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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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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燕封宋人爲高陽君, 使將而攻趙.
趙王因割濟東三城盧‧高唐‧平原陵地城邑市五十七, 命以與齊, 而以求而將之.
謂平原君曰:
“國奚無人甚哉!
君致安平君而將之, 乃割濟東三五十七以與齊, 此夫子與敵國戰, 覆軍殺將之所取‧割地於敵國者也.
今君以此與齊, 而求安平君而將之, 國奚無人甚也!
且君奚不將奢也?
奢嘗抵罪居燕, 燕以奢爲上谷守,
燕之通谷要塞, 奢習知之.
百日之內, 天下之兵未聚, 奢已擧燕矣.
然則君奚求安平君而爲將乎?”
平原君曰:
“將軍釋之矣,
僕已言之僕主矣.
僕主幸以聽僕也. 將軍無言已.”
馬服君曰:
“君過矣!
君之所以求安平君者, 以齊之於燕也, 之仇耶,
其於奢不然.
使安平君愚, 固不能當榮蚠; 使安平君知, 又不肯與燕人戰.
此兩言者, 安平君必處一焉.
雖然, 兩者有一也.
使安平君知, 則奚以趙之强爲?
趙强則齊不復霸矣.
今得强趙之兵, 以杜燕將,
曠日持久數歲, 令士大夫餘子之力, 盡於溝壘, 車甲羽毛裂敝, 府庫倉廩虛,
兩國交以習之, 乃引其兵而歸.
夫盡兩國之兵, 無明此者矣.”
夏, 軍也縣釜而炊. 得三城也, 城大無能過者.
果如馬服之言也.


275. 나라가 나라 사람 영분榮蚠고양군高陽君에 봉하다
나라가 나라의 영분榮蚠(분)을 고양군高陽君에 봉하여 장수로 삼아 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자 조왕趙王제수濟水의 동쪽를 나라에 주는 조건으로 안평군安平君(전단田單)을 나라 장수로 삼아 〈나라 군사를 막게〉 하였다.
마복군馬服君(조사趙奢)이 평원군平原君(조승趙勝)에게 말하였다.
“우리 조나라에 어찌 이렇게 인물이 없단 말입니까!
그대가 안평군을 장수로 보내 달라면서 제수 동쪽 3개 성과 성시읍 57개를 떼어 제나라에 주는 것은 적국과 싸움을 벌여 장수를 잃으면서 취한 땅을 적국에게 떼어 주는 것입니다.
지금 그대가 이를 제나라에 주면서 안평군을 장수로 보내 달라고 하니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음이 이토록 심합니까?
또 그대는 어찌 나 조사趙奢를 장수로 추천해 주지 않습니까?
저는 일찍이 죄를 짓고 연나라로 도망하여 살 때, 나라는 저를 상곡上谷의 군수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연나라의 통로와 골짜기의 요새에 대해서 저는 아주 익숙히 알고 있습니다.
1백 일 이내에 천하 제후의 연합군이 모이기도 전에 저는 이미 연나라를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어찌 안평군을 얻어 장수로 삼으려고 합니까?”
평원군이 말하였다.
“장군은 마음을 푸시오.
내가 이미 임금께 말했습니다.
임금이 다행히 내 말을 들어주기로 하였으니, 장군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마복군이 말하였다.
“그대는 잘못하셨습니다.
그대가 안평군을 요구한 것은, 제나라와 연나라가 서로 을 먹고 피를 밟는 원수 사이라는 것을 이용하려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안평군이 어리석은 자라면 영분榮蚠을 대적하지 못할 것이며, 만약 안평군이 지혜롭다면 또한 연나라와 싸우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말 가운데서 안평군은 틀림없이 어느 한쪽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따져 보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안평군이 지혜롭다면 어찌 우리 조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겠습니까?
조나라가 강해지면 제나라가 더 이상 패자霸者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그는 강한 우리 조나라 군대를 얻어 연나라의 장수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전野戰이 몇 년 동안 끌게 되면 우리 사대부의 나머지 자식들의 힘까지 모두 골짜기에 쳐박히거나 참호 속에 묻히게 될 것이며, 전차와 화살 등 무기는 고장 나서 부족하고 창고는 바닥이 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조 두 나라는 다 같이 피폐해지게 되어, 안평군은 끝내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무릇 두 나라 군사들이 힘을 다 빼는 것이 이보다 더 명백한 것이 없습니다.”
그해 여름, 안평군의 군대는 솥을 달아매고 밥을 지어 먹으면서 겨우 세 개의 성을 함락시켰는데, 그 성중에 큰 것이라야 겨우 1천 이 넘지 않는 작은 것들이었다.
이처럼 마복군의 예상이 들어맞고 말았다.


역주
역주1 : 《史記》 〈趙世家〉에 의하면 趙 孝成王 元年(B.C.265년)에 齊나라 安平君 田單이 燕나라의 中陽(지금의 河北省 唐縣 서북)과 韓나라의 注入(河南省 臨汝縣)을 점령하고, 이듬해에 趙나라 재상이 되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때의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역주2 榮蚠 : 宋나라 사람으로, 燕나라의 高陽君에 봉해졌던 인물.
역주3 [令] : 繆文遠本에 의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4 安平君 : 齊나라의 田單. 燕나라의 침입으로 70여 개 성을 잃었을 때 莒와 卽墨을 바탕으로 전 국토를 다시 회복한 인물. 조나라에서 이를 조나라 장수로 삼아 연나라와 싸우게 한 것임.
역주5 馬服君 : 趙나라의 장군 趙奢.
역주6 [令] : 姚宏의 注에 의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7 城市邑 : 원문 ‘城邑市’를 鮑彪本에 의하여 ‘城市邑’으로 고쳤다.
역주8 茹肝涉血 : 燕나라 樂毅가 昭王 28년(B.C284)에 齊나라를 쳐서 臨淄를 공략, 제나라 궁궐과 종묘를 불사르며 70여 개 성을 초토화하자 다시 제나라 장수 田單이 火牛攻法으로 연나라를 퇴패시킨 일을 두고 한 말.
역주9 百雉 : 1千 丈 정도의 길이라 한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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