 제나라 빈객을 진나라로 들여 보냈다.
이 빈객들은 돌아와 모두 말을 바꾸어 왕으로 하여금 진나라에 조회朝會하라고 권유하니, 이로부터 전비戰備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