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戰國策(2)

전국책(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燕王喜使栗腹以百金爲趙孝成王壽,
酒三日, 反報曰:
“趙民其壯者皆死於長平, 其孤未壯, 可伐也.”
王乃召而問曰:
“何如?”
對曰:
“趙, 四達之國也, 其民皆習於兵,
不可與戰.”
王曰:
“吾以倍攻之, 可乎?”
曰:
“不可.”
曰:
“以三, 可乎?”
曰:
“不可.”
王大怒.
左右皆以爲趙可伐,
遽起六十萬以攻趙.
令栗腹以四十萬攻, 使以二十萬攻代.
趙使以八萬遇栗腹於鄗, 使以五萬遇慶秦於代.
燕人大敗.
樂間入趙. 燕王以書且謝焉,
曰: “寡人不佞, 不能奉順君意,
故君捐國而去, 則寡人之不肖明矣.
敢端其願, 而君不肯聽,
故使使者陳愚意, 君試論之.
語曰: ‘仁不輕絶, 智不輕怨.’
君之於先王也, 世之所明知也.
寡人望有非則君掩蓋之,
不虞君之明罪之也; 望有過則君敎誨之, 不虞君之明罪之也.
且寡人之罪, 國人莫不知, 天下莫不聞, 君微出明怨以棄寡人, 寡人必有罪矣.
雖然, 恐君之未盡厚也.
諺曰: ‘厚者不毁人以自益也, 仁者不危人以要名.’
以故掩人之邪者, 厚人之行也; 救人之過者, 仁者之道也.
世有掩寡人之邪, 救寡人之過, 非君心所望之?
今君厚受位於先王以成尊, 輕棄寡人以快心, 則掩邪救過, 難得於君矣.
且世有薄故厚施, 行有失而故惠用.
今使寡人任不肖之罪, 而君有失厚之累, 於爲君擇之也, 無所取之.
國之有封疆, 猶家之有垣牆, 所以合好掩惡也.
室不能相和, 出語鄰家, 未爲通計也.
怨惡未見而明棄之, 未盡厚也.
寡人雖不肖乎, 未如殷紂之亂也; 君雖不得意乎, 未如之累也.
然則不內蓋寡人, 而明怨於外, 恐其適足以傷於高而薄於行也, 非然也?
苟可以明君之義, 成君之高, 雖任惡名, 不難受也.
本欲以爲明寡人之薄, 而君不得厚; 揚寡人之辱, 而君不得榮, 此一擧而兩失也.
義者, 不虧人以自益, 況傷人以自捐乎?
願君無以寡人不肖, 累往事之美.
昔者, 吏於魯, 三黜而不去.
或謂之曰: ‘可以去.’ 柳下惠曰: ‘苟與人之異, 惡往而不黜乎?
猶且黜乎, 寧於故國爾.’
柳下惠不以三黜自累, 故前業不忘; 不以去爲心, 故遠近無議.
今寡人之罪, 國人未知, 而議寡人者遍天下.
語曰: ‘論不脩心, 議不累物, 仁不輕絶, 智不簡功.’
棄大功者, 輟也; 輕絶厚利者, 怨也.
輟而棄之, 怨而累之, 宜在遠者, 不望之乎君也.
今以寡人無罪, 君豈怨之乎?
願君捐怨, 追惟先王, 復以敎寡人!
意君曰: ‘余且慝心以成而過, 不顧先王以明而惡.’ 使寡人進不得脩功, 退不得改過, 君之所揣也, 唯君圖之!
此寡人之愚意也.
敬以書謁之.”
樂間‧樂乘怨不用其計,
二人卒留趙, 不報.


473. 연왕燕王 율복栗腹을 사신으로 삼다
연왕燕王 율복栗腹에게 1백 금을 주어 나라 효성왕孝成王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으로 삼았다.
율복은 조나라에서 사흘 동안의 잔치를 끝내고 돌아와 이렇게 보고하였다.
“조나라 백성들은 나이가 장년壯年인 자는 모두 장평長平 싸움에서 죽고, 그 유족 어린애들은 아직 자라지 않아 칠 만합니다.”
이 말에 연왕은 창국군昌國君 악한樂間을 불러 물었다.
“〈조나라를 칠 만하다는데〉 어떻소?”
악간이 대답하였다.
“조나라는 사통팔달四通八達중원中原에 처한 나라로서 그 백성은 전투력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런 나라와 더불어 전쟁을 벌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내가 군대를 배로 늘려 공격하면 되겠소?”
