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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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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저范雎나라에 이르다
范雎曰:
범저范雎가 말하였다.
“臣居山東, 聞齊之內有, 不聞其王; 聞秦之有太后‧穰侯‧, 不聞其有王.
“제가 산동山東에 있을 때 나라에는 전단田單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 그 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으며, 마찬가지로 나라에도 태후太后양후穰侯경양군涇陽君화양군華陽君 등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 왕에 대하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夫擅國之謂王, 能專利害之謂王, 制殺生之威之謂王.
무릇 국가를 통치하는 자를 일러 이라 하며, 이해利害를 마음대로 장악하는 자를 이라 하며, 살생殺生의 권한을 쥔 자를 이라 하는 것입니다.
今太后擅行不顧, 穰侯出使不報, 涇陽‧華陽擊斷無諱,
그런데 지금 태후太后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고, 양후가 마음대로 사신을 파견하고도 왕에게 보고하는 일도 없으며, 경양군과 화양군은 마음대로 범인을 처벌하고도 꺼려하는 바가 없습니다.
四貴備而國不危者, 未之有也.
이런 네 귀인들이 있는데도 나라가 위험하지 않은 경우란 없습니다.
爲此四者, 下乃所謂無王已. 然則權焉得不傾, 而令焉得從王出乎?
이 네 귀인이 있어 아래로 소위 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니 어찌 권위가 기울지 않을 수 있겠으며, 명령이 어찌 임금으로부터 나올 수 있겠습니까?
臣聞:善爲國者, 內固其威, 而外重其權.
저는 듣건대 ‘나라를 잘 다스리는 왕은 안으로는 위엄을 견고하게 하고 밖으로는 권세를 중히 한다’라고 합니다.
穰侯使者操王之重, 決裂諸侯, 剖符於天下, 征敵伐國, 莫敢不聽.
지금 양후의 사자는 대왕의 권위를 믿고 의지하여 제후들의 땅을 분할分割하고 마음대로 부절符節을 쪼개어 천하의 군대를 징발하여 적국을 정벌하고 있어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戰勝攻取, 則利歸於; 國弊, 御於諸侯;
이렇게 싸움에 이기고 공격하여 취하면 그 이익을 〈자신의 봉지封地인〉 땅에 귀속시키며, 나라가 피폐해지도록 제후를 제압하기에 바쁩니다.
戰敗, 則怨結於百姓, 而禍歸社稷.
싸움에 지면 그 원망을 백성들과 맺고, 그 화를 사직에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曰:‘木實繁者披其枝, 披其枝者傷其心.
》에 ‘나무에 열매가 지나치게 많으면 가지가 늘어지고, 가지가 늘어지면 목심木心이 상한다.
大其都者危其國, 尊其臣者卑其主.’
봉토封土를 받은 자가 너무 커지면 나라가 위험해지고, 신하를 너무 높이면 그 임금이 낮아진다’라고 하였습니다.
管齊之權, 縮閔王之筋, 縣之廟梁, 宿昔而死.
요치淖齒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였을 때 민왕閔王근골筋骨을 뽑아 종묘의 대들보에 매달아 숙석宿昔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태李兌나라 권력을 쥐었을 때 주보主父의 음식을 줄이고 끊어 1백 일 만에 굶어죽게 하였습니다.
今秦, 太后‧穰侯用事, 佐之, 卒無秦王, 此亦淖齒‧李兌之類已.
지금 나라는 태후와 양후가 용사用事하고 있고, 고릉군高陵君경양군涇陽君이 이를 돕고 있어, 끝내 진왕秦王이 없으니 이야말로 역시 요치淖齒이태李兌의 류와 같습니다.
臣今見王獨立於廟朝矣, 且臣將恐後世之有秦國者, 非王之子孫也.”
제가 지금 대왕께서 고독하게 이렇게 궁정 안에 있는 것을 보니, 신은 장차 후세에 이 진나라를 소유할 자가 대왕의 자손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秦王懼, 於是乃廢太后, 逐穰侯, 出高陵, 於關外.
진왕은 두려워서 이에 태후를 하고 양후를 축출하고 고릉군을 내쫓고 경양군을 관외關外로 추방해 버렸다.
昭王謂范雎曰:
소왕이 범저에게 말하였다.
“昔者, 齊公得管仲, 時以爲仲父.
“옛날 환공桓公관중管仲을 얻었을 때 그를 중부仲父로 삼았습니다.
今吾得子, .”
지금 내가 그대를 얻었으니 그대를 로 삼겠습니다.”
역주
역주1 084. 范雎至秦(下) : 이 이야기는 앞 083장과 연결된 것이다. 《史記》 〈范雎蔡澤列傳〉 참조.
역주2 田單 : 齊나라 왕실의 먼 친척. 燕將 樂毅가 공격해 오자 齊나라는 卽墨과 莒만 남게 되었다. 田單이 卽墨의 장수로 있을 때 燕에 反間計를 써서 騎劫을 樂毅와 바꾸게 하고는 火牛攻法으로 燕을 물리치고 齊를 수복하였다. 그후 安平君에 봉해져 권세를 부렸다. 《史記》 〈田單樂毅列傳〉 참조.
역주3 涇陽‧華陽 : 涇陽君은 宣太后의 아들이며 昭王의 아우. 華陽君은 宣太后의 同父弟이다.
역주4 : 魏冉이 穰에 봉해진 후 다시 陶 땅에 봉해졌다.
역주5 : 지금의 《詩經》에 없는 佚詩이다.
역주6 淖齒 : 원래 楚나라 장수로 초나라가 齊나라를 도와 相이 되도록 한 인물이다. 燕將 樂毅가 五國을 연합해서 齊에 쳐들어오자 湣(閔)王이 莒로 도망쳐서 楚에 구원을 청하니, 楚는 장군 淖齒를 보내 구해 주었다. 민왕이 감격해서 淖齒를 재상으로 삼았으나 淖齒는 齊나라 땅을 燕과 반분할 셈으로 莒에서 민왕을 죽여 그 筋骨을 뽑아 대들보에 다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淖齒도 후에 齊나라의 대부인 王孫賈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160장 참조.
역주7 李兌用趙……百日而餓死 : 李兌는 趙나라의 大夫. 趙나라 武靈王은 秦나라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만 전념하겠다고 왕위를 태자인 何에게 물려주니 이가 惠文王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主父(太上王과 같음)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애초 태자를 정할 때 長子인 章을 삼았으나 뒤에 妾인 何(惠文王의 어머니)를 총애한 끝에 태자 자리를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장자 章이 원한을 품게 되었다. 마침 惠王 4년에 父子 세 사람이 沙丘의 行宮으로 놀러 갔을 때 태자 장이 난을 일으켰다. 그때 서울에 있던 다른 公子 成과 대부인 李兌가 동조하여 主父(武靈王)를 행궁에 석 달 남짓 가두어 버렸는데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더니 이미 마른 해골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역주8 高陵 : 昭王의 同母弟. 이름은 顯.
역주9 원주] 涇陽 : 曾鞏本에는 涇陽 아래에 華陽 두 글자가 더 있다.
역주10 원주] 走涇陽 : 曾鞏本에는 아래에 華陽 두 글자가 더 있다.
역주11 亦以爲父 : 父는 남자의 美稱. 呂尙은 尙父, 管仲은 仲父 등 아버지와 같은 항렬로 대접하여 부르는 칭호. 음은 보.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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