曰: “老臣今者殊不欲食, 乃自强步, 日三四里,
媼之送燕后也, 持其踵爲之泣, 念悲其遠也, 亦哀之矣.
已行, 非弗思也, 祭祀必祝之, 祝曰: ‘必
.’ 豈非計久長, 有子孫相繼爲王也哉?”
“今三世以前, 至於趙之爲趙, 趙主之子孫侯者, 其繼有在者乎?”
今媼尊長安君之位, 而封之以膏腴之地, 多予之重器, 而不及今令有功於國. 一旦山陵崩, 長安君何以自託於趙?
“人主之子也, 骨肉之親也, 猶不能恃無功之尊, 無勞之奉, 而守金玉之重也, 而況人臣乎?”
286. 조趙나라 태후太后가 새로이 정치를 하다
조趙나라 태후太后가 처음 국정을 섭정攝政하자 진秦나라가 급히 침공해 왔다.
조나라는 할 수 없이 제齊나라에게 구원을 청하니, 제나라에서 말하였다.
“반드시 장안군長安君을 인질로 보내 주면 군대를 보내 주겠소.”
태후가 들어주지 않으려 하니, 대신들이 강하게 간언하였다.
“누구든지 다시 장안군을 인질로 제나라로 보내자는 말을 꺼내면 내가 그 얼굴에 침을 뱉겠다.”
그때 좌사左師 촉섭觸讋(촉접)이 태후를 뵙고자 하니, 태후는 상기된 얼굴로 기다리다가 맞아들였다.
촉접은 들어가 천천히 걸어 앞에 이르러 스스로 사죄하며 말하였다.
“제가 일찍이 다리에 병이 나서 빨리 걸을 수가 없어 오랫동안 뵙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그러려니와 태후의 옥체도 어딘가 쇠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늙은 저는 지금 식욕이 사라져서 스스로 억지로 하루에 3, 4리쯤 걷지요.
그랬더니, 조금 식욕이 돌아오고 몸도 좀 나은 듯합니다.”
“저의 천한 아들 놈 중에 서기舒祺라는 녀석이 있는데, 아주 어리고 불초합니다.
게다가 제가 자꾸 늙어가니 갈수록 더욱 가련해지는군요.
원컨대 검은 옷을 입혀 궁중의 위사衛士의 숫자나 채워 왕궁의 호위를 시켜 주시면 합니다.
비록 어리긴 하나 제가 죽어 구학溝壑에 묻히기 전에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장부로서도 역시 어린 자식을 그리도 사랑하고 가련히 여깁니까?”
“제가 보기에 태후께서는 장안군長安君보다 연후燕后를 더욱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그 자식을 사랑하는 계책은 심원深遠한 것입니다.
태후께서 연후를 보낼 때 그 뒤꿈치를 잡고 울면서 멀리 시집가는 것을 슬퍼하셨으니, 역시 애처롭게 여긴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이미 떠난 후에는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제사 지낼 때는 반드시 기도하기를 ‘혹시 잘못되어 돌아오는 일이 없거라.’라고 하셨으니, 이것이야말로 장구한 계획, 즉 그의 자손이 왕으로 계속 이어지라는 게 아닙니까?”
“지금 삼대三代 이전부터 조나라가 건국될 때까지 조나라 임금의 자손이 후侯로서 지금까지 그 자리를 대대로 이어온 자가 있습니까?”
“조나라가 아니더라도 다른 제후의 자손들 중에서라도 지켜 내려오는 자가 있습니까?”
“이런 일은 가까운 화禍는 곧 본인에게 미치고 먼 화禍는 자손에게 미치기 때문입니다.
어찌 임금의 자손이라 하여 반드시 선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다만 지위만 높고 공훈이 없거나 봉록만 후하게 받고 노력하지 않으며 귀중한 보물만 많이 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태후께서는 장안군을 높여 기름진 땅을 봉지封地로 주고 많은 보물을 안겨 주면서도 지금까지 그로 하여금 나라에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고 있으니, 하루아침에 태후太后께서 돌아가시는 날이면 장안군이라고 어찌 스스로 조나라에 의탁하여 있을 수 있겠습니까?
노신老臣은 태후께서 장안군을 위한 계책이 짧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처음 제가 연후燕后보다 장안군을 덜 사랑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리하여 장안군에게 수레 1백 승을 주어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니, 제나라도 그제야 병력을 내어 도와주었다.
“임금의 아들, 골육의 친척이라 할지라도 공功이 없는 존귀함이나 노력이 없는 봉록, 혹은 금옥의 보배는 능히 지킬 수 없는데, 하물며 신하이겠는가?”