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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2)

전국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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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책(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三十年, 相田單問曰:
“吾非不說將軍之兵法也, 所以不服者, 獨將軍之用衆.
用衆者, 使民不得耕作, 糧食輓賃不可給也. 此坐而自破之道也,
非單之所爲也.
單聞之, 帝王之兵, 所用者不過三萬, 而天下服矣.
今將軍必負十萬‧二十萬之衆乃用之, 此單之所不服也.”
馬服曰:
“君非徒不達於兵也, 又不明其時勢.
肉試則斷牛馬, 金試則截盤匜;
薄之柱上而擊之, 則折爲三; 質之石上而擊之, 則碎爲百.
今以三萬之衆而應强國之兵, 是薄柱擊石之類也.
且夫吳干之劍材難, 夫毋脊之厚, 而鋒不入; 無脾之薄, 而刃不斷.
兼有是兩者, 無之便, 操其刃而刺, 則未入而手斷.
君無十餘‧二十萬之衆, 而爲此釣單鐔蒙須之便, 而徒以三萬行於天下, 君焉能乎?
且古者, 四海之內, 分爲萬國. 城雖大, 無過三百丈者; 人雖衆, 無過三千家者.
而以集兵三萬, 距此奚難哉!
今取古之爲萬國者, 分以爲戰國七,
能具數十萬之兵, 曠日持久, 數歲, .
齊以二十萬之衆攻荊, 五年乃罷. 趙以二十萬之衆攻中山, 五年乃歸.
今者, 齊‧韓相方, 國圍攻焉, 豈有敢曰, 我其以三萬救是者乎哉?
今千丈之城, 萬家之邑相望也, 而索以三萬之衆, 圍千丈之城, 不存其一角,
而野戰不足用也, 君將以此何之?”
都平君喟然太息曰:
“單不至也!”


246. 나라 혜문왕惠文王 삼십년三十年
나라 혜문왕惠文王 30년, 재상 도평군都平君(안평군安平君) 전단田單조사趙奢에게 물었다.
“나는 장군의 병법을 좋아하지 않는 바 아니지만 불복不服하는 것이 있다면, 유독 장군만 군사의 수가 많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숫자의 군사를 채우기 위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게 하며, 식량 운반 등도 제대로 되지 못하게 되니, 이는 앉아서 스스로 자기가 격파되기를 바라는 길입니다.
저() 같으면 그러한 방법으로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제왕帝王들은 군사를 3만이 넘지 않게 썼지만 천하가 항복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장군께서는 반드시 10만, 20만이 있어야 용병할 수 있다고 하니, 저로서는 승복할 수 없는 바입니다.”
마복군馬服君(조사趙奢)이 말하였다.
“그대는 용병에 통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시세도 모르는 것이오.
무릇 나라의 간장검干將劍을 봅시다.
이 칼로 고기를 자르면 우마牛馬도 절단할 수 있고, 쇠에 시험해 보면 반이盤匜같은 것도 자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둥에다 이를 때려 보면 세 동강이가 나고, 돌에 때려 보면 수백 개의 조각이 되고 맙니다.
지금 3만 으로 강한 나라의 군대에 응한다면 그 칼로 기둥이나 돌을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나라 간장검은 그 재료를 얻기가 어렵다고 해서 그 칼의 등을 두껍게 하지 않는다면 찔러도 칼끝이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비장脾臟처럼 얇은 부분이 없으면 그 칼날로는 자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칼이 이러한 두 가지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도 손잡이 앞의 고리, 칼자루 칼집, 칼줄의 편리한 부분이 없이 맨손으로 그 예리한 칼끝을 잡는다면 상대방을 찌르기 전에 먼저 자기 손이 베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대에게 10만여, 20만의 무리도 없고, 그러한 칼의 고리‧칼자루‧칼집‧칼끈 같은 편리함이 없이 한갓 3만의 군사만 가지고 천하를 휘젓고자 한다면 그대가 어찌 능히 해낼 수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옛날에는 사해四海 안이 만국萬國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성이 크다고 해야 3백 을 넘지 않았고, 사람이 많다 해도 3천 가구를 넘지 않았습니다.
이에 3만 병이 가서 대적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고대의 그 만국을 서로 취하여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수십 만의 군대를 갖추고 있어야 장구한 시간을 두고 수년의 지구전持久戰을 벌일 수 있으니, 이는 당신 나라가 나라에게 포위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러나 제나라가 20만이나 되는 무리로 나라를 공격하였으나 5년 만에야 끝났고, 우리 나라가 20만의 대군으로 중산中山을 공격하였을 때도 5년 만에야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나라와 나라가 서로 대적하여 두 나라가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는데, 어찌 감히 ‘나는 3만 군병으로 이를 구원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1천 길이나 되는 성과, 만가萬家이 서로 마주 볼 정도로 즐비한데, 3만 병으로 이를 포위한다면 그 천 길 높이의 한 귀퉁이도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야전野戰에는 사용해 볼 수도 없으니 그대라면 장차 이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도평군都平君(전단田單)은 위연喟然히 크게 탄식하였다.
“저는 당신에 미치지 못합니다.”


역주
역주1 : 《史記》 〈趙世家〉의 기록에 의하면 田單이 趙나라 재상이 된 것은 孝成王 2년(B.C.264년)이다. 또 惠文王 30년은 바로 閼與之戰(249장)의 이듬해이다.
역주2 惠文王 : 武靈王의 아들, 이름은 何, 재위 33년.
역주3 都平君 : 齊나라의 安平君 田單을 말한다. 平都君으로 쓰인 곳도 있다. 田單은 齊의 疏族으로 卽墨이 燕에 포위되었을 때 이를 물리치고 제를 수복하여 천하에 그 이름을 떨쳤다. 安平君에 봉해졌으며, 襄王을 도왔다. 《史記》 〈樂毅田單列傳〉 참조.
역주4 趙奢 : 趙나라 대부, 平原君 때에 장군이 되었다. 馬服君에 封해졌다.
역주5 吳干之劍 : 《荀子》 注에 ‘吳干將之劍’이라 하였고, 《吳越春秋》에는 그의 妻 莫邪와 함게 名劍을 만들어 ‘干將劍’과 ‘莫邪劍’이라 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新譯戰國策》에는 吳ㆍ干을 각각의 나라 이름으로 보았다.
역주6 釣單鐔蒙須 : 釣는 鉤, 칼 손잡이의 環. 單은 咢, 즉 鍔. 칼등부터 칼날까지의 부분. 鐔은 손잡이 부분, 蒙須는 劍繩이라 한다.
역주7 卽君之齊已 : 그때 齊나라가 燕의 공격을 받아 莒와 卽墨이 5년 간 포위되었던 일.
역주8 而(兩) : 원문 ‘而’는 ‘兩’의 誤字임.

전국책(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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