악간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러면 3배로 하면 되겠소?”
악간이 말하였다.
“그래도 안 됩니다.”
왕은 버럭 화를 내었다.
이때 왕의 좌우 신하는 모두 조나라 토벌이 가능하다고 진언하였다.
왕은 급히 60만 군대를 일으켜 조나라를 공격하였다.
율복에게는 40만 군으로 조나라의 땅를 공격하게 하고 경진慶秦에게는 20만으로 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이에 맞서 염파廉頗에게 8만 군사로 에서 율복을 맞아 싸우도록 하고, 악승樂乘에게는 5만 군으로 에서 경진을 막도록 하였다.
싸움은 연나라가 크게 패하였다.
악간이 조나라로 들어가니, 연왕이 편지를 써서 사죄하였다.
“과인이 똑똑하지 못하여 그대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하였소.
그리하여 그대가 이 나라를 버리고 떠나고 말았으니 과인이 불초하다는 것을 명백한 사실이오.
감히 나의 바람을 알려드렸으나 그대는 이를 듣지 않았소.
그래서 사신을 보내어 그대에게 나의 어리석은 뜻을 전하노니 그대는 시험삼아 이를 따져 보아주시오.
속담에 ‘어진 이는 사귐을 쉽게 끊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원망 살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라 하였소.
그대는 저의 선왕先王과 깊은 관계였음은 세상이 다 밝히 아는 일이오.
과인은 나의 잘못에 대해 그대가 덮어 주고 감싸주기를 바랐소.
그러나 그대는 뜻밖에 나의 죄를 드러내었고, 또 만약 내게 과오過誤가 있으면 이를 잘 가르쳐 주기를 원하였으나, 생각지도 않게 그대는 과인의 죄를 밝혔소.
과인의 죄는 우리 백성이 모르는 사람이 없고 천하에 그 누구 하나 소문을 듣지 않은 자가 없는데, 그대가 몰래 도망하여 원한을 드러내 과인을 버렸으니, 과인에게 반드시 죄가 있소.
비록 그렇다 해도 그대도 충후忠厚한 본분을 다하지는 못한 듯하오.
속담에 ‘후덕한 자는 남을 훼방하여 자기 이익을 삼지 아니하며, 어진 이는 남을 위태롭게 하여 자신의 명예를 바라지 않는다.’라 하였소.
그러므로 남의 사악함을 덮어 주는 것은 후덕한 자의 행동이요, 남의 과실을 구제해 주는 것은 어진 이가 취할 도리이오.
세상에서 과인의 사악함을 덮어 주고, 과인의 과실을 구제해 줄 사람이 있기를 그대도 마음속의 바라는 바가 아니겠소?
지금 그대는 선왕으로부터 후한 작위를 받아 높은 이름을 성취시켜 놓고, 과인을 쉽게 버리는 것으로 상쾌한 마음을 삼는다면 사악함을 덮어주고, 과실을 구해 주기를 그대에게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소.
또 세상에는 자신을 박대하더라도 나는 그에게 후하게 베풀며, 남의 행실에 과실이 있더라도 나는 은혜로 등용하는 경우가 있소.
지금 과인에게는 불초한 죄를 짓도록 해 놓고, 그대 또한 후덕을 잃었다는 누명累名을 쓰게 되었으니, 그대가 스스로 선택하려 해도 더 이상 취할 것이 없을 줄 아오.
나라에 봉토封土강역疆域이 있는 것은 마치 집에 울타리와 담장이 있는 것과 같아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잘못을 서로 덮어 주는 것이오.
집안에서 서로 화목하지 못할 때, 밖으로 나가 이웃에게 떠들고 다니는 것은 결코 옳은 계책이 아니오.
그런데 그대는 우리 사이에 원망과 악함이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밝혀서 버리니, 충후함을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소.
과인이 아무리 불초하다 해도 저 나라의 같이 난폭하지는 않으며, 그대가 비록 뜻을 얻지 못하였다 해도 저 상용商容이나 기자箕子만큼 불우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렇다면 안으로 나의 잘못을 덮어 주지 못한 채, 도리어 밖에 나가 나에 대한 분풀이를 밝히고 있으니, 아마 그 과실은 족히 그대의 고매하였던 인품에 상처를 낸 야박한 행실이니, 그렇지 않소?
진실로 그대의 의행義行을 밝혀 보이고 그대의 고매함을 성취시키려면 비록 아무리 어려운 오명惡名이라도 받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아야 하오.
본디 과인의 박함을 들어내려고 해서 그대는 충후함을 얻지 못하고, 나의 치욕을 드날리고도 그대는 영광스럽지 못하였으니, 이는 한 가지 잘못에 두 가지를 잃는 셈이 되오.
의로운 자는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 자신의 이익을 삼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남을 상하게 하면서 자신도 손해 보는 일을 해야 하겠소?
원컨대 그대는 과인의 불초로 인하여 이미 이룩해 놓은 미덕에 를 끼치지 마시오.
옛날 유하혜柳下惠나라의 관리를 지내면서 세 번이나 축출을 당하였지만 그 나라를 떠나지 않았소.
어떤 이가 ‘이 정도면 떠날 만하오.’라 하자, 유하혜는 ‘진실로 내가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한, 어느 나라를 간들 축출당하지 않겠소?
또 어차피 축출당한다면 차라리 고국에 있는 것이 낫소.’라 하였다 하오.
이처럼 유하혜는 세 번이나 축출당하면서도 자신에게 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옛날 업적을 사람들이 잊지 않았던 것이며, 또 나라를 버리고 떠나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원근 어디에서나 그를 비방하는 논의가 없었던 것이오.
그런데 지금 과인의 과실에 대해 우리나라 백성이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있는 터에 도리어 과인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의논하는 말이 천하에 널리 퍼져 있소.
속담에 남을 ‘하면서는 마음을 수식하지 않으며 정당한 의논은 남에게 를 끼치지 않으며 인자仁者는 남과의 사귐을 가볍게 끊지 않으며, 지자智者는 남의 공을 버리지 않는다.’하였소.
큰 공로를 버리는 것은 중도에서 하는 것이며, 사귐을 가벼이 끊고 큰 이익을 구하는 것은 원망을 사는 일이 됩니다.
중간에서 일을 폐하여 포기하고 원망을 사면서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은 소원疎遠한 신하나 할 일이지 그대에게 바라는 바가 아니오.
지금 과인에게 죄가 없는데 그대는 무엇을 원망하오?
원컨대 그대는 원망을 버리고 선왕께 입은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돌아와 과인을 지도해 주시오!
그대는 스스로 ‘나는 보복할 악심惡心을 감추고 그(연왕燕王)의 잘못을 드러내어 밝힐 것이며, 선왕의 은혜에 아랑곳없이 그의 죄악을 밝히리라.’라고 마음 먹었다면 이는 나로 하여금 나가서는 더 이상 공을 세우지 못하고, 물러서서는 더 이상 잘못을 고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그대가 헤아려서 결정할 일로 잘 도모하시오!
이상이 과인의 어리석은 생각이오.
삼가 글을 써서 이를 알려드리오.”
악한樂間악승樂乘은 이 편지를 보고도 연왕이 자신의 계책을 들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였다.
두 사람은 그대로 조나라에 머물면서, 답장하지 않았다.


역주
역주1 : 이 이야기는 《史記》 〈燕召公世家〉와 〈樂毅列傳〉에도 있으나 내용에 차이가 있으며 시기는 B.C.251년쯤이다. 한편 이는 본서 466장과 겹치는 내용이 많다. 燕王 喜는 孝王의 아들로, 이름은 喜이다. 栗腹은 燕나라의 신하. 162장 참조.
역주2 昌國君 樂間 : 樂毅의 아들. 昌國君은 樂毅가 받은 封號로 그 아들이 이어받았다. 160‧248‧453‧461‧466장 참조.
역주3 : 趙나라 邑. 지금의 河北省 柏鄕縣 북쪽.
역주4 慶秦 : 卿秦‧慶奉으로도 쓰며 燕나라 장수.
역주5 廉頗 : 趙나라 장수. 藺相如와 刎頸之交‧兩虎相鬪‧完璧歸趙 등의 고사를 낳은 인물.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참조. 249장 참조.
역주6 樂乘 : 樂毅‧樂間의 일족으로 趙나라에 벼슬하고 있던 인물.
역주7 於(而) : 鮑彪本에 의하여 ‘而’로 고쳤다.
역주8 商容‧箕子 : 商容은 殷의 紂에게 忠諫을 하다가 축출당한 殷나라 대부. 箕子는 紂王의 숙부. 紂王에게 간언을 하였다가 들어주지 않자 거짓 미친 체하여 은둔하였다.
역주9 柳下惠 : 魯나라의 대부. 세 번 벼슬에서 쫓겨났는데 《論語》 〈微子篇〉에 보인다.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